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31)
마족답게 사는 법-331화(331/385)
마족답게 사는 법 331화
331 갈증 (1)
“오늘은 자습입니다.”
수업 시간이 되자마자 반으로 들어온 하멜이 교과서를 교탁에 턱 내려놓으며 말했다.
책을 펴고 얌전히 수업을 기다리던 특별반 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 눈치를 살폈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평소 같았으면 학생들도 무척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무려 개학하고 내내.
이번 학기에 하멜은 한 번도 제대로 수업을 진행한 적이 없었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
‘요즘 이상하시지?’
항상 생긋생긋 웃으시던 하멜 선생님의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것도 그들의 긴장감 조성에 한 몫을 거들고 있었다.
그런 어색한 분위기 사이에서 루시어스가 하멜을 바라보았다. 하멜이 선생 일을 반기지 않기는 했어도 이렇게 무책임한 행동을 할 녀석은 아니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혹시 배가 고파서 이러나?’
어딘가 잔뜩 심통이 난 표정이었다. 자신이 하멜의 식사 시간에 소홀하면 항상 하멜은 저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는 했다.
요즘 하멜에게 자주 신경을 써 주지 못하기는 하였으나, 이번만큼은 루시어스도 억울했다. 개학하기 전에 그를 배불리 먹여 주었었으니까.
‘목은 충분히 축였을 텐데.’
허기를 완벽하게 달래지는 못했어도 갈증을 참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을 터다.
지금껏 그렇게 ‘계약’을 이어 왔으니 착오가 있을 리 없다.
“저 녀석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러게, 이유를 모르겠네.”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옆에 앉은 케루브 또한 하멜에게서 이상함을 느꼈는지 루시어스에게 고개를 기울이며 물어보았다.
루시어스는 하멜이 왜 저런 태도를 보이는지 짚이는 바가 없었다.
저번 식사량이 부족했나?
피를 한 번 더 먹여 줘야 하나?
“흠…….”
고민을 거듭하는데 하멜이 삐딱하게 턱을 괸 채 혀를 찼다. 시선이 제게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날 보고 지금 혀를 찬 건가?
저런 불손한 태도를 허락한 기억은 없는데. 노골적으로 불만스러움을 표하는 모습에 루시어스가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
“…….”
둘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몰라도,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따로 불러내 주의를 시켜야 하나.
지금껏 아카데미의 마수학 선생님으로서 빈틈없이 행동하던 녀석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안 그래도 바쁠 때에.
“하아아아.”
고민하는데 눈을 부릅뜬 채 시선을 마주치고 있던 하멜에게서 깊고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푹 떨어트린 하멜이.
“하아아아아아아아.”
한 번 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
루시어스가 황당해하며 눈을 크게 떴다. 오늘만큼 하멜을 이해할 수 없던 적은 처음이었다.
“후우우우우우…….”
이러다 아주 땅이 내려앉겠다.
수업이 끝나면 아무래도 하멜을 불러내서 이유를 물어야겠다.
“하멜 선생님 왜 저래?”
“몰라,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계속 저러시니 걱정된다찌…….”
“즐겁게 놀아드리면 안 좋은 기분이 나아지시려나?”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르는 특별반부터 진정시켜 놓고 말이다.
일과가 끝난 후.
루시어스는 수업을 끝내고 교무실로 돌아가던 하멜을 불러 세웠다.
“선생님, 잠시 괜찮으신가요?”
“루시어스 니……, 학생?”
하멜의 머리 위에 매달려 있던 나비가 루시어스를 발견하고는 폴짝 뛰어 품에 달려들었다. 루시어스가 나비를 안아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사사사삭!
“……?”
“……시간은 있습니다.”
하멜이 스무 걸음이 넘게 루시어스에게서 멀어지며 간격을 벌렸다.
“선생님, 지금 이게 무슨…….”
“무슨 용무로 저를 찾아왔죠?”
루시어스의 눈썹이 들썩였다.
무슨 용무로 자기를 찾아왔냐니, 지금 그걸 몰라서 묻나? 루시어스는 하멜이 의도적으로 벌린 거리를 가늠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대화하라면 할 수야 있겠지만 이렇게 멀리서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 무슨 의미가 있겠나.
