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5)
마족답게 사는 법-5화(5/385)
마족답게 사는 법 5화
005 루시어스 켄드릭 (5)
“임시로 반의 대표를 맡게 되어서 인사를 하고 있었어요. 제가 반장이고, 키안이 부반장이에요.”
자기소개하는 레이얼의 눈빛에 기묘한 기대가 걸려 있었다.
루시어스는 곧 그의 기대가 무엇에서 기인하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요정족인 그라면 드라이어드인 자신이 반갑게 느껴질 법도 했다.
옛날부터 요정족과 드라이어드는 서로 도우며 친하게 지내고는 했으니까.
“난 루시어스 켄드릭이라고 한다.”
마족의 성씨는 종족에 따라 정해진다.
드라이어드인 루시어스는 켄드릭, 요정인 레이얼은 페오, 워 베어인 키안은 보어였다.
루시어스의 성을 들은 레이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곤 마치 오지에서 동족이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아, 설마 했는데 역시였네요! 숲 깊은 곳에서 태어난다는 드라이어드를 실제로 보게 되다니 너무 기뻐요.”
요즘 숲의 변이가 심해져 강력한 마물이 들끓게 되면서 드라이어드의 출생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근 100년간 루시어스를 제외하면 드라이어드가 전혀 태어나지 않을 정도.
그러니 레이얼의 유난스러운 반응도 이해가 갔다.
“루시어스라고 불러도 될까요?”
“상관없다. 나도 편하게 레이얼이라고 부를 생각이니.”
레이얼의 날개가 기쁜 듯 파닥파닥 움직였고,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서렸다.
‘얼굴에 생각하는 게 그대로 드러나는군.’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녀석은 알기 쉬워서 좋다.
한편,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키안이 묵묵히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루시어스는 종이를 받아 들고 키안을 쳐다봤다.
짐승형 마족은 다른 이의 마기에 둔하지만, 육감이 발달한 경우가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그래서인지 키안은 처음 봤을 때부터 자신에게 유달리 계속 날을 세우고 있었다.
탐색하는 듯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받아칠까, 흘려 넘길까.’
즐거운 고민을 하던 그를 향해 키안이 무뚝뚝한 말투로 말했다.
“첫 번째 과제다.”
그 말과 동시에 키안의 곁에 맴돌던 긴장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싱거운 반응에 루시어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무슨 과제지?”
키안 대신 레이얼이 끼어들었다.
키안에게 맡겨두면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담임선생님께서 내는 첫 번째 과제에요. 이 종이에 최대한 많은 친구의 사인을 받아 올 것.”
“친구? 사인?”
“서로 얼굴이나 트고 이야기나 나누면서 인장을 교환하래요. 저기 다른 애들도 그것 때문에 모여 있는 거예요. 사인은 마력으로 하면 돼요.”
“그렇군.”
담임선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클래스로 배정됐지만, 학생들은 입학한 순간부터 저들끼리 무리를 짓곤 한다.
자신이 어떤 핏줄이라거나, 집안이 어느 소속이라거나.
‘부질없는 짓이지.’
본격적으로 아카데미 밖으로 진출하면 남는 건 본인의 실력뿐이었다.
아직 3차 성장도 하지 못한 놈들의 실력이야 거기서 거기다.
부모가 강하다고 자식이 강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이 어떻게 성장할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것이 마계의 법칙이었다.
그가 종이를 받아 앞뒤로 팔랑거리며 살폈다.
별다른 마법적 처치는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외에는? 몇 개 이상 받아야 한다든가?”
“그런 말씀은 딱히 없었어요.”
“그런가? 그러면 우선.”
루시어스가 레이얼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네 사인부터 받아야겠다.”
레이얼이 조금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키안과 함께 학우들에게 과제를 이야기해 주며 돌아다녔지만, 제게 사인을 해 달라고 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워 베어인 키안에게는 나름대로 사인 요청이 들어온 편이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약한 종족인 레이얼에게는 그런 요청이 들어오지 않았다.
레이얼이 기쁘게 웃으며 검지를 종이 위에 꾹 누르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나비가 그려진 문장 하나가 종이 위에 떠올랐다.
“됐어요. 아, 혹시 루시어스도 제 종이에 사인해주실 수 있나요? 해 주실 거죠?”
레이얼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종이를 내밀었다.
