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50)
마족답게 사는 법-50화(50/385)
마족답게 사는 법 50화
050 적을 알고 나를 알면 (6)
“내가 덕분에 얼마나 난감했는지 알고는 있냐? 선생들이 죄다 달라붙어서는 어떻게 교육한 거냐고 얼마나 캐묻던지…….”
“……네?”
“문제 유출 의혹까지 받았다, 이 말이야. 해명하느라 아주 진땀을 뺐다.”
귀걸이 때문에 분위기가 바뀐 것을 알아차린 줄 알았더니.
나무라는 어조였지만 입가가 미세하게 씰룩거리고 있다. 눈꼬리도 아래쪽으로 슬그머니 즐겁게 휘어있었다.
아르놀트가 성큼성큼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제는 아주 개구쟁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잘 했다! 나중에 공지해 주긴 할 거지만 네게는 미리 말해 주고 싶어서 말이지. 이론 수업에서 우리 반이 무사히 1등을 했단다.”
“의심받았던 건 어떻게 됐어요?”
“날 의심하면 뭐 어쩌려고? 내가 아니라는데.”
그랬지. 아르놀트는 이래봬도 아카데미 내에서는 학장 다음가는 실력자였다. 그가 아니라고 강경하게 말하면 듣지 않을 마족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네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다. 그렇지?”
“물론이죠.”
“자, 그럼 사담은 이쯤하고 시험을 시작하자.”
아르놀트가 손바닥을 펼쳤다. 그 위로 마기가 집중되며 그림자의 핵이 만들어졌다.
슬라임처럼 꾸물꾸물 움직이며 팽창하던 그림자가 곧 어떤 형상을 이루었다. 그리고 물감 한 방울을 떨어트린 듯 색색으로 물들어갔다.
얼마 후, 눈앞에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그림자가 서 있었다.
“시험 준비는 잘 하고 왔나? 각오는 됐지?”
“네.”
루시어스는 설명을 들으며 그의 상태를 살폈다. 표정이나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은 걸 보니 이상은 없는 모양이었다.
안도감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만약 귀걸이가 없었다면 아르놀트는 이미 복제에 대한 반작용으로 쓰러졌을 테니까.
“좋다. 제한시간은 10분. 그 안에 ‘적’을 물리쳐라.”
이제 마음 편히 시험에 집중할 수 있겠다.
루시어스가 이만 복제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룡 케렌스타의 복제품을 보고서도 느꼈던 거지만, 아르놀트의 실력은 도플갱어 중에서도 꽤 수준급이었다. 괜히 네임드 문턱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림자는 루시어스조차 감탄할 정도로 정교하게 움직였다. 단순히 움직일 뿐만 아니라 식물을 소환하는 능력도 구현되어 있었다.
주변에 떠다니는 작은 그림자 핵이 다양한 식물로 변했다. 거대한 넝쿨이 되어 바닥을 내려치기도 하고, 폭발식물이 되어 터지기도 했다.
언제 호흡을 하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능력을 쓸 수 있는지.
아르놀트가 얼마나 자신을 분석해 왔는지 알 수 있다.
‘정말 좋은 선생이네.’
모든 학생을 이만큼 주시하고 파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매번 수업이나 방학마다 학생에게 맞춘 훈련을 계획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아르놀트의 시험에서는 그가 얼마나 교사라는 직업에 열의를 가졌는지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이것부터 해치울까.’
마냥 감탄하기만 할 순 없다.
복제품은 오래 두어 좋을 것이 없었다. 그림자가 길게 살아 있을수록 도플갱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정보가 차단되었음을 눈치채면 발뺌하기 힘들어진다.
푸쉬시시.
검은 연기가, 그림자가 자욱하게 퍼진다.
아주 짧은 정적이 흘렀다. ‘나’라면 여기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생각한 순간.
쐐액!
그림자를 가르고 날카로운 창끝이 날아들었다. 고개를 꺾어 피한 루시어스가 몸을 비틀었다. 다리가 원을 그리며 묵직하게 날아들었다.
쾅!
그림자가 체육관 벽에 처박혔다. 루시어스는 자세를 가다듬은 후 한 발짝 멀리 떨어졌다.
