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42)
마족답게 사는 법-342화(342/385)
마족답게 사는 법 342화
342 데윈 화산 (2)
“그, 연락은 받았습니다.”
케스판이 고개를 푹 숙였다.
좋은 무기를 만드는 장인, 그것도 마계에서 이름이 알려질 만큼 유명한 마족이라면 성격이 괴팍하고 고집스럽기 마련이다.
그의 제자로 알려진 엔리케조차도 성격이 드세다고 알려져 있으니 케스판도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라니.
“그런데, 저를 아십니까?”
“알다마다요. 대장장이 엔리케의 스승 되는 분이 아니십니까.”
“……! 아, 알고 계셨습니까!”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고를 떠나 너무 어색한 모습이 아닌가.
루시어스가 아무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봐도 저를 크게 의식하고 있는 말투였다.
“험험, 젊은이들은 날 잘 모르던데. 이것 참 부끄럽구먼…….”
“흐음.”
케스판, 정확히는 데윈 화산 책임자에게 관련된 협조 공문을 보내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5장로가 아니라 하멜이 보낸 것이다.
케스판이 저를 이렇게 대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는 뜻이다.
“그, 저기…… 거. 그.”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크흐흐흠! 아닙니다!”
케스판이 뺨을 긁적이면서도 계속 루시어스의 눈치를 흘긋댔다.
루시어스는 케스판과 자신이 따로 만나본 적이 있었는지 고민했다. 짚이는 것은 당연히 없었다.
케스판이 몇 번 헛기침했다.
“우선 이리 오게, 멀리서 왔는데 계속 세워둘 순 없지.”
“으아아, 감사합니다아.”
“여기 너무 더워요…….”
녹초가 된 학생들이 비척거리며 케스판의 뒤를 따랐다. 루시어스가 학생들의 상태를 한 번 살피며 턱을 매만졌다.
룬 네르의 혹한을 버텼으면, 데윈 화산의 폭열도 버틸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힘들어하다니.
‘힘든 척하는 건가?’
아니면 요령이 없는 걸까.
루시어스가 시선을 가늘게 뜨고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어떻게 해야 친구들이 좀 더 더위를 덜 탈지 고민하는데 앞에서 눈에 띄게 탐을 주륵주륵 흘리는 에스메리다가 중얼거렸다.
“얘들아……. 힘들어도, 하아. 힘든 척하지 마. 최대한 멀쩡한 척해. 알았지.”
“으어, 너한테 듣고 싶지 않아.”
“맞아……. 거울 좀, 보라고.”
“하아아아.”
에스메리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왜 아니겠는가.
사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룬 네르에 올라 호수에 몸을 담가도 이만큼 힘들지는 않겠다.
“……나도 알아, 하지만 지금 루시어스 표정을 봐.”
“헉! 저 표정은……!”
“나 저거 알아……. ‘왜 이걸 못하지?’ 하는 표정이야.”
하지만 그런 약한 소릴 했다간.
루시어스가 분명 마족에게 필요한 소양이니 뭐니 그럴싸하다 못해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며 훈련을 시키려 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멀쩡한 척해야 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마기를 운용해 체내로 들어오려는 열기를 밀어내고!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쓰으읍, 후.”
“그, 그럼 나도. 쓰읍, 후!”
“근데 이러면 그냥 우리가 알아서 훈련하는 거 아닌가……?”
물론 이 상태에서 저번에 쓴 목도리를 더 두르느냐 마느냐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아이들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루시어스의 훈련을 받고 싶지는 않아 열심히 호흡하며 마기를 운용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무척 힘들어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루시어스는.
‘……갑자기 잘하네?’
표정이 한결 좋아지는 아이들을 보고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선생 일을 이런 재미로 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집에 도착한 케스판이 감탄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어린데도 다들 잘 버티는군. 토박이가 아니면 열기를 버티기 힘들어하는데 말이야.”
“이 정도야……, 쉽죠!”
“후우, 맞습니다! 쉽습니다!”
“좋은 스승님이 있으니까요!”
학생들이 그렇게 외치며 루시어스의 눈치를 사삭 살폈다.
케스판은 기묘한 기류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아르놀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학생들이 선생을 참 잘 따르는 모양이야.”