루시어스는 평소에 결재 서류에 사인하듯 별생각 없이 사인하려다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을까? 지금 여기서 인장을 찍어도?’
마력 인장은 형태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했다. 마족 개개인의 지문과도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루시어스가 평범한 학생이 아니라 현직 장로라는 점.
장로 승인이 필요한 모든 서류에는 루시어스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학생들이라면 몰라도 담임선생이 장로로서 승인한 이 서류를 보게 된다면 장로가 아니라고 발뺌하기 힘들어진다.
생각을 마친 그가 손을 거두었다.
허튼짓은 하지 않는 게 낫지.
“…….”
“아, 아니에요. 힘드시면 사인해주지 않아도 돼요.”
손가락을 내밀다가 거두고 입을 다문 루시어스.
그의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레이얼이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그를 무척이나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저는 다른 애들한테 받으면 되거든요.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아직 마력이 안정되지 않으신 거죠? 저도 안정화하는 게 오래 걸렸거든요. 인장도 최근에서야 겨우 찍을 수 있게 됐어요.”
가끔 마력 안정화가 더딘 마족들이 있는데 그들은 유난히 성장이 느려 전투 능력도 낮은 데다가 아예 인장을 찍지 못하기도 했다.
루시어스를 바라보는 레이얼의 눈빛에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다.
그의 오해가 황당했지만 루시어스는 레이얼의 오해를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
인장을 찍을 줄 아는 데도 찍어 주지 않으면 그가 실망할 것이 분명하므로.
레이얼이 자상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루시어스.”
레이얼은 무척 겸손하고 붙임성이 좋았다.
키안을 이기지 못했고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지, 실기 시험에서도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레이얼이 다른 학생들에게도 전달사항을 알려주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바삐 움직이는 소년을 바라보는 루시어스의 입매가 살짝 올라갔다.
‘잘 키우면 마왕군에 들어갈 재목이 될지도 모르겠군.’
지휘관은 단순히 강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부하들에게 신뢰를 받고, 상황 판단이 빨라야 한다. 그래야 부대를 효율적이고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
잠깐 본 레이얼의 모습은 지휘관의 모습에 매우 적합해 보였다.
물론, 정확한 판단을 위해선 좀 더 지켜볼 필요성이 있겠지만.
‘어떤 훈련을 시켜 볼까.’
머릿속으로 자신이 경험했던 온갖 훈련을 되새기며 고민하던 루시어스는 곧 종이 밑에 따로 표기된 작은 칸을 발견했다.
‘이건 뭐지?’
의문을 가졌을 무렵, 레이얼이 멀리서 허둥지둥 뛰어와 잊을 뻔했다며 종이 밑을 가리켰다.
“죄송해요, 제가 깜빡하고 설명하지 않은 게 있었어요. 여기 작은 칸이 보이죠? 혹시 알고 계실지 모르겠는데 사이러스는 파트너 제도를 채택해 운영하고 있어요.”
“알고 있다. 오기 전에 들었거든.”
“다행이네요. 그러면 파트너를 찾아서 여기에 사인을 받아오시면 돼요.”
파트너 제도.
사이러스 아카데미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사이러스의 학생들은 마음에 드는 파트너와 함께 아카데미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신입생의 경우 친구끼리 파트너를 맺는 경우도 더러 있으나, 대부분은 담임선생이 정해 주는 임시 파트너를 만난다.
한번 맺은 파트너는 한 학년 간 유지되며 그 후에는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헤어지거나 계속 유지하게 된다.
간혹 상성이 좋아 임시 파트너와 졸업까지 함께하는 경우도 있었다.
“제출 시간은 종이 치기 전까지예요. 파트너가 없으면 없는 대로 담임인 아르놀트 선생님께 제출하시면 돼요. 다만, 건물 어딘가에 있을 테니 찾아서 드려야 해요. 시간이 지나도 못 찾으면 교탁 위에 두고 가면 되고요.”
“재밌겠어. 레이얼, 너는 따로 정한 파트너가 있나?”
파트너 제도가 있다는 말에 그 또한 몇 명의 파트너 후보들을 물색했었다.
같은 반에 실력이 괜찮은 레이얼이라면 충분히 파트너를 맺을 가치가 있었다.
거기에 반장이라면 아카데미의 정보를 누구보다 빨리 수집할 수 있으니 파트너가 되면 따로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진다.
‘하지만 레이얼의 파트너는 역시.’
