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79)
마족답게 사는 법-79화(79/385)
마족답게 사는 법 79화
079 스승의 날 (4)
“오냐, 나 왔다.”
아르놀트가 저를 반기는 루시어스에게 답해 주었다. 노을을 즐기는 듯 하늘의 풍경을 눈에 담는 루시어스를 바라보던 그가 루시어스의 머리를 툭, 쓰다듬으며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들으라는 듯 한숨을 푸우욱, 내쉬었다.
옆에서 작게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슬쩍 시선을 돌리자 루시어스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맴돌고 있었다.
머쓱하게 뺨을 긁적인 그가 노을로 시선을 돌렸다. 높은 곳에서 보는 탁 트인 하늘을 아르놀트도 참 좋아했다.
“…….”
“…….”
둘은 짧게 흐르는 정적을 즐겼다. 아르놀트는 그 정적이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을 정리하고 할 말을 고를 수 있어 좋았다.
사실 그는 반 학생 중 유일하게 루시어스만은 어디 숨어 있을지 바로 짐작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루시어스는 항상 상황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제일 높은 곳에서 학생들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당연히 그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카데미에서 가장 높은 곳을 찾아왔다.
다른 학생들을 먼저 찾아서 반에 넣어 둔 건,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이 스승의 날의 여운을 즐기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자신은 루시어스와 나눌 대화가 남아있기도 했고.
‘축제 이후로는 처음인가.’
오른팔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한 때 네임드였다는 명성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그가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루시어스.”
“선생님.”
둘이 동시에 서로를 불렀다. 조금 놀란 표정의 루시어스를 바라보던 아르놀트가 선수를 루시어스에게 양보했다.
“먼저 말해라.”
“……팔은 괜찮으세요?”
양보를 받은 루시어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히 아는 척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이니 먼저 확실히 말해 두고 싶었다.
“죄송해요. 고의는 아니었어요.”
“죄송하긴. 아무렇지도 않다.”
아르놀트가 콧방귀를 흥 뀌며 대답했다.
루시어스가 요즘 저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약간 변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닌 척 눈치도 꽤 많이 봤고, 걱정스러운 시선도 많이 던졌다.
특히 제 오른팔을 자주 보고 있더라.
괜히 신경 쓰게 할까 봐 말하지 않았었는데 루시어스만큼 태연하게 평소처럼 팔을 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완전히 회복하려면 2주 정도는 더 필요했다.
실력을 숨기는 건 쉽다. 기운을 죽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상 사실을 숨기는 건 어렵다. 고통을 참아가며 몸을 위화감 없이 움직이는 건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니까.
‘성장통의 양상도 이례적이었지만 루시어스는…….’
자신의 오른팔을 이만큼이나 파괴한 그 힘. 잠시 엿봤던 격렬하고 거대한 마력.
분명 평범한 마족의 힘이 아니었다.
3차 성장 중이라 마력이 날뛰고 있었다는 걸 감안해도 가공할 만한 힘이었다.
당시에는 루시어스에게 자신이 책임질 테니 얌전히 방에서 자라고 말하긴 했다. 하지만 만약 그때 마력이 그대로 폭주 상태에 접어들며 주변을 파괴하기 시작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
장담할 수 없었다.
아마 높은 확률로 오른손뿐만이 아닌 몸 전체를 못 쓰게 될 만큼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아르놀트의 뇌리에는 한 마족의 이름이 스쳐 지나갔었다.
10년 전에 천년 마수를 굴복시키고 2년 전에 장로직에 올랐다는 마계의 다섯 장로 중 하나.
5장로 루시어스.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루시어스 켄드릭.”
“말씀하세요.”
“……이 깜찍한 선물은 너랑 레이얼의 아이디어지?”
루시어스에게 질문을 하기 전 아르놀트는 아주 잠깐 고민했다.
당신이 5장로입니까?
당장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허황된 추측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도 루시어스라면 그 질문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것만 같았다.
이미 이해하지 못할 만한 일들이 그의 주변에 잔뜩 일어났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르놀트는 결국 말을 삼키고 질문을 거두었다.
마계의 장로가 이런 어린아이일 리가 없지. 성년도 되지 않은 마족이 장로급의 힘을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지.
아니, 그런 이유보다.
정말 루시어스가 장로라 한들 어떻단 말인가.
루시어스는 사이러스의 아카데미의 신입생이며,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네 번째 반의 일원이다.
내 학생이다.
단지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덕분에 꽤 고생했다. 네 녀석들 찾느라 내가 얼마나 동분서주했는지는 여기서 봤으니 아주 잘 알겠지?”
“…….”
“아무튼, 똑똑한 놈들을 담당 학생으로 두면 참 피곤하다니까.”
아르놀트는 열에 시달리던 루시어스가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당장 달려들어 공격해도 이상하지 않던, 아주 날카롭게 벼려진 루시어스의 기운을 알고 있다.
그랬던 그가 무너지듯 누그러지던 순간도.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너까지 잘 찾아냈으니 여기서 좀 쉬다 가야겠다. 잠깐 어울려 줘라.”
“좋아요. 그나저나 다행이네요. ‘못 찾겠다, 꾀꼬리.’라고 외치지 않으셔도 돼서.”
“아아, 그거 말인데. 대체 누구 작품이냐? 보자마자 확 불타오르더라.”
“쿡쿡.”
루시어스가 아르놀트와 대화를 나누며 작게 웃었다.
스승의 날을 기념해 아이들이 얼마나 들떴었는지, 회의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왔었는지, 그 쪽지의 도발적인 언사는 누구 실력인지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루시어스는 이야기를 나누며 아르놀트의 오른팔을 곁눈질했다.
‘회복하려면 최소 2주인가.’
