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75)
마족답게 사는 법-75화(75/385)
마족답게 사는 법 75화
075 어른의 욕심 (5)
“루시어스가 지금 의식이 없기는 한데 상당히 예민한 상태라서, 웬만하면 자극하지 않고 얼굴만 확인하고 가는 방향으로 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네, 충분히 숙지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인데요.”
더미트는 아르놀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카데미 복도를 가로질렀다.
루시어스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얼굴을 보러 달려가고 싶었지만, 마왕이 명령한 제전의 뒤처리를 거부할 수 없어 시간이 걸렸다.
마왕이 정식으로 루시어스를 만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진즉 아들의 얼굴을 보러 날아갔을 것이다.
그렇게 꼬박 만 하루 동안 제전의 뒤처리에만 매달려 있었더니, 마왕이 고생했다며 약속한 사이러스 방문허가와 함께 긴 휴가도 내어 주었다.
“그런데 루시어스가 얼마나 오래 자고 있는 거죠?”
“하루 정도 됐습니다. 날뛰는 마력을 제어하는 데에 온 신경을 쏟고 있기 때문이겠죠. 차라리 잠에 빠져듦으로서 체력과 정신력 낭비를 최소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들의 이변에 많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거라는 아르놀트의 예상과는 달리 더미트에게서는 동요를 찾아볼 수 없었다.
딱딱하고 건조한 눈동자는 샤먼의 그것 그대로였다.
아르놀트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참관 수업 때에도 그렇고, 아들이 드러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그의 행동을 보면 그 또한 아들을 무척 아끼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말을 꺼내도 괜찮지 않을까.
아르놀트가 더미트의 눈치를 흘금 보았다.
감히 멋대로 말을 꺼내도 괜찮은 건지 걱정이었다. 잘못하면 공사 구분을 못한다며 그가 불쾌해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시어스를 위해서다.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더미트 님. 더미트 님께서는 마왕군의 대장군을 맡고 계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혹시…… 7군단장이며 뛰어난 드루이드로 알려진 리브레 님께 루시어스를 보일 순 없을까요?”
더미트는 아르놀트의 물음에 그렇지 않아도 무표정했던 얼굴이 더욱 딱딱하게 변했다.
다만 아르놀트가 걱정했던 것처럼, 그가 공사 구분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루시어스의 상태가 그렇게나 심각해 보입니까?”
그런 이유였다.
뛰어난 선생인 그가 치유술로 명성이자자한 7군단장을 직접 언급해야 할 정도로 루시어스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일까?
물론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교내에 상주하고 있는 양호 선생의 힘으로는 루시어스에게 도움을 줄 수 없을 확률이 컸다.
평범한 학생도 아닌, 5장로의 3차 성장이다. 리브레 정도의 치료사가 아니면 손도 댈 수 없을 것이다.
더미트는 아르놀트의 오른팔로 살짝 시선을 돌렸다. 아르놀트가 몸을 움칫 떨며 오른팔을 그의 시야 뒤로 살짝 감추었다.
“그건…… 루시어스 때문인가요?”
“…….”
“그렇군요.”
그가 한숨을 작게 내쉬며 다시 설명했다.
“사실 루시어스가 저 상태가 되도록, 제대로 된 치료사에게 보이지 못했습니다. 루시어스가 쓰러졌을 때 간단하게나마 제가 진찰을 하려고 했는데.”
“오른팔이 그 지경이 됐고요.”
“네, 사이러스의 양호 선생님은 그 반발력을 이겨낼 수 없을 겁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아르놀트는 진심이었다. 학생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기 위해 충분히 설비를 구비해 놔야 하는 아카데미에서, 능력 부족으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이 사태가 무척 죄송스러웠다.
“그래서 가능하시면 대장군께서 7군단장을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으음…….”
“리브레 님이라면 분명 루시어스에게 도움을 주실 겁니다.”
더미트가 고민하듯이 침음하자 아르놀트가 재차 언급했다.
