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51)
마족답게 사는 법-51화(51/385)
마족답게 사는 법 51화
051 레녹스 자카르 (1)
「존경하는 아버지께.
보내 주신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라벨지를 붙일 날을 고대하시던 그 와인병은 잘 쓰셨는지요. 항상 어떤 와인인지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선물을 받고 알게 되어 말씀드립니다.
아무래도 그 병은 이제 처분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 안에 와인이 담길 날은 오지 않을 테니까요.
각별하게 관리하고 있었으니 다른 와인을 담아도 좋겠지만, 쓸모없어진 병을 그대로 두지는 않으시겠지요.
레녹스 올림.」
레녹스가 종이에서 펜을 떼었다. 다시 찬찬히 글자를 읽은 그가 미간을 가볍게 눌렀다.
‘이 정도면 알아들으시겠지.’
아버지이자 마계의 2장로인 뤼디거 자카르에게는 다른 마족들의 피와 마력으로 술을 빚어 저장해 두는 취미가 있었다.
그는 성별이나 나이, 종족, 강함을 불문하고 자신의 흥미를 자극하는 마족들에게서 얻은 피와 정기로 와인을 빚기를 즐겼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서 레녹스는 저택에 있을 때 스스로 와인 창고를 관리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덕분에 어디에 누구의 와인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창고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마계에서도 귀한 마족들의 와인이 저장되어 있다.
예를 들면.
페핀르의 루겔 르완, 453년.
같은, 이름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 것 같은 마족들 말이다.
현재 마왕의 나이가 구백을 넘긴 것으로 알고 있으니 아마 즉위 전에 빚은 와인일 것이다.
‘그중에 빈 병이 딱 하나 있었지.’
나중에 와인을 채울 거라면서 먼지가 앉지 않도록 관리하라고 했던 병이 있었다. 그 병은 지금까지도 텅 비어 있었다.
대체 어떤 마족이기에 저렇게 뜸을 들이시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병에 대해 몇 번 물어본 적도 있는데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말만 돌아왔을 뿐이다.
그렇게 잊고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와인을 루시어스의 앞에서 따지만 않았어도 계속 잊고 있었을 것이다.
루시어스에게 붙어 있던 술 냄새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자신만이 알 수 있도록 보내 오던 명령이었다.
귀한 손님이니 잘 대접하라.
절대로 놓치지 마라.
덕분에 레녹스는 빈 와인병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루시어스가 아버지의 선택을 받을 만큼 특별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아버지에게서는 듣고 싶지 않았던, 불쾌한 힌트였다.
그래서 레녹스는 잘 쓰지도 않는 편지를 썼다.
아버지에게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창고 한구석을 계속 차지하고 있던 빈 와인병은 이제 쓸모가 없어졌으니 버리라고. 그 안에 와인이 채워질 날은 절대 오지 않을 거라고.
펜을 내려 두었던 레녹스가 다시 펜을 쥐었다.
깜빡 빠트린 말이 있었다.
「P.S. 이번 방학에는 돌아가지 않을 예정입니다.」
거기까지 쓴 후, 정말 펜을 내려놓고 봉투에 집어넣었다. 마력으로 봉하고 일어나자 루시어스가 뒤쪽에서 자신을 불렀다.
“레녹스, 준비는 다 됐나?”
“다 됐다.”
기숙사에서 퇴실하고 본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기숙사 사감실에 방문해 귀가 신청서를 제출해야 했다.
레녹스는 편지를 품에 넣어 두고 일어났다.
조금 느즈막히 나가게 되어서 그런지 다른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곳에 아르놀트가 있었다.
“언제쯤 나오나 했다. 흐음, 방학에도 사이좋게 함께 다닐 생각이었나 보지?”
“파트너니까요. 방학을 좀 단란하게 보내볼까 했죠.”
“그러냐?”
둘을 한 번씩 훑어본 아르놀트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어스는 그렇다 쳐도 레녹스의 표정이 나쁘지 않은 걸 보니 한 학기 동안 서로 많이 친해진 것 같았다.
오히려 레녹스가 더 루시어스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인가. 아무래도 지금껏 둘 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같은데.
“뭐 잊은 건 없고?”
“……?”
묻자, 서로 눈치를 보았다.
