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8)
마족답게 사는 법-38화(38/385)
마족답게 사는 법 38화
038 참관 수업 (6)
새파랗게 어렸을 시절, 어머니의 레어를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1차 성장을 막 했을 정도로 어렸을 적이건만, 그의 존재감 탓인지 당시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틀림없어.’
레어 주변으로 몇 겹이나 쳐진 결계와 함정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돌파한 남자는 어머니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의 그는 무척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어렸던 자신은 혹 화가 난 남자가 어머니에게 해코지할까 무서웠던 기억이 있고, 얼마 후 마왕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무서우니 다신 마주치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설마 이렇게 뵐 줄이야.’
황금처럼 찬란한 머리카락.
선명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
마왕, 루겔 르완.
지금의 마계를 만들어 낸, 역대의 어떤 마왕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낸 최강의 마족.
왕의 증거인 검은 색 머리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지만, 아마 밖에 나오기 위해 외모를 숨긴 것 같았다.
아르놀트는 오히려 검은 머리가 아니어서 더 쉽게 알아볼 수 있었지만.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아직도 마왕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
업적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었다.
화폐시장의 개혁과 안정화, 자치제도의 구체화, 마왕군 조직 재편성 등. 그가 시행한 수많은 정책은 마계를 안정시키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그 과정에 발생하는 소음은 모두 힘으로 내리눌러 입지를 공고히 했다.
그런데 뭇 마족들의 귀감이며, 선망의 대상인 그가.
“참관객이라니…….”
아르놀트가 루시어스를 보았다.
대장군의 아들이라고는 해도, 전하께서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참관 수업에 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얼마 전에 루시어스의 보호자가 마왕 전하라 해도 놀랍지 않을 것 같다고 지나가듯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정말 전하께서 등장할 줄은.
이 녀석은 대체 자신을 어디까지 놀라게 할 생각인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하를 대하는 루시어스의 태도가 제일 놀라웠다.
분명 전하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이번에야말로 한 방 먹여 드리죠.”
무어란 말인가. 저 무례함은!
장로들도 저만큼이나 경우가 없진 않겠어!
정작 당사자인 전하께서는 그마저도 즐거운 것 같지만, 지켜보고 있으니 입안이 바짝 마르고 눈앞이 아찔해졌다.
다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감히 나서며 전의를 불태울 때도.
‘젠장……. 한 350년만 젊었어도.’
……사실 너무 부러웠다.
‘내가 저 자리에 있어야 했는데.’
왜 참관 수업에 선생이 관여하면 안 되는 걸까. 아르놀트가 손가락을 깍지끼고 이마를 박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내려가 가르침을 청하고 싶었다.
그러나 참관 수업이라는 뜻깊은 행사를 교사가 방해할 수는 없는 일.
“하…… 박복하다.”
겨우 아쉬움을 접은 그가 고개를 들었다. 학생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저마다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슬프지만, 다른 것보다도 자신은 지금 일을 해야 했다.
손을 내밀자 허공에서 장부가 하나 툭 떨어졌다. 그 안에는 이번에 제1 체육관을 지망한 학생들에 대한 정보가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름이나 종족, 나이, 출신지부터 시작해 개개인의 면담 기록까지 전부.
“다들 움직임이 훨씬 좋아졌네. 무엇보다 루시어스 녀석이…….”
사각사각.
학생들의 발달 사항에 대해 적던 아르놀트가 종이를 휙 넘겼다. 루시어스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는 페이지였다.
‘드라이어드 중에서는 극히 드물게 전투형이란 말이지. 유일할지도 몰라. 혼자 싸우는 데에 무척 능숙하고, 여럿을 상대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어.’
톡, 톡, 톡.
아르놀트가 펜으로 장부를 가볍게 두드렸다.
능력 특성상 아군이 전투에 휘말릴 수 있다는 단점을 고려하더라도, 루시어스의 전투 스타일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놀라웠다.
그런 마족에게 서포트를 요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차라리 적진에 혼자 던져두고 해결해 오라고 하지.
