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85)
마족답게 사는 법-385화 (완결)(385/385)
마족답게 사는 법 385화
385 마족답게 사는 법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혹시 다시 한번만…….”
“할아버지라고 부르렴.”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구나.
루시어스는 마신에게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이마를 짚었다.
왜 잊을만하면 누군가가 나타나서 호칭을 요구하는 걸까.
하다 하다 마신까지 이럴 줄은.
한숨을 작게 내쉬던 루시어스가 즐거운 듯 싱글싱글 웃는 마신을 슬쩍 곁눈질했다. 마신은 상당히 기대하는 듯한 눈초리였다.
루시어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메타트론에게도 똑같은 요구를 하셨었습니까?”
“날 뭘로 보고. 그럴 리 있나.”
“그렇군요, 역시…….”
“삼촌이라고 부르게 했지.”
“…….”
정말 할 말이 없다.
마신은 자신도 염치가 있는 놈이라고 주장했다. 메타트론은 고대부터 산 놈이니 삼촌이라고 부르라 요구했지만, 루시어스는 어리니 할아버지로 타협을 봤단다.
대체 그 타협을 누구와 본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루시어스는 메타트론이 정말 그를 삼촌이라 불러서 환생하게 된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런 궁금증을 알아챈 듯 마신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궁금해? 메타트론이 정말 나한테 삼촌이라고 불렀는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날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못 말해 줄 것도 없는데, 어떤가?”
“…….”
할아버지라는 말을 듣기에는 너무 과하게 젊지 않으십니까.
루시어스는 마신의 모습을 흘긋거렸다. 마신은 혹시 할아버지의 모습이 좋냐며, 그러면 귀찮지만 특별히 모습을 바꿔 주겠다고 했다.
물론 루시어스는 정중히 거절했다. 마신은 재미없는 건 여전하다며 연신 투덜거렸다.
“……마신께서는 어째서 제게 그런 걸 요구하십니까?”
마신이 고개를 기울였다.
루시어스가 말을 덧붙였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메타트론의 환생에는 많은 대가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만한 빚이라면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을 텐데 마신이 말한 대가는 터무니없이 하찮았다.
마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은 정말 대단한 골칫덩어리였다.
메타트론의 환생일 뿐만 아니라 그 힘으로 마계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천계의 세계수를 없앴다.
마신과 천신이 만들어 낸 세계에서 각 종족이 긴 시간을 살며 확립한 질서를 단번에 무너뜨렸다.
사실 루시어스는 마신에게서 어떤 질타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희미하게 웃던 마신이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모든 마족은 나의 아이지. 내게는 몇 살이든 어린아이일 뿐이란다.”
영겁의 세월을 살아왔으니까.
마신이 손을 뻗더니 루시어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은발이 창백한 손가락 사이로 흩어졌다.
“그래서인지 난 한 번도 누군가를 특별하거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없단다.”
“…….”
“너를 제외하면 말이야.”
“……어째서 저였습니까?”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지. 메타트론의 환생체에 대한 호기심.”
마신은 지금껏 마계를 철저하게 관찰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가 엇나가지 않도록 지켜보며 방관하기만 했다.
“나는 신이고, 너희는 내 아이들이지. 그렇기에 누군가를 편애하는 건 옳지 않아,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것은 애정이라기보다는 의무감에 가까웠다.
“난 단 한 번도 누군가를 깊게 관찰해 본 적이 없다.”
계속 바라보면 애정이 싹튼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너를 지켜보지는 않았을 텐데.
마신은 작게 읊조리고는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마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장난스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 네가 책임을 져야지. 이게 내가 네게 요구하는 대가야.”
“책임이라니, 저는…….”
“이게 다 네 잘못이다. 억울하려면 귀엽지도 않았어야지.”
마신은 능청스럽게 부끄러운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던 루시어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무리 마족의 어버이 같은 존재라고 해도 처음 보는 이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부끄러웠다.
루시어스가 끙 신음했다.
“알겠습니다, 바라시는 대로 하겠으니 그만둬 주세요…….”
