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75)
마족답게 사는 법-375화(375/385)
마족답게 사는 법 375화
375 천제 산달폰 (2)
“…….”
긴 정적이 흘렀다.
불편하리만치 길고 긴 정적이었으나 루시어스는 산달폰을 재촉하지 않았다. 입을 열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줄 생각이었다.
어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 법이니까.
“……네가 쓰러져 있는 사이 많은 고민을 했다. 정말, 많이.”
“그러십니까.”
“그중 가장 고민했던 것은.”
산달폰이 작게 탄식했다.
루시어스를 만나면 가장 처음에는 사과를 하려고 했었다.
어쨌든, 천계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지 않았나.
하지만 얼굴을 마주하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이…….
루시어스의 분노를 가볍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전하고 싶은 감정을 희석하는 게 아닐까.
그런 많은 생각이 들어서.
“……사죄가 내 자기만족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지.”
내가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네가 편해져야 할 텐데.
“결국 답을 찾지는 못했다. 어떤 말을 해야 위로가 될지, 내게 그럴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어.”
산달폰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고 루시어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미사여구를 가져다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건 참으로 쉬운 일이겠지만…….”
“…….”
“그곳에 결국 마음을 온전히 담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게 남은 말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는 어딘가 꽉 막힌 것처럼 먹먹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했다.
“미안해. 미안하다, 정말.”
“…….”
“받아 주지 않아도 괜찮아. 용서를 바라고 하는 말은 아니니까.”
나와 우리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사죄받을 때까지 속죄하겠다.
천사에게는 죽음이 없으니.
너에게 죽음이 찾아와서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평생을 네게 속죄하겠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테니.
“나는 많은 죄를 범했어. 천제로서 누구보다 올바르게 천계를 이끌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루시어스는 제게 계율을 지켰느냐고 메타트론으로서 물었다.
산달폰은 자신은 그렇다고 대답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고집을 꺾지 않았으니 교만이요.”
“…….”
“그것 하나에 몰두해 세계를 돌보는 일을 등한시했으니 나태함이라. 난 분노에 몸을 맡겨 전쟁을 일으켰고, 메타트론이 선택한 이들을 끊임없이 시기했다.”
스스로를 알고 있는데도 어떻게 계율을 어기지 않았다고 말할까.
거기에 이 모든 죄를 범하며 다른 존재에게 해를 끼쳤으니.
나는 네게, 고개를 들 자격없는 죄인이다.
“용서해달라고는 하지 않겠다.”
“…….”
“단지…… 천제로서 네게 감사함은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감사하다고요?”
산달폰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어스는 산달폰이 감사의 말을 할 줄은 몰랐던 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는 그대로 천계를 떠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위그드라실의 낙엽이 되었던 천사들을 되살렸다. 네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내게는 아니었다.
“그대로 위그드라실이 시들었다면 수많은 천사가 되살아나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을 거야.”
사라진 위그드라실.
약해진 천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따르며 내 선택에 동조해 준 수많은 천사를 잃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한 과거의 자신을 평생 원망했을 터다.
어쩌면 어리석고 어리석게도.
메타트론과 루시어스를 계속 원망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미안하고 고맙다. 네 선택 덕분에 천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어.”
“감사를 받을 일이 아닙니다.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루시어스. 어떤 선택도, 당연한 것이 없단다. 내가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고.”
너는 내가 원망스러울 텐데도.
천계가 범한 잘못을 한 번 묻어 주었던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이번 일로 나 또한 깨달은 점이 많다. 그러니까.”
“제게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머뭇머뭇 단어를 고르며 말하는 천제에게 루시어스가 말했다. 천제는 잠깐 눈을 크게 뜨다가 루시어스의 눈치를 보았다.
혹시 뭔가 잘못 말한 것이 있는지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루시어스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뭔가를 깨달으셨다면, 행동으로 보여 주세요.”
“……루시어스.”
“메타트론이 천계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천계를 이끄는 천사들의 왕은.
메타트론이 아니라 산달폰이다.
“제게 천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 주세요.”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세상의 어떤 마족이 천계가 변하게 하겠습니까. 만약 성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삶이죠.”
루시어스가 피식 웃었다.
산달폰은 입을 뻐끔거리다가 옅게 웃었다.
어떻게든 루시어스에게 천계의 변화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한 자신이 바보 같았다.
맞다, 루시어스는 마족이었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라니 그보다 어려운 말이 없을 터다.
하지만 루시어스에게는.
그것만이면 충분하다.
편안하게 미소를 짓던 산달폰의 시선이 방에 있는 비밀통로로 향했다. 전과 달리 통로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저 비밀통로에도 들어가 보았다. 메타트론의 방이 또 있더구나.”
“처음 가 보셨습니까?”
“아무렴, 있는 줄도 몰랐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알 수 있었을 텐데, 지금껏 몰랐다.
나는 그 녀석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바라봐 준 적이 없으니.
“메타트론은 조용한 성정이었다. 그래서인지 천계의 일에 항상 무심하기만 했어. 나는 그래서…….”
산달폰이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무척이나 편했단다.”
“…….”
“메타트론은 강한 힘을 가진 천사지. 어떤 면에서는 천제인 나보다 천신께 가깝게 닿아 있어.”
“메타트론이 마음만 먹으면 천계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겠죠.”
