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66)
마족답게 사는 법-366화(366/385)
마족답게 사는 법 366화
366 작은 천계 (1)
몸이 붕 떠 있는 기분이다.
루시어스는 눈을 감은 채 의아해했다. 검이 몸을 관통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이상할 정도로 통증이 없었다.
오히려 감각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곳에는 그 어떤 위협이나 위험도 없다는 듯이.
그저 차분하게.
‘주변이…… 조용하네.’
살랑거리는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이 뺨에 닿아온다.
루시어스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좀처럼 뜨일 것 같지 않았던 눈꺼풀이 너무 쉽게 뜨였다.
“드디어 일어났군.”
부루퉁한 목소리가 들린다.
눈을 뜨자 검은색 머리의 소년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소년의 맑고 푸른 눈동자가 루시어스와 마주쳤다.
1차 성장을 마친 후쯤의 모습일까. 소년은 꽤 어려 보였다.
“……너는.”
“대체 언제까지 잘 생각인지, 일어날 때까지 두라는 말씀만 아니었어도 너는 내가 죽였을 거야.”
“…….”
상당히 건방진 소년이었다.
말을 잃었던 루시어스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루시어스가 있는 곳에는 넓은 들판과 푸른 하늘.
살랑…….
그리고 위그드라실이 있었다.
루시어스는 녹음 밑에서 위그드라실을 올려다보았다. 따뜻한 바람에 나뭇잎이 살랑이고 있다.
“여긴…… 대체 어디지?”
“아니, 여기가 어딘지 몰라? 대체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나도 잘 모르겠는데.”
“끄응, 문에 뭔가 이상이 생기기라도 했나. 걱정하지 말고 가만히 두어도 된다고 말씀하시더니.”
내게 뭔가 숨기고 계시는 게 틀림없어. 소년이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분한 듯 발을 동동 굴렀다.
루시어스는 소년이 누구인지 알았다. 행동과 성격만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지만…….
저 두 눈동자는 분명 자신이 알던 이의 것이었다.
“혹시 루시퍼?”
“……날 알아? 의외로군.”
소년, 루시퍼의 눈이 크게 뜨였다. 루시어스의 시선이 복잡해졌다. 설마 타리크의 반도 안 되는 체구를 가진 이 소년이 정말.
루시퍼일 줄이야.
‘이 녀석이 루시퍼라면, 여기는.’
루시어스가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넓으며 고요한 풍경이었다.
“설마, 또 꿈속인가.”
이곳이 현실일 리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루시어스의 꿈속이 언젠가의 마계였던 것처럼 이곳은.
메타트론의 꿈속.
언젠가의 천계인 것이다.
위그드라실이 메타트론의 꿈을 제게 꿈을 보여 주고 있다면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 어딘가에 메타트론이 있을 텐데.’
천계와 위그드라실을 지키기 위해 대부분의 힘을 여기에 두었을 테니, 메타트론의 의식은 이곳에도 있을 터였다.
루시어스의 시선이 작은 루시퍼에게 향했다. 메타트론의 꿈이니만큼, 그는 다른 존재의 모습을 빌리진 않았을 터였다.
그렇다면 직접 찾아가야겠지.
“루시퍼, 혹시 메타트론이…….”
“뭐? 지금 뭐라고 했어?”
루시어스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루시퍼가 살쾡이 같은 눈을 한 채 루시어스를 노려보았다.
루시퍼에게서 이런 시선을 받을 줄은 몰랐던 터라 루시어스가 적잖이 당황했다.
“지금 누구 존함을 함부로 부르는 거야? 마족은 원래 이렇게 위아래도 없이 구나?”
“……뭐?”
“네가 마왕이어도 안 될 말이야. 메타트론 님께선 네가 일어나면 알려달라고 말씀하셨지만, 네 불손함을 보니 안 되겠다.”
루시어스의 입이 벌어졌다.
지금 루시퍼가.
설마 메타트론에게 ‘님’을 붙이지 않았다고 이러는 건가?
다른 이도 아니고, 나한테?
“나는 네 루시퍼가 아니니까.”
경악스러워하는데 루시퍼가 겉모습에 맞지 않도록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작게 속삭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다시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며 외쳤다.
“안 되겠어. 가기 전에 내가 교육을 좀 해야…… 아얏!”
