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83)
마족답게 사는 법-83화(83/385)
마족답게 사는 법 83화
083 사령의 집 (4)
레이얼과 키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돌계단처럼 꾸며져 있었지만, 아마 단상 위로 올라가는 계단일 것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그곳의 벽에 수많은 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방울은 총 스무 개.
네 번째 반 학생의 수와 같았다.
레이얼이 방울을 하나 톡 건드려 보았다. 딸랑, 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음…… 이걸 가지고 있으면 언데드들의 공격을 피할 순 없겠네요.”
“그럴 것 같군. 게다가 사령들은 방울 소리에 이끌린다고 하니.”
“네, 아마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게 될 거예요.”
그가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아르놀트는 ‘전투를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고려하지 않은 수업을 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수업의 목표를 깔끔하게 달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우선은 다른 아이들을 찾으러 가야 하나?’
선생님이 원하는 물건이 방울이라는 사실은 알았다. 그러니 이제 미로의 길이 바뀌는 바람에 뿔뿔이 흩어지게 된 아이들을 찾으러 갈 때였다.
다만 이 방울을 가지고 가야 하는지, 아니면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여기로 돌아와야 하는 건지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출구에 대한 답이 좀 더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물건을 가지고 ‘돌아오라’고는 안 하셨죠?”
“그랬던 것 같아. 그리고 레이얼.”
“네?”
“여기서 바깥 냄새가 많이 난다.”
“냄새요?”
“어딘가 이어진 곳이 있을 것 같아.”
레이얼이 킁킁, 냄새를 맡아보았다. 키안다운 후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터라 그의 말처럼 뭔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대신 레이얼은 바람의 정령을 불러냈다. 그러고는 한 번 바람을 일으켜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바깥으로 연결된 곳이 없는지 찾았다.
키안의 후각은 항상 정확하니까.
“이쪽?”
작은 정령이 위쪽을 가리켰다. 레이얼이 정령을 따라 천장을 응시했다. 대강당답게 천장은 매우 높았다.
하지만. 동시에 대강당 치고는 약간 낮은 높이었다.
‘위, 위…… 아!’
그렇구나.
돌아갈 필요가 없는 거였어!
레이얼이 활짝 웃으며 키안에게로 다가갔다.
“출구를 찾았어요. 이제 애들을 찾으러 가요!”
“위쪽인가?”
“네, 방울을 가지고 천장을 뚫으면 될 것 같아요. 아마 천장 위가 아르놀트 선생님께서 말한 ‘목표 지점’일 거예요. 위에서 미로 속에 갇힌 학생들을 지켜보시고 계시는 게 아닐까요?”
“좋아. 그럼 가자.”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뒤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답이다.”
“……!!”
* * *
라타트리아는 생각보다 더 빨리 안정을 되찾았다. 정확히는 다른 것에 시선을 빼앗겨 무서워할 틈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루시어스가 천천히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끝에서 뻗어나간 줄기가 복도 벽을 덮으며 초롱꽃을 피웠다. 아래로 고개를 숙인 초롱에서 옅은 푸른 색 빛이 퍼졌다.
마치 바다 속에 풍덩 빠져든 것 같았다. 수면에 비추는 햇살도 이만큼 밝고 아름답지는 않을 것이다.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라타트리아는 두 눈에 그 광경을 가만히 담았다.
히끅, 히끅.
간헐적으로 떨리던 몸도 어느새 진정되었다. 여전히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있는 손길을 느낀 라타트리아가 가만히 루시어스를 올려다보았다.
루시어스가 그제야 라타트리아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좀 진정했나?”
“찌이……. 미안하다, 찌. 수업인 걸 알고는 있는데 너무 무서워서……. 시끄럽게 했찌?”
“괜찮다. 그럴 수도 있지.”
“……정말 예쁘다찌.”
가만히 루시어스를 바라보던 라타트리아가 말했다. 다시 앞을 바라보며 걷던 루시어스가 흘긋, 라타트리아를 곁눈질했다.
“이 꽃들은 뭐냐찌? 라티는 이런 식물이 있는 것도 잘 몰랐다찌.”
“파뉼라라고 불리는 꽃이다. 깊은 동굴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식물이지. 꽃이 만개했을 때만 이렇게 빛을 내뿜어.”
