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80)
마족답게 사는 법-80화(80/385)
마족답게 사는 법 80화
080 사령의 집 (1)
“요즘 학교생활은 어때?”
이제는 너무 자연스러운 손길로 자신의 머리를 묶고 있던 레녹스에게 루시어스가 물었다.
그 말에 레녹스의 손이 잠시 멈췄다.
확실히 루시어스를 만나기 전후로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는 했다. 가장 많이 달라진 건 자신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날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전에는 시선에 적대감이나 혐오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뭇 다른 느낌의 시선을 받는다. 대표 선발전이나, 이어지는 제전에서 보였던 모습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지러울 정도로 몰아닥치던, 멀미가 날 정도로 무시당하던 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리고 그녀, 로벨리와는.
“……로벨리에게는 간간이 인사를 건네곤 해. 로벨리는 내가 불편한 것 같지만.”
“그렇겠지.”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아직은 시간이 필요해. 하지만 적어도 전과 같지는 않다. 난 그것만으로도 만족해. 네 덕분이다.”
거울 너머로 보이는 레녹스의 표정이 무척 온화했다.
루시어스가 옅게 웃었다. 제전동안 비몽사몽한 상태로 다니느라 미처 레녹스를 돌봐 주지 못했는데, 혼자서도 잘 극복해 낸 것 같아 다행이었다.
머리를 가지런히 묶은 레녹스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뗐다.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한 번 살피던 루시어스가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매일 아침마다 거추장스러운데, 확 잘라 버릴까?
지금까지는 더미트나 하멜이 수발을 들어 줘서 불편함을 못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기숙사에 와서 지내보니 번거로운 점이 많았다.
루시어스가 불만스럽게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레녹스가 그런 루시어스를 흘긋 곁눈질하고는 말했다.
“루시어스, 네가 머리를 자르는 건 자유지만.”
“……눈치도 빠르네.”
“마리엘라 님께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 젠장.
머리를 자른 모습을 발견하고는 실망하다 못해 누가 우리 애를 이렇게 만들었냐며 분노할 마리엘라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루시어스가 혀를 가볍게 찼다.
아쉬운 기색으로 단념하는 루시어스를 바라보며 미소 짓던 레녹스가 문득 구스타프에서 만났던 마족, 타리크에 대해 상기했다.
그러고 보니 경황이 없어 그와 만났다는 사실을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다.
제게 적대감을 내비쳤던 걸 생각하면 둘이 아는 사이인 것 같은데.
러드에서 루시어스가 그만한 난리를 쳤던 걸 생각하면 모르는 게 이상하기도 하겠다.
게다가 루시어스가 쓰러지는 순간에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도 이해가 안 가기는 한다.
일반 참관객인 그의 대기실은 거기서 한참 먼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시어스의 상태를 알고 일부러 지켜보고 있던 게 아닌 이상은.
혹시 모르니 알아 두는 게 좋겠지. 레녹스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텄다.
“루시어스, 혹시 타리크 경과 아는 사이인가?”
“타리크 경?”
“러드의 타리크 라하위스 말이야.”
“……왜? 혹시 만났나?”
루시어스의 미간이 드물게 일그러졌다. 이만큼이나 루시어스가 노골적으로 적의를 표하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레녹스가 조금 당황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만난 건 아니고…….”
“아니고?”
“구스다프에서 스쳐 지나가듯 봤다. 근데 조금 느낌이 안 좋았거든.”
추궁하는 듯한 시선이 떨어져 나갔다. 루시어스가 한숨을 작지만 길게 내쉬며 말했다.
“노파심에 말해 두는데,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니까 웬만하면 엮이지 마라. 그놈이랑은 좀 사정이 있어서 사이가 좋지 않거든.”
“알겠다.”
“마주치면 바로 하멜이나 나를 불러라. 절대 둘만 있지는 말고.”
레녹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어스가 저렇게 단단히 충고를 할 정도면 정말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주제를 알라고 했었지.’
보통 싫어하는 상대의 파트너에게 그런 말을 하나?
사정이라는 게 뭘까.
루시어스가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잠시 고민하던 그가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쳤다.
타리크의 속내가 어떻던, 자신은 루시어스의 뜻을 따르면 될 뿐이었다.
