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53)
마족답게 사는 법-53화(53/385)
마족답게 사는 법 53화
053 레녹스 자카르 (3)
저택의 지하 2층에는 각종 훈련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레녹스는 그곳에서 며칠간 루시어스와 쉼 없이 대련했고, 왜 루시어스가 시야 공유에 거리낌이 없었는지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아, 하아……. 하.”
훈련이 끝나고 나면 완전히 탈진해 잠들어 버리니, 루시어스가 언제 무엇을 하는지 아예 알 수가 없었다.
식사하기도 벅찰 정도였으니까.
‘힘들다면 쉬게 해 주겠다는 게 이런 의미였나.’
익숙해지지 않으면 조금 괴로울 거라더니.
그래도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10분도 버티기 힘들었지만, 점차 버티는 시간이 늘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레녹스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시간을 잊고 훈련에 몰두하다 보니,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힘들긴 했지만 왜 루시어스가 이 같은 훈련을 계획하고 제안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짧은 시간 안에 상대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좋은 훈련법이었다.
게다가 시각을 공유한다는 건, 단순히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데에서 그치는 능력이 아니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방향, 창을 휘두르며, 마기를 다루는 방법. 전투에서 시선과 시야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 지까지 모두.
루시어스는 무척이나 많은 정보를 눈을 통해 읽으며 분석하고 있었다. 처음엔 밀려들어 오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녹초가 되었다.
시각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감각 전체를 동원하면 어느 정도일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
“후우. 왠지 억울하네. 너는 매번 지친 기색도 없는데, 나는…….”
“그 정도면 우수한 거야.”
재능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눈앞에 이만한 실력자가 있으니 실력에 자신을 갖지 못하겠다.
루시어스는 무척 계산적인 전투를 한다. 모든 행동에 의미와 의도가 담겨있었다. 자신의 공격조차도 그의 의도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냥 검만 맞대었을 땐 몰랐다. 자신의 재능과 실력에 기대어 자유롭게 움직인다고만 생각했지.
아주 섬세하고 무서운 전략가.
요즈음 느낀, 루시어스의 참모습이었다.
레녹스가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검을 쥐고 자세를 낮춘 채 천천히 루시어스를 살폈다.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 놀라울 정도로 빈틈이 없다.
이조차도 훈련이라며 수준을 맞춰 주고 있는 것이니, 진짜 그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지.
‘미치겠군.’
지금까지 루시어스가 보여 준 공격 패턴은 참 단순했다.
한 번 찌르고, 두 번 베고, 한발을 물러서는 단순한 반복과 응용.
고작 그뿐인데도 상대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대단한 기교를 부리는 것도 아닌데 도무지 저 몸놀림을 따라갈 수가 없다.
기본기의 차이일까?
레녹스가 겨우 호흡을 가다듬고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조금도 지친 것 같지 않았다. 마력량으로는 어디 가서 뒤져 본 적이 없는데도 루시어스의 앞에서는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
“많이 지친 것 같은데,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루시어스는 레녹스가 완전히 녹초가 되었을 때 제안하고는 했고, 레녹스는 매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지난 며칠간 했던 고민.
그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평생 제자리걸음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레녹스가 자리를 털며 일어나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하지만 똑똑히 들리도록 물었다.
“루시어스. 왜…… 왜, 나를 이렇게까지 챙겨 주는 거냐?”
루시어스의 눈동자가 잠시간 크게 뜨였다. 레녹스가 머리를 가볍게 헝클었다.
“네가 대답해 줄지 알 수 없어서 줄곧 혼자 고민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그럴 생각이었어. 하지만 들어야겠다.”
“…….”
“넌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다가왔고,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구해줬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어. 너 같은 마족이 왜 이렇게 내게 신경을 쓰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다.”
“레녹스…….”
“대체 왜냐. 어째서 나를 위해, 네게는 필요도 없는 훈련을 하는 거냐.”