“그렇구나찌……. 루시어찌는 정말 대단하다찌. 못하는 게 없는 것 같다찌.”
“그래 보이나?”
끄덕끄덕.
라타트리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동굴 속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루시어스의 품속에서 폴짝 뛰어 내려갔다.
다시금 눈을 슥슥 비벼서 눈물을 닦아낸 라타트리아가 씩씩하게 외쳤다.
“이제 괜찮다찌. 라티는 강한 랫맨인걸찌.”
“그것 참 믿음직하군.”
“그나저나 루시어찌. 다른 애들은 괜찮을까찌? 이 동굴, 이상하게 길도 바뀌는데다가 사령이랑 언데드도 막 돌아다니고 있지 않냐찌. 걱정이 된다찌.”
애들이 많은 쪽이야 어떻게든 괜찮겠지만, 레이얼이나 아이런처럼 따로따로 흩어지게 된 아이들이 신경 쓰였다. 라타트리아가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루시어스가 라타트리아의 말을 들으며 옅게 웃었다. 방금 전까지 무서워서 우는 데에 여념이 없더니, 정신을 차리자마자 다른 친구들 걱정을 하는 걸 보면 참 대견했다.
“괜찮을 거다. 에스프도 그렇고, 이리누슈카도 그렇고. 다들 강하잖아.”
“그건…… 그렇찌.”
“그리고 그 쪽이랑 합류하려고 최대한 길을 찾아보고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행이다찌. 라티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찌?”
“음, 뭔가 느껴지면 바로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군. 그림자 언데드들이 많이 돌아다니는데, 기척이 꽤 약하거든. 밤눈이 밝은 너라면 어둠 속에 있는 언데드들도 금방 발견할 수 있을 거야.”
“맡겨달라찌!”
라타트리아가 자신의 가슴을 팡팡 두드리며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루시어스는 여전히 주변을 밝히는 파뉼라를 피우며 걸음을 내디뎠다.
‘이 정도면 슬슬 도착할 때가 됐는데.’
루시어스 또한 이 곳이 동굴을 가장한 대강당임은 뻔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현재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얼추 헤아려가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예상대로라면 슬슬 본대와 떨어지게 된 장소에 도착하게 된다. 아이들이 그새 움직였다고 생각해도, 아마 곧…….
생각하는데 멀리서 아이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뭔가 힘차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우다다다다.
덜컥, 덜컥, 덜컥.
쿠웅!
-거기 서라!
동굴 안에 음습한 목소리가 울렸다.
“흐가아악!!”
“끄아아! 살려줘!”
“헉, 저기 누가 있……! 루시어스다!”
-원한을 갚아 주겠다!!
반대편에서 뛰어오던 아이들이 마치 구세주라도 본 것처럼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더니 자신의 뒤로 후다닥 숨었다.
강한 아이들이니 괜찮을 거라며 라타트리아를 다독인 보람이 없을 정도였다.
“……후우.”
이 녀석들 진짜.
무리지어 달려오는 아이들의 뒤편에는 그림자 언데드들이 쫓아오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무장을 한 스켈레톤 병사가 셋, 그리고 마법사가 하나. 뒤에는 듀라한이 버티고 서 있었다.
듀라한은 발이 없는 검은 발을 탄 채 자신의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머리에서 붉은 눈이 번뜩 빛났다.
두 눈이 벌레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규칙 없이 우왕좌왕 흔들렸다. 그러고는 우뚝 멈춘 시선이 루시어스를 향했다.
루시어스가 창을 빼어들었다.
저건 아르놀트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었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니 알 수 있었다. 저건 더미트의 사령 중에서도 가장 강한 실력을 자랑하는 마창기사였다.
처음에 스쳐 지나갔던 듀라한보다 훨씬 더 정교한, 진짜 듀라한 그 자체에 가까운 그림자.
아르놀트의 그림자에 사령을 빙의시켜놓은 그들의 걸작이었다.
-나는 이승에 발이 묶인 망령…….
고오오오.
듀라한에게서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기사의 명예를 위해 네놈들의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 * *
“노, 놀랐잖아요!”
레이얼이 팔짝 뛰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뒤에서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아르놀트 선생이었다.
