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84)
마족답게 사는 법-384화(384/385)
마족답게 사는 법 384화
384 축복 (2)
“너도 참 대단하다.”
아르놀트가 졸업 전 상담이라면서 상담실로 불러내더니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새삼스러운 말에 루시어스가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여러 의미로 대단해서 그렇지.”
마계 어떤 놈이 조기 졸업할 기회를 걷어차고 8년이라는 시간을 아카데미에서 보낸단 말인가.
그것도 신입생 때 만난 반 친구들의 졸업을 지켜보고 싶다는 이유로.
“시간도 참 빨리 지나는구나. 처음에는 그놈들을 대체 언제 졸업시키고 너도 가나 했는데.”
“…….”
“그날이 되니 참 아쉬워.”
좋은 시간은 참 빨리 가버린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르놀트가 옅게 웃음을 터뜨렸다. 루시어스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찻잔을 들었다.
고요히 일렁이는 수면을 바라보며 루시어스가 능청스레 말했다.
“선생님,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보낼 생각부터 하세요?”
“그만큼 아쉬워서 그렇지.”
8년간 싸고돌던 제자 놈이 드디어 졸업한다니 정말 여러 감정이 밀려 들어온다. 아르놀트가 콧잔등을 슥슥 매만지며 웃었다.
“고생 많았다. 아, 혹시 전에 말했던 것 기억하고 있나?”
“졸업생 대표 축사요?”
“잊지 않고 있구나. 그걸 부탁하고 싶은데, 괜찮겠어?”
“물론이죠.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걸요.”
“그래, 그리고 알고는 있겠지만, 이번에 네 졸업식이라서…….”
아르놀트가 조금 민망한지 뺨을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말한대로 공개 졸업식을 하기로 했다.”
아카데미의 졸업식은 원래 보호자들 몇 명만 초대해 진행하고는 했다. 관계자가 아니면 졸업식이라도 참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카데미를 완벽히 개방하기로 했다. 원한다면 누구든 졸업식에 와서 자리를 빛낼 수 있었다.
아르놀트는 공개 졸업식을 완강히 반대했었다. 루시어스의 졸업을 아카데미 홍보에 이용하는 것 같아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시어스는 오히려 공개 졸업식으로 진행하는 게 나을 것이라며 아르놀트를 설득했다.
아르놀트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루시어스에게 더욱 미안했으나.
“그쪽이 더 편할 거예요. 공개 졸업식이 아니면 제 쪽에서 참석하려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곤란해질지도 몰라요.”
솔직히 곧 자신의 졸업식이라며 때만 기다리고 있는 몇몇 인사들을 생각하면 그쪽이 나았다.
뭔가를 잔뜩 준비하고 있는 것 같던데, 보호자가 아니니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말하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루시어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었다. 아르놀트가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루시어스, 혹시 어느 분들이 오신다고 하더냐? 전하와 더미트님께서는 꼭 오실 테고.”
“기사와 보좌관들도 오고.”
루시어스가 시선을 슬쩍 피하며 말문을 힘들게 열었다.
“며칠 전부터 산달폰…… 천제나 대천사들이 오고 싶다고.”
“…….”
“……마계에 파견된 천사들도 참석하고 싶다고 아예 마왕성에 드러누웠대요. 저는 차마.”
보지는 못했지만요.
작은 목소리로 루시어스가 말했다. 아르놀트가 이마를 짚었다.
아주 두 세계가 들썩이는구나.
“고작 제 졸업식 때문에 천제까지 온다는 게 좀 그렇긴 한데.”
루시어스가 뺨을 긁적이자 아르놀트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하아, 내가 그쪽을 잊고 있었구나. 하긴,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네 졸업식이면 당연히 와야지.”
“……예?”
“그래도 천계 놈들이 설마 그렇게 떼쓰듯 어린애처럼 굴 줄 몰랐다. 나이가 몇인데 드러누워.”
