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64)
마족답게 사는 법-64화(64/385)
마족답게 사는 법 64화
064 대표 선발전 (4)
구스타프 제전의 꽃. 대항전을 위한 아카데미 반대표는 아카데미 선생님들의 내부 회의로 정해진다.
그리고 지금 그 대표를 정하는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학장이 말을 꺼냈다.
“개인전에 나갈 각 반 대표들의 명단은 잘 봤다. 그런데…….”
학장이 말끝을 흐렸다. 아르놀트가 학장의 눈치를 보았다.
루시어스에게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학장이 루시어스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루시어스가 직접 학장을 설득하겠다고 나서기는 했지만, 아르놀트는 웬만하면 그가 학장에게 밉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젠장. 대체 그 녀석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될 고생을 사서 하는 기분이다. 아르놀트가 내심 투덜거리는데, 학장이 말을 이었다.
올 것이 왔다.
“앱실론 네 번째 반의 대표는 이대로 진행되는 건가? 더 실력이 좋은 학생이 있다고 아는데.”
“……그것이.”
“대표 선발전에도 아르놀트 선생은 다른 학생을 추천했군. 혹시 그 학생이 출전을 탐탁지 않아하던가?”
“아닙니다. 영광스러워했으나, 신입생인 걸 생각하면 페어전 진출만으로도 만족한다며 자리를 사양했습니다.”
“흐음…….”
학장이 길게 침음했다.
무척이나 아쉬워하는 기색에 아르놀트가 긴장했다.
학장이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있기는 해도, 고위 마족으로서의 자존심이 있다. 만약 루시어스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하기라도 하면…….
꿀꺽.
마른침이 넘어갔다.
학장이 어떤 말을 해도 루시어스를 변호할 수 있도록, 아르놀트는 수십, 수백 가지의 대답을 준비해 왔다.
“그런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
“학생 본인의 의견은 최대한 존중해 줘야 하니 말일세. 나가줬으면 좋겠다는 건 내 욕심일 뿐이니까.”
허허. 학장이 웃으며 말했다. 아르놀트는 생각과는 다른 학장의 반응에 눈을 굴리다 그렇다며 긍정했다.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지.”
그가 손짓하자 회의를 진행하던 사회자가 아르놀트의 반응을 흘긋 살피고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후우…….”
아르놀트가 남몰래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별 일 없이 지나가서 다행스러웠다.
“다음으로는 대항전에 나갈 반에 대해서인데, 혹시 의견 있으신 선생님이 계실까요?”
선생들이 손을 들며 우수수 의견을 내놓았다.
“알파 클래스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부문을 준비하느라 바쁠 테니, 이번에도 베타 클래스에서 뽑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대항전이 가장 마지막에 치러지는 경기인 만큼 학생들의 소모도 심할 테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베타의 세 번째 반이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두 번째도 만만치 않아요. 단체전에서는 오히려 두 번째가 낫죠.”
선생님들의 의견이 베타 클래스 두 번째와 세 번째에서 나뉘었지만, 곧 두 번째로 의견이 모이는 분위기였다.
아르놀트가 손을 들었다.
대화를 나누던 선생들이 조용해졌다. 아르놀트의 선택이 대항전 대표를 정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앱실론 네 번째 반을 추천합니다.”
“……?”
“……네?”
그리고 그의 제안에 회의실에 정적과 함께 의문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알파나 베타 클래스에서 선발해 나가도 첫 경기에서 패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3, 4위전에서도 참패해 4위를 기록한 슬픔이 제대로 가시지도 않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신입생을 대항전 대표로 내보낸다고? 아무리 아르놀트 선생님의 담당 학급이라고 해도 너무 과한 처사였다.
물론 다들 그렇게 생각만 할뿐.
아무 이견도 내놓지 못했다.
단지 저 선생을 말려달라며 가만히 회의 내용을 듣고 있는 학장에게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선생들의 간절한 시선을 받는 학장은.
‘좋아. 잘 말했다, 아르놀트 선생.’
아주 기뻐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보통은 강한 학생 한 두 명의 존재가 대항전의 결과를 바꾸지는 않는다. 대항전은 한 반이 대부분 참가하게 되는 대규모 경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시어스는 달랐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 숫자 따위는 무의미하다. 당장 아카데미 하나를 상대해도 거뜬할 마족이 아니던가.
