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6)
마족답게 사는 법-6화(6/385)
마족답게 사는 법 6화
006 루시어스 켄드릭 (6)
얼마 전, 루시어스는 세츄 줄기의 진액을 이용한 시약을 제작한 적이 있었다.
세츄는 숲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식물로, 감각을 둔하게 만들어 같은 곳을 빙빙 돌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독성을 충분히 낮추자 기척을 숨기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숲 안에서 마물을 상대로 탁월한 효능을 발휘해 숲 점검에 활용할 수 있었다.
루시어스는 그것을 몸에 뿌리고 느린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실력이 좋은 마족들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학생들을 상대로는 그럭저럭 쓸 만한 수준이었다.
‘지금까지 셋인가. 앱실론보다 적은데.’
앱실론 클래스의 복도에서 루시어스를 의식한 학생이 지금까지 총 일곱 명.
그에 반해 감마 클래스의 복도에서는 지금까지 세 학생만이 루시어스를 의식하고 있었다.
‘올해 신입생의 입학 점수 평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 듣긴 했지만, 생각보다 차이가 심하군.’
최소 1년 이상 재학한 감마 클래스의 학생들이 신입생인 앱실론보다 못한 상황.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만큼 마력 흐름은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이대로 감마를 돌아보는 것에 얼마나 많은 의의가 있을지.
잠시 고민하던 루시어스가 적당히 기운을 가라앉힌 채 군중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금세 자신이 찾던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루가인.
하지만, 루시어스의 눈길은 그 옆으로 향했다.
우락부락한 체구와 거대하게 뻗은 염소 뿔, 날카로운 검은색 손톱, 그리고 박쥐 모양의 날개.
‘저 녀석, 이름이 빈스였나.’
외모는 그가 분명했다.
속은 아니었지만.
‘도플갱어 특유의 위화감이 남아 있어.’
무늬가 없는 하얀 벽에 기대고 있기에 눈치채기 힘들지만, 그의 주변이 미세하게 굴곡지고 일그러져 있었다.
그림자와 빛을 이용해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는 도플갱어들의 어쩔 수 없는 고질적인 약점.
‘학생들보고 찾으라고 했으니 어느 정도는 일부러 드러냈다고 봐야겠지. 생각보다 열심이군.’
예상한 대로인지라 웃음이 피식 흘러나왔다.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생각보다 빨리 그를 찾아내니 기분이 꽤 유쾌해졌다.
루시어스가 모른 척 기척을 숨기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 보니 그 소식 들었어? 아르놀트 선생이 이번에는 앱실론을 가르치게 됐다는 거.”
마침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 그거 들었는데. 나는 그냥 소문인 줄 알았어.”
“근데 좀 불쌍하다. 알파나 베타면 몰라도 앱실론이면 아르놀트 선생님의 수업이 많이 힘들 텐데.”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그는 아르놀트가 빈스로 둔갑하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보통 학생들은 한눈에 그를 알아보지 못하겠지.
‘뭐, 저 정도로 감췄으면 어지간하지 않은 이상 알아보긴 힘들겠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찾았는지에 대한 근거가 필요했다.
문득 깨달은 사실에 루시어스는 조금 뒤 아르놀트를 만나게 되면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도플갱어의 마기가 가진 특유의 위화감 때문에 쉽게 알아채긴 했지만, 그건 자신이니까 쉽게 알아챌 수 있는 것.
즉, 아르놀트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는 어렵다.
‘이럴 땐 정석적인 대답이 가장 무난하려나.’
특수한 식물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긴 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힘을 행사하면 그가 쓸데없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었다.
“알파 클래스에서 아르놀트 선생한테 배우고 싶다고 엄청 어필했다고 알고 있는데, 실패했나 봐.”
“앱실론 애들 부러운데 불쌍하네. 그분, 시험도 어렵고 과제도 많은 데다 점수도 짜잖아. 실력이야 확실하시긴 한데…… 응?”
어떻게 답할지 고민하던 와중 루가인이 기척을 느끼곤 하던 말을 뚝 멈췄다.
그 모습에 루시어스는 가볍게 몸을 움직여 학생들이 많은 곳으로 가 몸을 숨겼다.
시야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루가인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기분 탓인가? 시선이 느껴졌는데.”
“시선?”
아르놀트가 주변을 둘러보곤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다른 애들이 잠깐 우릴 봤나 보지.”
