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35)
마족답게 사는 법-335화(335/385)
마족답게 사는 법 335화
335 잿더미 수프 (1)
“그대가 나를 개인적으로 찾아온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여유롭게 휴식을 즐기던 마왕이 차를 내려놓으며 맞은편에 서 있는 가브리엘을 바라보았다.
어떤 말이든 문서상으로 연락하던 가브리엘이 이렇게 직접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마왕은 가브리엘의 용건이 무엇인지 뻔히 알고 있었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척 차를 권했다.
“자네도 좀 들겠나?”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마계의 음식이 입에 좀 맞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아주 잘 맞습니다.”
“다행이군.”
마왕은 눈썹 한 번을 까딱하지 않고 태연하게 차를 마시는 가브리엘을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마계의 물로 우린 마계의 차.
마왕의 집무실에 비치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최고급품이다.
그러니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아주 속이 뒤집힐 텐데.
그걸 기어이 다 마시다니.
‘기념식 때도 그랬지. 저 인내심과 집요함도 능력이군.’
시선을 가늘게 뜨고 가브리엘을 대놓고 탐색하던 그는 곧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편한 곳에 앉도록.”
“감사합니다.”
가브리엘은 마왕의 허락이 떨어진 후에야 자리를 찾아 앉았다.
“오늘 제가 찾아온 이유는 바알께서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가브리엘이 기다렸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마왕은 찻잔을 살랑살랑 흔들다가 눈동자를 굴렸다.
무심하기 그지없는 시선이었다.
“그래, 그대가 이리 찾아올 이유라면 하나뿐이겠지.”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으나 일말의 흥미도 없다는 듯, 아주 무심하고 권태로운 표정.
“아카데미 내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말하는 거겠지?”
“……맞습니다.”
가브리엘이 마른침을 삼켰다.
눈앞에 있는 이가 마왕임을 되새기며 긴장의 끈을 동여맸다.
가브리엘이 입을 열려는데 마왕이 선수를 쳤다.
“아카데미에 있는 천사들은 명백히 천계와 마계의 교류를 위해 파견되었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는, 바알께서도 허가한 일이고요.”
가브리엘이 냉큼 말을 받았다.
마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분명 내가 허가했지.”
“그런데 아시다시피, 그런 이들을 누군가 해하려 합니다.”
무척 안타까운 듯한 어조였다.
마왕은 가브리엘의 그런 태도에 피식 웃고 몸을 뒤로 편히 기대며 시선을 맞추었다.
“보아하니 천계 측에선 이미 결단을 내렸나 보군.”
“그렇습니다.”
“그래, 어떻게 하기로 했지?”
바라는 게 있을 텐데.
한발 물러서 주는 듯한 유한 질문이었다. 하긴, 마계 땅에서 천사들이 위협을 받는데 어떻게 좌시하고 있을 수 있겠나.
이것은 마왕의 위신과도 연관된 일이다.
“상제님과 대천사들 모두 간신히 열린 마계와의 교류를 지속하고 싶다는 뜻을 모았습니다.”
“참 의외로군. 나는 그대들이 철수할 줄 알았는데.”
“그런 주장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다만…….”
가브리엘이 말을 덧붙였다.
“이런 이유로 물러서면 같은 과거가 반복될 뿐이니까요.”
말은 참 잘하는군.
마왕이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대들의 뜻은 잘 알겠다.”
정말 나를 바보로 아는지.
가볍게 쥐면 터질 것 같은 작은 머리통에서 나온 생각치고는 참 대범하지 않나.
상황을 침묵한다면 멋대로 날뛴 마족들의 죄를 묵인해 주는 것이니 자신의 권위가 흔들릴 테고.
침묵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바라는 대로 움직여 주게 될 터다.
세간의 시선을 의식한다면 적당한 마족을 내보내 꼬리를 자르는 방법도 있겠지만.
‘내가 굳이 왜?’
마계에서 가장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마족이 바로 나인데.
감히 마왕이 오냐오냐 귀애하며 키우는 마족을 건드려 놓고 입 싹 닦을 생각은 아니겠지.
‘이제 겨우 3년도 안 됐는데.’
루시어스가 이제 자신을 아버지라고 불러 주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웃을 수 있게 되었는데.
10년을 꽉꽉 채워서 아카데미를 다녀도 모자랄 판국에 지금.