아르놀트는 더미트가 자신의 제안이 곤란스러워서 고민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더미트에게 리브레를 불러오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장로급 이상의 마족을 진찰하는 건 리브레의 주요 업무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래. 루시어스가 장로급이라는 데에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5장로의 3차 성장이다. 평범한 부상이라면 리브레의 마기에 큰 반발을 하지 않겠지만 성장통을 겪고 있는 루시어스의 마력이라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
리브레는 분명 아르놀트보다 강한 마족이지만 루시어스는 리브레보다, 그리고 자신보다도 훨씬 강한 마족이었다.
아마 아르놀트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래도 뭔가 도움이 된다면.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꺼내 보도록 하지요.”
더미트에게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자 아르놀트의 안색이 확 폈다. 크게 안도한 눈빛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아들에게 신경 써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지요.”
루시어스의 보호자가 대장군이라 다행이다. 아르놀트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껏 가벼워진 발걸음을 옮겼다.
반면 더미트는 방으로 가는 복도를 걸으며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말만 아버지지, 해 줄 수 있는 게 없구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해도, 지금 루시어스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이 없었다. 고작 이렇게 얼굴을 보러 가는 것밖에는.
생각해 보면 루시어스는 지금까지 알아서 잘 커왔다.
어렸을 때부터 쭉 알아서 잘 커 왔다. 마리엘라가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 거냐고 호통을 칠 만큼,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사실 더미트는 자신의 아이에게 뭘 해 줘야 하는지 잘 몰랐다. 뭔가를 해 주려고 찾아본 적도 있지만, 루시어스에게는 이미 필요 없는 것들뿐이었다.
‘벌써 3차 성장이라니.’
더미트는 루시어스가 아카데미에 다니는 일상이 너무나도 좋았다.
무엇보다 아카데미에 다니게 되면서 자신이 조금이라도 루시어스의 보호자 노릇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기뻤다.
지금까지는 제대로 해 준 게 없었으니까.
친구 관계에 대한 고민을 들어 주기도 하고, 참관 수업에 가 보기도 하고, 일기를 쓰느라 진땀을 빼는 아들을 보기도 하고.
그래서 내심 기뻤는데.
‘네 어린 시절의 마지막까지 나는 여전하구나.’
아이는 눈 깜빡 움직이는 사이에 쑥 성장해서 성큼성큼, 믿기지도 않는 속도로 자신의 길을 향해 달려 나가 버리는데.
나는 여전히 어렸던 아들이 천천히 걸어 다니던 그 자리에 서 있구나.
입 안이 무척이나 씁쓸해졌다.
더미트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았다. 문을 열고 보일 루시어스의 모습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들어가시죠.”
아르놀트의 말에 문 앞에서 잠시 주저하던 그가 결국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그리고 방 안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목소리가 자신을 불렀다
“더미트?”
“루, 루시어스……!!”
방으로 들어가던 더미트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아들, 루시어스가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더미트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루시어스의 두 뺨을 잡았다. 그리고는 여기저기를 매만지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직 조금 미열이 있는 것 같지만 전해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무척 정상적인 몸 상태였다.
성장이 끝났나?
더미트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뻐끔였다. 루시어스가 옅게 웃었다.
“저 보러 오셨어요?”
“그, 그럼. 와야지.”
루시어스의 물음에 더미트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답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억지로 고통을 참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하지만 3차 성장을 마쳤다고 하기엔 루시어스의 외모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정말 조금의 변화도 없이 그대로였다.
“루시어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몸은 좀 어떻고.”
더미트와 아르놀트가 서로 루시어스에게 상태를 물었다. 루시어스가 작게 웃으며 다시 손을 쥐락펴락 움직였다.
몸이 조금 무겁고 찌뿌둥하기는 하지만, 전과는 같은 고통이 없다.
오히려 상쾌할 정도다.
다만.
