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60)
마족답게 사는 법-60화(60/385)
마족답게 사는 법 60화
060 바다 여행 (4)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루시어스는 난관에 봉착했다. 바로 아르놀트가 내어 준 과제 때문이었다.
아르놀트가 내어 준 두 번째 과제, ‘친구 다섯 명 이상의 인장을 받아 오기’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팔씨름으로 시작된 도장 찍기는 결국 서로 먼저 찍겠다고 날뛰는 아이들로 인해서 난장판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거기까지는 무척 좋았다.
좋았는데, 문제는 다른 과제에 있었다.
파트너와 여행을 하고 ‘일기’를 써 오라는 첫 번째 과제.
이번 여행에 레녹스도 함께 갔으니 과제를 수행하기는 했다. 좋은 추억도 많이 쌓았고, 느끼는 바도 많았다. 레녹스와 여행 중에 함께 보낸 시간이 적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뭐가 그렇게 문제입니까?”
보다 못한 하멜이 차 한 잔을 루시어스의 옆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지금껏 저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루시어스를 몇 번 보지 못한 탓이다.
루시어스가 진정을 위해 찻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기를 써 본 적이 없다.”
“……아.”
“보고서는 수백 번도 써 봤지만, 일기는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어.”
“……음.”
하멜이 말문을 잃었다.
물론이겠지만, 그 또한 일기를 써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루시어스가 근심에 잠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차라리 보고서를 내라고 했으면 누구보다 빠르게 작성해서 낼 자신이 있는데, 일기를 써 오라니 난감했다.
대체 일기는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가.
여행의 목적을 쓰고, 계획을 쓰고, 그것이 어떻게 실천되었는지, 그에 따른 결과는 무엇이며 얻을 수 있는 소득은 무엇인지 쓰는 건.
‘보고서잖아.’
다시 찻잔을 기울였다.
보고서를 쓰듯 써서 낼 수도 있겠지만, 아르놀트는 일기를 써 오라고 했다. 보고서가 아닌, 일기를.
아이답지 않게 훌륭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굳이 의심을 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여행에서 본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서라는 딱딱한 형식의 문서 안에 가두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이었다.
그때 느낀 감동이 퇴색되니까.
자, 그럼 대체 일기는…….
‘어떻게 써야 하지?’
루시어스가 고민에 빠지자, 옆에서 같이 고민하던 하멜이 조언했다.
“일기면 주관적인 느낌이나 감상이 많이 들어가면 되겠죠.”
“주관적인…….”
“뭘…… 느꼈는지? 라던가.”
맞는 말이었다.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보고서와는 달리, 일기는 주관적인 감상이 주를 이루는 비공식적 기록이었다.
루시어스가 종이를 꺼내고 펜을 들었다. 그리고는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되새겼다.
「레녹스와 바다에 갔다. 날씨가 좋았다.」
꾸깃.
가차 없이 종이를 구겨 버렸다.
형편없는 문장을 뜬 눈으로 마주하고 있고 싶지가 않았다.
다시 하멜의 조언을 떠올려 보았다. 여행을 하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래서 무엇을 느꼈는지 쓰면 되는 거겠지?
「바다에 도착해서 게임을 하다가 바다 속에 갔는데 산호와 물고기들이 있었다. 돌핀을 봤다. 무척 아름다웠다.」
꾸깃.
루시어스, 마생 71년.
최대의 난관에 봉착했다.
“하아…….”
시름에 잠긴 한숨을 내쉴 때쯤 문을 열고 레녹스가 들어왔다.
무겁게 가라앉은 집무실 분위기 때문에 잠시 주춤하던 레녹스가 의아하게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레녹스의 대답에 답한 건 루시어스가 아니라 하멜이었다. 하멜의 말에 레녹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대체 얼마나 큰 문제이기에 이 둘이 이렇게 근심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단 말인가.
레녹스가 주변을 살짝 살펴보았다. 깔끔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저 둘의 발밑에 구겨진 종이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방이 저런 꼴이 되어도 신경도 쓰지 않을 정도의 큰일이라는 소리였다.
루시어스가 입을 열었다.
“레녹스.”
“그래. 대체 무슨 일이지?”
