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85)
마족답게 사는 법-85화(85/385)
마족답게 사는 법 85화
085 비밀 작전 (1)
“앱실론 네 번째 반의 두 번째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다찌! 모두 모였냐찌?”
교탁 위로 올라간 라타트리아가 학생들을 한 번 훑었다. 이른 아침부터 앱실론 네 번째 반의 급우들이 모두 모였다. 정확히는 루시어스를 뺀 19명이었다.
그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사회를 보지 않고 책상에 얌전히 앉아 있던 레이얼은 그런 급우들을 난감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찌찌찌.”
라타트리아가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는 좌중을 한 번 스윽, 훑어보고는 헛기침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이번 회의의 주제는 다들 알다시피.”
꿀꺽.
아이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루시어찌의 정체에 대해서다찌!”
오오. 훌른과 베른이 손뼉을 짝짝 치며 빛나는 눈으로 라타트리아를 바라보았다. 의외로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이번 사안에 가장 관심이 없어보이던 이리누슈카였다.
학생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루시어스가…… 비범하기는 하다. 처음엔 강할 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
그녀가 곰곰이 생각하듯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신의 의견을 늘어놓았다.
“……그 녀석은 주술에 대해서도 상당히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드라이어드가 주술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론적인 측면에서는 무척 뛰어났어.”
스승의 날에 라타트리아에게 완력을 대폭 증가시키는 주술을 사용하거나, 급우들의 은신을 도와주기 위해 종이에 주술진을 그려 사용하지 않았나.
그 때 루시어스의 조언을 참 많이 받았다. 특히 은신을 도울 때 사용했던 주술을 쓸 때도 레이얼 뿐만이 아니라 루시어스의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더 정교하고 섬세한 주술을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그때의 조언 덕분에 이리누슈카의 주술도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었다.
이쯤 되니 그녀 또한 루시어스가 어떤 마족인지 궁금해졌다. 같은 학생으로 생각하기엔, 그는 너무 먼 곳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던 에스메리다가 의견을 냈다.
“어제 너희가 말했잖아. 교사 중에 스파이가 있다는 소문이 있다고. 루시어스가 그 스파이인 거 아냐?”
“흐음.”
아이들이 침음했다.
스파이가 있다는 소문은 아카데미에 매년 돌았던 괴담이었다.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이 잘 성장하고 있는지, 다른 비리는 없는지 감찰하는 마왕성의 스파이가 선생님 중에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들은 루시어스가 그런 ‘스파이’가 아닐지 의심하고 있었다.
마침 루시어스의 보호자도 꽤 유명한 마족이라니 그럴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하께서 평범한 아이에게 그런 막중한 임무를 맡길 것 같지는 않지만.
루시어스는 평범함과 거리가 머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을까?
에스프가 손을 번쩍 들며 이견을 내보였다.
“하지만 스파이면 눈에 안 띄고 조용히 지내야 하는 거 아냐?”
“그건 그렇찌.”
“이렇게 의심받으면 의미가 없잖아.”
“으음.”
맞는 말이었다. 루시어스는 스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활약을 했으니까.
“애초에 마왕성에서 뭐하러 스파이를 보내겠어. 그렇게 한가한 곳이 아니잖아, 거긴.”
달리 처리할 일도 많을 텐데 굳이 스파이를 보내 가면서까지 아카데미를 감시할 이유가 없다. 에스프가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그냥 루시어스가 보통 놈이 아닐 뿐이야.”
“그건 맞는 말이다.”
이리누슈카가 동의했다. 훌른과 베른이 서로 눈치를 흘금흘금 보다가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루시어스는 정말 좋은 동료였다. 곁에만 있어도 백만의 든든한 우군을 얻은 것 같은, 강하고 믿음직스러운 전우였다.
싹수부터 다르다는 말의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있었을 정도다.
