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53)
마족답게 사는 법-353화(353/385)
마족답게 사는 법 353화
353 납치 (5)
마왕의 부름에 마왕성에 찾아온 하멜이 작은 목소리로 탄식했다.
“이게 대체 무슨 난리인지…….”
간만에 포식하겠다 생각하며 고이고이 키웠더니 설마 눈먼 놈들이 나타나 채갈 줄이야.
‘일이 복잡하게 됐어.’
하멜이 혀를 쯧 찼다.
천계 놈들이 루시어스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을 테니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브리엘이 이쪽 상황을 꼬아 놓고 갔으니 문제였다.
루시어스가 숨기려고 노력한 모든 것을 들추고 가지 않았는가.
‘지금쯤 난리가 났겠지.’
아카데미 한복판에서 그 난리를 쳐 놓았으니 소란이 일지 않을 리 없다.
루시어스의 정체나 천계와의 관련성, 마왕의 비호와 편애 등.
입방아에 오르내릴 만한 것들이 너무 많다. 루시어스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왜곡되며 퍼질지 벌써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루시어스가 돌아와서도 아카데미 생활을 이을 수 있을지…….
생각을 이어가던 하멜이 뒷머리를 헝클며 투덜거렸다.
“내가 왜 이런 걱정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거야?”
아카데미를 다니지 않으면 오히려 좋지 않나. 더는 선생 행세를 할 필요가 없어지는데.
“하아아아.”
하멜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계약 따위는 하지 않고 그냥 홀랑 잡아먹어 버리는 건데.
“그 녀석들을 어쩐다.”
하멜은 아카데미의 상황이 정리되기도 전에 몸을 숨겼었다.
자신의 정체를 굳이 마족들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 녀석들.
“엇, 하멜 선생님이다.”
“하멜 선생님? 어디?”
도도도도.
그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특별반의 어린 마족들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확 다 잡아먹어서 후환을 처리하고 싶은데.
주인인 루시어스가 그렇게 신경 쓰는 아이들을 꿀꺽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설명하자니.
……마수인 내 말을 어디까지 믿고 들어줄지 모르겠다.
“선생님!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안 보여서 걱정했잖아요!”
다다다다다.
하멜이 걸음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귀를 긁었다.
나도 늙었나. 헛소리가 들리네.
그런 모습을 보였는데 학생들이 날 선생님으로 부를 리가…….
“흐아! 드디어 멈추셨다!”
“걸음이 왜 이렇게 빨라요?”
“……?”
덥썩!
불쑥 다가온 손이 제 어깨를 잡았다. 하멜이 눈을 크게 뜨며 뒤를 돌아보았다. 특별반 아이들이 숨을 헥헥 몰아쉬고 있었다.
“……당신들이 여기 왜.”
미간을 찌푸리던 하멜은 그들을 인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에노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에노쉬가 뺨을 긁적였다.
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특별반 아이들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며 외쳤다.
“에노쉬 님한테 뭐라고 하지 말아요! 저희가 부탁했어요!”
“맞아요. 원래 안 된댔는데!”
하멜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열심히 변명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에노쉬가 어색하게 웃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군.’
제2군단장인 에노쉬까지 무너뜨리다니. 무서운 녀석들 같으니.
에노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하를 뵈러 가고 있었습니다. 하멜 경께서도 그렇습니까?”
“……예, 그렇기는 한데.”
하멜이 특별반 아이들을 곁눈질했다. 시선이 마주치자 움찔움찔 몸들이 떨렸다.
“…….”
“…….”
정적과 함께 어색함이 흘렀다.
“우선 가시죠. 여기 계속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터벅터벅.
하멜이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 저를 흘긋거리는 눈들이 느껴졌다.
관찰하는 것 같은 눈들이었다.
처음 받아보는 시선은 아닌지라 하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 차라리 잘 됐군.’
마왕을 만나려 하는 건 지금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궁금하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그쪽 설명은 마왕에게 넘기고.
나는 나에 대한 설명만 하면 되겠다. 그쪽이 이야기를 정리하는 데 훨씬 편하겠지.
하멜이 걸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지금 말해 두는 게 좋겠습니다.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마족이 아닙니다.”
“……네?”
“전 루시어스 님과 계약한 계약마수입니다.”
우뚝.
아이들의 걸음이 멈추었다.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마수요? 저희가 아는 마수?”
“예, 품위와 이지라고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그 마수요.”
“종족……은요?”