마왕과 긴 테이블에 앉아 식사해도 이만큼 멀진 않겠다.
“잠깐 대화를 좀 나누고 싶은데.”
“…….”
성큼.
루시어스가 하멜을 향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하멜이 움찔거리더니.
주춤.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이것 봐라?’
성큼, 성큼.
주춤, 주춤.
루시어스가 한 걸음 다가가면, 하멜은 한 걸음을 물러섰다.
‘애들 다 있는 복도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생전 안 이러던 놈이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를 노릇이다. 루시어스는 슬슬 모이는 학생들의 시선을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루시어스 학생. 제가 조금 바빠서요. 할 말이 있다면, 거기서 빨리 말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멀리서요?”
“대화하긴 충분하지요.”
복도 끝에 서 있으면서 대화하기 충분하기는 뭐가 충분하다는 건지.
‘어떻게 할까.’
아주 노골적으로 나를 피하는군.
자연스럽게 대화를 좀 나누려 했는데, 하멜이 쓸데없는 짓을 하는 바람에 시선이 많이 꼬였다.
여기서 계속 신경전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루시어스는 여전히 저와 멀찍이 서 있는 하멜을 바라보다가 나비를 내려다보았다.
멀리서 하멜의 기운이 술렁였다.
“나비, 루시어스 학생은 그만 괴롭히고 이리 오셔야…….”
“삐이…….”
루시어스가 하멜의 말을 가로채고 나비의 턱밑을 긁어 주었다.
“나비야, 나랑 같이 놀까?”
“뺘!”
나비는 당연히 루시어스를 향해 앞발 한쪽을 번쩍 들어 보였다.
“바쁘시다니 나비는 제가 놀아 주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기, 그게. 나비!”
“그럼 다음에 뵈어요.”
루시어스가 등을 돌렸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말해 줄 생각은 없어 보이니.
‘나비에게 물어봐야겠군.’
하멜과 하루 내내 함께 있는 나비에게서 정보를 들어야겠다.
어쨌든 나비는 제 편이니까.
그리고 하멜의 뒤를 캘만한 마족이라면…….
‘아, 그분을 만나 뵈면 되겠어.’
* * *
차라리 하멜이 ‘당신께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면 루시어스도 하멜을 닦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하멜과 자신은 삭막한 사이다. 추억으로 얽힌 특별반 친구들이나 경애로 이어진 기사, 보좌관과는 사뭇 다른 관계였다.
계약 이행에 필요치 않은 정보라면 굳이 말하거나 알 필요가 없다.
그것을 서로 알고 있기에 하멜과 루시어스는 주인과 계약마수의 선을 잘 지키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멜의 지금 태도는.
‘수상하단 말이지.’
아무래도 많이 수상했다.
마치 큰 잘못을 저질러 놓고 들킬까 봐 걱정하는 어린아이처럼.
‘왜 나를 피해 다니지?’
표정이나 태도를 보면 배가 고프고 갈증이 심해 저러는 것 같았다.
다만 루시어스가 아는 하멜은 그럴 때 자신을 피해 다니기는커녕, 배가 고프다 칭얼거리며 한 방울이라도 피를 마시고 가려고 긴 혀를 놀리는 놈이었다.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티를 팍팍 낼 만큼 어리석은 녀석도 아닌데 이러는 걸 보면…….
‘의도하는 건 아닌 것 같으니.’
그만큼 뭔가 급하게 숨겨야만 하는 것이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똑똑.
루시어스는 하멜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 만한 마족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재실’이라고 표시된 보건실 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마침 두 분 다 계시는 듯하다.
-응? 이 시간에 누가 왔지?
-루시어스군. 내가 나가 보지.
끼이익.
문이 열리고 익숙한 마족이 나왔다. 아르놀트가 루시어스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에게서 은은한 차향이 났다. 둘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나 보다.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냐. 설마 어디 불편하기라도 해?”
“아니에요, 그냥 개인적인 일 때문에 립톤 선생님을 뵈러 왔어요.”
“어머, 저를요?”
루시어스가 도착했다며 내어놓을 다기를 준비하던 립톤이 아르놀트의 뒤에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아르놀트가 루시어스에게 안긴 나비를 들어 제 머리 위에 앉혀 주며 문을 좀 더 열었다.