“…….”
마족의 졸업식에 천제가 온다는데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그게 왜 당연해요?
“학장님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계실 테니 계획했던 것보다 졸업식 규모를 키워야겠군. 마족과 천사들의 충돌을 막기 위한 병력도 배치해야겠어.”
아르놀트마저도 다른 이들과 같은 소리를 하니 루시어스는 이상하게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알았다. 그럼 받아들인 걸로 생각하고 일정을 짜마.”
“네, 감사해요.”
“감사라니,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그럼 이만 들어가라.”
아르놀트가 루시어스의 등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루시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르놀트에게 인사하고 기숙사로 향했다.
‘이제 이곳과도 작별이구나.’
루시어스가 옅게 미소 지으며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때.
핑그르르.
현기증이 갑작스럽게 몸을 덮치며 시야가 점멸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인지라 루시어스는 당황할 겨를도 없었다.
몸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넘어진…….’
이유는 모르겠으나 몸에 조금도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바닥에 이대로 처박힐 것이다. 눈을 질끈 감고 다가올 통증을 대비하는데.
“……?”
이상하게 하나도 아프지 않다.
루시어스는 흐릿한 시선으로 고개를 들어보았다.
누군가가 몸을 안아 지탱해 주고 있었다.
누군가 등을 토닥이더니 무어라 속삭였다. 루시어스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의식이 점점, 가라앉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의식이 점점 멀어지는데 이상하게도 두려운 느낌은 들지 않아.
오히려 무척 편안한 느낌이다.
“편히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끝나 있을 거란다. 루시어스.”
익숙하지만 낯선 목소리였다.
눈을 완전히 감기 전, 루시어스는 얼핏 칠흑을 담은 머리카락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 * *
꿈뻑……꿈뻑.
눈이 조심스럽게 뜨였다.
쏟아지는 밝은 빛에 미간을 찌푸리던 그는 이곳이 낯선 장소임을 깨닫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리석으로 쌓아 올린 고급스러운 건물. 딱 봐도 명장들이 공을 들인 게 분명해 보였다.
“여긴 대체…….”
“드디어 일어났나.”
루시어스는 뒤늦게 누군가가 자신의 앞에 앉아 있었음을 알고 고개를 돌려보았다.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였다.
분명, 아무 기척도 없었는데.
“당신은.”
맞은편에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성이 앉아 있었다. 새빨갛게 빛나는 눈이 자신을 응시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어째서 느끼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의 존재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남자와 시선을 마주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어딘가 무척…….
반갑기까지 하다.
루시어스는 금방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의 정체를 알아챘다.
발끝까지 길게 늘어트린 검은색머리카락과 욕망을 한 데 뭉쳐 놓은 것 같은 붉은 눈동자.
창백한 피부와 입술. 마치 대리석 조각으로 빚어 낸 듯한 얼굴.
꿰뚫어 보는 듯하지만 이다지도 무심한 시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여유로운 모습.
변치 않을 마계의 초월자.
“어버이께 인사드립니다. 마계의 5장로, 루시어스 켄드릭입니다.”
마신, 엘 라하.
루시어스는 마신의 안색을 살폈다.
당황스럽기는 했으나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문헌에 따르면 마신께서는 종종 마음에 드는 마족을 만나곤 하신다고 하셨으니까.
언젠가 이런 부름을 받게 될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메타트론의 환생에는 분명.
이분께서 개입하셨을 테니.
“…….”
“…….”
마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루시어스를 특유의 무심한 눈으로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루시어스는 어째서 자신을 여기까지 불러내었으며 할 말이 있으시다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신 앞에서 먼저 입을 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
“…….”
루시어스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신의 입술이 서서히 열렸다.
“신의 옥좌를 지키는 자.”
“…….”
“하늘의 서기관, 신의 대리자.”
기분 탓일까.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에 힘이 실려있는 것 같다.