“수업에 늦겠군. 슬슬 출발할까?”
“그러지.”
루시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옷매무새를 마지막으로 정리했다.
‘레녹스가 굳이 타리크 이야기를 꺼내진 않을 텐데.’
그냥 스쳐 지나갔을 뿐이면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았겠지. 분명 자신이 정신을 잃었을 때 타리크와 어떤 접촉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타리크의 모습을 봤던 것 같은 건, 역시 기분 탓이 아니었나?
당시에 시야가 워낙 흐렸던 탓에 그를 봤다고 단언할 수 없어서 잠시 묻어 뒀었는데.
‘그래도 별일은 없던 모양이니까.’
지금 타리크는 부상을 입은 와중이라 레녹스에게 큰 힘을 행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번에도 그런 요행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니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럼 수업 잘 들어라. 방과 후에 오지.”
“그래.”
루시어스가 레녹스의 배웅을 받으며 반으로 갔다.
오늘은 아르놀트의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스승의 날 이후로는 처음인데, 그가 어떤 수업을 준비했을지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그러고 보니 저택으로 돌아갔을 때 더미트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는데. 학사 일정을 물어보고, 남은 학기도 즐겁겠다고 하고…….
하지만 하멜에게 전달 받기로도 그랬고, 남은 학기에는 정말 평범한 수업이나 시험밖에 남지 않았다.
설마 전하께서 또 쳐들어올 만한 뭔가가 남아 있나?
‘그런 거였다면 더미트도 곤란한 기색이었을 거야.’
고민하던 루시어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아들의 남은 학기를 평범하게 격려 했던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들이 한 명씩 아침인사를 건넸다. 루시어스가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받아 주었다. 자리에 가서 앉자 마침 아르놀트가 들어왔다.
“녀석들아, 항상 너희를 생각하는 참된 선생님인 아르놀트가 왔다.”
“와…… 선생님, 본인 입으로 그런 말하기 부끄럽지 않으세요?”
“스승의 날에 제법 재미있으셨나 본데.”
수군수군.
아이들이 아르놀트를 놀리는 듯 목소리를 키워 웅성거렸다.
아르놀트가 피식 웃곤 교탁을 몇 번 두드려서 주의를 환기했다.
“아무튼 한 마디를 안 지려고 한다니까. 누굴 닮아 가는지.”
“히히히.”
“자, 오늘 수업은 대강당에서 진행된다. 모두 거기로 이동하도록.”
“네!!”
대강당은 빌리기 어렵다고 불평하더니, 역시 뭔가를 열심히 준비한 모양이다.
아르놀트도 무척 들뜬 표정이었고, 학생들도 그의 수업이 기대되는지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 *
학생들이 대강당에 모였다.
정확히는 대강당 문 앞에 나란히 모여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루시어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강당 문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스스스…….
기이한 기운이 문 너머에서 느껴진다. 루시어스는 이 기운을 꽤 잘 알고 있었다.
‘사기.’
하지만 위협적이지는 않은 정도였다. 농도가 낮고 잘 정제되어 있는 걸 보니, 수준급의 샤먼이 사령을 부릴 때 발산되는 기운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궁금한 건 그 ‘수준급의 샤먼’이 누구냐는 건데.
사령이라고 하니 문득 루시어스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바로 더미트였다.
얼마 전 대화를 나눴던 더미트가 말없이 빙긋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그래도 설마.
마왕군의 최고 직위중 하나인 대장군을 맡고 있는 더미트가 설마 이런 어린애들 수업에 참여를 할리가 없지…….
‘……없겠지?’
고민하는 와중에 아르놀트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르놀트가 빙긋 눈웃음 지었다.
그가 수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 제군도 알다시피 여긴 대강당이다. 오늘의 수업은 간단하다. 대강당 문을 열고 들어가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물건을 가지고 도착 지점에 다다르기만 하면 돼.”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물건이요?”
“도착하면 뭔지 딱 보일 거다. 물건은 학생 수 만큼 준비되어 있고, 개수에 따라 차등 평가하지는 않을 테니 마음 놓고 하나씩만 가지고 도착하면 된다.”
그렇다는 건, 팀플레이를 하던 개인전을 하던 본인의 선택이라는 말이었다.