“으으, 하지만 어떻게 그 분위기에서 사령이랑 언데드를 보고도 눈썹 깜짝 안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
“드라이어드는 한 그루의 나무에서부터 태어난다고 하잖아. 그게 분명해. 루시어스는 사실 그냥 식물이었던 거야.”
베른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어제의 끔찍한 수업이 다시 상기된 탓이다.
물론 루시어스의 미소에 등 떠밀려 다시 한번 들어갔던 사령의 집은 그렇게 크게 힘들고 무섭지 않았다. 수업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여전히 어둡고 칙칙한 건 질색이었다.
아무튼, 그런 장소에서 눈썹 하나 깜짝 안하고 평정심을 유지한 루시어스는 정말 대단했다. 드라이어드도 사기에는 약한 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말이다.
“하긴 루시어스가 표정이 없긴 하지? 웃는 것도 거의 못 본 것 같아.”
“멀쩡한 척 해도 사실은 무서워하고 있었을 수도 있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정말 표정 하나 안 바뀌던데, 무슨.”
무슨 일이 일어나도 여전히 조용하고 고상할 것 같다. 고난이 와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헤쳐 나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입술이 툭 튀어나왔다.
생각에 잠겨 있던 라타트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럼 스파이는 아닌 것 같다는 게 모두의 의견인거지, 찌?”
“맞다. 아무리 그래도 스파이는 좀 많이 갔지.”
“……왠지 불공평하네.”
웅성웅성.
서로 대화를 나누느라 시끄럽던 분위기가 누군가의 한 마디 때문에 찬물을 끼얹은 듯 싸하게 가라앉았다. 입을 열었던 에스프가 시선이 모이자 잠시 움칫거렸다가 다시 말했다.
“그, 그렇잖아! 나는 루시어스를 소중한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우리는 루시어스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잖아.
그 녀석은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고 우리에 대해서 다 아는 듯이 말하는데 우리는 루시어스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잖아.
에스프의 투정 섞인 말에 모두 숙연하게 고개를 숙였다. 턱을 괴고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레이얼이 작게 웃었다.
그들의 걱정이 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어요.”
“……?”
“모두 그렇듯, 루시어스도 조금 표현이 서툴 뿐이에요. 모두를 소중한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레이얼이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장담할게요.”
“……그런가?”
레이얼의 말에 다들 눈치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조금 쑥스러운지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다.
정적을 깬 건 아이런이었다. 그가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한 번 증명해 보면 되겠지!”
“증명?”
“그래. 요컨대 루시어스의 눈에서 눈물 한 번 쭈욱 뽑으면 되는 일 아니냐?”
웃고 있던 레이얼의 표정이 미묘하게 찌그러졌다. 왜 갑자기 눈물을 뽑자고 하는 건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아이런이 어흠! 하고 헛기침하며 말했다.
“잠을 자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그런 약한 모습은 믿을 수 있는 상대에게만 보이는 법이지.”
“오오.”
“웃는 모습은 꾸밀 수 있지만, 우는 모습은 꾸미지 않을 거 아니냐. 루시어스가 그런 모습을 보여 준다는 건 우리를 동료로 인정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냐?”
“오오오!”
그럴싸한 논리에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레이얼은 어디서부터 반박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마를 짚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아이들이 신나서 대화하기 시작했다.
“좋아. 이렇게 된 거 눈물을 확 뽑아 버리는 거야!”
“누가 루시어스를 울릴 수 있을지 내기하자. 나는 의견을 낸 아이런한테 건다!”
“우리 반의 마스코트인 라티가 활약할 때가 됐지. 난 라티한테 걸 거야.”
“그럼 난 반장이다! 역시 이런 건 제일 친한 친구한테 걸어야지!”
“네에? 저요?”
급기야 누가 루시어스를 울릴지, 루시어스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는 데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내기를 하기 시작했다.
졸지에 지목을 당한 레이얼이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씨익 웃으며 레이얼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속삭였다.
“반장. 네게 거는 기대가 크다.”