훼방을 놓으려 해?
“바알, 부디 평화를 깨트리려는 배후를 찾아내 벌해 주십시오.”
“그래, 그래야겠지.”
“또한.”
마왕이 빙긋하니 웃었다.
이제부터 가브리엘이 무슨 말을 할지 퍽 기대됐다.
“명목상으로나마 제가 조사단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그대가 직접 말인가?”
“두 세계가 어떤 관계인지 그보다 더 잘 보여줄 방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긴 하군.”
“공정성을 위해서도 좋지요.”
이거 참 잘된 일이구나.
이 정도까지 애태우고 있는지는 몰랐는데.
마왕은 터지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가브리엘의 이런 여유로움이 어디까지 갈지 지켜보는 것도, 꽤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 같다.
“알아서 해라. 대신.”
“말씀하십시오.”
“사절 대표를 좀 더 먼저 파견해야겠으니 연락해 둬라.”
가브리엘이 의아한 듯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사절 대표 말씀이십니까?”
“두 세계가 어떤 관계인지 이보다 더 잘 보여 줄 방법은.”
마왕이 조금 전 가브리엘이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또 없지 않겠나.”
사절 대표 파견은 두 세계의 관계가 무엇인지 좀 더 확실히 정립하기 위한 과정이다.
가브리엘이 잠시 침묵했다.
마치 마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려는 듯 그의 눈동자가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도 마찬가지로, 거절할 명분은 없다.
‘어차피 받아야 할 사절 대표였으니 조금 더 일찍 받는다고 해도.’
상관은 없겠지.
가브리엘이 눈을 슬며시 감았다가 뜬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고개를 가볍게 숙인 가브리엘을 바라보는 마왕의 입매가 삐뚜름하게 위로 향했다.
* * *
“저, 장로님. 오늘은 어쩐 일로 찾아오셨는지, 그게…….”
사이러스 아카데미의 학장인 글렌이 루시어스를 앞에 두고 발을 동동 구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재학 중인 학생이 ‘학장’을 찾아왔다면 글렌도 이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루시어스가 오늘은 사전에 연락을 넣어 약속까지 잡고 ‘5장로’로서 학장실을 찾았으니 긴장이 안 될 리가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시지.’
글렌이 루시어스의 눈치를 흘긋흘긋 보았다.
굳이 5장로로서 저를 찾을 일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혹 저번 요리 대회 같은 것을 또 열길 바라서 이러시는 걸까?
‘끄으응…… 하지만 분위기를 보니.’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제발 큰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글렌이 속으로 빌었다.
“글렌 학장. 내가 그대를 잡아먹으려 찾아온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긴장을 하지?”
“긴장을 안 하겠습니까아…….”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면서.”
“그거랑 이게 같습니까. 저 같은 소시민은 장로님께서 앞에 계신다고 생각하면 몸이 이렇게 딱! 굳는단 말입니다.”
“그런 것 치고는 혀에 기름칠이라도 한 것처럼 잘 굴러가는데?”
“헙!”
사뭇 짓궂은 말에 학장이 입을 다물었다.
루시어스가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학장이 루시어스를 곁눈질했다.
말은 그렇게 하긴 했지만, 정말 하루 이틀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인지 처음 볼 때만큼 그렇게 당황스럽거나 긴장되지는 않았다.
기분 탓인가, 전보다 훨씬 성숙한 것 같기도 했다.
“…….”
겉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그가 거대해 보인다.
“……5장로님.”
학장이 머뭇거렸다.
뭔가 말하고 싶은 모양새에 루시어스가 입을 열었다.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그것이, 크흠흠.”
혹 무례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기는 했으나 루시어스를 본 지도 벌써 3년이 되어가는 그였다.
루시어스의 성격이 어떤지는 글렌도 잘 알고 있었다.
학장이 허리를 꼿꼿히 폈다.
“루시어스 학생.”
“…….”
루시어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조금 전까지 제 눈치만 흘금거리던 글렌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근엄한 목소리였다.
루시어스는 글렌이 하려는 말이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지금 글렌은 사이러스의 학생들을 책임지는 교육자였다.
“말씀하세요.”
그렇게 응대해 주자 학장이 옅게 얼굴을 풀더니 말했다.