이럴 줄 알았다. 아르놀트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루시어스와 레녹스의 손목을 동시에 잡았다. 레녹스가 아, 하고 감탄성을 냈다.
‘그런 게 있었지.’
파트너끼리 100미터 이상 떨어지면 전격이 내리꽂히도록 하는 주박.
다른 파트너였다면 무척 신경을 쓰고 있었을 텐데, 루시어스라 그런지 아예 잊고 있었다.
애초에 무슨 일이 있어도 발동되지 않던 주박 아닌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풀어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
잠깐. 설마 루시어스가 주박에 손을 댔나?
아르놀트가 잡은 손목으로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주박이 그의 마기에 반응하며 조금씩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박이 풀리기 직전.
“잠깐만요, 선생님.”
레녹스가 그를 저지하며 손을 거두었다. 아르놀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팠다던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대로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괜찮을 것 같다고? 아니, 안 괜찮다. 풀어야 해.”
아르놀트는 단호했다.
레녹스가 자신의 손목을 등 뒤로 숨기며 고개를 저었다.
루시어스가 뭔가의 조처를 해 뒀다면 굳이 주박을 없애고 싶지 않았다. 아마 편의상의 문제가 있을 테니까.
그게 아니어도 주인인 아르놀트라면 주박에 뭔가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눈치챌지도 몰랐다.
추궁이라도 하게 되면 난처해질 수도 있었다.
“주박을 풀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대로가 편해요.”
“뭐?”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루시어스를 곁눈질하던 그가 머리를 한 번 헝클고는 다시 손목을 잡으려 했다.
술래잡기 같은 상황이 계속되자 아르놀트가 답답한 듯 물었다.
“레녹스. 대체 왜 그러냐. 학기가 끝났으니 풀어 두는 게 편할 거다. 계속 같이 다닐 순 없는 노릇 아니냐.”
“괜찮습니다.”
“너희 둘은 왜 이렇게 날 힘들게 하냐. 이 못 말리는 놈들아.”
아르놀트가 고개를 푹 떨구고 중얼거렸다.
레녹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신에게는 아주 좋은 변명거리가 있었다.
“이 녀석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가능하면 계속 파트너를 하고 싶은데.”
“……?”
“아시다시피 지금까지 제 파트너가 꽤 많이 도망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래서 도망치지 못하게 붙잡아 두고 싶어서요.”
그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할 말이 태산처럼 쌓여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게 말이다.
하아, 너……. 그러니까.
아르놀트는 말을 고르다가 결국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쿡쿡.
루시어스에게서 신호가 온 건 그때쯤이었다. 옆구리를 가볍게 찌른 그가 옅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고 팔목을 가리켰다.
‘아, 괜찮은 건가?’
왠지 괜히 지레짐작해서 소란을 일으킨 것 같았다. 레녹스가 민망하게 뺨을 긁적였다.
괴롭게 신음하던 아르놀트가 이게 무슨 일이야, 하고 중얼거리더니.
퍼억!
레녹스의 복부에 멋지게 주먹을 꽂아 넣었다.
“흐읍! 큭, 콜록!”
얻어맞은 부분을 붙잡고 비틀비틀 쓰러지는데, 아르놀트가 혀를 쯧쯔 차며 손목을 낚아채어 주박을 풀었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내가 모르는 너희 둘만의 사정이 있겠지. 그러니, 둘이 대화를 나눠서 잘 해결하도록.”
엮이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자기주장이었다.
손목에서 주박이 사라지자 가벼운 해방감이 감돌았다.
“……고생하셨습니다. 들어가세요.”
레녹스는 주저앉은 채 마른기침을 하고 있었고, 아르놀트는 그런 레녹스의 머리를 가볍게 툭툭 두드린 후 손을 흔들며 사감실을 나갔다.
왠지 손목이 허전하다.
루시어스가 자세를 낮추며 몸을 일으켜 주었다.
“꽤 아파 보이는데.”
“아르놀트 선생님이라 그런가, 생각보다 훨씬 아프네.”
“그렇겠지.”
사실 아르놀트의 등장 때문에 루시어스도 난감하던 차였다.
최대한 들키지 않도록 위장시켜 두기는 했지만, 실제로 주박을 해제할 때 그가 어떻게 느낄지는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르놀트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걸 알았다면 미리 원상태로 복구해 뒀을 텐데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준비를 못 했다.
