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67)
마족답게 사는 법-367화(367/385)
마족답게 사는 법 367화
367 작은 천계 (2)
메타트론은 루시어스를 위그드라실 그늘 밑에 마련해 둔 테이블로 데려가 앉혔다.
도착할 때까지 메타트론의 품에 안겨있던 루시퍼는 도착하자마자 그의 품에서 내려갔다.
그리고 루시어스를 한 번 불만스럽게 흘긋거린 후 자리를 피해 주었다. 그는 멀지 않은 곳, 작은 화단을 돌보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자 메타트론이 꽃차를 내주었다. 메타트론이 직접 우린 것은 아니었다. 꿈속이라 그런지 손을 한 번 저으니 차가 생겼다.
“잘 마시겠습니다.”
“입에 맞았으면 좋겠구나.”
메타트론이 그렇게 말하며 루시어스의 맞은편에 앉았다.
누구 할 것 없이 조용히.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먼저 정적을 깬 것은 의외로 메타트론이었다. 잠깐 가느다란 침음을 흘리던 그가 말문을 텄다.
“네가 여기에 오지 않길 바랐단다, 루시어스.”
“어째서입니까?”
“네가 여기에 도착했다는 건, 위그드라실에 네 피를 뿌렸다는 뜻이니까.”
자의로든, 타의로든.
네가 피를 보지 않길 바랐어.
“웬만해서는 네 자의로 그런 상황이 일어날 리가 없지. 혹시…… 산달폰이 그랬니?”
“……맞습니다.”
“그래, 역시 그렇구나.”
메타트론은 찻잔을 들어 기울였다. 바짝 마른 입가가 따뜻한 기운에 사르륵 녹았다.
“묻고 싶은 것이 많겠지.”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무엇이든, 네가 바란다면.”
딱딱해도 무척이나 온화한 목소리였다. 그들이 왜 메타트론에게 집착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묻고 싶은 말이 참 많았으나 이렇게 여기에 오니, 무엇보다도.
“이곳은 어떤 곳입니까.”
“……이곳 말이니?”
이것이 제일 궁금했다.
천계라기엔 끝없이 드넓으며 마계라기에는 끝없이 풍요로운 곳.
그렇다고 중간계라기에는.
너무나도 맑고 신성한 대지.
“당신께서 제게 마계의 꿈을 보여 주셨었지요. 그것처럼…… 여기에도 뭔가 의미가 있습니까?”
“…….”
메타트론은 잠시 말이 없었다.
말을 고르는 듯 한참 조용하던 그의 입술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여긴 내 미련의 조각이란다.”
“……미련?”
“원래 여기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단다. 위그드라실을 위해 육신을 거름으로 주고……. 완전히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지.”
그의 눈이 반쯤 감겼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푸른 동산이 생기고 하늘이 펼쳐졌단다.”
“위그드라실, 인가요?”
“그래, 위그드라실의 힘이었어.”
메타트론이 씁쓸하게 웃었다.
위그드라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는데 녀석은 자신이 점점 마모되고 있음을 알아도.
나를 먼저 걱정해 주더라.
“나는 바깥에서 낙엽이 되고 거름이 된 천사들을 이곳에 데려왔단다. 환생시켜 주지는 못해도, 이곳에서 평안한 삶을 살라고.”
“그래서 여기에 천사들이…….”
이곳엔 메타트론과 루시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름 모를 천사들이 동산에서 즐겁게 뛰어놀며 웃고 있었다.
꺄르륵, 꺄륵.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루시어스는 천사들이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온통 하얀 세상에서 검은 머리의 천사가 눈에 띄었다.
“루시퍼는, 어떻게 된 겁니까?”
“……저 아이야말로 미련이지.”
루시퍼가 소중히 돌보는 화단에는 루시어스도 아는 꽃들이 심겨 있었다.
메타트론의 방에 있던 꽃.
중간계의 꽃들이었다.
“루시어스, 내 일기를 보았니?”
“보았습니다.”
“결국 네가 봤구나.”
잠시간 그의 얼굴에 더 없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퍼졌다.