“그레이하운드.”
하멜은 몇 걸음인가 더 걸어가다가 한숨을 얕게 내쉬었다.
“몇 마족들은 저를 천년마수 에피알티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세상에.”
추측만 하다가 확실하게 대답을 들었으니 당황스럽겠지. 몇 년이나 마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걸 알았으니 어이가 없을 테고.
게다가 얼마 전에는 천년마수가 나타나 아카데미를 부쉈으니.
“하지만 그때 하멜 선생님이 체육관에 같이 계셨지 않았어?”
“아, 알겠다!! 그거 하멜 선생님이 아니라 사실 아르놀트 선생님이셨던 거 아냐?”
“예, 맞습니다.”
하멜이 순순히 인정했다.
아이들은 눈을 깜빡거리며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하멜 선생님이 마수일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그 천년마수였다니.
강하고 흉포해 계약하러 찾아간 마족을 수없이 죽인 천년마수.
마수로서는 최초로 마왕이 나서서 봉인했으며, 최근에 눈을 떠서는 대장군과 마왕군을 애먹이기까지 했다는 그 대단한.
천년마수 에피알티스.
“그 거대한 마수가 하멜 선생님이었다니…….”
“천년마수…….”
꿀꺽.
아이들이 너도나도 마른침을 삼켰다.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만하면 설명은 되었겠지.
하멜이 멈췄던 발을 옮겼다.
한참 멍하니 자리에 못 박혀 서 있던 아이들이 후다닥 걸음을 옮겨 하멜과 보폭을 맞췄다.
“저, 저기. 하멜…… 님?”
“……평소처럼 말씀하세요.”
에스프가 하멜의 소매를 꽉 잡았다. 그 때문에 다시 걸음을 멈추자 아이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다가와 둘러쌌다.
하멜이 한숨을 얕게 내쉬었다.
이렇게 둘러싼 걸 보니, 지금껏 자신들을 속인 거냐는 둥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둥 쓸데없는 말을 할 것 같은데.
“정말 천년마수라고요?”
“맞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지금까지 속이고 있던…….”
시답잖은 말다툼하고 싶지 않으니 빠르게 인정해 버리자.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여는데.
“그럼 나중에 한 번만 태워 주시면 안 돼요?”
전혀 다른 말이 들린다.
“……예?”
“천년마수가 그렇게 빠르다던데. 등에 한 번만 태워주시면 안 돼요? 진짜 딱 한 번이면 되는데.”
“하멜 선생님, 저도요. 네?”
그렇게 크면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은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초롱초롱.
저를 올려다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기묘한 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하멜이 몸을 움찔 떨었다.
“지, 지금 그게 무슨…….”
“딱 한 번만요, 선생님!!”
“루시어스는 타 봤어요? 어떤 느낌이래요? 말 없었어요?”
등에 태워달라니.
지금 할 말이 그것뿐이야?
나 마수라니까? 다른 마수도 아니고 천년마수라니까?
지금 마수가 아카데미에서 마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니까?
주물.
옆에서 이리누슈카가 한참 우물쭈물거리더니 손을 잡았다. 하멜이 의아해하며 시선을 돌리자.
“선생님도 젤리…… 있습니까?”
그녀가 수줍게 달아오른 얼굴로 물으며 손바닥을 주물거렸다.
“대왕젤리.”
“…….”
하멜은 다른 의미로 말을 잃었다.
* * *
“이렇게 우르르 몰려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마왕은 우르르 쳐들어온 특별반 학생들을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특별반 아이들이 루시어스를 닮아 배포가 남다르니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에노쉬를 붙여둔 것도 이들의 성정을 알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대담할 줄이야.
마왕이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그대들을 보면 내가 마왕인 걸 모르고 있는 것 같아.”
“그, 그게! 마왕님이기 이전에!”
에스프가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서다가 라타트리아를 확 안아 들더니 마왕을 향해 쭉 내밀었다.
두 손으로 허리를 잡혀 들어 올려진 라타트리아가 당당하게 가슴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마왕님이기 이전에, 루시어찌의 보호자잖아찌! 라고 에스프가 말하고 싶은 것 같다찌.”
“대신 말해 줘서 고맙다.”
“뭘 이 정도로찌.”
에스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라타트리아를 내려놓았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참 영리한 아이들이구나.”
마왕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화를 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이런 배짱을 부리고 있으니 말이다.”
“마, 맞아요. 솔직히 건방지죠.”