“일기는 어떻게 쓰는 거지?”
“……뭐?”
“일기 말이다. 아르놀트 선생이 너와 여행을 다녀오고 일기를 써서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주었잖아.”
“그렇지.”
“그런데 난 일기를 써 본 적이 없다. 어떻게 쓰는 건지 모르겠어.”
그런 문제였군. 레녹스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루시어스에게는 일기라는 표현 방식이 무척 어색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일기보다 보고서 쓰는 법을 먼저 알았을 것 같다.
애초에 일기를 쓰는 마족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렇게 어린 면모도 있군.
레녹스가 옅게 웃으며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아주 간단하다. 일기는 말이지.”
그러다 말문을 닫았다.
“일기는…….”
“……?”
“……어떻게 쓰는 거지?”
아주 잠시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다.
레녹스 또한 2장로의 아들로서 상당한 조기 교육을 받고 자랐다. 아버지의 와인 창고를 관리하는 건 물론이고, 그의 업무까지 대신 처리할 정도였다.
즉, 레녹스도 일기보다 보고서 쓰는 법을 먼저 알았다.
턱을 매만지며 심각하게 고민하던 그가 덧붙였다.
“여행의 목적이나 계획을 쓰고, 필요한 경비와 실천 방향, 결과 같은 걸 나열하면…….”
“보고서지.”
“그렇군.”
둘 다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루시어스가 미간을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더미트에게 물어볼까 싶기도 했지만 더미트는 지금 마왕성에 출근을 한데다가, 뾰족한 수를 가지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가 어떤 존재이던가. 수많은 사령을 거느리는 샤먼. 마왕군에서 가장 무정하고 차가운 마족이 아니던가.
심각하게 고민하던 레녹스가 결심한 듯 말했다.
“기다려라. 완벽한 일기를 쓰는 법을 알아오지. 이런 이유로 과제를 망칠 순 없다.”
“레녹스…….”
“나만 믿어라.”
자신 있게 집무실에서 나간 레녹스는 몇 시간 후.
쿵!
엄청나게 많은 참고 자료들을 가져오는 것으로 믿음에 답했다.
“…….”
루시어스는 앞에 쌓인 책과 종이들을 보고 다시 미간을 짚었다. 하멜은 루시어스가 레녹스를 기다리며 일기를 쓰다가 버린 종이들을 옆에서 차곡차곡 모아 버리고 있었다.
레녹스의 노고에는 칭찬을 해주고 싶지만, 일기를 쓰기 위해 굳이 이렇게 많은 문헌을 참고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일기란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단 말인가?
우선 레녹스가 가져온 책을 하나 들어 넘겨보았다. 자유로운 작문에 대한 설명이 나열된 책이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참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렵군. 이렇게 어려운 난이도면 과제를 좀 더 일찍 내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푸념하자 하멜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르놀트가 들으면 억울해할 소리였다.
“아무튼 재수 없는 녀석입니다. 처음부터 알아봤다니까요. 물론, 좀 맛있어 보이긴 했지만……. 아, 이렇게 된 거 그냥 아르놀트 선생을 꿀꺽해 버릴까요?”
과제를 내 준 사람이 없어지면 과제를 낼 필요도 없어진다. 하멜이 좋은 방법인 것 같다며 눈을 빛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하멜.”
물론 기각이었다.
루시어스가 결국 들고 있던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며 독서에 집중했다. 이렇게 된 거, 레녹스가 찾아온 자료들을 참고해서 일기를 쓰는 법을 터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레녹스도 돕겠다며 자료를 읽기 시작했고, 하멜은 도울 게 없으니 응원이나 하겠다며 차를 내리고 일을 했다.
그리고 그 작업은 더미트가 저택에 돌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저택에 돌아온 더미트는 바로 루시어스를 보기 위해 집무실로 갔고,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어지러운 풍경에 의아해하며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책과 종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깔끔하게 정리해 두던 루시어스와 하멜이 이렇게까지 집무실을 어지럽혀 놓다니, 믿을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더미트가 눈동자만 데굴 굴렸다. 의자에 피곤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들이 보였다.
“아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니?”
“……더미트.”