게다가 루시어스처럼 태생적으로 강한 마족들은 차라리 전면에 나서는 전투 방식을 선호한다.
남에게 맡길 바에는 자신이 처리하는 게 간단하니까.
루시어스가 해 왔듯 말이다.
음, 전까지만 해도 그래 보였는데.
“대체 못 하는 게 뭐야?”
아르놀트는 물 만난 듯 움직이는 마족들을 바라보다가, 후방으로 빠져 있는 루시어스를 보곤 혀를 내둘렀다.
드라이어드가 해 줄 수 있는 서포트의 한계는 명확했다.
식물을 소환하여 시야를 아주 약간 확보해 주거나, 안전지대를 만들어 주거나, 가벼운 찰과상을 치료해 주는 정도가 전부.
그마저도 평균 이하의 효율이었다.
그러나 본인이 직접 싸우는 것보다는 나아서 굳이 전선에 내보내야 하면 후방지원을 맡겼다.
하지만 루시어스는 달랐다.
시야 확보, 아군을 위한 마법, 뛰어난 신체 능력, 순간적인 판단 능력까지 모두, 역할 이상의 능력이었다.
상대가 평범한 마족이었으면 금방 백기를 들었을 터다.
“이걸 학생이라고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군.”
보호자가 대장군이기 때문일까?
루시어스는 너무 다재다능했다.
전투에서는 더 가르칠 것이 없을 정도로.
어느 포지션을 요구해도 완벽하게 소화할 능력이 있다.
저 정도라면 웬만한 성년 마족들이 덤벼도 이길 수 없을 정도였다.
‘루시어스 켄드릭……. 루시어스.’
새로운 5장로의 이름도 루시어스였지.
아르놀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꾸만 새롭게 장로직에 올랐다는 한 마족의 이름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천재적인 소질을 가진 신입생과 잘 알려지지 않은 5장로의 이름이 같은 것은 정말 우연일까?
애당초 왜 5장로는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걸 바라지 않았던 걸까?
단순히 그가 폐쇄적인 성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만약 루시어스가 5장로라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나도 과한 비약이었다.
어떤 이유라도 갖다 붙여서 그의 천재성을 합리화 싶은 것뿐인지도 몰랐다. 아르놀트가 장부를 덮고 루시어스에게 집중했다.
“저만큼 마기를 썼으면 지칠 법도 한데, 그런 기색이 없네. 그러고 보면 지친 모습을 거의 못 봤나.”
오히려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더 약한지도 몰랐다.
러드에서 납치당하고 돌아온 후 상태를 확인했을 땐 상당히 피곤해 보였으니까. 무사히 구출되긴 했지만, 본인도 적잖이 놀랐겠지.
그렇다면 오히려 정신적인 관리를 해 줘야겠다.
상담도 자주 하고.
“의외로 말썽에 많이 휘말리니 주시해야겠어.”
앞으로의 교육 방침을 세우는데, 체육관의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아르놀트는 저쪽 상황에 다시 집중했다.
마왕을 향해 일제히 달려든 마족들이 합이 놀라울 정도로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보호자들부터 학생까지, 그 누구 한 명 빼놓지 않고 전부.
루시어스는 그사이에 다른 마족의 공격을 돕기도 하고, 식물을 이용한 함정을 파두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대단해.’
대단했다. 정말 대단했다.
공방을 거치며 모든 마족의 움직임은 점점 더 빠르고 날카로워졌다. 지치기는커녕 활기가 돌았다.
얼굴이 상기되었고, 심장이 기분 좋은 박동을 울렸다. 이전부터 합을 맞춘 사이인 것처럼, 모두 손발이 딱딱 맞았다.
아르놀트는 곧 이 분위기의 이유를 알았다.
그의 시선이 왕에게로 향했다.
마왕.
모든 마족 위의 군림하는 자.
마왕의 지휘를 받으면 사기가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혹시 이것이 그것일까.
흥분과 긴장에 땀을 쥐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좋은 순간은 항상 쏜살같이 지나가더라.