“진즉 그렇게 나올 것이지.”
마신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루시어스는 머뭇거리다 한숨 쉬고는 마신에게 물었다.
“저를 부른 이유는, 이게 끝이지요? 그, 할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그것도 있고. 고생한 네게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선물이요……?”
신의 선물이라니 너무 과한데.
루시어스가 뺨을 긁적이며 긴장한 듯 눈치를 봤다. 마신은 작은 목소리로 킥킥 웃었다.
“졸업 선물이 뭔지는 마계에 가면 알게 될 거란다. 그러니까 뜸 들이지 말고 한번 불러 주렴.”
아버지가 셋에 숙부까지 생기더니 이제는 할아버지까지…….
루시어스는 입을 뻐끔거리다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수줍게 입을 열었다.
작은 목소리를 듣는 마신의 눈매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후, 루시어스는 마신과 여러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 마신이 말하고 루시어스가 듣는 것뿐이었지만.
“이제 시간이 다 되었구나.”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헤어질 시간이라며 마신이 아쉬움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루시어스는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미간을 찌푸렸다.
“루시어스.”
“……다음에 또, 뵈어요.”
멀리서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마신이 작별 인사를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았다.
“성년이 된 걸 축하한다.”
* * *
“으, 여긴.”
루시어스가 눈을 떴다. 침대 옆에 앉아 있던 마족이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일어났니?”
“……전하?”
“몸 상태는 어떠냐. 신계에 잠시 다녀왔으니 반동이 있을 텐데.”
“괜찮아요. 멀쩡한 것 같아요.”
마왕은 마신이 자신을 불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정신을 잃을 때 마왕의 모습을 얼핏 보았던 것도 같다.
루시어스가 몸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몸이 무겁기는 했으나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딘가 개운했다.
“그런데 뭔가…….”
위화감이 맴돈다.
루시어스는 침대에 흩어지는 머리카락을 손에 쥐어보았다. 그러다 문득 손을 바라보았다.
손을 몇 번 쥐었다가 펴 보았다.
마왕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쪽에 놓았던 거울을 가져와 루시어스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한 마족이 있었다.
그것도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건장한 성년 마족이.
루시어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상황을 판단하기도 전에 마왕이 루시어스에게 말해 주었다.
“성년이 된 걸 축하한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3차 성년식은 거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일인가? 몸이 크게 아프지도 않았고 어떤 꿈을 꾼 적도 없는 것 같은데?
“그건 나중에 설명하고. 빨리 일어나서 졸업식에 갈 준비를 하자꾸나. 한 시간 후면 개회란다.”
“알겠…… 네? 한 시간 후요?”
내가 지금 며칠이나 잔 거야?
입을 떡하니 벌리자 마왕이 어서 입으라며 미리 준비했는지 몸에 딱 맞는 옷을 주었다.
루시어스는 떠밀리듯 졸업식 준비를 하며 눈을 끔뻑거렸다.
* * *
“전하랑 천제랑 타리크 경은 계속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걱정이 안 될 리가 없잖아요.”
“하아아, 나도 불안하다. 성년식치고는 이상하게 아무 일도 없는 것 같긴 했는데…….”
“자기들만 알고 있음 다인가.”
참관석에 앉은 레이얼과 레녹스가 대화를 나눴다. 둘 다 루시어스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갑자기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루시어스를 찾아갔더니 글쎄 3차 성장을 하고 있다지 않나.
평소 같으면 가장 유난을 떨 이들은 뭔가를 알고 있는지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으나…….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일어날 기미가 없으니 점점 조급해졌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진 않겠지?
“참나, 루시어스의 기사들은 걱정이 많아서 큰일이네.”
“어쩔 수 없지 않나. 이게 다 내 조카가 대단한 탓이야.”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대를 동생으로 삼은 적이 없어. 그러니 루시어스의 숙부도 될 수 없지.”
“그거야 루시어스 마음이지.”