남은 시간에는 항상 뭔가를 하고 있을 정도로 바쁘면서. 잠도 제대로 자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없으면서.
대체 왜?
이렇게 해서 얻는 것이 대체 뭐가 있다고?
물음에, 루시어스는 아주 잠시 말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아주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 접근했던 데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
전하의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라던가, 아카데미를 빠르게 졸업하기 위해서라던가.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해서 그를 선택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건 상관없다.”
“뭐?”
“이유 따위는 상관없다고 했어. 지금 나는 단지 네가 ‘레녹스’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다. 그것만으로도 내 시간을 할애할 가치가 있고, 도움을 주는 의미가 있다.”
“…….”
“네가 내 파트너이자, 동료이자, 친구이기 때문이다.”
“루…….”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깊은 물속에 잠긴 듯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콧등이 찌르르 떨릴 정도로 아렸다.
불쾌한 감각은 아니지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 레녹스를 휘감고 있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레녹스는 못 박힌 듯이 그 곳에서 굳었고, 루시어스는 들고 있던 봉을 내려두었다.
“오늘은 이만 하지. 들어가서 쉬는 게 좋아 보여.”
충분한 휴식도 훈련만큼 중요한 법이야. 루시어스가 레녹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지나갔다. 레녹스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자신이 쥐고 있는 오필리아를 바라보다가 살며시 눈을 감았다.
과거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 * *
“아아! 이번 과제 진짜 너무 어려워!”
에디온이 탄식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레녹스가 턱을 괴고 작게 웃었다. 선생님들 중에서도 과제가 힘들기로 소문이 난 아르놀트 선생님이 담임이 되다니, 졸업을 앞두고 고생길이 훤했다.
레녹스가 어쩔 수 없지 않냐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배울 점은 많은 분이니까 열심히 배워야지.”
“너는 너무 놀 줄 몰라서 탈이야. 어떻게 그렇게 성실하게 출석을 할 수가 있어?”
모름지기 바람직한 아카데미 생활이라는 건 말이야, 아슬아슬하게 졸업할 수 있을 정도로 출석일수를 채우고 몰래 학교 담을 넘어 놀러 다니는 거란 말이지.
에디온이 짐짓 훈계를 하듯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씨익 웃으며 레녹스에게 속삭였다.
“어때, 레녹스? 나가서 맛있는 거라도 먹고 들어올래?”
“헛소리 하지 말고 과제나 해라. 아르놀트 선생님이 얼마나 엄한지 너도 알고 있잖냐.”
“으으! 자기는 다 했다고 그러는 거지!”
“그렇지.”
“젠장!”
에디온이 다시 책상에 털퍽 늘어졌다. 레녹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응??”
“집중도 안 되는데 계속 앉아있으면 뭐 하겠냐. 나가서 맛있는 거라도 먹고 오면 좀 낫겠지. 로벨리도 부를까?”
눈을 동그랗게 뜨던 에디온의 표정이 활짝 피어났다. 그리고는 우당탕탕, 의자도 넘어트리며 일어나더니 방방 뛰어나갔다.
“로벨리 불러올게! 조금만 기다려!”
에디온이 로벨리를 부르러 나갔고, 레녹스는 그가 그녀와 함께 돌아오기를 즐겁게 기다렸다.
에디온은 아르놀트가 이어준 파트너였는데, 레녹스는 처음엔 자유분방하고 활발하지만 친화력이 좋은 그를 상당히 불편해했다.
하지만 둘이 잘 어울릴 거라는 아르놀트의 생각대로, 둘은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
앱실론부터 알파까지 빠른 속도로 승급할 수 있었던 것도 뭔가 막힐 때마다 에디온이 같이 진지하게 고민하며 조언해 준 덕분이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지 2년이 지나던 무렵, 방학을 앞두고 에디온이 물었다.
“이번 방학에도 저택에 돌아가?”