그것도 나만 놔두고.
딸랑.
마왕과 루시어스.
둘의 방울이 동시에 떨어졌다. 학생들은 바닥에 떨어지는 방울을 얼마간 응시하다가,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와아, 와아아!
누가 들으면 전쟁에서 이긴 줄 알 것 같은, 우렁찬 함성이었다.
아르놀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체육관 중앙으로 향했다. 아직 많은 마족이 전투의 열기에 취해 있었다.
진한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그저 지켜보던 자신도 이 정도인데 직접 싸운 마족들은 오죽할까.
들뜬 분위기가 좀처럼 식지 않는지, 보호자들끼리 웅성웅성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 이것 참. 오랜만에 부끄럽게 몰입해 버렸네요.”
“이렇게 즐거운 참관 수업은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방울 빼앗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특히 저분께서…….”
보호자들의 시선이 마왕에게로 닿았다. 쭈뼛쭈뼛 서로 눈치만 보던 그들이 한숨을 푹 쉬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기분 탓이겠죠?”
“머리색도……, 다르니까요.”
그분이 왜 여기를 오겠냐며, 보호자들이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저럴 만도 하지.
평화롭기 그지없는 세상이니, 마왕의 권능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리가 없다.
아르놀트가 마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야기로만 들었던 권능을 맛봤으니, 눈인사라도 올려 예의를 차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깐 가만히 있어 봐, 루시어스.”
“싫습니다. 차라리 누님께서 하시는 게 나아요.”
“들었지? 오빤 비켜!”
정작 마왕은 지금 루시어스의 머리를 잡고 여동생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마 풀어진 머리를 정리해 주려는 모양인데.
‘루시어스, 저 녀석은 진짜…….’
상상도 못 한 상황을 마주하니 말문이 막혔다.
대체 어떻게 자랐으면 저 남매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화하고,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걸까?
‘……잠깐, 남매?’
그러다 문득 의식하지 않았던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시야에 들어왔다.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가 누군가와 많이 닮아 있었다. 특히 바로 옆에 있는 남자와.
“……남매라고?”
끔뻑끔뻑.
금붕어가 눈을 깜빡이듯 아르놀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가 닫혔다.
마리엘라가 시선을 느끼고는 아르놀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그에게 마왕과 똑같은 미소를 빙긋 지어 주었다.
“이제 알았어?”
왜 지금껏 알아채지 못한 걸까.
전하께 정신이 팔려 다른 한 명의 거물을 인식도 못 하고 있었다니.
“담임선생님이라며? 우리 루시 잘 부탁할게.”
마왕과 1장로는 남매 관계로, 우애가 특별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특히 마왕이 여동생인 1장로를 각별히 아껴서, 마계의 실세는 마왕이 아니라 그녀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시간 대부분을 함께 보낸다던 그들이 혼자 마왕성 밖을 돌아다닐 리 없는데.
마리엘라가 몸을 바짝 붙였다.
귓가에 그녀의 목소리가 소곤소곤 울렸다.
“기대하는 만큼 잘 처신하도록 해.”
등골이 쭈뼛쭈뼛 선다. 가벼운 웃음과는 달리 무겁게 울리는 경고에 위험 본능이 경종을 친다.
마리엘라는 할 말만을 하고 다시 루시어스와 마왕의 곁으로 돌아갔다.
아르놀트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자세를 가다듬은 후 참관 수업의 끝을 알렸다.
“참관 수업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생들의 성장을 잘 지켜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은 시간은 자녀분들과 자유롭게 보내시면 됩니다. 아카데미의 모든 구역을 개방하고 있으니 편히 둘러보십시오.”
고개를 숙여 가볍게 인사한 그가 루시어스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마리엘라가 루시어스의 머리를 손수 매만져주고 있었다.
“이만 참관 수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선생이 된 후 제일 놀랍고 힘들었던 참관 수업이었다.
‘한 100년 치 놀라움은 여기에 다 쓴 것 같군.’
이제 정말, 루시어스가 5장로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