휘리릭, 툭!
한참 루시퍼가 따박따박 말하는데 위에서 도토리같은 작은 열매가 떨어져 이마를 때렸다.
루시퍼가 떨어지는 열매에 맞은 이마를 손으로 감싸며 끙끙댔다.
곧 뒤에서 사박거리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작은 타박이 들렸다.
“루시퍼, 손님이 깨시면 내게 바로 데려오라고 하지 않았느냐.”
“메타트론 님……!”
루시퍼가 화들짝 놀라면서도 후다닥 메타트론에게 다가가 두 팔을 벌렸다. 메타트론은 권태로운 루시퍼를 내려다보다가.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하지만 저 건방진 마족이 메타트론 님을 함부로 불렀는걸요.”
“그래서 역정을 내고 있었느냐?”
“네, 저는 당신께서 임명하신 첫 번째 권속이니까요!”
“…….”
메타트론이 루시퍼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특유의 고요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루시퍼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당신께서는 불손한 이를 눈앞에 두시고도 아무 말씀 안 하실 테니 제가 대신 화내야지요.”
“……루시퍼.”
“무엇보다, 메타트론 님의 환생이라지만 어째서 마족을 믿고 메타트론 님께서 직접 대화를 나누십니까?”
“…….”
입을 비죽 내민 채 저를 노려보며 험담하던 루시퍼가 동의를 구하려는 듯 메타트론을 보았다.
하지만 메타트론은 표정 변화도 없이 루시퍼를 가만히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마치 할 말이 있으면 계속 말해보라는 듯이.
“그, 그게.”
“…….”
“물론, 메타트론 님의 힘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에요……!”
“…….”
“저는 그냥 저 마족이…….”
루시퍼는 고요한 금색 눈동자를 마주하고 곧 입을 딱 다물었다.
나름대로 억울한지 입술을 삐죽거리며 우물거리던 루시퍼가 곧 고개를 푹 숙였다.
“잘못했습니다…….”
메타트론이 그제야 입을 뗐다.
“내게 잘못하였느냐.”
“그…… 아뇨, 죄송합니다.”
루시퍼는 메타트론의 온화한 질책에 못 이겨 루시어스에게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울먹울먹한 표정이었다. 메타트론은 그런 루시퍼를 안아서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런 후 메타트론이 루시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루시퍼가 실례를 했네.”
“아닙니다.”
“그래, 그럼 자리를 좀 옮기도록 할까? 우린 할 얘기가 참 많으니.”
“반가운 말씀입니다.”
메타트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루시어스는 그런 메타트론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는데…….
“흥.”
“…….”
메타트론의 품에 안긴 루시퍼가 루시어스를 보며 잔뜩 심통이 난 표정으로 혀를 삐죽 내밀었다.
루시퍼는…… 저런 놈이었나?
루시어스는 말문을 잃었다.
* * *
“이렇게 싸우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나는군.”
타리크가 자세를 낮추며 묵직한 일격을 피했다. 미카엘이 미간을 꿈질 움직이며 손목을 비틀어 대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처음 우리가 싸웠을 때 말이야. 기억나? 서로 자기의 ‘그분’을 욕했다고 피 터지게 싸웠잖아.”
“그랬던 적도 있었지, 지금 꺼낼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콰아앙! 쿠구구궁!
무기에 맞부딪힌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발밑 바닥이 한 층 꺼지는 소리가 났다.
타리크는 속에서 넘어오는 비릿한 핏덩이를 삼키며 웃었다.
“네놈이 이런 식이니 재미없다는 소리나 듣고 사는 거야.”
“알 바 아니다.”
“주름이 가득한 미간도 좀 펴고 다니도록 해. 천사들이 무서워서 너한테 말이라도 붙이겠나.”
“멍청한 놈. 천사들은 노화가 없으니 주름이 생길 일도 없다.”
“이런 재미 없는 놈.”
쾅! 쿠궁! 쿠과광!
일격마다 가공할 만한 힘이 실린다. 과연 천계의 검이라고 할 수 있는 실력이었다.
다만 타리크가 보기에 미카엘은 검은 검이되, 양날의 검이었다.
제 의사는 없이 그저 천계와 천제의 안녕을 하라며 우직하게 명령을 따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미카엘의 검은 천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바로, 지금처럼.