“예…… 뭐.”
그 ‘선생’마저도 ‘스승님’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르놀트가 셔츠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한숨 쉬었다. 레녹스 말대로, 추위보다는 더위가 더 버티기 힘들었다.
“들어와라, 여긴 시원하니까.”
“우아……!”
케스판의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땀을 식히는 바람이 불었다.
아이들이 누구 할 것 없이 놀라워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짐짝처럼 들쳐져 있던 레이얼이 키안의 어깨에서 내려와 방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케스판 씨, 정령술사였군요?”
“오, 감이 좋군. 맞다.”
“보통 드워프는 땅이나 불의 정령과 계약한다는데, 의외로 물과 바람의 정령을 다루시네요.”
“여긴 불의 기운이 넘쳐 나는 곳이니까 말이다.”
그가 굳이 정령의 도움을 받을 필요까지는 없다며 껄껄 웃었다.
두 정령술사가 본격적인 이야기꽃을 피우려 하자 하멜이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협조 감사합니다, 케스판.”
“아니다, 학생들이 온다면 맞이해줘야지. 신경 쓸 필요 없네.”
겸사겸사 마물이나 마수를 때려잡아 주면 우리야 일손 아낄 수 있으니 좋고. 나중에 데윈에 와서 일해주면 더욱 좋으니까.
케스판이 손을 털레털레 내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가 한쪽 서랍에서 뭔가를 찾아서 가져왔다.
“자, 이게 이 근방 마물과 마수지도야.”
“과연. 잘 정리되어 있군요.”
마수가 어디에 얼마나 분포되어 있는지 정리된 지도였다.
“이게 있으면 다니기 편하겠지. 개체가 많으면 처리해도 괜찮네. 부산물은 알아서 가지고.”
“알겠습니다.”
“마수학 선생이니 잘 알겠지만, 너무 많이 때려잡진 말고.”
화산지대에 사는 마물과 마수들은 광물의 생성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개체 수가 너무 적어도, 너무 많아도 안 되는 곳이었다.
“그럼 조를 세 개로 나눠 움직이면 딱 맞겠군요.”
아르놀트, 하멜, 그리고 레녹스.
마침 마수가 군집한 장소도 서넛쯤 되니 딱 좋았다. 아이들을 나누는데 케스판이 말했다.
“아, 미안한데 내 작업을 도와줄 일손을 하나 남겨 줄 수 있겠나?”
“그, 그렇다면 제가!”
아이런이 냉큼 손을 들었지만.
“아니지, 자네는 나가 보게. 밖에 나가 마수를 관찰할 기회는 대장장이에게는 많이 없어.”
케스판이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다른 대장장이와 협업할 기회는 얼마든 오지만, 무엇인가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면서.
“대신 손끝이 야무져야 하니.”
아이들의 면면을 한 번 훑던 케스판이 루시어스에게 다가갔다.
“여기, 이 학생이 남았으면 좋겠구먼. 화산 날씨가 드라이어드에게는 가혹하기도 하고.”
그가 껄껄 웃으며 하는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저으며 당치도 않다는 듯 말했다.
“아뇨, 그거 오해인데요.”
“아마 제일 멀쩡할걸요. 잘 봐봐요. 땀 한 방울도 안 흘리는데.”
루시어스는 일부러 저를 잡아 놓는 듯한 케스판의 언행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따로 말하려는 게 있는 것 같으니 남는 것이 좋겠다.
* * *
깡! 깡! 깡!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
케스판의 작업실에서 열기가 들끓고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학생들은 케스판이 건네준 지도를 따라 화염 지대에 서식하는 마수를 보러 갔고, 루시어스는.
여기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
깡! 깡! 깡!
정말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한참 작업하는 케스판을 바라보던 루시어스가 말문을 텄다.
“그래서 저를 따로 보려고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 으음, 그게 말입니다.”
“말 편하게 하세요.”
“이놈이 장로님께 말 놓을 정도로 간이 크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망치질하던 케스판이 고개를 살짝 들어 루시어스를 흘긋였다.
설마 5장로라는 마족이 저렇게 젊을 줄은 몰랐다.
“그럼, 말 편하게 하도록 하지.”
“예, 그러십쇼.”