‘얕았나.’
적당히 봐주곤 있지만 반응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그림자를 조종하는 아르놀트는 멀리 빠져서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후우.
아르놀트가 숨을 길게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는 혀를 찼다.
‘확실히 어렵군.’
루시어스는 시험을 치르지 않고 특례로 입학했기 때문에 정보를 수집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첫날부터 시작해 여러 수업을 했고, 그 결과 루시어스가 어떤 마족인지에 대해 충분히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루시어스가 수업에 전력으로 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조차도 고려해서 만든 작품 중의 작품이 바로 저 복제품이었다.
아르놀트는 루시어스가 복제품을 상대하기 어려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하다못해 당황스러워하거나, 난감해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반격을 먹였다.
바로 행동불능이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데미지는 충분히 입었다.
어떻게 저런 꼬맹이가 다 있을까.
‘그나저나 이상해. 마력 정보가 하나도 들어오질 않는군.’
아르놀트는 주로 그림자를 이용해 학생들의 마력정보를 얻는다.
마력의 총량, 기질, 속성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비롯해 그만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다.
바로 학생들의 성장 한계점이었다.
그 정보를 토대로 학생이 어떻게 발전해나가면 좋을지를 구상하고, 3차 성장을 안전하게 유도해 왔다.
그 때문에 그는 이번 시험에서 누구보다 루시어스의 정보를 기대하고 있었다.
저 녀석이 품고 있는 힘과 가능성이 얼마나 거대할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계점이 높을수록, 본체의 능력이 뛰어날수록 그림자를 유지하는 데에 소모되는 마기량이 다르다. 그래서 일부러 루시어스의 시험을 맨 마지막에 배치해 놨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루시어스는 놀라울 정도로 약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지금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나?”
소모는커녕 마치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덩이를 복제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며 놀고 있는 것처럼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아르놀트가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 실력일 리가 없었다. 적어도 자신이 지금까지 봐왔던 루시어스는 만만치 않은 학생이었다.
차라리 루시어스가 뭔가 농간을 부렸다고 하는 편이 신빙성 있게 느껴질 정도였다.
“…….”
확인해 보자.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푸욱.
은색 창이 그림자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림자는 피가 솟구치는 대신, 검은 안개가 되어 사라져갔다.
휙, 루시어스가 창을 크게 휘두르며 자세를 정리했다.
“이걸로 됐나요? 아르놀트 선생님.”
아르놀트는 그런 루시어스를 잠시 시야에 담다가, 긴 한숨을 들으라는 듯 내쉬었다.
“하아아아.”
“고생하셨어요.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고생했다.”
터벅터벅, 루시어스가 나가고 나서 아르놀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학생 정보지를 바라보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설마 실력인 너무 없어서 느껴지는 게 없는 걸까? 그런데 그만한 무용을 뽐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정말 그럴 리가 없는데.
* * *
시험을 마치고 나온 루시어스는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결국, 아르놀트는 시험 중간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마기의 출력을 높이려 했다.
수습하기 힘들어지기 전에 그림자를 처리하긴 했지만, 위화감을 완전히 묻어둘 방법은 없었다.
어떻게든 실력을 속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의문이 너무 짙게 남았다.
귀걸이를 쓰지 않았으면 아르놀트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을 테지만.
‘우선 귀걸이는 빼 둬야겠어.’
최선이 항상 최고의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지.
당장은 이만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직도 한 학기란 말이지.’
조기 졸업은 3년째부터 가능하니, 아직도 2년 반은 아카데미 생활을 해야 했다. 3년 동안 이대로 정체를 들키지 않고 생활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차라리 아르놀트를 조력자로 회유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명령을 위배하지 않고 정체를 밝힐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기사 서약.
아르놀트를 완전히 제 편으로 만들면 된다. 그럼 그는 아카데미의 선생이기 이전에, 5장로의 기사가 되니까.
‘기사라…….’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방법이긴 한데.
루시어스가 귀걸이를 빼 함 안에 넣어 두었다. 어쨌든 실전 영역 시험을 끝으로 한 학기는 완전히 종료되었다.