도플갱어의 치유력으로도 2주가 걸릴 정도면 꽤 큰 부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순히 뼈가 뚝 부러지는 게 아니라 뼈가 으스러지고 근육 섬유가 하나하나 갈가리 찢어지며 팔부터 어깨까지의 마력회로가 몽땅 뒤엉키고 파괴되었을 것이다.
팔이라는 형태만 남겨져 있었겠지.
당시의 통증도 이만저만하지 않았을 것이다. 레녹스에게 들어 보니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않았던 모양인데.
아마 자신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이를 꽉 다물었을 것이다.
‘뭔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루시어스는 아르놀트가 제게 자신의 정체에 관한 무언가를 물어볼 줄 알았다. 그걸 편하게 묻기 위한 장소와 시간을 이렇게 마련해 주기도 했다.
물론 어떤 대답을 할지도 모두 준비해 왔다.
하지만 아르놀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이번 선물을 누가 어떻게 준비했는지 대화를 나눴을 뿐이다.
그답다면 참 그다운 처사였다.
“선생님.”
“왜.”
“오늘 즐거우셨나요?”
“……그래.”
루시어스의 물음에 아르놀트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붉은 하늘에 내리는 아득한 보랏빛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뒤로 드러누우며 외쳤다.
“덕분에 질리게 놀았다, 이 꼬맹아!”
마계의 별이 드리우는 밤사이로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한참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옆에서 루시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마워요, 선생님.”
“…….”
아르놀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웃었을 뿐이다.
* * *
“그런 일이 있었어요.”
업무를 돌보기 위해 잠시 아카데미를 빠져나온 루시어스는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스승의 날에 있었던 일들을 더미트에게 얘기해 주고 있었다.
더미트는 루시어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척 즐거운 표정으로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랬구나, 즐거웠겠어.”
“네, 아르놀트 선생도 참 대단했고요.”
그런 더미트를 바라보는 루시어스는, 요즘 조금씩 보이는 그의 감정 표현이 참 달가웠다.
아버지인 더미트는 샤먼 일족인지라 거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것이 샤먼들의 중요한 덕목이기도 했다. 루시어스는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웠지만, 아들로서는 조금 아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즘 더미트는 감정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속으로 삭이거나, 억누르거나, 그저 무던해지려고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다며 반가워해 줬고, 이야기를 들으며 웃어 주며 즐거워 해 줬고, 성장에 실패했지만, 문제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안심을 해 주었다.
아직 표정 근육이 뻣뻣이 굳어 있기는 하지만, 그는 확실히 전과 달라졌다. 루시어스는 그런 아버지의 변화가 참 기꺼웠다.
“하멜, 그러고 보니 너도 선생이었지?”
“……예? 아, 네. 그랬죠.”
“어땠어? 꽤 즐거운 하루가 되었을 것 같은데.”
“하아, 말도 마십시오.”
질문을 듣자마자 하멜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하멜도 만만치 않게 시달린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마수학 선생님의 실력이 의외로 장난 아니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모양이던데.
하멜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루시어스에게 말을 꺼냈다.
“이 기회에 확실히 해 둬야겠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꽤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도 하고요.”
“음.”
“제가 얼마나 힘을 써도 될까요?”
“그렇군. 확실히 해 두는 편이 낫겠지.”
톡, 톡, 톡.
루시어스가 펜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고민에 빠졌다. 사실 마수학 선생이 힘을 쓸 일이 얼마나 있으랴 싶었다. 그는 이론을 전문으로 하는 선생님이었으니까.
하지만 언제든 만약의 일이 벌어질 수 있는 법이다. 기준은 확실하게 정해 두는 편이 좋다.
“아르놀트 선생님과 열 합 만에 패배할 정도의 실력이면 되겠군.”
“고작 그 정도입니까?”
“그보다 강하면 눈에 띄어. 아르놀트의 입지를 생각해 봐라.”
“그것도…… 그렇긴 하지요. 알겠습니다.”
사이러스에서 학장을 제외하면 아르놀트가 가장 강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온갖 실전 수업이나 교내 커리큘럼을 총괄하며 아카데미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하멜이 그보다 강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아르놀트의 입지가 흔들리게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입학 때문에 선생이 된 하멜이 그의 입지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
하멜은 조금 불만스러워도 납득은 한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푹 내쉰 그가 작은 불평을 내뱉었다.
“스승의 날이 그런 날인 줄 아셨으면 귀띔이라도 해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많이 곤혹스러웠나 보지?”
“당일 아침에 교무 회의를 열어서는 얼마나 심각한 표정들을 짓던지, 대화를 따라가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립톤 선생이 아니었으면…….”
“립톤 선생?”
“네, 이번에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립톤 선생에 대해서는 좀 더 확실해지면 보고하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아직 뭔가를 보고할 단계는 아닌 건가. 하멜이라면 알아서 할 테니 걱정은 없다.
고개를 끄덕이자 더미트가 물었다.
“루시어스, 앞으로 학사 일정이 어떻게 되니?”
“음…… 알기로는 이제 평범하게 수업을 하다가 학기 말에 시험을 볼 거예요. 앱실론이니까 성적에 상관없이 델타 클래스로 자동 승급될 거고요.”
“그러니? 남은 학기도 참 즐겁겠구나.”
“……?”
의미심장한 미소가 눈매에 은은히 감돌았다. 루시어스가 그를 바라보며 의아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왠지 심상치 않았다.
루시어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더미트. 혹시 뭔가 숨기고 있어요?”
“글쎄? 내가 그럴 리 있겠니?”
그렇게 대답하는 더미트의 표정이 여전히 예사롭지 않았다. 뭔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루시어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하지만 더미트는 알려 줄 생각이 없는 듯, 아예 루시어스에게서 시선을 떼고 일에 집중했다.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