가라앉은 목소리에 더미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터벅터벅 책을 넘어가며 루시어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건지 걱정이었다.
“말해 보렴.”
더미트가 걱정스럽게 루시어스에게 손을 뻗었다. 뺨을 슥슥 쓰다듬어 주자 루시어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기는 어떻게 쓰는 거죠?”
“……?”
“아르놀트 선생의 과제 말이에요. 일기를 써 오라고 했는데, 어떻게 쓰면 좋을지 모르겠어서요.”
최대한 자세하고 솔직히 적어야 한다는 사실은 알겠다. 하지만 어떻게 작문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레녹스가 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
더미트는 그런 이들의 모습을 돌아보다가, 루시어스에게서 손을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책상을 짚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역시 더미트도 일기를 쓰는 방법은 모르는 걸까.
루시어스가 한숨을 내쉬는데 그에게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푸흐, 흐흐흐…….”
“……더미트?”
“흡, 하하하하하!!”
더미트가 저택이 떠나가라 웃기 시작했다. 루시어스와 하멜, 그리고 레녹스까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웃긴 건지, 책상을 손으로 툭툭 두드리기까지 했다.
그가 저렇게 웃는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아니, 그 누구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심지어 더미트 자신도 저렇게 웃은 적은 없을 것이다.
더미트는 감정을 죽이는 것으로 힘을 얻는 종족, 샤먼이니까.
“하하하하하!”
대체 누가 믿을까.
지금 여기서 배가 찢어져라 웃고 있는 마족이 대장군 더미트 샤한이라는 사실을.
루시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더미트가 알아서 웃음을 멈추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건 하멜과 레녹스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하……. 아, 미안하다. 그래, 아들아. 일기를 어떻게 쓰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다 웃으셨어요?”
“심통 난 표정인데.”
“아니에요.”
“정말?”
“…….”
더미트가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수첩을 하나 꺼내 루시어스에게 넘겨주었다. 꽤 오래된 가죽 표지를 가진 수첩이었다. 루시어스가 그를 흘긋 곁눈질하고는 안을 펴보았다.
더미트의 일기였다.
“참고가 될지는 모르겠구나. 너도 알다시피 나는 샤먼이라, 그렇게 내용이 풍부하지는 않을 거란다.”
“일기를 쓰셨어요?”
“샤먼은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일기를 쓰는 경우가 많단다. 나를 죽이기 위해서는 나를 잘 알아야 하거든. 원한다면 주마. 찬찬히 읽어 보렴.”
“……중요한 거 아니에요? 받아도 되나요?”
“이제 내게는 필요 없단다. 일기를 쓰지 않은 지도 꽤 됐어.”
왠지 더미트의 비밀을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루시어스가 조금 주저하다가 수첩을 넣어 두었다.
받아 두기는 하겠지만, 당장 과제를 위해 그의 비밀을 훔쳐보고 싶지는 않았다.
더미트가 웃으며 루시어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기에는 정답이 없단다. 어떻게든 표현하기만 하면 그만이지. 친구들과 놀아서 즐거웠다. 그렇게 한 줄만 써도 그건 일기가 되는 거야.”
“하지만.”
“하지만은 없다.”
콩!
더미트가 손가락을 튕겨 루시어스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루시어스가 맞은 부분을 매만졌다.
“보고 느낀 걸 그대로 쓰렴. 그럼 아르놀트 선생도 잘 알아 줄 거란다.”
“……네.”
“그리고 레녹스.”
더미트의 부름에 레녹스가 뻣뻣하게 긴장해서는 대답했다.
“네!”
“무릇 기사란 주군과 함께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야 하지. 그런 과정에서 주군과의 유대가 돈독해 진단다.”
“……그 말씀은?”
“너도 마찬가지다. 일기를 써서 나한테 제출하렴. 보고 느낀 걸 솔직하게 써라. 설마 주군의 고생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겠지?”
레녹스가 루시어스를 한 번 흘긋 곁눈질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결국 둘이 나란히 머리를 싸매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의견까지 나누어 가며 몇 번이나 고쳐 쓰는 둘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흐뭇한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그렇게 방학이 지났다.
구스타프 제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