발을 동동 구르는데 뒤에서 마왕과 천제가 소소한 말다툼을 하며 등장했다. 레이얼과 레녹스의 안색이 단번에 밝아졌다.
“전하!”
“루시어스는 깨어났습니까?”
“그럼, 그럴 거라고 했잖나.”
레이얼이 쪼로록 다가갔다.
“루시어스는요? 성년식은 잘 마친 거예요? 성년이 됐어요?”
“그럼, 아직 꼬맹이인 너와는 달리 훌륭하게 자랐지.”
“저, 저도 곧 클 건데요!”
레이얼이 억울하다는 듯 바둥거리며 소리쳤다. 마왕은 레이얼의 이마를 꾹 밀어 떨어트리고 자리에 앉았다.
다리를 꼬고 턱을 괸 그가 옅은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내저었다.
“궁금하면 어서 보도록 해.”
-다음은 졸업생 대표인 루시어스 켄드릭 님의 축사가 있겠습니다. 대표, 앞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루시어스가 조금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입장하고 있었다.
레이얼과 레녹스는 마왕의 말대로 성장한 루시어스를 내려다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선이 마주치자 루시어스가 빙긋 눈웃음 지어 주었다.
“……이봐, 분명 5장로님은 아직 미성년이라 하지 않았어?”
“이상하군,아무리 봐도 성년 마족인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일각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루시어스는 그곳에는 신경을 두지 않고 바로 단상 위로 올랐다.
급하게 준비하고 왔더니 차림새가 엉망이었다. 그래도 늦지 않아서 다행인 것 같기는 하다.
루시어스는 단상에 서서 좌중을 한 번 둘러보았다.
관중석 가장 앞줄에는 마계와 천계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정말 호화로운 라인업이다.
“후우…….”
루시어스가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사이러스 아카데미의 졸업생 대표 루시어스 켄드릭입니다. 먼저…….”
이곳에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하려던 입이 다물어졌다.
졸업식 대표를 맡고 루시어스는 오늘을 위해 준비한 대본이 있었다. 그대로 따라 읽기만 하면 되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막상 이곳에 서니 하고 싶고 전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졌다.
루시어스가 얼핏 웃었다.
“솔직히 전 등을 떠밀려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장로 긴급회의로 소집되어 마왕성에 갔더니 모두 합심해서 저를 아카데미에 보내더군요.
하하하.
솔직한 루시어스의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처음에는 빨리 졸업하려 안달이었습니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살랑…….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과 함께 고요함이 앉는다.
“결국 8년이나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아카데미가 즐거워서요.”
모든 경험에는 때가 있다.
모든 배움에도, 사실 때가 있다.
나뭇잎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하하호호 웃을 수 있는 것 또한.
길면서도 짧은, 청춘뿐이다.
“의미 없는 경험은 없습니다.”
루시어스가 말을 멈추고 마계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마계의 낮에…….
작은 빛이, 스며든다.
“고난도 역경도 있을 겁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서 헤맬 때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늘이 점점 밝아진다.
눈이 부실 만큼 찬란하도록.
“그때 가장 옳은 선택을 하고자 발버둥 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마계에 점차 낮이 돌아온다. 고문서에서나 묘사되었던 파란 하늘이 펼쳐지며 해가 떠오른다.
루시어스는 손으로 시야를 가렸다. 손가락 틈으로 빛이 스며 들어와 눈동자를 따스하게 덮는다.
아, 이것이 마신의 선물이구나.
내 앞길을 축복해 주시는 그분의 배려구나. 이제 마계에는 따스한 낮이 있으며 천계에는 온화한 밤이 되돌아오겠구나.
“모두 자신을 잃지 말고, 자신답게 살아가 주세요.”
아카데미의 경험들이 언젠가.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당신의 선택을 제가 응원할 테니 두려워하지 말아 주세요.”
자신을 잃지 않는다면.
어떤 선택이든 긍정적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저를 이곳에 있게 해 준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마치 마계의 이 하늘처럼.
당신들의 미래가 언제까지나 화창하고 아름답기를 바란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족답게 사는 법,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