“잘 하자, 친구야.”
“아주 눈물 콧물을 뽑아 버려. 너는 할 수 있어!”
레이얼이 무척 들뜬 표정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스승의 날 전에 했던 회의도 딱 이런 분위기였던 것 같다.
라타트리아가 폴짝 뛰어오르며 말했다.
“그럼 루시어찌를 울리기 위한 방법에는 뭐가 있을지 다함께 의논해 보자, 찌!”
슥.
라타트리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레이얼이 슬쩍 손을 들었다. 발언권을 받은 레이얼이 한숨이 섞인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여러분. 루시어스에게 저희가 이러는 걸 들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
“……찌.”
“……딸꾹.”
레이얼의 말에 다들 입을 합 다물었다. 그리고는 낮은 웃음을 후후후 흘리더니 레이얼의 목을 꾸욱 끌어당기며 말했다.
“배신은 용서치 않겠다, 반장.”
“이 자리에 있는 이상, 모두 한 배를 탄 거야.”
“옳소, 옳소!”
“하아…….”
이 말괄량이들 좀 말려 주세요, 루시어스.
신난 아이들 사이에서 레이얼 혼자 한숨을 푸욱 내쉬고 있었다.
* * *
평소처럼 등교한 루시어스는, 여느 때와는 달리 문 앞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기척들을 느끼고는 교실의 뒷문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섰다.
‘뭐지?’
교실의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았다. 아침에 등교를 하면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복도까지 들렸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유난히 조용했다.
아르놀트 선생이 왔나?
루시어스가 시간을 한 번 확인했다. 아르놀트는 항상 정해진 시간에 교실에 와 전달사항을 말해 주고는 했다. 입학 후 지금까지 그 시간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교실 안에서는 아르놀트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어째서인지 숨을 죽인 채 뒷문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의 기척이 느껴질 뿐이다.
조금 주저하던 루시어스가 살짝 몸을 옆으로 비켰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루시어스!”
“루시어스 켄드릭!!”
우당탕탕탕!
안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며 달려들었다. 미리 안쪽으로 피신한 덕분에 그들은 루시어스의 옷깃 하나도 스치지 못하고 복도 벽에 처박혔다.
“으으…… 아파.”
“조, 좀 비켜봐. 무거워.”
거짓말 보태지 않고 네 번째 반 학생들의 반 정도는 지금 달려든 것 같다.
루시어스가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흘긋, 흘긋.
먼저 대답할 사람을 고르기라도 하는 듯 그들 사이에서 시선 대화가 계속 오갔다. 루시어스는 아예 팔짱을 끼고 그런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러더니 반 안에서 떠밀리듯이 레이얼이 달려들었다.
“루시어스……!”
“……레이얼, 가능하면 이 사태에 대해서 설명을 좀.”
“죄, 죄송해요!”
간질간질.
갑자기 죄송하다고 외친 레이얼이 루시어스의 옆구리를 소심하게 간질이기 시작했다.
“…….”
“…….”
한참을 간질이던 레이얼은 루시어스가 미동도 보이지 않자 푹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동자를 한 번 데구르르 굴리더니 슬금슬금 멀어졌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헤, 헤헤. 좋은 아침이에요.”
“……레이얼.”
“그, 저, 등교했는데 여기 이렇게 서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갈까요!”
레이얼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뒤에 쌓여 있던 아이들이 후다닥 일어나더니 루시어스의 등을 밀며 자리에 앉히려고 채근했다.
루시어스는 떠밀리듯이 자리로 가 앉으며 고개를 기우뚱 기울였다.
그런 와중, 아이들은 다 같이 생각했다.
‘역시 루시어스군.’
‘만만치 않아.’
‘웃겨서 울리기는 실패다. 다음 방법으로 넘어가자.’
‘믿고 있었는데 반장……!’
네 번째 반의 비밀 작전.
루시어스를 울려라!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