그런데 레녹스가 엉뚱하게 아르놀트의 신경을 빼앗아서 틈이 생겼다. 둘이 실랑이하는 동안 겨우 주박을 원래대로 고칠 수 있었다.
칭찬이라도 해 주고 싶다.
“우선 집에 가자.”
신청서를 제출하고, 레녹스의 편지도 본가로 발송시킨 후 게이트 이용 허가증을 받아 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선생님들이 설치해 둔 텔레포트 게이트가 있었다. 저택의 좌표를 건네주면 선생님들이 확인한 후 이동시켜 준다.
루시어스는 선생님에게 다가가 좌표를 건네주었다. 게이트에 올라서자 발밑에서 빛이 올라왔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자 저택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도착했군.”
저택은 지상 3층, 지하 2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다른 장로들에 비하면 무척 간소한 편이었다.
특히 뤼디거는 고궁으로 불러도 괜찮을 정도의 규모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만큼 관리가 필요해 사용인들이 성내에 거주하고 있었다.
레녹스라면 본가가 아니라 별장으로 느껴질 정도의 크기일지도 몰랐다.
“어서 와라. 방문을 환영하지.”
“고맙다. 그나저나……, 저택에 기척이 거의 없군.”
터벅터벅.
레녹스가 대문을 통해 정문으로 가는 길을 걸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정원도 보기 좋게 손질되어 있고 외벽이나 지붕의 상태도 무척 깔끔한 것이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저택에 기척이 없다.
루시어스가 웃으며 의문에 답했다.
“저택에는 나와 아버지, 그리고 집사 한 명 정도만 살고 있어서 말이지. 지금 아버지께서는 일을 가셨을 거고, 집사도 자리를 비웠을 테니 아무도 없는 게 맞긴 해.”
“그런가, 집사가 유능한 모양이야. 혼자 관리하는데 모난 곳이 없다.”
레녹스가 작게 감탄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루시어스는 손님방 중에서도 가장 좋은, 자신의 침실 바로 옆방을 건네주었다.
테라스로 향하는 창문을 활짝 열어 풍경을 즐기던 레녹스가 이만 루시어스를 돌아보았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지? 뭔가 생각해 둔 게 있던 것 같은데.”
“아, 훈련 말인가?”
“학기 내내 했던 것처럼 단순히 대련만 하는 건 아닐 테고. 물론 그것도 계속하고 싶긴 하지만.”
“다른 것도 해야지. 힘들면 말해라. 쉴 시간은 충분히 줄 테니까.”
“대체 어떤 훈련이기에…….”
“별 것 아니다. 익숙해지면 할 만할 거야.”
“익숙해지지 않으면?”
“조금 많이 괴롭겠지.”
평화로운 목소리로 불길한 말을 한다. 레녹스는 왜인지 엄습하는 한기에 몸을 작게 떨었다.
루시어스는 품에서 방울을 꺼냈다.
두 개의 방울이 검은 리본으로 묶여 있었다.
하나는 빨간색, 하나는 노란색.
딸랑, 딸랑. 호출 종이라도 울리듯 흔들었다. 청량한 소리가 스산하게 울려 퍼지더니 주변의 마기가 한껏 가라앉았다.
그리고 느껴지는 옅은 사기.
“이건…….”
딸랑.
마지막으로 방울이 울렸다. 그리고 동시에 두 개의 방울에서 흐릿한 안개가 흘러나왔다.
더미트에게 미리 부탁해 놓은, 서로 아주 친한 쌍둥이 사령이었다.
크라서스와 델로스 형제라고, 지금도 모르는 마족이 드물 정도로 생전에 유명했던 이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만나던 사령들인지라 루시어스와도 꽤 친했다.
손을 뻗자 형인 크라서스가 다가와 장난스러운 웃음을 씨익 지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델로스가 둥실둥실 레녹스에게 다가갔다.
그는 흠칫 놀라는 레녹스에게 무척이나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레녹스, 빙의 당해 본 적 있나?”
“……없다.”
“어떤 일이든 처음이 있는 법이지.”
“루시어스, 혹시 해서 물어보는데.”
“한번 해 보면 어렵지 않을 거다.”
“잠깐만, 정말 나보고……!”
“사양하지 않아도 된다. 델로스, 가서 빙의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