방울이 준비되어 있다면 모두 힘을 합쳐서 도착 지점에 다다르는 게 편하고 빠른 방법일 것이다.
아르놀트가 덧붙였다.
“이번 수업은 주어진 과제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이 목표다. 또한.”
그의 입꼬리가 빙그르르 위로 올라갔다. 동시에.
터벅, 터벅, 터벅.
문 뒤편에서 뭔가의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뼛조각이 부딪치는 것처럼 달각거리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학생들이 흠칫 떨며 대강당을 바라보았다.
으우우우우. 으으으으으.
“헉……!”
“이게 무슨 소리야?”
“사령들의 울음소리 같은데.”
걸음소리에 그치지 않고 스산한 울음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했는데…….
루시어스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도움을 받은 샤먼이 누구인지 알아챘다.
이번 수업은 아르놀트와 더미트의 합작품이었다.
아르놀트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위해서 스승의 날을 열심히 준비한 너희들을 위해, 나도 깜짝 선물을 준비해 봤단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말하며 웃는 아르놀트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오들오들 떨었다.
“아참, 그래도 내 선물을 만나고 싶지 않으면 아주 조심스럽게 다니면 된단다.”
그래도 아르놀트는 학생들을 위해서 친절한 힌트를 하나 남겨 주었다.
기척을 죽이고 다니면 충돌할 일이 없다는 의미의 힌트나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대강당의 문 앞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아르놀트에게 물었다.
“서, 선생님. 저희 정말 가나요?”
“당연하지. 너희를 위해 준비한 수업인데.”
얼른 들어가라는 듯 손짓했지만, 대부분 학생은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지 주저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리누슈카가 성큼 걸어가 문을 활짝 열었다.
마치 동굴처럼 어두운 길이 쭉 뻗어 있었다. 차갑고 스산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가자.”
“그, 그래. 여기 계속 있으면 뭐 하겠어.”
아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나란히 줄지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르놀트의 입가가 씨익 올라갔다.
쿠우웅……!
문이 닫혔다.
흠칫 몸을 떨며 뒤를 돌아보던 학생들이 다시 앞을 바라보며 한 발자국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 때문인지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내부는 완전히 동굴 같은 모양새였다. 그것도 꽤 복잡한 미로처럼 보였다.
루시어스가 벽을 한 번 쓰다듬어 보았다. 매끈하고 차가운 돌의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
‘꽤 잘 만들었네.’
바깥보다 약간 낮은 온도 때문인지 대강당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정말 동굴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똑, 똑, 똑.
퍼드더더덕!
휘이이이잉.
어디선가 물이 떨어지고, 새가 날아오르고, 바람이 부는 것 같은 음산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게 아이들에게는 꽤 무섭게 느껴지나 보다.
루시어스가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제 뒤에 몸을 숨긴 채 달달 떨고 있는 훌른과 베른이 시선을 마주치더니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허어어, 루시어스으……!”
“젠장! 무서워 죽겠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코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루시어스가 둘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훌른, 베른. 너무 어두우니 길을 좀 밝혀 줄래?”
“으…… 으응.”
“훌쩍.”
랜턴 일족의 빛은 상당히 다양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인위적으로 어둠이 깔린 곳에서도 그들의 빛이 있으면 앞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랜턴 주변으로 탐색을 할 수도 있고, 어느 정도의 정화 작용도 가지고 있어 언데드나 사령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
일반적인 횃불이나 발광 마법으로는 불가능한 힘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랜턴 일족은 유독 언데드나 사령, 그리고 어둠을 무서워했다.
오죽했으면 어둠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학설이 있을 정도였다.
위습 일족인 에스프는 주변 온도가 너무 낮은 것 같다며, 작은 불들을 소환해 주변을 밝히고 체온을 조금 올려 주려고 했다. 그러던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 사령이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네.”
“흐아악! 그런 말 하지 마!”
베른이 에스프에게 매달려 주먹으로 그를 가볍게 퍽퍽 때렸다. 에스프가 푸하하 웃으며 미안하다고 베른을 다독였다.
루시어스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걸음을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따라오던 레이얼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무슨 일이에요?”
이런.
상대가 더미트인데, 아무래도 조금 방심했나보다.
“애들이 몇 명 사라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