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29)
마족답게 사는 법-329화(329/385)
마족답게 사는 법 329화
329 동아리 (5)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 하.”
즐겁게 웃는 아르놀트를 바라보며 루시어스도 마주 웃어 주었다.
이미 목도리는 물론이고 자켓까지 벗은 루시어스의 모습을 한 번 확인한 아르놀트가 입매를 굳히고 이마를 짚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하나.
레이얼은 말릴 생각도 없는지 옆에서 루시어스의 옷가지를 곱게 개어놓고 있었다. 아르놀트가 지끈대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아아아, 루시어스. 내가 분명 조금 전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니?”
“네, 들었어요. 그런데 저 마정석을 한번 확인해 보고 싶어서요.”
“루시어스, 네가…….”
강한 건 알겠지만, 제발 위험한 일은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니?
아르놀트가 말을 끊고 입을 닫았다.
제 걱정은 받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로 강한 마족임은 잘 안다. 대책 없이 행동할 만큼 어리석은 마족이 아님도 잘 안다.
하지만 저렇게 시신이 많은 곳에 가겠다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하아……. 레이얼, 레녹스. 루시어스 좀 말려 봐라. 그래도 저긴 너무 위험해 보이잖냐.”
“에이, 선생님. 루시어스가 하겠다는 걸 어떻게 말려요? 얌전히 기다리는 게 낫죠.”
하루 이틀 일이냐며 레이얼이 방긋방긋 웃었다. 사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라 아르놀트는 더욱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케루브조차도 말릴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케루브는 대체 왜 준비해 왔는지 모를 밧줄을 꺼내 한쪽 얼음기둥에 단단히 묶으며 끙끙거렸다.
이리누슈카와 키안이 그걸 도왔다.
아주 본격적이다, 이 녀석들.
‘어떻게 말리는 놈이 없냐.’
아르놀트는 마지막 남은 동아줄을 잡듯 레녹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루시어스를 끔찍이 아끼며 걱정하는 레녹스라면 분명……!
“맞습니다, 차라리 함께 가야죠.”
그것이 썩은 동아줄이라는 걸 아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녹스는 아예 루시어스와 함께 들어가려는지 주섬주섬 옷을 벗으며 케루브가 건넨 밧줄을 허리에 묶고 있었다.
“레녹스, 너도 들어가려고?”
“그럼, 네가 들어가겠다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잖아.”
레녹스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호수가 꽤 넓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두 명인 게 더 나을 거야. 밧줄을 내 몸에 묶어 놓으면 네가 움직이는 데 불편하지도 않을 거고.”
“그러네. 알았어.”
루시어스는 더 말하지 않고 레녹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전 같았으면 아이들을 맡기고 혼자 들어가려고 했겠지만, 방학 내내 열심히 훈련해 한층 성장해온 레녹스에게 믿음을 보여 주고 싶었다.
내가 이만큼 너를 믿고 있으니, 너 또한 걱정하지 말라고.
“알겠다, 알겠어. 대신 만반의 준비를 해서 가자.”
아르놀트가 항복한 듯 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둘에게 다가가 여러 마법을 걸어놓고 분신을 소환해 하나씩 붙였다.
그림자 분신이 루시어스와 레녹스의 몸을 얇게 감싸며 투명해졌다.
“보호 효과가 있으니 무슨 일이 생겨도 몇 초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다.”
“네, 감사해요.”
“제군, 우리 동아리 부장님이 안에 들어가야겠단다. 혹시 모르니 밧줄을 잡고 있어라. 쌍둥이는 와서 호수 밑을 좀 탐색해 주고!”
아르놀트의 지시대로 아이들이 합을 맞춰 재빨리 움직였다. 훌른과 베른이 후다닥 호숫가로 뛰어와 기운을 펼쳤다.
“갑니다, 가요!”
“우리에게 맡기라고요!”
모두 함께 오길 참 잘했네.
루시어스가 미소를 머금었다.
* * *
준비를 겨우 끝낸 후 레녹스와 함께 호수 안으로 들어온 루시어스는 드디어 투명하고 거대한 푸른색 마정석과 마주했다.