“그래, 그의 바람이 있다면 천제인 내 의견은 사실 필요 없는 것이 된단다. 그 녀석이 만약 천제의 자리를 욕심냈다면…….”
천제라 불리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메타트론이 되었을 것이다.
말을 멈추었던 산달폰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새삼스럽게 옛날 일을 추억해 보니 정말 몹쓸 짓을 많이도 했던 것 같다.
“메타트론은 아마 내 불안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러니 오히려 더욱 무심하게 굴었겠지.”
“관심이 없는 척, 말이군요.”
“큰일이 있는 게 아니면 대천사들과 말을 잘 섞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일지도 몰라.”
“…….”
“항상 혼자 있었던 것도.”
찾아가지 않으면 찾아오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 온 시간이 길어지고 길어져 끝내 당연해질 때까지 메타트론은 얼마나 깊은 고독을 씹으며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그 또한 나를 위해서였는데.
그것도 모르고 메타트론이 천계에 너무 무심하다고 생각했었다.
“못난 동생이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메타트론은 나와 천계를 위해서 본인을 기꺼이 희생했다. 알아달라는 말도 없이 그저 묵묵히 희생하기만 했다.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나는 참 못난 동생이었어.”
“맞습니다, 못난 동생이었죠.”
루시어스는 감정을 삼키는 산달폰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산달폰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혼이라도 난 어린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루시어스가 피식 웃으며 뺨을 쓰다듬었다.
“당신뿐만이 아닙니다. 메타트론은 못난 형이었습니다.”
“……메타트론이?”
“누구 하나라도 먼저 좀 다가갔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지 않았으니, 메타트론도 못난 형이지요.”
동생에게 천계를 맡겼으면 뒤에서 서포트라도 열심히 해 주며 격려라도 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루시어스가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힘이 좀 돌아왔는지 팔 정도는 움직일 수 있었다.
주섬주섬 메타트론의 일기를 꺼내 산달폰에게 쥐여 주었다.
“하지만 누구든 그렇습니다. 자신이 좋은 자식, 부모, 친구이며 형제라고 말할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이건?”
“하지만 산달폰.”
산달폰이 루시어스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못났으며 어리석고, 완벽하지 않기에 발전이 있는 거다.”
따뜻한 감정과 힘이 일렁였다.
금빛 눈동자가 따스하게 빛난다.
“끊임없이 발전하기에 불완전한 것은 사랑스럽지. 천계도, 그래.”
“형님……?”
조심스러운 부름이었다.
루시어스는 그를 바라보며 어깨를 한 번 으쓱여 주었다.
“메타트론이라면 그렇게 말했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래, 그랬겠지.”
산달폰이 입을 꾹 다물었다.
가슴속에 따뜻한 감정이 퍼져나갔다.
메타트론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그건 메타트론의 일기입니다.”
루시어스는 산달폰의 손에 쥐여준 일기를 가리켰다. 그가 일기의 겉면을 소중히 쓰다듬었다.
“메타트론의 방에서 발견했습니다. 시간이 있을 때, 천천히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대도 일기를 보았나?”
“보았습니다. 메타트론이 어째서 일기를 남겨 놓았는지……. 궁금했었으니까요.”
곧 떠날 생각을 하던 이라면 제 주변을 모두 정리해 놨을 텐데도.
그는 굳이 일기를 남겨 놓았다.
누군가가 발견해 주기를 바라면서. 그 누군가가 가능하다면…….
너이기를 바라면서.
“산달폰, 메타트론과 당신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저 또한, 마찬가지겠죠.”
나는 메타트론과도 당신과도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마족답게 살겠노라고.
그렇게 결심했으니까.
“하지만 잊지는 말아 주세요. 메타트론과 그대는 길이 다를지언정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되었어도 과거의 언젠가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나 또한 언젠가는.
당신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걷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르죠.
“……루시어스.”
입을 뻐끔거리던 산달폰이 고개를 숙였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그의 뺨으로 눈물이 흘렀다.
“그대는, 정말 강하구나.”
산달폰이 흐느끼며 말했다.
루시어스는 정말 강한 마족이었다. 메타트론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강인한 존재였다.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고 뉘우칠 줄 알며, 타인의 잘못을 감싸 안고 보듬어 줄 줄 안다.
과거를 후회하며 뒤를 돌아보면서도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줄 안다. 두 눈동자에…….
희망을 담을 줄 안다.
아, 얼마나 눈부시고 눈부신가.
“언젠가 꼭, 그랬으면 좋겠다.”
“…….”
“언젠가 너와 같은 길을 걸어 보고 싶구나. 같은 목표를 보면서.”
그때는 바빠도 하루에 한 번씩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다.
가끔은 모든 천사를 불러 모아 앉혀두고 차 한잔을 하며 여유를 즐기고 싶다. 함께 몰래 중간계에 나가 불꽃놀이를 보자꾸나.
한 번은 네가 좋아하는 꽃을 보고 한 번은 내가 좋아하는 달을 보자. 밤이 찾아오면 별을 따자.
손 위에 세상의 모든 빛을 올려두고 아름다움을 만끽하자.
내가 잘했느니, 네가 못했느니.
쓸데없고 유치한 자존심 싸움도 하면서 천계를 일구고 싶다.
나는 너와…….
그래보고 싶었다.
“언젠가 꼭…….”
천사에게는 죽음이 없으니.
네가 천계로 다시 돌아오길 원할 때까지 기다리겠다.
나는 끝없이 너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