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47)
마족답게 사는 법-47화(47/385)
마족답게 사는 법 47화
047 적을 알고 나를 알면 (3)
시험의 주제는 참 간단했고, 그래서인지 아르놀트는 주제 외의 그 어떤 정보도 알려 주지 않았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라.’
단지 그것뿐.
아르놀트는 주제를 알려 준 후 바쁘다며 곧장 돌아갔고, 학생들은 저마다 모여 수군거리며 얘기하느라 바빴다.
다들 시험은 나쁘지 않게 봤는지, 서로 정답을 공유하더니 환호성을 지르며 걱정을 내려 두고 방학에 하고 싶은 일을 늘어놓고 있었다.
루시어스가 가만히 아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도 시험이 좀 어려운 편이었나 보네.’
수업을 들으면서도 느꼈지만,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학문의 깊이는 그렇게 깊지 않았다.
아주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마계에서 살아가려면 꼭 필요한 정도의 지식수준.
하지만 이제 막 2차 성장을 마치고 아카데미를 다니기 시작한 학생들에게는 조금 어렵게 느껴질 법했다.
그래도 분위기가 좋은 걸 봐선 보충 훈련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슬슬 일어나서 레녹스에게 가 봐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를 뜨려는데 반 아이들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시험을 앞두고 혹독한 일정을 소화했던 녀석들이었다.
“루시어스, 덕분에 낙제는 면한 것 같아.”
“다행이네.”
“덕분에 도움이 많이 됐다. 그래서 말인데, 나중에 시간이 되면 우리랑…….”
훌른과 베른이 사이좋게 한 마디씩 얹었다. 아이들이 저마다 달려들어서는 눈을 빛내며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주먹다짐을 바라는 학생도 있었고, 루시어스가 보여 준 마법이나 결계에 대해 궁금해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옆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라타트리아가 보다 못해 끼어들어 불평했다.
“네놈들! 한 명씩 말해라찌! 선수 치지 마찌!”
“맞아. 루시어스는 나랑 선약이 있거든. 이번에야말로 저 녀석을.”
“에스메리찌, 거짓말하지 마라찌.”
앞에서 우물쭈물하던 것도 잠시, 곧 점수를 자랑하는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꼭 부모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난리를 피우는 것 같았다.
도움을 준 것은 맞지만, 본인이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 얻을 수 없던 결과인데.
지금껏 힘들게 아이들을 가르친 선생들의 공을 가로채는 것 같기도 하다.
입가에 웃음이 잠시 떠올랐다.
루시어스의 표정 변화를 본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머쓱하게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그리고는 금방 평소처럼 무표정해진 루시어스의 주변을 둘러싸고 말을 꺼냈다.
가까이 다가오기도 하고, 어깨에 팔을 올리기도 하고.
어깨에 있던 나비가 호다닥 피해 머리 위로 올라가며 불만스럽게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머리 위로 올라간 나비에게 손을 뻗었다. 손바닥으로 살포시 내려온 나비가 손을 할짝댔다.
그렇게 시끌시끌한 와중, 누군가가 물었다.
“있잖아, 어떻게 그렇게 뭐든 잘 알아? 무슨 특별한 수업이라도 받았어?”
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저들끼리 떠들던 다른 학생들도 모두 대화를 멈추고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반 안에 있는 모든 시선이 저를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순수한 호기심과 기대가 잔뜩 서려 있는, 그런 눈빛이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아, 맞다!”
레이얼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루시어스, 그러고 보니 하멜 선생님이 나비랑 같이 교무실로 오라고 했었어요.”
“하멜 선생님이?”
“네, 나비 때문에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았어요.”
성큼성큼 다가온 레이얼이 가자며 팔을 잡아끌었다.
하멜이 굳이 레이얼을 통해서 날 부르지는 않을 텐데.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질문 공세에 난감해하니 도와준 것 같았다.
잠자코 레이얼을 따라가자 조용한 시선이 등 뒤로 꽂혔다. 반 밖으로 완전히 나가자 루시어스를 빼앗겼다는 한탄 소리가 뒤늦게 터져 나왔다.