“아버지 일을 도와야하니까.”
“바쁘게 사네. 이번에는 우리 집에 초대하려고 했는데.”
“나까지 없으면 보좌관님이 울걸.”
에디온이 입술을 빼죽였다. 아무리 장로 일이 많아도 그렇지, 아직 다 크지도 않은 막내아들의 손을 빌려야 할 정도로 바쁘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쉽기는 해도 억지를 부릴 순 없어서, 에디온은 매번 ‘다음에는 꼭 시간을 비워 놔!’라고 가볍게 말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와 방학을 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걸 알았으면, 레녹스는 절대 저택에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방학이 끝나자마자 아카데미에 돌아온 에디온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에디온, 에디온!”
“으……응? 어? 응. 왜 그래?”
“……체육관으로 이동해야 되잖아. 그래서 계속 불렀는데.”
아, 그랬지. 그렇구나. 창백한 안색을 하고 있는 에디온이 힘없이 답하며 책상에서 일어났다.
비틀.
힘없이 무너지려는 몸을 레녹스가 부축했다. 미간이 절로 일그러졌다. 날이 가면 갈수록 그의 안색이 점점 좋지 않아지는 것 같았다.
몸 상태도 그랬고.
“괜찮아? 정말 립톤 선생님께 안 가 봐도 되겠어? 다음은 대련 수업인데…….”
“잠깐 멍 때린 거야, 괜찮아.”
“알았다. 그럼 가자.”
석연치 않은 반응이었지만 레녹스는 에디온과 함께 체육관으로 갔다.
요즘 에디온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아르놀트에게 말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성장할 때쯤 꼭 저러는 놈들이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3차 성장에서는 마력이 불안정해지며 팽창하게 되니 몸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고. 그러니 최대한 안정을 취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좋다고.
생각보다는 이른 시기였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다. 아르놀트에게서 그 말을 들은 레녹스는 최대한 에디온을 돌봐 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변은 일어났다.
그 이후 파트너끼리 대련을 하는 수업에서, 갑자기 오필리아가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대련을 시작하자마자 공명하듯이 울던 오필리아가 갑자기 엄청난 양의 붉은 기운을 토했다. 레녹스의 마력이 격렬하게 빨려 들어갔다. 정말 무서운 속도였다.
“큭!”
“멈춰라, 레녹스! 오필리아를 멈춰!”
멀리서 아르놀트가 외치며 뛰어들었지만, 이미 오필리아의 기운이 레녹스와 에디온이 서 있는 체육관의 경기장을 돔처럼 감싼 후였다.
쾅!
“으아악!”
밖에서 결계로 전해지는 충격이 머릿속을 때리듯 울렸다. 레녹스가 머리를 쥐며 털썩 꿇어앉았다.
레녹스는 두통을 겨우 견디며, 오필리아를 노려보았다.
웅, 웅.
오필리아는 아직도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 오필리아.”
“크르르…….”
“……에디온?”
어디선가 들리는 짐승소리.
레녹스가 뒤늦게 에디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에디온은 검은색의 기운에 휩싸인 채로, 터벅터벅 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보았던 에디온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레녹스는 ‘저것’이 에디온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에디온의 얼굴은 형체를 찾아볼 수도 없이 녹아있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뚝, 뚝. 살점이 떨어져나갔다.
텅 빈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씨익.
기괴하게 입술이 비틀렸다.
“크륵, 큭, 크르르륵, 그륵, 큭.”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크르륵, 크륵.”
“오필리아! 지금 뭘 보여 주고 있는 거야!”
끔찍한 광경이었다. 레녹스가 고개를 저으며 오필리아를 향해 외쳤다. 미쳐버린 검이 보여 주고 있는 환각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투둑. 뚝.
에디온이 다가온다. 레녹스가 뒤로 계속해서 물러났다.
제발 그만, 오필리아.
“크아아아아악!”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