“그대가 입학한 지도 벌써 3년째가 되어 가는데.”
그래도 새처럼 작은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는 하는지 그가 자신의 두 손을 꼭 모아 잡았다.
“혹시, 사이러스에 입학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
글렌이 엄지손톱을 매만졌다.
솔직히 사이러스는 부족함이 참 많은 아카데미였다.
키아라처럼 강하지도 않고 토르벤처럼 현명하지도 않으며, 아론처럼 섬세하지도 않다.
하여 처음에는 장로가 지내기에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다만 그런데도 글렌이 자신 있게 사이러스가 최고라 내놓을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아이들과는, 잘 지내고 있고?”
바로 자유로움이다.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어우러져 성장하는 건강한 아이들이었다.
“……네, 후회한 적 없어요.”
루시어스는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며 커다란 두 눈을 부릅뜬 학장을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이렇게 들으니, 마치 자신이 문제아였던 것 같지 않나.
“즐겁게 보내고 있어요.”
“그, 그런가?”
“이렇게 아카데미 생활이 즐거울 수 있는 건, 학장님께서 그만큼 노력하셨기 때문이겠지요.”
부릅뜬 두 눈이 글썽거렸다.
근엄하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곧 코끝이 발개지며 훌쩍였다.
“크흐응! 알아주시면 다행입, 훌쩍! 아니, 알아주면! 다행이다!”
콧물을 훌쩍거리며 먹기 시작한 시점부터 학장과 학생 간의 진지한 대화는 물 건너간 것 같은데.
“음머어어어!”
학장이 포효했다.
“대답은 되었나? 그대도 이렇게 보면 참 어린 마족 같다니까.”
학장은 루시어스가 무어라 말하든 그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무척 기쁘고 뿌듯한 모양이었다.
“눈물이 이렇게 많아서야.”
“음머허, 이제 말씀하시지요. 훌쩍!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 끝이었는지 학장이 훌쩍이던 걸 멈추고 그새 퉁퉁 부은 눈으로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루시어스가 옅게 웃었다.
“그래, 학장. 하나 말해 줄 게 있어서 찾아왔는데.”
“네, 무엇이든 말씀하십쇼!”
씩씩한 대답이었다. 학장은 기분이 정말 좋아 보였다.
루시어스는 자신이 지금부터 하는 말이 그의 들뜬 기분을 망쳐놓는 것이 아닐까 고민하며 뺨을 긁적였다.
“내가 조금 사정이 있어서.”
“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지.
루시어스가 웃으며 말했다.
“별 건 아니고, 아카데미를 조금 부숴야 할 것 같다.”
“네! 별 건 아니군요!”
“다는 아니고, 본관을 반 정도?”
“네! ……네?”
잠깐. 지금 뭐라고요?
“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 장로님? 네?”
“사상자는 안 생기도록 할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맹세하지.”
건물이 반이나 무너지는데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는다니.
와! 정말 대단하다!
“아, 그럴 수도 있습니까? 정말 대단하고 다행……인 게 아니라!”
헉, 너무 태연하셔서 넘어갈 뻔했다!
“아니, 저기, 장로님.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을 좀 해 주셔야……!”
“말 그대로네. 지금부터 본관을 좀 부숴 놓을 생각이야.”
뭐지? 이상한데? 지금 당황스러워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학장이 혼란스러워하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루시어스의 뻔뻔하고 당연한 듯한 목소리를 들으니 자신이 유난을 떠는 것 같았다.
“그렇군요. 그러니까 어느 건물을 반 정도 부수시겠다고요?”
“본관.”
하하, 하, 하?
머리를 긁적이며 수긍하던 학장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자, 자, 자자자잠깐만요! 장로님, 어딜 부수신다고요?”
“본관.”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요? 아니, 저기, 저, 지금부터??”
이렇게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대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다 수습해 놓을 테니.”
“그, 그것이 아니라! 장로님!”
콰아아아앙!
루시어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밖에서 커다란 소리가 났다.
학장이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나 창문을 벌컥 열고 밖을 쳐다보았다. 이제는 익숙하게마저 느껴지는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크어어어어!
거친 바람이 짐승의 포효소리를 실었다. 학장이 털썩 주저앉더니.
“으, 음머헉……. 컥!”
고르르르륵.
눈을 하얗게 뜬 채 입에 거품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