“음……. 그런가?”
고개를 기우뚱 기울이던 루가인이 곧 경계를 풀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부러 기척을 살짝 풀었는데 고작 기분 탓으로 돌리다니.’
세이렌이 본래 넓은 범위의 탐색 마법에 특출 난 걸 감안해도 기본기는 나쁘지 않은 녀석이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의 실망감이 몰려왔다.
‘감마 클래스는 좀 아쉽군.’
교육을 받았으니 앱실론보다는 키우기 편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마주해보니 생각보다 차이가 심했다.
성장 가능성을 포함한다면 감마보단 앱실론의 수준이 압도적일 정도로 높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아직 아카데미 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들이라면 그의 입맛대로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당장 기본기는 부족하지만, 훈련을 거친다면 충분히 넘어설 수 있을 터.
‘아르놀트 선생의 위치는 알았으니, 우선 다른 곳을 가 볼까.’
결정은 후보로 뽑아 둔 학생들을 전부 본 뒤에 해도 늦지 않겠지.
고민하다가 우선 자리를 떴다.
교내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본 지 얼마나 되었을까.
루시어스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가 고를 학생은 파트너를 넘어, 최종적으로는 마왕의 마음에 들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가져야만 했다.
그런데 어전은 고사하고 제 눈에도 차지 않았다.
“내키진 않지만…… 아쉬운 대로 루가인이라도 잡아야 하나. 다른 놈은 도대체 어디에 처박혀 있는 거지?”
교내를 한참 돌아다녔지만 한 번도 모습을 보지 못한 마지막 한 명.
타박타박 걸음을 옮기며 고민하던 루시어스의 시야에 게시판에 붙은 커다란 포스터가 보였다.
그 앞에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구스타프구나.”
“올해 신입생 수가 적은 게 제전 때문이라잖아.”
“제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데, 제전은 한 번밖에 못 나가잖아.”
구스타프 제전은 모든 아카데미가 협동해 10년마다 개최하는, 마계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큰 행사였다.
행사를 진행하며 학생 육성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아카데미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우수한 학생을 치하했다.
이름을 떨칠 기회이니 학생들도 혈안이 되어 참가했다.
문제는 제전이 열리는 해에 입학한 신입생들이었다.
채 1년도 교육받지 못하고 제전에 나서야 하니 뛰어난 성적을 보이기 어려운 조건인 셈.
아카데미 졸업 기간은 10년, 제전도 10년마다 열린다.
신입생으로 한 번 제전에 참가하면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
당연히 그해 신입생의 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루시어스가 포스터 앞에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올해에 제전이 있는 건 기회인지도 몰랐다.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생들이 활약하면 내 공을 무시할 순 없겠지. 전하께 선보일만한 자리이기도 하고.’
매 축제마다 마왕과 장로들에게 초대장이 날아가니 마왕이 행사에 참석할 명분도 충분했다.
‘키안과 레이얼, 그리고 파트너를 구스타프 제전에서 충분한 활약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어. 그 정도만 한다면 전하도 충분히 만족할 테니까. 그 후 조기 졸업할 때까지 조심히 지내면…….’
잠시 생각 중이던 루시어스의 눈가에 갑자기 햇빛이 내려앉았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자 마계의 해가 중천을 지나 조금씩 저물고 있었다.
‘종이 치기까지 앞으로 두 시간.’
마지막 학생은 어디에 있을까.
* * *
“바쁠 텐데 불러내서 미안하구나, 레녹스.”
소파에 앉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여성.
그녀의 가느다란 손에는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찻잔이 받쳐져 있었다.
“…….”
하지만 그녀의 앞에 있는 소년은 침묵을 지킬 뿐.
그녀는 멋쩍은 듯 찻잔을 앞으로 내밀며 입을 열었다.
“파트너에 대한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단다. 양해해 주렴.”
앞에 있는 소년, 레녹스는 그녀의 자상한 말투 안에 짜증이 섞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연하겠지.
개학 첫날부터 짐 덩어리를 떠안은 셈이니.
“……말씀하시죠.”
“혹시 파트너로 원하는 학생은 없니?”
레녹스는 저 가식적인 표정에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제가 지목하면 그 사람이 퍽이나 좋아하겠습니다? 선생님도 알고 계실 텐데요.”
“그게 무슨 소리니.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지. 5년 만에 베타 클래스까지 승급한 천재인걸.”