“그래. 참 건방지지.”
“하지만 전하, 저희는……! 직접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에스프가 용기를 내서 외쳤다.
훌른과 베른이 앞으로 나서더니 한 마디씩 보탰다.
“아주 사소한 거라도 좋아요.”
“루시어스를 기다리기만 하기는 싫어요. 저희도 돕고 싶어요.”
“……마계에서 어른은 어린 마족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마왕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학생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 법을 제정한 게 나야.”
“알고 있다찌.”
“마족들은 그간 이 법을 따랐다. 그 이유는, 마왕인 내가 법을 준수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만약 마왕이 이 법을 어기면 어떻게 될까?
앞으로도 마족들이 법을 지켜줄까? 그걸 요구할 수 있을까?
이후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전쟁에서 무슨 명분으로 미성년 마족의 동원을 막을 수 있을까.
“곤란하구나. 너희의 청을 받아주면 법을 어기는 게 될 테니.”
“애초에, 우리가 왜 너희를 데려가야 하는데?”
듣고만 있던 마리엘라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예민하게 치켜 올라간 눈매가 학생들에게로 향했다.
“성년도 되지 못한 마족이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저, 저희는……!”
“괜한 혈기를 부리다 인질이 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아니다찌. 우리 특별반도 할 수 있는 게 있다찌!”
마리엘라가 이를 갈며 라타트리아를 노려보았다. 몰아치는 듯한 거센 기운이 몸을 짓눌렀다.
라타트리아는 기세에 밀리지 않으려 입을 꾹 다물고 허리를 더 곧게 세웠다. 그리고 두 눈을 부릅뜨고 마리엘라를 바라보았다.
“라티는 랫맨이다찌.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자신이 있다찌.”
“저, 저희는 랜턴이에요!”
“길을 밝힐 수 있어요. 한 번 가본 곳이라 더 쉬워요!”
훌른과 베른이 이어서 외쳤다.
이리누슈카 또한 조심스럽게 말을 얹었다.
“……다들 루시어스의 특훈을 받았습니다. 적어도, 발목을 잡지는 않을 거예요.”
“생각해 보니까, 발목을 잡기라도 했다가는 루시어스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아…….”
“응, 돌아와서 추가 훈련을 시키려 할지도 몰라.”
에스메리다와 아이런의 중얼거림을 들은 아이들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들에겐 천계보다 루시어스가 더 무서웠다.
“하.”
마리엘라는 어이가 없는지 짧은 숨을 토했다.
“너희 지금 상황이 그렇게 쉬워 보이니? 힘도 없으면서……!”
“마리.”
학생들을 계속 쏘아붙이려 하는 마리엘라를 마왕이 만류했다.
마왕은 예민하고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마리엘라에게 살풋 웃어주었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말했다.
“조금 진정하렴.”
“오빠, 내가 지금 진정하게…….”
“진정하고, 저 애들을 봐.”
움찔, 몸을 떤 마리엘라가 마왕의 말대로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수많은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앞으로의 두려움과 친구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지만, 이상하게 너무나도 올곧아 맑고 투명하게만 보이는 눈동자들이었다.
“…….”
힘이 탁 풀렸다.
마리엘라의 어깨가 스르르 내려가고 팔이 아래로 떨어졌다.
“저희도, 데리러 가고 싶어요.”
“루시어스를 다 같이 마중 나가고 싶어요.”
어른들이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하며 마냥 주저앉아 있고 싶지는 않다. 친구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게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하아아…….”
마리엘라가 이마를 가볍게 짚었다. 그간 루시어스가 대체 어떤 가르침을 주었기에 하나같이 이렇게 무모하기만 할까.
대체 얼마나 아이들을 오냐오냐 키웠으면 마왕과 1장로의 앞에서 이렇게 큰소리를 칠까.
정말, 정말로…….
‘……다들 루시어스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루시어스가 5장로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강하다는 걸 알고 있어도 걱정이 되는 거구나.
구하러 가고 싶은 거구나.
“알겠어. 내가 졌어.”
“그, 그럼…….”
“가자, 루시어스를 구하러.”
마리엘라가 항복의 의미로 손을 위로 들었다. 긴장하고 있던 아이들이 활짝 웃음꽃을 피웠다.
옅게 웃음 지은 마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중하게 말했다.
“우리는 천계의 문을 열고 루시어스를 탈환하러 간다.”
각자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시행은, 사흘 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