보는 이가 마음이 아릴 정도로.
슬픔을 감내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루시퍼를 권속으로 만들었었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루시퍼의 머리카락이 검은색이었다.”
“천사들은 모두 백발이었죠.”
“그래, 사실 루시퍼가 천사로 막 태어났을 때는 그것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었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지나며.
천계가 조금씩 넓어지고 천사의 수가 많아지니 점점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루시퍼의 검은 머리카락이 혹시, 차별을 받을까 봐.
“그래서 나는 내 힘으로 머리카락을 하얗게 만들어 주었단다.”
“…….”
“다름은 특별하지. 혼자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할지도 몰라. 하지만 특별함은 오래 지나지 않아 차별을 낳는단다.”
누군가는 다름에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다름을 손가락질하지.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틀리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메타트론이었지만, 저 아이는 루시퍼였으니 더욱.”
“당신의 눈도 그렇네요.”
루시어스는 메타트론의 금색 눈동자를 응시했다. 무척 차가우면서도 어딘가 따스한, 무심해 보이면서도 다정한 눈동자였다.
그러고 보면 천사들의 눈은 모두 푸른색이었다. 오직 메타트론만이 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특별함이 고독함이 되었군요.”
루시어스는 왠지 메타트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세계에서의 특별함은 곧잘.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받을 수도 없는. 고독함이 된다.
“루시퍼는 괜찮다고 했다. 어떤 색이든 나는 나일 뿐이라고.”
“하지만 신경 쓰였던 거죠?”
“……루시퍼는 두 번 거절하지는 않았단다. 참 착한 아이였어.”
메타트론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멀리에서 화단을 돌보는 어린 루시퍼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나중에, 후회했단다.”
오히려 루시퍼를 ‘루시퍼’로 봐주지 않았던 것은 내가 아닌지.
루시퍼는 있는 그대로 살아가려고 했는데, 내가 방해한 것은 아니었는지 후회가 되더라.
혹 그래서 그런 무모한 짓을 벌였던 것인가 하고. 참 많이도.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런 내 소망 때문인지, 루시퍼는 어릴 적 모습 그대로더구나.”
막 천사로 태어났을 때.
천사가 된 최초의 인간으로서, 다른 천사들과는 달리 천사가 되기 위한 ‘성장’을 할 때 그대로.
……그 사실이 오히려 기뻤다.
이번에는 네 앞에서 길을 안내하며 걸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너도 알다시피 루시퍼는 네 곁에서 환생했단다. 그런데도 여기서 뛰어다니고 있으니……, 내 미련이 아니면 무엇일까.”
“후회하십니까. 루시퍼를 권속으로 데려왔던 것을.”
“너는 참 올곧고, 예리하구나.”
다른 이들이 왜 나랑 대화를 나누기 힘들어했는지 알겠어.
너의 금색 눈동자가, 나를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다.
“내 감정을 그 아이에게 전가한 것 같아서 미안했단다.”
“……그렇습니까?”
조금 전에 하는 행동을 보니.
마냥 그렇진 않아 보이던데.
루시어스의 약간 떨떠름한 반응에 메타트론이 손을 뻗어 루시어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알고 있단다. 루시퍼는 나를 참 좋아하고 따르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루시퍼가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상상한단다.
내가 아니었다면 수만 번의 생 끝에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돌고 도는 천사의 환생.
잊지 못하는 전생의 기억들.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
진흙탕에 구르면서도 사랑을 찾았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이렇게 말은 해도, 과거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하겠지.”
유일하게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봐주었던 것이 루시퍼였으니까.
그 녀석은 누구보다 나를 이해해주고 있었으니, 아마 똑같이 만난다면 뿌리칠 수 없을 터다.
“이곳은 위그드라실이 나를 위해 만들어준 낙원이란다. 덕분에 나는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버틸 수 있었지. 하지만…….”
“끝이 다가오고 있죠.”
“……그래.”
루시어스가 메타트론의 낙원을 바라보았다. 누구도 근심이 없으며 누구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낙원에서도…….
메타트론은 여전히 외롭다.
