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73)
마족답게 사는 법-373화(373/385)
마족답게 사는 법 373화
373 후회 (4)
“하아, 진이 다 빠졌어.”
“나도……, 다리가 후들거려.”
라타트리아와 쌍둥이가 털썩 주저앉아 숨을 돌렸다. 레이얼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들은 마왕을 찾아 상황을 설명했다.
“전하 얼굴 엄청 무서웠지.”
“이대로 천계가 망해도 안 이상할 것 같은 표정이셨어.”
정확히는 자신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뭔가 큰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아셨는지 바로 뛰어가셨다.
길을 안내하려고 했으나 마왕과 더미트 그리고 짐승의 모습이 된 하멜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그냥 보이는 벽을 전부 부수고 목적지까지 직진하더라.
뒤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살벌해 아직 어린 그들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중간에 주저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뭔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솔직히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
루시어스가 찔리는 모습을 보고서도 아무것도 못 했잖아, 우리.
훌른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틀린 말은 아니라 베른이 뺨을 긁적였다.
둘 사이에 앉아있던 라타트리아가 몸을 일으키며 먼지를 털어냈다. 쌍둥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라티에게 좋은 생각이 있다찌.”
“좋은 생각? 그게 뭔데?”
“다른 애들이 마계에 가서 리브레 님을 모셔 온다고 하지 않았냐찌. 우리가 마중을 가는 거다찌.”
아무것도 못 하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는 거지.
“좀 더 자신감을 가져라찌. 둘이 없었으면 비밀 통로를 발견하지도 못했을 거고 루시어찌와 만나지도 못했을 거다찌!”
라타트리아가 활짝 웃었다.
훌른과 베른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분명 처음에 라타트리아는 우리처럼 약하고 겁도 많은 마족이었다. 소극적이라 앞으로 나서기를 무서워해 뒤에 숨어 있기만 했다.
자신감 있게 무엇인가를 하자고 말하는 친구가 아니었다.
‘라티는 정말 대단하구나.’
그런데 어느새 이렇게 듬직하고 멋있는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주저앉아 한숨만 쉬고 있었는데 라타트리아는 그 후를 생각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자, 둘 다 일어나라찌!”
라타트리아가 손을 내밀었다.
쌍둥이가 라타트리아의 손을 한 쪽씩 잡고 일어나며 웃었다.
“알겠어, 그럼 우린 먼저 마계의 문이 있는 쪽으로 가자!”
“그리고 오는 분들에게 길 안내를 해 드리는 거야!”
셋이 시선을 나누며 웃었다.
* * *
가브리엘이 우리엘과 함께 도착했을 땐 이미 많은 일이 벌어진 후였다. 이곳의 분위기나 상태만 봐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정말 끝이구나.’
가브리엘은 위엄을 잊고 감정에 충실하게 눈물을 흘리는 천제의 모습을 조용히 눈에 담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위그드라실로 시선을 돌렸다.
희미한 빛을 뿜는 그것에게로.
‘정말, 끝이야.’
허상의 목표를 바라보며 쉼 없이 달리던 우리는 결국 이렇게 많은 것을 잃고 이렇게 늦은 깨달음을 얻은 후에야…….
멈출 수 있게 되었구나.
“……생각보다 늦었네.”
가브리엘은 제게 말하는 라파엘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계의 1장로에게 당해 묶여 있는데도 참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래. 아주 많이, 늦었지.”
조금 더 빨랐으면.
뭔가가 더 많이 달라졌을까.
가브리엘이 조심스럽게 천제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상제님, 이제 다 끝났습니다.”
“……가브리엘.”
“이제 정말, 다 끝났습니다.”
천제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가브리엘은 항상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다. 미간의 주름이 펴진 것을 천제마저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은 온화하고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루시어스 님.”
가브리엘은 천제에게 한 번 더 웃어 보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루시어스를 돌아보았다.
“저희는 패배했습니다.”
“…….”
“저희는 어리석었습니다.”
당신께서 그것을 알려주셨지요.
가브리엘이 눈을 가볍게 감았다가 떴다. 분명 루시어스에게 할 말이 무척 많았는데 앞에 나서니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드리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쟁의 마무리부터 하고자 합니다. 이 모든 일을 완전히 끝내기 위해서요.”
무엇보다도 자신은 계획을 세운 천계의 지낭으로서 이 일을 마무리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루시어스 님. 천계와 마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 대부분 패배한 왕이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그랬었지.”
천계가 전쟁에서 패배했다.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마계에서는 천계에 전쟁에 대한 보상금을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천사를 상대로 자비를 베풀었다며 마왕의 권위를 얕볼 것이다.
가브리엘이 루시어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망설임이 없었다.
“하지만 위그드라실이 쇠약해지며 회복할 수 없어진 지금.”
이전까지는 천제가 죽으면 환생을 기다리며 전쟁의 여파를 수습하고 수많은 일을 처리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상제님께서 목숨을 잃으신다면 천계는……, 왕을 영영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마족 중 가장 강한 마족이 마왕이 되는 마계와 달리, 천계는 천제의 영혼을 가진 천사가 계속해서 왕이 된다.
왕의 영혼만이 왕으로서 권능을 가지고 천계를 이끌며 지탱할 수 있다. 그러니 천제의 영혼이 환생하지 못한다면…….
천계는 천제를 잃게 된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가브리엘이 고개를 깊게 숙였다.
“전생에서나마 당신의 형제였던 천사를 가엾이 여기시고 왕을 잃을지도 모르는 천사들을 살펴 주십시오.”