귀가 신청서를 내면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니, 레녹스의 일정이 확인되는 대로 신청서를 제출할 생각이었다.
“루시어스!”
맞아. 그 전에 얼굴을 봐 둘 학생이 하나 있었지.
레이얼이 멀리서 루시어스를 부르며 달려왔다. 커다란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났다.
“시험 잘 보셨어요? 역시 어려웠죠? 아르놀트 선생님이 만든 그림자랑 대결하라니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그렇게 어려웠나?”
“복제라서 방심했다가 큰코다쳤다니까요. 결국, 세 판 중 두 판을 져버려서…….”
세 판 중 두 판을 져?
루시어스가 고개를 기울이자 레이얼이 덧붙였다.
“저는 체스를 뒀거든요. 루시어스는 평범하게 전투했겠죠?”
“아아, 하긴 비전투 계열 마족도 많으니 조절을 하긴 했겠군.”
“아이런은 검을 만들었는데, 자기가 만든 검이 그림자가 만든 검을 깔끔하게 부숴서 이겼대요. 대단하죠?”
아카데미 측도 다양한 시도를 한 모양이었다.
마족에게 있어 전투적인 소양을 무시하기 어렵기는 해도, 종족에 따라 천차만별인 전투 능력으로 점수를 매기는 건 불합리하니까.
레이얼이 마지막은 정말 아쉬웠다며 투덜투덜 늘어놓기 시작했다. 루시어스가 그의 주의를 환기했다.
“그래서 난 왜 찾아왔는데? 할 말이 있는 것 같더니.”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정신이라도 차리려는지 두 손으로 제 뺨을 짝짝 가볍게 때린 레이얼이 루시어스에게 간절한 시선을 보냈다.
왠지 조금 불안해지는 눈빛인데.
“루시어스, 혹시 이번 방학에 시간 있어요?”
“그건 확인을 해 봐야 알겠는데…….”
“다른 게 아니라, 이번에 저희가 첫 방학이잖아요! 그래서 단합 여행을 가려고요!”
“…….”
곤란하군. 갑자기 단합 여행은 또 뭐란 말인가.
입을 다문 채 답하지 않자, 레이얼이 곧 안절부절못하더니 구구절절 가야 하는 이유를 늘어놨다.
구스타프에 반 대항전도 있으니 서로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다. 2박 3일이라면 충분할 거다. 시간은 충분히 조율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
그나저나 굳이 저런 이유라면 여행을 갈 필요가 있나?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많이 들으면서 서로에 대해 충분히 파악했는데.
이론 시험에서 자신이 반 평균을 어떻게 올렸는지 아직도 전해 듣지 못했나?
반응이 시원치 않자 레이얼이 결국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외쳤다.
“으으, 알았어요. 솔직히 말할게요! 그냥 다 같이 놀러 가고 싶어요!”
같이 가요오!
루시어스랑 같이 가고 싶다고요!!
레이얼이 아예 허리를 꽉 껴안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가겠다고 하지 않으면 저택까지 이대로 따라붙을 기세였다.
차라리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니 귀여워 보였다. 루시어스가 검지를 툭 튕겨 레이얼의 이마를 콩 때렸다.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가 줄 거예요?”
그가 입을 빼죽 내밀고는 맞은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잠시 고민을 하듯 뜸을 들이다 어깨를 으쓱였다.
“일정을 한 번 확인하고 조율해 보도록 하지. 아마 방학이 끝날 때쯤에야 시간이 날 것 같다.”
“루시어스는 뭘 하느라 그렇게 바빠요?”
“그럴 일이 좀 있거든. 다른 애들은 모두 간다고 했고?”
“물론이죠. 제가 누군데요.”
레이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긴, 임시 반장으로 워낙 솔선수범한 덕분에 학생들은 레이얼의 말을 잘 듣곤 했다. 자연스럽게 반장까지 연임했으니 오죽할까.
성격도 워낙 좋은 편이고.
“여행은 바다로 갈 생각이니 그렇게 알아 두세요. 연락 기다릴게요!”
“그래.”
“만약 말 바꾸시면, 가시 성게를 100마리 먹여 버리겠어요.”
살벌한 협박이군.
별다른 일이 없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