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61)
마족답게 사는 법-361화(361/385)
마족답게 사는 법 361화
361 위그드라실의 뿌리 (1)
찬란한 은빛이 쏟아진다.
위그드라실은 전에 보았을 때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언뜻 보면, 그랬다.
루시어스는 홀린 듯, 한 걸음씩 위그드라실로 다가갔다. 마치 자신을 맞이하는 듯 바람이 분다.
쏴아아아.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머리가 무겁고 시야가 흔들린다. 메타트론이 남긴 조각과 반응하는 것처럼, 심장 구석이 울린다.
위그드라실에 가까이 다가간 루시어스가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정말로, 당신은…….”
보드라운 흙이 손에 닿는다.
신성력이 가득한 흙냄새가 퍼진다. 루시어스의 손끝이 떨렸다.
심장의 떨림이…… 멈춘다.
그 순간.
“루시어스 켄드릭!”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루시어스의 어깨를 잡아 몸을 휙 돌렸다.
루시어스는 저를 잡은 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너는 왜 항상!”
“……천제.”
천제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나왔지?”
“이거 놓으십시오.”
날 선 목소리가 그에게 향했다.
천제는 입을 꾹 닫다가 하, 한숨을 내쉬었다. 급하게 뜀박질하던 심장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이다.
천제가 루시어스의 어깨를 더욱 세게 잡으며 물었다. 루시어스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손톱이 어깨에 박히는 것 같다.
“어떻게, 그 방에서 나왔냐고.”
“…….”
“나갈 수 없도록 결계까지 쳐 둔 방이야. 그런데 어떻게……!”
다시 찾아갔을 때.
네가 자리에 없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하얀 이빨에 아랫입술이 짓이겨졌다. 붉은 울음이 지며 입안에서 비릿한 냄새가 퍼졌다.
루시어스가 어깨를 잡은 천제의 손을 털어내듯 떨어트렸다.
차가운 음성이 비수를 박았다.
“이것도 재주입니다.”
“……뭐?”
“위그드라실을 이만큼 망쳐 놓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라고요.”
모든 것이 위그드라실에서 시작되었기에 여기까지 왔다.
두 눈으로 나무를 보고자 했다.
그리고 한눈에 알았다.
찬란하도록 빛나는 이것이 위그드라실의 마지막 힘이라는 걸.
-아쉽게도, 여기에 남긴 힘은 얼마 되지 않거든.
루시어스가 눈을 감았다 떴다.
스쳐 지나갔던 말이지만 이상하게 메타트론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었다. ‘여기에’ 남긴 힘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은.
힘 대부분을 ‘다른 곳’에 남기고 왔다는 의미 아닌가.
하지만 위그드라실을 보고 나니 루시어스는 메타트론이 꿈속에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좀 알겠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전하려 했는지…….”
이 두 눈에도 똑똑히 보여요.
위그드라실의, 마지막이.
당신이 바란 것이.
“위그드라실을 망쳐 놨다고?”
천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지금껏 위그드라실을 어떻게 관리했던가.
오히려 반대다. 천계가 했던 노력이 없었으면, 위그드라실은 일찍이 말라 비틀어졌을 터다.
루시어스가 차분하게 말했다.
“클로에와 위그드라실은 거대한 기운에 뿌리를 두고 자랍니다.”
“그래, 네 말대로야. 위그드라실이 뿌리 내린 것은 천계의 땅 자체. 즉, 우리의 세계지.”
“아니요, 틀렸습니다.”
이것을 몰라 당신들은 지금껏.
위그드라실을 망쳐 왔다.
“먼 옛날에는 어땠습니까.”
세계가 갈라지기 전.
위그드라실은 중간계에 있었다.
“중간계에서 자라던 위그드라실을 천계가 가져오지 않았습니까. 신께서 주신 것이라면서.”
“당연하지. 위그드라실을 관리할 수 있는 건 우리뿐이니까.”
“당신들의 그 오만이 가져온 결과가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중간계는 무척이나 드넓었다.