호수 밑바닥의 마정석에서 쉴새 없이 한기가 풍겼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물의 온도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몸으로 느껴졌다.
얼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춥군. 이 정도 한기면……, 저렇게 되는 것도 당연한가.’
쌍둥이들이 힘을 내준 덕분에 호수 아래에 마물이나 마수는 없이 시체만 한 무더기로 쌓여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말은, 이 많은 마족이 정말 ‘한기’ 때문에 얼어 죽었다는 뜻이었다.
루시어스는 전신을 콕콕 쑤시는 시린 한기를 느끼며 이를 꽉 다물었다. 순수한 만큼 독하고, 독한 만큼 날카로운 한기였다.
‘마기 소모가 훨씬 심해.’
호수 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웬만한 마족이라면 호수 속에서 10분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루시어스는 자신을 붙잡고 있는 레녹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 정도면 레녹스가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레녹스는 멀쩡했다. 자신이 걱정할까 봐 멀쩡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많이 성장했구나.’
레녹스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어서 볼일을 보라고 말하는 듯한 시선에 루시어스가 웃고, 다시 마정석에 집중했다.
다들 걱정할 것임을 앎에도 굳이 마정석을 보려 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호수 밑에 잠든 마정석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바람도 불지 않는데 수면이 일렁였다.
그것이 마치 저를 부르는 것만 같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코안 숲에서도 그랬지.’
루시어스는 문득 코안 숲에서 보았던 마정석이 떠올랐다.
엘프의 보물, 자연의 정수.
마계의 먼 과거를 보여 주었던, 전할 말이 참 많은 것 같았던 코안 숲의 마정석 말이다.
‘이 녀석도 뭔가를 품고 있을까.’
아무에게도 전하지 못한 말을 수천, 수만 년 동안 얼음 속에 품고 있지는 않을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마정석과 가까워질수록 손끝이 찌릿찌릿 떨렸다. 마정석의 기운이 한 번 크게 일렁였다.
한파가 심하게 몰아치며 호숫물이 출렁출렁 흔들렸다.
하얗게 질렸던 손이 곧 피마저 통하지 않는지 푸르게 물들었다. 허리를 감싼 레녹스의 팔이 놀람에 흠칫 떨렸다.
‘해치지 않을게.’
찌르는 듯한 고통이 손끝에 맴돌았으나 루시어스는 오로지 마정석에만 집중했다.
왠지 마정석이 저를 해치려고 마기를 뿜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이 녀석은 지금 그저.
‘겁먹지 않아도 돼.’
겁을 먹었을 뿐이었다.
낯을 가리는 어린아이처럼, 처음 보는 이에게 이빨을 세우는 들짐승처럼. 그저 마정석도 마기를 이용해 날을 세우고 있을 뿐이다.
루시어스의 입술이 소리 없이 천천히 움직였다.
‘괜찮아.’
나는 네가 무섭지 않으니.
우우우웅.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일까. 불어닥치던 한기가 서서히 물러갔다. 마기의 일렁임이 가라앉고 호수가 평화로움을 찾았다.
손끝을 찌르던 통증이 사라지고 혈색이 돌아왔다.
토옥…….
손끝이 마정석에 닿았다.
“……!”
쏴아아아!
동시에, 바람이 불어닥쳤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거센 돌풍이었다. 바람이 불 리 없는 장소임에도 루시어스는 확실히 바람이 불어왔음을 느꼈다.
강한 바람에 질끈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코안 숲의 마정석이 보여 주었던 것처럼, 눈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졌다.
“이건…….”
호숫가에 마수가 모여 있다.
어떤 마수는 낮잠을 청하고, 어떤 마수는 목을 축였다. 호숫가에서 헤엄을 치며 노는 마수도 있었다.
이곳은 룬 네르였다.
얼음으로 뒤덮여있지 않던, 하얀 눈이 아니라 푸른 초목이 가득하던 시절의 룬 네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마수 사이로 마족들이 간간이 들어와 호수의 물을 떠 갔다.
물을 뜰 때마다 호수에 항상 고맙다고 인사한 그들은 주변에 있는 마수들에게 먹이를 주기도 하고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루시어스는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고개를 올리자 눈이 부시도록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아주 큰 나무가.