“그……, 학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르놀트 선생님께서 앱실론 네 번째 반을 대표로 내보내겠다고…….”
“아주 좋군.”
“역시 그렇…… 예?”
그에게서 예상과 다른 말이 나오자, 선생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학장에게서 동의의 의견이 나올 줄 몰랐던 아르놀트도 조금 놀란 듯 그를 바라보다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의견을 밀어붙였다.
“지금까지 알파나 베타 클래스에서 대항전 대표를 선발했다고 이번에도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신입생들의 저력을 기대해야 할 때입니다.”
“그, 그건 그렇지만요…….”
“아르놀트 선생님, 그래도…….”
“제 이름을 걸고 장담하죠. 앱실론 네 번째 반은, 명실상부 아카데미 최고의 반입니다.”
루시어스의 존재뿐만이 아니었다.
루시어스에게 영향을 받아, 네 번째 반의 학생들은 짧은 기간에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아르놀트는 진심이었다. 지금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앱실론 네 번째 반이, 여느 반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저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르놀트가 이름까지 걸며 이야기하니 이견을 내놓을 선생이 없었다. 학장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학장은 지금 내심 무척 만족하고 있었다.
루시어스가 아카데미 대표는 물론이고 개인전에도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어떻게 하면 대항전에 끌어들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콜록. 지금까지 아르놀트 선생님의 수업에서 만점을 받은 학급이 한 번도 없었죠?”
립톤이 웃으며 의견을 덧붙였다.
“그것만으로도 앱실론 네 번째 반의 실력은 증명된 것이 아닐까요?”
게다가 저번 시험에서 실전은 물론이고 이론 성적도 흠잡을 곳 없이 좋았다. 입학 시의 평균치와 비교해 보면 기함할 만한 성장이었다.
“게다가 신입생을 내보냈다고 하면 상대도 방심하겠죠. 콜록. 으음, 중요한 작전 중 하나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르놀트와 학장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선생들은 그런 그들의 눈치를 보다가 한숨을 작게 내쉬고 동의의 의미를 표했다.
아카데미에서 영향력이 제일 강하기는 해도 그걸 사적으로는 이용한 적이 없는 그들이다.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번 대항전에는 앱실론 네 번째 반을 내보내는 걸로 정하도록 하지.”
“이견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 * *
구스타프 제전의 첫날이 밝았다.
제전은 마왕성이 멀리 보이는 거대한 경기장에서 일주일에 걸쳐 진행되고, 페어전과 개인전, 대항전을 포함해 학술대회나 경연대회 같은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있었다.
많은 마족들은 물론이고 고위 네임드, 장로, 그리고 마왕까지 지켜보는 행사이니만큼 학생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경기장이 가장 잘 보이는 위쪽에는 옥좌가 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장로들의 자리 또한 준비되어 있었다.
우선 개막식에는 마왕과 1장로 마리엘라, 그리고 2장로 뤼디거가 참가했다. 3장로와 4장로, 5장로의 자리는 공석이었다.
물론 5장로가 공석인 이유는 당연히.
본인이 구스타프 제전에 나가기 때문이었다.
장로의 반 이상이 개막식에 불참해서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나왔다. 루시어스는 모른 척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지만.
마왕은 학생들을 내려다보며 옅게 웃었다. 멀리서도 루시어스를 한눈에 찾을 수 있었다.
“잠깐 안 본 사이에 루시어스가 많이 큰 것 같아. 그렇지 않나, 대장군?”
“어린아이들이야 잠시 눈을 떼면 훌쩍 크고는 하죠.”
“그렇지, 참 많이 컸어.”
분명 전에 말한 적이 있는데. 거짓말은 싫어한다고.
음, 그래도 저렇게 자신의 명령대로 정체를 열심히 숨기고 있는 걸 보면 참 귀여워 보이기는 한다.
만약 지금 마왕의 속마음을 루시어스가 알 수 있었다면 이를 아득바득 갈았을 테지만.
이번 제전이 루시어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기에 더욱.
마왕이 옅게 웃었다.
어서 빨리 개막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군.