혼란하지만 그만큼 자유로운 마력들이 춤추며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좁은 천계의 땅에 묶여 하얀 하늘 아래에서 자라는 위그드라실이 정말, 행복해 보이던가?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싶으신 겁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위그드라실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천계에 온 그 순간부터.”
위그드라실은 이곳에 온 순간부터 이미 말라가고 있었다.
천계의 신성력으로는 거대한 위그드라실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메타트론이 나섰다.
그가 위그드라실이 마르지 않게 계속해서 곁을 지켜주었다.
“메타트론은 자신의 모든 힘을 써서 오랜 시간 위그드라실과 천계를 지탱하고 있었어요.”
“……아니야.”
“자신의 존재 자체가 마모될 때까지.”
“아니야, 아니야.”
“계속, 말입니다.”
“아니야!”
천제의 외침에도 루시어스는 말을 계속 이었다.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하여 위그드라실은 지금!”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현재의 위그드라실은.
거대한 생명력, 원천 자체인.
“……당신들이 그렇게 찾던 메타트론에게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의 육신에 뿌리내리고 있다.
천제의 눈이 크게 뜨였다. 살짝 벌어진 입술이 뻐끔거렸다.
잇새로 겨우 목소리가 나왔다.
“뭐……라고?”
천제는 루시어스의 말을 대부분 이해할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고, 믿을 수 없었다.
믿어서는 안 되었다.
“말도 안, 돼.”
저런 허무맹랑하고 황당한 말을 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자신들의 믿음을.
뿌리부터 부정하는 이 말들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당신께선 위그드라실의 뿌리를 파 봐야 제 말을 믿겠습니까.”
“그래, 차라리 뿌리를 파서 눈으로 확인하는 편이 나아!”
메타트론과 산달폰은 한날 한시에 태어난, 형제와 같은 존재다.
긴 시간을 함께하며 누구보다도 서로를 의지했다. 둘 중 어느 한쪽이라도 없었다면, 그들은 지금껏 그 긴 시간과 많은 사건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자신이 메타트론의 육신이 사실 천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지 않나.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어떻게 내가.
어떻게, 산달폰이…….
“아, 아……. 아, 아아아아!”
* * *
“거기, 지금 어디 가는 거지?”
“우리엘 님! 부르셨습니까?”
바쁘게 움직이던 천사들이 우리엘의 부름에 잽싸게 날아와 고개를 숙였다. 우리엘이 천사들에게 들으라는 듯 혀를 차며 물었다.
“부르긴 불렀지. 그리고 어디 가는 거냐고 물었잖아?”
“아, 루시어스 켄드릭 님의 기사인 레녹스 자카르의 방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응? 거긴 왜?”
“긴급상황이라 소집령이 내려졌는데, 그쪽에 배치되었던 하품천사들이 나타나지 않아서요.”
그쪽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확인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쪽으로 가는 것 같았지.
우리엘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아, 그쪽 말이야?”
그녀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거기 있는 놈들이라면 내가 심부름을 좀 보냈어.”
“심부름……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런 상황이 되었는데 지하 감옥을 가만히 둘 순 없잖니?”
우리엘이 한숨을 내쉬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가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이며 이를 갈았다.
“루시퍼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잖아. 그 간악한 놈이!”
“아…… 확실히.”
“천제님께서 손보셨으니 전처럼 쉽게 탈옥하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방심하고 있을 순 없지. 그래서 손이 남는 놈들을 보냈어.”
“그러셨군요. 저희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뭘, 이 정도는 당연하지.”
우리엘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천사들을 툭툭 두드려 격려했다.
“그래도 잘 움직인 거야. 연락이 없으면 바로바로 확인해야지.”
“감사합니다.”
“뭐, 아무튼 그쪽은 내가 보내놨으니까 그대들은 신경 쓰지 말고 다른 일을 하러 가도록 해.”
“그럼 그 마족 쪽은…….”
“혹시 모르니 내가 직접 확인해보도록 할게. 보나 마나 아무것도 못 하고 늘어져 있겠지만.”