도망치듯 빨랐던 걸음이 서서히 느려졌다. 레이얼이 뒤쪽 복도를 흘금 쳐다보더니 루시어스를 향해 웃어 주었다.
“선생님이 부른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죄송해요.”
“그럴 것 같았다.”
“필요 없는 도움이었을까요?”
루시어스가 고개를 저었다.
곤란한 질문이기는 했다. 똑같은 훈련을 받는다고 똑같이 강해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바쁜 일이 있다거나 다음 시험을 대비하러 가 봐야 한다는 핑계로 자리를 뜨면 그만이겠지만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아 고민하던 차였다.
가능하면 자연스럽게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으니, 레이얼의 도움은 참 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저도 루시어스의 비밀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비밀이 있을 것 같나?”
“있죠. 당연히 있을걸요? 제 촉은 틀린 적이 없거든요. 더불어 키안의 감도요.”
정말 숨기는 게 없어요? 맹세할 수 있어요?
레이얼이 얼굴을 바싹 들이밀며 추궁의 시선을 보냈다.
티 하나 없는 깨끗한 레이얼의 시선에 차마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 입을 일자로 다물자, 레이얼이 그럴 줄 알았다며 투덜거렸다.
“말씀해 주시지 않을 것 같아서 안 물어보는 거예요. 루시어스는 이런 친구를 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해요.”
“그래, 좋은 친구 덕분에 이번엔 도움을 받았네. 고맙다.”
“어……? 어, 네? 네.”
루시어스의 진심이 실린 말에 놀랐는지, 커다란 두 눈이 동그랗게 뜨이더니 정신없이 우왕좌왕 흔들렸다.
시선 둘 곳이 없어 난감해하던 레이얼이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발갛게 달아오른 귀 끝이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다.
아직 어리네. 옅게 웃으며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자 그가 으으, 신음하며 중얼거렸다.
“루시어스는 자꾸 저를 어린애 취급하는 것 같아요.”
“어리지, 그럼.”
“저랑 얼마 차이도 안 나면서.”
나이 차가 5살 정도 났던 걸로 기억한다. 그의 말마따나 정말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레이얼이 한숨과 함께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눈치채셨어요?”
“뭔가 다른 게 있나?”
“음……, 아직 눈치 못 채셨다면 비밀로 할게요. 이럴 때가 아니면 이긴 기분도 못 낼 것 같거든요.”
“그래. 내일 시험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할 텐데, 너무 시간을 뺐었군. 들어가서 쉬도록 해.”
“그러도록 할게요. 내일 뵈어요!”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레이얼을 뒤로하고 루시어스가 나비를 하멜에게 돌려보냈다. 삐이, 조금 슬퍼하면서도 나비는 순순히 하멜을 찾아 복도를 뛰어갔다.
레이얼이 저렇게 나오는 걸 보니 뭔가 더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적을 알고, 나를 알아라.’
속으로 한 번, 이번 실전 시험의 주제를 되뇌어 보았다.
적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적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충분히 수집할 수 있다는 의미겠지.
‘나’를 알라고 언급했다면 동료는 없다는 소리니, ‘적’으로 나올 무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적으로 나올 만한 상대는 긴 시간 함께해 온 같은 반 학생이거나, 지금까지 함께 이런저런 과제를 수행한 파트너로 한정되겠지.
하지만 앱실론 한 반의 학생은 20명이나 된다.
학생들의 수가 적은 알파나 베타 클래스 학생들이라면 모를까, 앱실론 학생들에게 그만한 정보수집과 분석력을 요구하지는 않을 터.
“레녹스에게 물어 볼까…….”
시험을 몇 번이나 치렀으니 주제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빨리 확인할 겸, 같이 하교할 겸 반으로 찾아가 봐야겠다. 베타 클래스로 발걸음을 돌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반이 나왔다.
루시어스가 앞문을 드르륵 열자 잠시 시선이 몰려들었다. 신입생이 여기까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묵묵히 책을 정리하고 있던 레녹스도 반이 소란스러워지자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친 그가 조금 당황하더니 재빠르게 반을 나왔다.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무슨 일이지?”