창문으로 비춰 보이는 제 모습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게 루시어스로서도 조금 의문이기는 했다. 3차 성장이 끝나면 외모부터 눈에 띄게 바뀐다고 알고 있는데.
“어때요? 성장한 것처럼 보이나요?”
“……아니.”
아르놀트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루시어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은 때가 아닌가 봐요.”
“…….”
“더미트.”
“……그래.”
“아무래도 조금 더 저를 돌봐 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그래. 그래, 루시어스.”
더미트가 자신의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다 루시어스를 와락 껴안고 어깨에 고개를 깊게 숙였다. 어깨가 가느다랗게 떨리기 시작했다.
루시어스는 저보다 훨씬 큰 덩치의 더미트를 마주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고맙다.”
“……더미트.”
“내게 기회를 줘서, 너무나도 고맙구나.”
아직 아버지가 될 기회가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무사해서 다행이야.
아들이 성장하지 못했는데, 그 사실이 너무나도 아쉬워야 할 텐데 왜 이렇게 안심이 되는 걸까.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고민했던 순간순간들은 모두 거짓이었을까.
더미트는 사실 루시어스가 성장하지 않기를 바랐다.
아직 자신이 아버지로서 해 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아직 루시어스와 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루시어스…….”
더미트의 목소리가 소리 없는 울음과 함께 떨렸다.
와이셔츠의 어깨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젖어들기 시작했다.
실내라 비도 올 일이 없는데.
아주 조금씩 물기에 젖었다.
마음이란 참 신기하다. 더미트의 눈물 때문인지 자신의 마음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옅은 파도에 젖어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뭔가가 스르륵 무너져 간다.
루시어스가 눈을 가볍게 감고 더미트의 등을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더미트.”
“…….”
“괜찮아요, 저는 괜찮아요.”
“…….”
“더미트는 정말 좋은 아버지에요.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아버지.”
* * *
“네에? 그게 성장이 아니었다고요?”
“그냥 열병이래.”
레이얼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루시어스는 태연하게 레이얼에게 거짓말을 하며 찻잔을 기울였다.
하지만 레이얼에게 바른대로 성장통을 겪었지만 성장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조차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마족들은 3차 성장에 실패하면 죽음을 맞이했다. 루시어스처럼 멀쩡히 살아있는 경우가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평범하게 열병이 났다고 하는 편이 나았다.
어린 마족이나 마수들이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열병이 나는 경우가 간간히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도 열 때문에 드러눕기나 하지, 외부로 힘이 방출되는 경우는 없지만.
어쨌든 3차 성장통을 겪고 나서, 성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살아 있다는 마계 최초의 기현상을 설명하는 것보다는 편하고 쉬웠다.
물론 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레녹스나 아르놀트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이마를 짚었고, 하멜은 역시 주인은 자신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전하와 마리 누님은…….
전해들은 바로는 꽤 즐거워하셨다는 모양이다.
설마 알음알음 소문이 퍼지진 않겠지? 차를 마시던 루시어스가 걱정스러운 한숨을 후우 내뱉었다.
아무튼 듣자하니 제전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아 다행이었다. 끝까지 아이들의 활약을 지켜볼 수 없었던 건 아쉽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
‘아르놀트 선생의 팔…….’
도플갱어의 치유력으로도 한 달 정도는 요양해야 할 정도의 부상을 입고 있더라.
범인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서, 루시어스는 오히려 그의 부상에 대해 묻지 않았다. 괜히 캐물어 봤다가 일만 커질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부상을 안긴 약간의 책임감도 책임감이지만.
‘……왜 아무 말도 없지?’
무엇보다 루시어스는 아르놀트가 제게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고 불안했다.
이 정도면 대체 정체가 뭐냐고 물어볼 법도 하지 않나.
설마 이미 5장로라는 사실을 들켰나?
아니면 레녹스처럼 되도 않는 오해를 하고 있나?
‘젠장, 대체 어느 쪽이야.’
루시어스가 찻잔을 내려놓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난생 처음으로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이런 거북한 감정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