“내가 천제 대신 그대에게 계율을 묻는다고 해도 받아들일 건가?”
“그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대천사로서 계율을 어긴 죗값을 치르던.
아니면, 마계를 위한 피해 보상으로 이 목숨을 바치던.
당신의 뜻대로 하겠으니 상제님만은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하아.”
루시어스가 작게 한숨 쉬었다.
애초에 자신은 승리했다는 이유로 천제의 목숨을 요구할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이것이 승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다른 이들은 이번 일을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여길 것이다.
대외적으로 모든 마족이 납득할 만한 정당한 보상을 받지 않으면 마왕의 권위가 실추되겠지.
루시어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개인적인 문제였다면 넘어갈 수 있겠지만 두 세계 간의 문제가 되면 잠자코 넘어가 줄 수 없다.
그건 제 권한 밖의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장로로서 마왕의 권위를 염려하지 않을 순 없다.
루시어스가 고민을 거듭하고 있으려니 옆에서 레이얼이 손을 번쩍 들며 웃었다.
“루시어스!”
“……레이얼?”
“제가 있잖아요. 무슨 선택을 하시든 방법이 있으니 깊게 고민하지는 마세요.”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하세요.
설령 그 때문에 사고가 난다 해도…… 뭐 어때요. 지금껏 손위 장로들은 막내한테 일이란 일은 죄다 맡기고 놀기만 했는데.
이 정돈 알아서 처리해 주겠지!
레이얼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알겠다. 그럼 너만 믿을게.”
“맡겨 주세요.”
루시어스가 레이얼을 보며 미소 짓다가 고개를 돌렸다. 가브리엘은 죄를 심판받을 시간임을 알고 눈을 질끈 감았다.
터벅, 터벅.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루시어스는 제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위그드라실로 다가가 나무를 올려다보다가 기둥에 손을 얹었다. 루시어스가 눈을 감았다.
“메타트론은 단 한 번도 그대들을 미워한 적이 없었어.”
메타트론이 천계에 깊은 상처를 받아 언제까지나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모를까.
단 한 번도 미워한 적이 없는데 자신이 메타트론으로서 그들에게 벌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우선은.
모두 처음으로 돌려놓겠다.
“하지만 가브리엘. 마족 루시어스 켄드릭은 아직 그대들을 용서하지 않았다는 걸 잊지 말아라.”
파아아앗……!
거대한 빛이 위그드라실을 감싼다. 자리에 있던 모든 이가 시야를 가리며 인상을 구겼다.
눈이 멀 것 같은 빛 가운데에서 루시어스는 눈을 감고 감각에 집중했다. 위그드라실이 제게 보내 주었던 따스한 기운을 느꼈다.
메타트론은 기록도 없는 오래전부터 위그드라실을 관리한 천사.
천사들의 영혼을 보듬으며 죽음 후의 환생을 돌보던 총관이다.
그러니, 권능을 사용한다면.
‘동산에 있던 천사들을…….’
긴 시간 동안 희생된 천사를.
다시 살려 낼 수 있을 것이다.
루시어스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다행스럽게도 위그드라실 안에 있는 천사들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다.
“세라프.”
힘을 실어 이름을 부르자.
휘이이이.
가벼운 바람이 불고 빛이 한데 모이며 천사의 형상이 되었다.
위그드라실에서 톡 떨어진 나뭇잎 하나가 빛에 닿았다. 그러자 마치 물감이 퍼지는 것처럼 빛이 물러가고 모습이 드러났다.
잠든 듯 굳게 감겨있던 눈이 사르르 뜨였다. 주변을 살피던 눈동자가 루시어스를 향했다.
잠깐 자기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던 세라프가 미소 지었다.
“레미엘, 자드키엘.”
한 명, 한 명.
루시어스는 동산에서 보았던 천사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불렀다.
그때마다 나뭇잎이 하나씩 떨어지며 천사들이 눈을 뜨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던 듯 부드러운 웃음이었다.
천사들이 모두 위그드라실을 올려다보았다. 한 명씩 눈을 뜰 때마다 위그드라실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루시어스가 숨을 삼켰다.
‘메타트론, 위그드라실.’
천계를 지키며 계율을 이행하며 천사들을 돌보고 품에 감싸느라.
당신 또한 많이 힘들었겠지요.
당신의 바람대로 천계는 달라질 테니 부디 걱정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고생 많으셨어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스르르르…….
위그드라실이 완전히 빛의 알갱이가 되어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빛송이가 마치 눈이 내리는 것처럼 이곳을 채웠다. 루시어스는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간지러운 뺨을 만져 보았다.
왜인지,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자각하고 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루시어스는 눈물을 닦아 내지 않았다. 이 눈물이 왜 나는 것인지.
누구의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
눈물을 흘렸기 때문인지 눈앞이 어지럽다. 루시어스의 몸이 옆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시야가 흔들리고 세상이 뒤집혔다. 루시어스가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
“루시어스, 이제 쉬어도 돼.”
쓰러지려는 루시어스의 몸을 받아든 레녹스가 작게 속삭였다.
“네가 전부 나서면 우리는 활약할 틈이 없잖아. 안 그래?”
“……응. 그럼, 나 조금만.”
의식이 완전히 꺼지기 전, 소란스러운 목소리 사이에 유난히 다급하게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루시어찌! 군단장님을 모셔 왔다찌! 안, 안 늦었찌!!
-아직 안 늦은 것 같습니다. 중간에 여러분을 만나 다행이에요.
루시어스가 얼핏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