미카엘은 멍청한 놈이 아니다.
오히려 루시퍼와 타리크가 보아온 어떤 이들보다 똑똑하며 사리 분별에 강하다.
미카엘이라면 분명 지금의 천계가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잘못된 천계를 위해 검을 휘두른다.
그것이 최종적으로는 이 세계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곧 그분이 오실 것이다.”
“메타트론 말이냐? 네놈들이 그렇게 찾아 헤매는 메타트론?”
“그래, 맞다. 상제님과 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시자 신께 인정받은 계율의 천사.”
천계를 지키며 이끄는 그분께서 돌아오시면, 상제님께서도…….
미카엘의 눈이 번뜩였다.
타리크는 공격을 흘려넘기며 어이가 없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너는 정말 여전히 멍청하군.”
“넌 꼭 할 말이 없을 땐 나보고 멍청하다 하더군. 이번으로 18267번째다. 네놈은 대체 나와 언제까지 기 싸움이나 할 것이냐. 유치해서 상종할 수가 없군.”
“그걸 전부 세고 있다니 유치하긴 네놈이 더 유치하지.”
게다가 18267번이라니, 틀렸어.
“네놈이 태어나자마자 멍청하다 한 것도 세야지. 18268번이다.”
“…….”
미카엘의 미간이 팍 일그러지자 타리크가 그 틈을 노리고 반격했다. 일순간 움직임이 느려지더니, 미카엘에게 빈틈이 생겼다.
유치한 말싸움으로 내게 이겼던 적이 없는 주제에, 고집부리긴.
촤아아악!
보랏빛 마기가 가득한 타리크의 손톱이 미카엘의 가슴을 깊게 파고들었다. 지독한 독기가 미카엘의 육체를 서서히 좀먹어간다.
“쿨럭!”
미카엘이 검붉은 피를 토했다.
그가 몸을 뒤로 빼며 흉흉한 시선으로 타리크를 바라보았다.
타리크가 한숨 돌리며 말했다.
“멍청한 놈아.”
“18269번.”
“아, 방금 그건 거짓말이었다.”
“……쯧.”
“네놈이 태어날 때면 항상 메타트론이 곁에 있었는데 그런 말을 했겠냐, 루시퍼가?”
타리크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목을 한 번 옆으로 꺾었다. 뚜두둑, 하고 뼈 소리가 들린다.
“네놈도 눈치채지 않았냐?”
“…….”
“나는 루시어스 님의 영향을 받아 기억을 되찾았어. 그런데 루시어스 님은 아직 기억이 없지.”
미카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잖아.”
“메타트론님께서는…… 돌아오지 않으실 생각인 거겠지.”
우리들과의 기억을 루시어스에게 짊어지게 하지 않으려고 하시는 것이겠지.
자신의 환생체이기 때문에 천계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실 테니, 분명.
“우리들의 모든 슬픔도.”
“…….”
“원망과 두려움도.”
“…….”
“하다못해 과거의 그 날들을 그리워하는 감정까지 전부 혼자 떠안고 떠나실 생각이셨겠지.”
아마 루시어스 켄드릭이 메타트론이 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가브리엘의 계획처럼 그를 낙엽으로 사용하여 위그드라실의 양분으로 삼는다고 해도.
그렇게 환생한다 해도…….
메타트론이 아니라 루시어스 켄드릭의 환생체로서 태어나겠지.
그분은 그런 분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지 않나, 타리크 라하위스.”
“…….”
미카엘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쿵!
검을 땅에 찍고 몸을 일으킨 미카엘은 다시 검을 들고 타리크에게 겨누었다.
“나는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하지만 상제님께서는 아니야.”
상제님께서 메타트론 님을 그리워하는 감정은 내가 헤아릴 만한 것이 아니니까.
쿠구구궁! 파아아앗!
지하감옥 너머에서 갑작스런 거대한 파동과 함께 은빛이 넘쳐흘렀다. 타리크의 눈이 홉뜨렷다.
“루시어스 님……!”
미카엘은 그것에는 신경쓰지 않고 타리크에게 달려들었다.
“이 계획이 어떻게 끝나든, 나는 상제님의 곁에 있어야 할 의무가 있다. ‘미카엘’로 태어난 순간, 그렇게 맹세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