“진심이십니까?”
그는 미소를 띠는 선생을 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다.
5년 만에 베타 클래스.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미 3년 만에 알파로 올라왔다가 강등당했는데.
“물론이지. 잘 찾아보고 얘기해보면 파트너를 하려는 친구가 많을 거라고 생각한단다.”
빌어먹을 선생 같으니.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귀찮고 골치 아프니까 그러는 거겠지.
2년 전까지만 해도 조기 졸업을 노릴 인재로 꼽혀서 선생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그였다.
그러나 파트너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아카데미 생활이 꼬이기 시작했다.
파트너를 의도적으로 죽였다는 소문이 퍼지며 평판이 나빠졌고, 성적 부진으로 강등까지 당했다.
“글쎄요.”
작년 파트너도 죽을상을 하며 억지로 버텼다.
올해도 다를 바 없을 터.
“그럼 파트너를 구할 생각이 없는 거니?”
선생의 표정에 서서히 짜증이 섞이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레녹스는 주름 없이 빳빳한 옷깃을 다시금 정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단정하게 묶여 있던 머리카락이 옆으로 조금 흘러내리자, 손으로 빗어 귀 뒤로 넘겼다.
“예. 죄송합니다. 저는 누구든 상관없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이만 가 보렴.”
선생도 이제는 포기한 듯 손을 내저었다.
레녹스가 가볍게 인사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트너라.’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여느 신입생들처럼 파트너가 누구일지 기대했다.
그 제도가 이렇게까지 제 발목을 잡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옅은 한숨을 길게 내쉬는데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상담실이 구석진 곳에 있어 지나다니는 학생이 없을 줄 알았는데.
주변을 살피자 흔치 않을 정도로 선명한 은발을 가진 소년이 눈에 띄었다.
그의 눈이 똑바로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내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레녹스는 저를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그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생김새도 그렇고, 숲의 정기가 느껴지는 걸로 봐선 드라이어드 같은데.’
뭔가에 압도당하는 느낌.
도무지 긴장을 풀 수 없는 존재감.
드라이어드는 보통 책과 연구를 좋아했다. 박학다식하고 식물을 가꾸길 즐겼으며, 느긋하고 조용한 성격을 가진 존재들.
그런데 눈앞의 소년에게서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무척 호전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특히 주눅 들지 않은 당당한 표정이나 빈틈없는 행동거지가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붉은 사선이 세 줄. 앱실론인가?’
레녹스가 뒤늦게 넥타이를 흘끔 곁눈질하며 한참을 탐색했다.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베타 클래스인가?”
그러다 상대가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오자 몸이 절로 움찔 떨렸다. 신입생이라 그런지 자신을 모르는 것 같아 무척 다행이었다.
“앱실론의 학생인 모양이군. 그쪽 교실은 여기와 거리가 먼데, 혹시 길을 잃은 건가?”
소년의 눈동자는 뭔가를 숨기는 듯 은밀하기도, 저와 마찬가지로 상대를 탐색하느라 바쁜 듯 보이기도, 순수한 호기심과 자신감이 가득하기도 했다.
레녹스는 그 눈동자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런 것 같다. 첫날이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길을 익히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넓은 것 같아.”
“그렇긴 하지. 나도 신입생 때에는 많이 헤매곤 했다. 앱실론은 저쪽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돌면…….”
누가 이 근처를 지나가기 전에 만남을 끝내자.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 봤자 좋은 장면이 아니니까.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가 천진하게 말했다.
“내 이름은 루시어스 켄드릭이다. 보다시피 앱실론 클래스지. 너는?”
“…….”
그의 등 뒤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레녹스는 갑작스러운 통성명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레녹스는 본인의 실명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루시어스라는 이 신입생이 자신에게 보이는 아무렇지 않은 태도가, 자신의 이름을 모르기에 가능한 태도라고 생각했으니까.
“본 대로 베타 클래스다. 길 설명을 계속하지.”
레녹스가 이름을 밝히지 않자 루시어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순진해 보이는 눈동자가 곱게 접히자 등줄기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생각하고 있는 걸 전부 간파하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제안했다.
“말로 들어서는 잘 모르겠는데, 혹시 학교 안내를 부탁해도 되나?”
“안내? 내가?”
“이것도 연이니까. 시간이 넉넉하다면 조금만 할애해 주었으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