“들어와라. 아, 나도 함께 있어도 괜찮나?”
“물론이죠.”
“루시어스 학생, 여기 앉으세요.”
루시어스가 립톤이 가리키는 자리에 앉았다. 아르놀트는 나비를 머리에 얹은 채 보건실 한쪽을 뒤적거리더니 육포를 꺼내 왔다.
립톤이 그에게 육포를 받더니 나비의 입에 하나씩 물려 주었다.
“그래서 개인적인 일이 뭔가요?”
“하멜 선생님께서 립톤 선생님을 가끔 만나 마수학에 대한 대화를 나누곤 하신다고 들었는데요.”
“네, 맞아요. 제가 마수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하멜 선생님에게 도움을 받고 있답니다.”
그런데 그게 왜요?
두 선생님 모두 나란히 궁금해하며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루시어스가 나비에게 손짓해 무릎 위에 앉혀두며 말했다.
“하멜 선생님께서 요즘 이상하셔서요. 혹시 립톤 선생님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까 해서.”
“네? 하지만 하멜 선생님은…….”
당신의 계약 마수 아니었나요?
립톤이 차마 말하지 못하고 루시어스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루시어스가 한숨을 얕게 내쉬었다.
아르놀트가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하멜 선생님이 요즘 자습만 시킨다고 듣긴 했지.”
“맞아요. 하지만 하멜 선생님께서 수업을 어떻게 진행하시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 없어요.”
무책임하기는 해도 수업은 엄연히 ‘선생님’인 하멜의 영역이니.
루시어스의 말을 알아들은 립톤이 재차 물었다.
“그럼 뭐가 궁금하신 건가요?”
“……하멜 선생님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서요.”
“하멜 선생님이요?”
“하멜 선생님이 절 피해 다녀요.”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루시어스가 헛웃음을 흘렸다.
“하멜 선생님이 왜 그러는지 말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뭐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흠칫 놀라는 꼴도 그렇고, 제가 다가가면 후다닥 도망치는 꼴도 그렇고.
아니, 천년마수 에피알티스의 위엄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혹시 두 선생님께서는 뭔가 짐작가는게 없으신가요?”
“음…….”
“으으음…….”
아르놀트와 립톤이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한참 생각하던 그들이 한 명씩 말했다.
“제게서 찻잎을 좀 많이 받아 가셨어요.”
“찻잎이요?”
“네, 갈증 해소에 좋은 찻잎이요. 전까지는 찾지 않으시더니……, 개학하고 나서 찾으시더라고요.”
그것이라면 루시어스도 기억하고 있다. 분명 하멜이 갈증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도록 립톤이 약초를 배합하고 조합한 차였다.
립톤이 조심스레 말했다.
“배가 고프신 게 아닐까요? 요즘 좀 예민하신 것 같았는데.”
“……이상하네요. 개학하기 전에 한 번 식사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아르놀트가 말했다.
“그래서인가. 나도 교무실에서 시선을 좀 많이 느꼈는데…….”
“하멜 선생님의 시선이었나요?”
“그래, 뭐라고 해야 하나. 으음.”
아르놀트가 소름이 돋는 자신의 어깨와 목을 매만지며 말했다.
“먹잇감을 물색하는 것 같은?”
“그런가요.”
허기가 져서 그렇다면 왜 전처럼 배고프다고 하지 않는 거지?
고민하는데 루시어스의 무릎 위에서 육포를 먹던 나비가 폴짝 뛰어 올라와 가슴을 쭉 내밀었다.
“삐잇!”
나비가 갑자기 눈을 번뜩 빛내더니, 입을 쩍 벌려 루시어스의 팔을 가볍게 물고 우물거렸다.
그리고 테이블에 털썩 쓰러져서는 발을 바동거리더니 앞발로 머리를 짚고 고개를 저었다. 작은 두 발을 앞으로 내밀고 좌우로 흔들흔들거리기까지 하다가.
사사사삭!
루시어스를 보고 놀라더니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났다.
“…….”
“…….”
“삐!”
나비가 벌떡 일어나 당당하게 다시 가슴을 쭉 내밀었다. 루시어스와 아르놀트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걸까.
나비를 바라보던 립톤이 숨을 헙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나비! 당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