아름답고 탐스러운 나무가 마정석이 있던 곳에 자리해 있다.
“……너도 이때가 그립니?”
하늘이 어두워지자 점점 마수가 찾아오지 않게 되고, 마족의 발길이 점차 끊기며 룬 네르에 하얀 눈이 쌓였다.
푸른 초목이 죽은 자리에는 투명한 얼음이 자리했다. 마치 어떻게든, 그것을 대신하고 싶다는 듯.
루시어스가 마정석을 매만졌다.
‘그렇구나. 이곳의 마정석도, 코안 숲의 마정석도…….’
이걸 알려 주고 싶었던 거구나.
* * *
“동아리……, 동아리라.”
가브리엘은 사이러스에 파견된 천사들로부터 도착한 보고서를 읽어보며 턱을 매만졌다.
그곳에는 루시어스와 케루브가 아카데미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빼곡이 적혀 있었다.
이번 보고에서 가브리엘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끌었던 것은 루시어스가 ‘동아리’를 개설해 특별반 학생들과 함께 외부 활동을 나갔다는 사실이었다.
루시어스가 어디까지나 ‘학생’으로서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다는 건 가브리엘도 알고 있다. 그간의 행적을 보면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멍청할 정도였다.
다만 그와 동시에 루시어스 켄드릭은 장로의 책임감을 버리지 못하기도 했다.
힘이 있기에, 그 자신이 장로이기에.
친구들을 위험에서 지키려 한다.
‘즉위 기념식까지만 해도 내게서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태도를 보였는데…….’
그런 성정을 가진 루시어스 켄드릭이 아이들을 위험에 노출시킬 행동을 할 리는 없다.
“정말 천계를 믿는 건가?”
가브리엘이 끄응, 신음했다.
루시어스는 분명 얼마 전 급하게 소집한 회의에서 사절단을 파견하자며 천계에 대한 믿음을 보여 주었다.
그 후 루시어스가 한 것이라고는 러드에서 기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왕과 함께 해저 도시로 여행을 간 정도였다.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케루브에게서 동아리 활동 때문에 외부로 나갈 거라는 보고는 들었지만……. 하아, 왜 이렇게 불안하지?’
타리크 라하위스가 사절 대표로 천계에 파견되기로 한 것만 제외하면, 오히려 의도한 대로 상황이 잘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도 왠지 가브리엘은 무척 초조했다. 이대로 넘어가기에는 입안이 너무 껄끄러웠다.
“상대가 메타트론 님만 아니었어도, 천리안으로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을 텐데.”
영혼의 격이 높으니 자랑이자 무기인 천리안도 소용이 없다.
루시어스는 물론이고 그와 계약으로 이어져 있는 기사들의 행동까지도 예측할 수 없었다. 이런 무력함을 느끼기는 오랜만이다.
가브리엘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긴장할 것 없었다. 생각대로 일이 흘러가고 있다면, 변수가 생기더라도 어느 정도는 수습할 수 있으니까. 그걸 위해 자신이 여기까지 왔으니까.
‘정말 천계를 믿고 있다면……. 과거의 감정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는 거라면.’
누구보다 천계를 아꼈던 당신이.
정말 돌아오고 있는 것이라면.
가브리엘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방 주변에 쳐진 결계를 한 번 확인한 그가 조심스럽게 마법진을 고쳐 썼다.
날개의 깃털을 하나 뽑아 숨결을 불어넣자 가브리엘과 똑같이 생긴 천사가 하나 생겼다.
그의 분신이었다.
“슬슬 다음 계획을 실행할 때가 되었지. 움직여야겠군.”
이 정도면 방을 비우는 잠시간은 눈을 속일 수 있을 터다.
가브리엘이 다시금 결계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한 후 은밀히 이동했다. 가브리엘의 분신은 그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자리에 앉아 서류를 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에서 나갔던 가브리엘이 돌아왔다. 나갈 때와 다름없이 옷깃도 흐트러지지 않은 단정한 모습이었으나.
옅은 피냄새가 감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