루시어스의 낯빛이 점차 어두워졌다. 메타트론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말을 덧붙여 주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이곳의 시간은 바깥과는 다르게 흐르니, 저쪽은…….”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루시어스가 메타트론의 말을 자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메타트론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여기 앉아만 계십니까? 함께 저들과 놀지 않고요.”
“……내가?”
마치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메타트론의 눈이 이제껏 본 것 중에 가장 크게 뜨였다.
“다들 웃고 있습니다. 제법 즐거워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정작 멀리서 보기만 하면 뭐 합니까. 이럴 때 즐겨야지요.”
“하지만 나는…….”
“원래 처음이 어려운 법입니다.”
바깥에 있을 이들이 걱정이기는 하지만 다들 강한 아이들이니 괜찮을 것이다. 루시어스는 오히려 돌아가고 난 후 들을 잔소리들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볼일만 보고 떠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당신은 나니까.
다름에도 같은 곳이 있으니까.
여기서 이대로 쓸쓸하게 눈감지 않기를 바란다. 이대로 돌아가면 분명 나는 먼 훗날 후회하리라.
“무엇부터 해 보시겠습니까?”
“무엇을 말이냐.”
루시어스가 메타트론의 손을 잡고 언덕으로 끌었다. 메타트론은 루시어스에게 끌려가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술래잡기도 재미있고, 숨바꼭질도 할만 합니다. 아니면 마왕과 용사 놀이는 어떻습니까.”
“나는 그런 건 한 번도…….”
“모두 우선 불러볼까요? 앉아서 할 수 있는 놀이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진실게임은 아십니까?”
“루, 루시어스. 잠깐. 루시어스!”
“좋습니다. 쉽게 결정하지 못하시는 것 같으니 전부 다 하죠.”
메타트론이 크게 당황했다.
“루시어스……!”
* * *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지?”
가브리엘은 우리엘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그렇게 물었다.
아무리 같은 대천사라 해도 우리엘은 징벌의 천사였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과 함께 징벌을 내건 이상, 가브리엘의 힘으로는 그녀를 대적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있는 힘껏 저항하기는 했으나 결과는 뻔했다.
우리엘이 답했다.
“우리가 틀렸으니까.”
“우리엘, 난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천계를 위하지 않은 적이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
“천계를 위했던 내가, 정말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가브리엘이 허탈한 듯 물었다.
고지가 코앞이었는데 상상도 못 했던 우리엘의 배신 때문에 발목을 잡혔으니…… 허망했다.
“너는 항상 천계를 위했지.”
우리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가브리엘, 메타트론 님께서는 천계를 위하지 않았어?”
우리엘의 물음에 가브리엘이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말해봐, 가브리엘. 메타트론 님께서는 천계를 위하지 않았어?”
“그건 당연히……!”
“너도 알고 있잖아. 메타트론 님께서는 누구보다 천계를 아끼고 사랑하셨어. 그래서 우리는 더욱 실망스러웠던 거잖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긴 세월 동안 천계를 지탱하셨던 분이야.
“있잖아. 가브리엘.”
“…….”
“천계의 지낭이 되어 위그드라실을 돌보며 상제님과 함께 천계를 지탱해 보니 어때?”
많이 힘들지 않아?
지금처럼 일이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을 때도 있고. 상상치 못했던 결과가 나올 때도 있지.
“그분께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은, 정말 한 번도 한 적 없어?”
“…….”
“천계는 모든 천사가 함께 떠받쳐야 하는데 우리가 지금껏 메타트론 님만을 믿고 책임을 전가했다곤 생각한 적은, 없어?”
가브리엘이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아래로 떨어트렸다.
“그토록 우리와 천계를 사랑하셨던 분이 왜 천계를 떠났는지, 이제 우리는 직면해야 돼.”
너무나도 무겁다. 두 어깨가.
“가브리엘, 이제 인정하자.”
천계의 지낭이라는 자신의 이명이 너무나도 무겁고 버겁다.
“잘못된 건, 우리들이라는 걸.”
바닥을 짚은 가브리엘의 손 사이로 조금씩, 물방울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