“시험은 잘 봤나 싶어서.”
“……생각만큼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너는 어땠지? 앱실론 첫 시험은 유난히 어렵게 내는 분위기인데.”
“나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실전 영역에 대해서인데, 혹시 그쪽은 주제가 어떻게 나왔지?”
상대가 파트너라고 해도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클래스의 제한 없이 파트너를 맺을 수 있는 터라, 만약 ‘적’으로 파트너가 나온다면 모든 클래스의 실전 영역 주제가 같아야 했기 때문이다.
레녹스가 의문에 답해 주었다.
“우린 ‘양자택일’이다.”
“……그렇군.”
루시어스의 시선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애초에 전교생이 일대일로 싸우는 방식은 시간과 공간의 여건상 실현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시험인 걸까.
드물게 고민에 빠진 모습을 본 레녹스가 의아하게 물었다.
“무슨 주제가 나왔는데 그렇게 고민을 하지?”
“음, 적을 알고 나를 알라던데.”
“아, 그거라면 짚이는 게 있다.”
“정말?”
“매번 주제는 달라도 선생님들은 같으니까. 일정한 패턴이 있지.”
3년 만에 알파 클래스로 승급한 학생은 달랐다. 무척이나 믿음직한 말이었다.
“하지만 정답을 알려 주는 건 아카데미의 교육 철학에 위배 되는 일이니, 힌트만 주는 게 좋겠어.”
“그런 걸 신경 쓸 줄은 몰랐네.”
“남이 공부할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 되잖나.”
선생도 아니면서 정말 세세하게 신경 쓴다 싶다. 루시어스가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니 말해 봐.”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의 의미를 반대로 생각해 봐라. 아주 간단한 문제야.”
“반대로?”
생각하던 루시어스가 미간을 대번에 일그러트렸다. 레녹스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알 것 같았다.
나를 모르면 적도 모른다.
즉, 적을 알기 위해 ‘나’를 알아야 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담임이자 시험관이 아르놀트인 걸 고려하면, 적은 나 자신. 정확히는 학생들을 본뜬 그의 분신일 터다.
‘아…… 곤란해지는데.’
시험 감독이 다른 선생들이라면 어떻게든 넘길 수 있지만, 아르놀트라면 문제가 된다.
그들의 그림자는 복제 대상에 대한 정보를 도플갱어에게 전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복제한 대상과 본인의 실력 차가 심할 경우 과한 정보량 때문에 치명적인 내상을 입을 수도 있다.
만약 아르놀트가 자신의 복제품을 만든다면.
“뭔가 알아낸 것 같더니 표정이 심각해졌군. 문제라도 있나?”
“조금 그럴 만한 일이 생겼다. 레녹스, 오늘은 뭘 하고 지낼 거지?”
“곧장 기숙사로 가서 쉴 생각이었지만, 뭔가 도울 게 있으면 도와줄 수 있는데.”
“고맙지만 도움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걱정하지 마.”
고개를 끄덕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레녹스가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던가. 어느새 꽤 친해지기는 한 모양이다.
“오늘도 늦게 들어오는 건가?”
“아마 그렇겠지.”
가만히 바라보는 시선이 뭔가를 말하고 싶은 듯 일렁인다.
축 늘어진 눈매나 흘긋거리는 시선이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루시어스가 난감하게 바라보면서도 곰곰이 고민해 보았다.
아, 알겠다.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은 나비랑 쏙 닮았군.’
요즘 나비에게 놀이 겸 이런저런 훈련을 시키고는 하는데, 그중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게 주인을 발견했을 때 돌진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비에게 ‘기다려’라고 명령하면 뛰어오다가도 발밑에서 우뚝 멈춰서 안절부절못하며 올려다보고는 했다.
그렇게 걱정되는 걸까. 루시어스가 작게 웃었다.
“최대한 빨리 돌아갈 테니까.”
“…….”
“신경 쓰지 말고 먼저 자라.”
시험 주제가 말썽이 아니었으면, 레녹스랑 체육관에서 몸이라도 풀 생각이었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레녹스가 아니라 뤼디거를 만나러 가야 했다.
‘릴림의 심장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