정말 드물도록 놀랐던 레이얼은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하며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완전히 얼어 버린 키안도 겨우 다독였다.
아르놀트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레이얼의 예상대로 천장 위의 공간에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굳이 천장 한 편을 들어내면서까지 레이얼을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지금 레이얼이 돌아가면.
수업이 너무 쉽게 끝난다.
‘이 녀석의 천재성을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그 짧은 시간 안에 미로의 구조를 완벽하게 파악할 줄이야.’
아르놀트가 한숨을 푹 내쉬며 그림자를 조종해 레이얼과 키안을 천장 위로 휙 끌어왔다.
원래 레이얼이 와서 다시 돌아가든, 아니면 그냥 천장을 통과해 도착하든 아르놀트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다.
자유로운 수업 시간에 선생이 끼어들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만큼 꼴불견인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레이얼이 이렇게 빨리 미로를 돌파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냥 돌파한 게 아니라 아주 구조를 단단히 꿰고 있어서, 레이얼이 가면 금방 흩어진 학생들을 찾고 쉽게 함께 목표 지점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협동해서 미로를 돌파하는 게 수업의 핵심 주제이기는 하다.
단지 레이얼이 가면 문제를 푸는 게 반 전체가 아니라 그 혼자만이 된다는 게 문제였다.
부루퉁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레이얼을 아르놀트가 턱을 괴고 마주 보았다.
“……선생니임.”
“뭐냐.”
“본인의 실책을 학생에게 전가하지 마세요.”
“젠장, 눈치도 빨라서 문제군.”
“일부러 저랑 키안을 본대에서 떨어트려 놓으셨죠?”
대롱대롱, 아르놀트의 그림자에 매달려 있던 레이얼이 폴짝 내려왔다.
천장 위쪽으로 올라오자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미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동굴에 있는 천장이 투명하게 비춰보였기 때문이다.
와아, 하고 감탄하던 레이얼이 더미트를 발견하고는 쪼르르 다가가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니?”
“물론이죠. 사기가 유난히 강해서 오셨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정말 만나 뵙게 되니 너무 반가워요!”
“나도 반갑구나.”
활짝 웃는 미소가 천진하다. 더미트가 레이얼을 바라보다가 옅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참 순수하고 올곧아 보이는 학생이었다.
손길을 얌전히 받던 레이얼은 동그란 눈동자를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굴리더니 조금 수줍게 뺨을 물들였다. 왠지 요즘 만나는 마족들마다 모두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자신이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걸까?
레이얼의 시선이 더미트를 슬쩍 훑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루시어스와 무척 비슷했다.
저번에 만났을 때에는 좀 덜하긴 했는데.
‘웃는 모습이 똑같아.’
지금 보니 작게 미소 짓는 모습이 무척 닮았다. 이렇게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도,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듯 다정한 온기도 전부.
레이얼은 사실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걸 무척 싫어했다.
자신을 연약한 어린아이로 보고 있는 것 같다는 그 느낌이, 위에서 비웃는 것처럼 내려다보는 시선이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루시어스이기 때문일까?
루시어스가 자신을 쓰다듬을 때에는 그런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바라보고 있지도, 비웃듯 오만하게 내려다보지도 않았다. 아이를 다루듯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루시어스는 매번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인정해 주었다.
무려 마계의 군단장인 더미트에게서도 루시어스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왠지 인정받고 있는 것 같다.
가슴이 뭉글뭉글하다. 간질간질 떨려서 신난다고 만세를 부르며 웃음을 터뜨리고 싶을 만큼 기뻤다.
쓰다듬.
근질근질한 입술을 우물거리자 머리 위에 다시 손이 턱 얹어졌다. 고개를 들어 보자 키안이 제 머리를 마구 쓰다듬고 있었다.
“키안, 뭐 하는 거예요…….”
“……그냥. 이러고 싶어서.”
싫어하는 거 뻔히 알면서.
키안은 정말 감이 좋아서 문제였다. 레이얼이 투덜거리며 애써 시선을 돌렸다.
밑으로 루시어스를 포함해서 흩어졌던 아이들이 보이고 있었다.
‘정말 곤란한데.’
호의에 중독되어 버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