“알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가 봐.”
우리엘이 휘휘 손을 저었다.
천사들이 공손하게 고개를 꾸벅 숙인 후 반대편으로 다시 바쁘게 날아갔다. 우리엘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떨어질 것 같다.
이 짓도 두 번은 못 하겠다.
“우선은 레녹스가 있던 방에 가봐야겠어.”
근처에 배치된 천사들을 구슬려 아예 물려 놔야 속이 편하지.
우리엘이 바로 레녹스의 방으로 향했다. 레녹스 녀석이 나오면서 손을 썼는지 중간중간 쓰러진 천사들을 그녀가 수습해 놓았다.
소란이 일지 않은 걸 보면 상황을 발견한 천사는 없는 거겠지.
그녀가 바쁘게 움직이는데 뒤에서 익숙한 기척이 다가왔다.
딱히, 반갑지는 않았다.
“우리엘, 여기서 뭐 하지?”
“너야말로, 여기 있을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가브리엘.”
우리엘이 복도를 막아서듯 가브리엘의 앞에 자연스럽게 섰다.
가브리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메타트론 님께서 사라지셨다는 소식을 들어서 말이야. 그 녀석을 구하러 갔는지 확인하려고.”
“호오, 그래? 그걸 지금 보러 간다니 상태가 안 좋긴 한가 봐?”
“마왕을 상대했으니까.”
천계로 와도 회복이 더디군.
가브리엘이 한숨과 함께 말하곤 걸음을 옮겼다. 우리엘이 잽싸게 그의 앞을 막으며 팔짱을 꼈다.
우리엘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다.
“마침 할 얘기가 있었어.”
“급하지 않은 이야기라면…….”
“급해, 이런 상황이기에 더욱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거든.”
처음 있는 일은 아니라, 가브리엘은 귀찮은 듯 혀를 찼다.
우리엘은 곧잘 이렇게 저를 막아서고 계획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고는 했었다.
“계획에 대한 불만인가?”
“눈치가 빠르네? 맞아. 나는 널 도무지 믿을 수가 없거든.”
“뭐가 그렇게 문젠데?”
“가브리엘, 지금 계획의 뭐가 문제인지 몰라서 묻는 거야?”
“그래, 합리적인 계획이잖아.”
“합리적이라고? 그게?”
가브리엘이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위그드라실이 이대로 죽기라도 하면 천계가 어떻게 될지는 알고 있을 것 아닌가.”
천계가 무너지겠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글자의 의미 그대로 무너져내릴 것이다.
“단 한 명의 천사를 희생시키면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릴 수 있어. 얼마나 합리적이야?”
“……그게, 메타트론 님이라도?”
“그분이기에 다행인 거지.”
“…….”
“나도…… 메타트론 님께서 천계를 떠나지 않으셨다면 이런 방법을 쓰려 하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는 결국 떠났어.
천계를 등졌지.
그렇다면 그 또한, 죄목에 맞는 형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
“누구보다 그분께서 더 잘 이해하고 있을 거다.”
“…….”
“그분은, 계율의 천사니까.”
가브리엘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미건조한 눈동자가 우리엘과 시선을 마주했다.
한 자락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탁한 하늘색 눈동자.
가브리엘은 언제부터 이런 눈을 하고 있었을까…….
“아니, 그런 일은 없어.”
우리엘이 눈을 가볍게 감았다.
곧 눈꺼풀이 올라가고, 맑은 호수의 표면처럼 선명하게 일렁이는 푸른 눈동자가 드러났다.
“내가 막을 거야. 모든 것이, 내게는 궤변으로 들릴 뿐이니까.”
화르륵.
오른손에는 진리의 검을.
왼손에는 영원의 불꽃을.
우리엘의 신성력이 일렁였다.
“지금 이 순간, 대천사 우리엘의 권능을 행사하겠다.”
죄인의 이름은 가브리엘이고.
집행자의 이름은 우리엘이니라.
“징벌의 시간이다, 가브리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