루시어스의 시선이 키안에게로 흘긋 닿았다.
그는 파트너에 대해 레이얼에게 묻자마자 멀리서 열렬한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참 걱정이 많은 친구군. 동물형 마족들의 유대 관계가 좀 특별하다고는 하던데.’
레이얼은 키안의 마을 근처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아 키안과 줄곧 어울렸다고 한다. 그러니 사전에 파트너를 하기로 약속했을 가능성이 컸다.
아니나 다를까 레이얼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저는 키안이랑 파트너를 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이제부터 아르놀트 선생님을 찾을 생각이에요.”
그럼 그렇지.
예상은 했지만, 편한 선택지가 사라지니 아쉬울 따름이다.
레이얼이 확실히 거절하자 키안의 시선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루시어스가 피식 웃곤 어깨를 들썩였다.
“그럼 나도 파트너를 찾으러 나가 봐야겠군.”
“아, 그리고 시간 내에 자길 찾지 못하면 벌칙이 있다고 선생님께서 그러셨어요.”
“벌칙? 음……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하지.”
루시어스가 잠시 침음하다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담임을 맡게 된 아르놀트에 대해서는 따로 조사를 하기 전에도 들은 바가 있었다.
‘서열 101위, 도플갱어 아르놀트.’
피나는 노력 끝에 네임드 말단에 발을 걸쳤을 때, 루시어스가 5장로가 되어 서열이 밀린 비운의 마족.
그는 짓궂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 학생들의 원성을 종종 샀으나, 마족 중에서는 드물게 아카데미 교사직에 자원할 정도로 교육에 열의가 있었다.
지난 학기, 그가 진행했던 수업들은 루시어스도 지적할 부분이 없을 정도로 치밀하고 연계가 잘 되어 있었다.
아마 이번에 내준 과제도 수업의 일환일 것이다.
다른 학생들은 그냥 담임선생의 기행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럼 힘내세요. 저는 선생님을 찾으러 갈게요!”
레이얼이 키안과 함께 아르놀트를 찾으러 떠나자, 루시어스는 천천히 반을 나서며 생각에 골몰했다.
“알아서 찾아라, 이건가.”
도플갱어는 은신에 뛰어난 종족이다.
그 말인즉, 아르놀트가 마음만 먹으면 앱실론의 학생들 수준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다는 뜻.
그러나 그는 찾아서 제출하라고 했다.
적당히 봐준단 소리였다.
은신해 있는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찾는가는 각 마족의 특성과 실력에 따라 다르니, 학생들의 역량을 알아보려면 이보다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법이 없었다.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학생들 개개인에 대한 판단이 끝났다는 말이다.
‘첫 과제부터 제법 철저하게 준비했네.’
루시어스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아르놀트가 얼마나 역량을 선보일지 기대되었다.
“우선은 파트너를 찾으러 가야겠군.”
루시어스는 하멜이 건네준 명단을 떠올리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오른쪽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앱실론보다 한 등급 위 클래스인 감마 클래스가 나온다.
“세이렌의 루가인이라 했던가?”
노랫소리나 악기 연주로 먹잇감을 홀려 둥지로 유인한 후 잡아먹는 특성을 가진 마족, 세이렌.
주로 바다에서 활약하는 종족이라 파트너로서 쓸모가 많았다.
더구나 작년에 파트너였던 마족은 졸업했다 하고, 친구들은 제각기 파트너가 있으니 아직 파트너를 정하진 못했을 터.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도 파트너를 찾아 우왕좌왕하는 학생들이 눈에 보였다.
‘신입생 대다수가 왜 그냥 임시 파트너를 배정받는지 알겠어.’
신입생이라 재학생보다 행동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
파트너를 청하고 싶어도 상대에 대해 모르니 섣불리 움직이기도 애매하고.
루시어스야 사전에 정보를 충분히 수집했지만, 보통 학생들은 그와 같은 일은 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감마 클래스 구역에 들어서자마자 앱실론 클래스와 달리 개학 첫날의 들뜸이 물씬 느껴졌다.
방학 동안의 회포를 푼다거나, 새로이 파트너를 찾겠다고 분주히 돌아다니는 모양새가 마치 파릇파릇한 새싹 같아 루시어스는 그 모습들에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햇병아리들 사이에서 그나마 쓸 만한 병아리를 찾는 기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