“계율의 천사, 메타트론.”
“…….”
“그것이 네 전생이었지.”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가슴에 꽂힌다. 루시어스는 마신이 자신을 좋은 의미로 불러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깨달을 수 있었다.
저를 보자마자 메타트론의 이명을 늘어놓는 까닭은 아마…….
신의 옥좌를 지킬 의무.
그것을 저버리고 도망치듯 환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가 아닐까.
“루시어스 켄드릭. 메타트론으로서의 의무와 계율에 대해서는 얼마나 잘 알고 있지?”
“……메타트론이 남긴 기억이 없으니 정확히 알고 있다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다만?”
“모든 권리는 의무를 바르게 이행함으로써 생겨난다는 사실만큼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이군.”
마신의 눈매가 가늘게 휘었다.
루시어스는 이제야 느껴지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혹, 메타트론의 힘으로 천계를 복구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려고 부르셨습니까?”
“천계……. 아, 그거.”
잠깐 기억을 되짚는 듯 눈을 굴리던 마신이 손을 내저었다.
“그건 나의 소관이 아니지. 나는 마신이니 마계를 돌볼 뿐이야.”
“그럼 저는 왜 부르셨습니까?”
루시어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마계를 돌볼 뿐이라고 말하면서 왜 저를 불러 메타트론의 의무를 언급하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마신이 희미하게 웃었다.
“어느 날, 메타트론이 나를 찾아왔었다. 이유는 아는 그대로야.”
“……환생 때문입니까?”
“그래, 녀석은 내게 마계에서 마족으로 환생하고 싶다고 했지.”
그가 나른히 턱을 괴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지,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란다. 메타트론의 영혼을 마계로 가져오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어.”
메타트론의 영혼을 마계에 가져오려면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할까. 생각만으로 아찔하다.
“게다가 많은 위험이 따르지.”
“위험이라 하시면.”
“음, 예를 들면 몇만 년 정도 니아……, 그러니까, 천신에게 말도 못 붙이게 된다던가.”
진지하게 듣던 루시어스의 몸이 삐그덕 기울었다.
“낮이 사라진 김에 밤낮없이 일하라며 부관이 갈군다던가.”
“……?”
“아니면 낮잠과 늦잠을 못 자게 된다던가, 낮도 없으니 말이야.”
“…….”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 거지?
루시어스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마신은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갑자기 눈앞에 있는 마신이.
평범해 보인다.
“내게는 위험한 일들이지.”
……그러십니까?
루시어스는 마신의 이런 모습을 본 후에야 늦게나마 깨달았다.
아이는 부모를 닮는다고 했다.
천방지축 얼렁뚱땅 제멋대로 살아가는 마족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어버이인 마신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되는 법이다.
……마신 아니랄까 봐 별종이다.
“하여, 메타트론은 본인의 환생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나와 계약을 했었다.”
“그렇다면 마신께서는 제게 그 대가를 요구하시려고 합니까?”
“역시 똑똑하군, 바로 그거지.”
기억이 없다고 해도 그대가 메타트론인게 달라지진 않으니까.
마신이 빙긋하니 웃었다.
루시어스는 왠지 마신의 웃음이 마왕과 퍽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자신을 놀리며 무척이나 신이 난 마왕의 미소와.
루시어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메타트론이 마신과 약속했다니 가능하면 대가를 치러 주고 싶었다.
“걱정하지 마라, 루시어스 켄드릭. 나도 염치는 있는 신이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대가를 치르겠다고 결심하였으니 편히 말씀해 주세요.”
“그래? 그럼 편히 말하지.”
마신은 두 번 거절하진 않았다.
메타트론의 환생이며 신에게 치러야 하는 대가라니.
대체 어떤 것을 요구하실까.
루시어스가 입을 다물고 마신의 말할 대가를 기다렸다.
마신이 입을 열었다.
“할아버님이라고 불러 보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