옥좌에 앉아 느긋하게 생각하는데, 뒤쪽으로 익숙한 기척이 찾아와 고개를 숙였다.
“바알을 뵙습니다.”
“흐음. 그대가 여기에 올 줄은 몰랐는데.”
마왕은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로 말했다. 인사를 올렸던 마족, 타리크 라하위스가 고개를 숙인 채로 옅게 웃으며 답했다.
“한 번쯤은 얼굴을 비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막에서 여기까지 불편한 몸을 이끌고서라도 꾸역꾸역 기어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닌가?”
“……제가 전하의 심기를 해친 모양이군요.”
“타리크 라하위스.”
마왕의 낮은 어조에 타리크가 입을 꾹 다물었다.
엄청난 중압감이 몸을 짓눌렀다.
루시어스에게 당한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도 않은 터라, 마왕의 힘을 견뎌 낼 수가 없었다.
주륵.
결국 입 꼬리로 핏줄기가 흘렀다. 타리크가 넘어오는 핏물을 삼켰다.
제 입에서 나온 피로 어전을 더럽혔다가는, 잠시 후에 입이 아니라 목에서 나온 피가 어전을 빨갛게 물들일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내가 그대를 살려 두는 이유를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사막에 서식하는 스콜피온 족은 무척이나 배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마족의 지배를 받길 원하지 않는다.
현재 사막에는 타리크 외에 스콜피온 족을 다스릴 만한 마족이 딱히 없었다.
타리크는 지배자로서는 꽤 유능하여 주민으로부터 신뢰를 많이 얻고 있기도 했다. 루시어스가 타리크를 죽이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괜한 분쟁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마왕은 그런 루시어스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주려고 했다. 타리크를 가장 성가시게 생각하고 있는 루시어스가 그를 죽이지 않으면 그것으로 됐다고.
하지만 그 사실과는 별개로.
마왕은 그가 마음에 안 들었다.
이유는 참 간단했다. 마왕이 여전히 루시어스의 모습을 시선으로 쫓으며 가늘게 웃었다.
루시어스를 괴롭힐 수 있는 건.
‘나랑 마리뿐이거든.’
단지 그런 이유였다.
멀리서 눈이 마주쳤다.
루시어스는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지 잠시 주저하다가 눈인사하고는 휙 시선을 피해 버렸다.
마왕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웃고는 타리크에게 물러가라고 손짓했다. 타리크의 기척이 스르륵 물러나는 걸 느끼며 마왕이 왕좌에서 느긋하게 턱을 괴었다.
‘그런데 상태가 묘하군.’
회의 때부터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채고 있었다. 우리 귀여운 막내는 거짓말을 못 하니까.
하지만 그것 외에도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마왕이 더미트를 불렀다.
“대장군.”
“예.”
“루시어스한테 뭔가 따로 들은 건 없나?”
“들은 거라고 하심은……?”
“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다던가, 아니면 고민이 있다던가.”
마왕의 말에 더미트가 심각한 표정으로 아래에 있는 루시어스를 찾았다.
루시어스에게서 뭔가를 따로 들은 적은 없지만, 마왕이 그렇게 봤다면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더미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전하. 루시어스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좀 더 가까이에서 살펴봐야 알겠는데. 변화가 미미해서 확실히 파악하기가 힘들군.”
“루시어스…….”
“알아서 잘 해내겠지.”
마왕이 옅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구스타프 제전의 개회식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마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의 움직임에 자리에 있는 마족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제전을 개회하라!”
마왕의 선언과 함께 함성 소리가 울려 퍼지며 제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함성 속.
루시어스는 진한 낭패감을 느끼며 속으로 욕을 곱씹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마왕도, 그 옆에 있던 더미트나 타리크의 기운을 느꼈기 때문도 아니었다.
‘제기랄, 일 났군. 이러다 경기장이 날아가게 생겼어.’
아카데미의 체육관 벽이 뚫리는 정도가 아니다. 경기장은 물론이고 건물이 통째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다.
자신이 그런 미친 일을 벌일 것만 같다.
‘몸이 터질 것 같아.’
티포트가, 그 안에 있는 찻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넘쳐 버릴 것처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마력이 마구잡이로 날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