저를 5장로로 대하는 마족 앞에서 학생 신분을 유지할 필요는 없으니까.
루시어스는 다리를 가볍게 꼬고 턱을 괴며 케스판을 바라보았다.
“내가 5장로인 건 어떻게 알았지? 그대와 따로 마주친 기억은 없는데.”
“저는 기억도 못 하는 어릴 적부터 망치를 잡았죠.”
그가 잠깐 망치를 내려 두더니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대장장이를 하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들어 본 적 없군.”
“눈입니다, 눈.”
망치를 잡고 작업을 재개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이 중요하죠. 사용할 재료의 상태는 어떤지, 내가 만든 무기를 사용할 마족은 어떤 놈인지.”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어울리지 않는 주인을 만나면 빛이 바래니.
루시어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것 때문에 알았다?”
“마냥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럼?”
케스판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루시어스가 의아하게 물었다.
케스판이 미소 지었다.
“한눈에 보고 알았습니다. 당신께서 아인의 주인 아닙니까.”
루시어스의 몸이 움찔거렸다.
설마 케스판이 제 창의 이름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 그것보다도 싸우는 모습을 보지도 않고 이렇게 정확히 무기를 짚어 낼 줄 몰랐다.
케스판이 웃으며 어깨를 폈다.
“그놈이 제 명작이거든요!”
“아인이 그대 작품이었다고?”
“그럼요! 그만한 놈을 또 누가 만든다고, 엔리케 놈은 아직 미숙해서 어림도 없습니다!”
“…….”
이거, 전하께서 주신 건데?
루시어스가 입을 뻐끔거리다가 이마를 짚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마왕이 제게 아무 창이나 쓰라고 던져 주었을 리 없으니까.
“아니…… 각인이 없어서.”
“그런 걸 새겨서 뭣 합니까. 미관 망칩니다. 어휴, 아까 보니 그 잘생긴 청년…….”
“……레녹스 말인가?”
“그래요. 그 몽마, 그놈이 찬 검은 엔리케 놈 작품인 모양인데.”
보기 좋아야 쓰기도 좋습니다.
기껏 아름답게 만들어 놓고 이름 새기면 그게 무슨 참사입니까?
그래서 엔리케의 실력이 아직도 그 꼴인 거라며 케스판이 투덜거렸다. 지금 보니 케스판도 만만치 않게 고집스러운 괴짜였다.
“아인을 만들 땐 고생을 좀 했지요. 갑자기 대장군께서 오시더니 전하의 명령이라고 엄포를 놓으시는데…….”
“……내가 다 미안해지는군.”
“그러면서 창 하나를 만들라 하지 뭡니까?”
주인이 될 마족의 얼굴도 보지 않고 무기를 만드는 건 처음이라 어떤 종족이며 나이는 몇인지 아주 꼬치꼬치 캐물었었다.
조금이라도 정보가 부족하면 좋은 창을 못 만든다며 아주 대장군을 들들 볶아 댔었지.
“처음에는 대장군께서 거짓말을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이해하네. 평범하진 않지.”
“예, 어느 세상에 드라이어드인데 60밖에 안 된 나이에 대장군보다 강한 마족이 있습니까?”
할 일이 없어 한낱 대장장이를 골리러 왔나 의심하기도 했다.
그런데 만들고 나니, 웬걸.
아주 걸작이 탄생해있더라.
“얼굴도 제대로 못 본 놈팡이한테 자식 같은 놈을 주려니 얼마나 아까웠는지 모릅니다.”
“놈팡이…….”
“그래서 오늘 참 안심했습니다. 아인이 좋은 주인을 만나서.”
“좋은 주인이라니 다행이야.”
루시어스가 어깨를 으쓱이고 고민하다가 슬쩍 말문을 열었다.
“케스판, 사실 찾는 물건이 있는데.”
“……역시 그러셨군요. 장로님께서 아무런 이유 없이 여기까지 오실 리가 없죠.”
“혹시 데윈 화산의 열기와 마기를 담은 마정석의 위치를 아나?”
“아, 그거 말이군요.”
의외로 긍정적인 대답에 루시어스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거라면.”
케스판이 몸을 뒤뚱 일으키더니 열기가 치솟는 화덕을 가리켰다.
“바로 여기 있습니다, 장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