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89)
마족답게 사는 법-89화(89/385)
마족답게 사는 법 89화
089 녹조 현상 (1)
마계에서 가장 깊고 어두운 곳.
조용하게 헤엄치는 심해의 마수들로 가득한 리마이라 해구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바로 몇 백 년 동안 마계의 바다를 지켜온 3장로, 레온타인 네거스의 저택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동굴 안에는 수많은 초롱꽃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정원의 울타리처럼 방문자를 인도하는 푸른빛은 거대한 공동 안에 지어진 저택에까지 이어져 있다.
저택은 하얀 진주 가루로 만들어진 반투명한 캐노피에 가려져 있었다.
동굴의 가장 높은 곳으로부터 우아하게 떨어지는 캐노피의 천 자락을 사락사락 가르며 초롱을 따라가면 그의 저택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용궁처럼 화려한 저택의 주인인 레온다인은, 저택의 아름다움과는 어울리지 않게 미간을 찌푸리고 한숨을 거듭 내쉬고 있었다.
그에게는 깊은 고민이 있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더 두고 볼 순 없겠군.”
보좌관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레온타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한숨과 함께 답했다.
그의 걱정은 저택으로부터 먼 서쪽 영역에 있는 석호의 이변에 있었다.
시기가 되면 담수와 바닷물이 섞여서, 호수와 바다의 물고기가 공생하며 살아가는 독자적인 생태계를 가지게 된 호수였다.
마계에서도 꽤 유명한 영역이기도 하고, 레온타인 본인도 꽤 좋아하는 장소라 가끔 산책하러 나가기도 하는 곳이었는데.
몇 달 전부터 이 호수의 물이 마계의 숲보다 더욱 진한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녹조 현상이었다.
호수 근방 해저에 주기적으로 활동을 하는 화산이 있어서 이 시기쯤 되면 근방 수온이 올라 녹조 현상이 자주 발발하고는 했다.
그마저도 한 달이면 가라앉았는데 이번엔 몇 달이 지나도 원상태로 복구되지 않고 있었다.
기사들을 보내 일대를 정화를 시도하기는 했다.
하지만 하루만 지나면 다시 녹색이 호수를 가득 채웠다. 그가 직접 가서 아예 물을 갈아 치워도 마찬가지였다.
호수의 끊임없는 녹조를 보아하니 곧 바다에도 녹조 현상이 나타날 것 같은데. 레온타인은 바다의 녹조가 환경을 오염시킬까 걱정스러웠다.
빨리 원인을 찾아 해결하지 않으면 호수에 이어 바다에도 녹조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바다에 사는 수많은 물고기와 마수가 죽으면 그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해저의 풍경이 사라지게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걱정이 된다는 이유로 매일같이 기사들을 보내며 호수를 정화하는 일에 매진할 수는 없었다. 그 외에도 해야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요즘엔 호수에서 냄새가 난다고 아우성이 자자합니다. 물고기 시체가 부패하며 물이 완전히 썩어 들어 가고 있습니다.”
“하아, 그리고?”
“독기가 일대에 자욱하게 퍼져서…… 날던 새도 뚝 떨어진다고 합니다.”
“…….”
“염려하시는 대로 호수 근처의 바다에서도 조금씩 녹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멀지 않은 곳에 산호초들이 자생하고 있는 터라…….”
“물을 갈아 치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레온타인이 작게 침음했다.
이건 그와 그의 기사들이 나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다른 마족의 힘이 필요했다.
“석호에 처음 보는 식물이 많이 자랐다고 했지?”
“네, 어쩌다 씨앗이 여기까지 날아왔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한 번 확인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녹조 문제도 그것 때문이라고 사료됩니다.”
보좌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문제를 발견한 이후로부터, 레온타인에게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호수에 찾아갈 때마다 어떤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식물 자체에서 별다른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그냥 둔 것이 화근이었다.
지금은 그 정체불명의 식물이 호수를 빼곡하게 뒤덮고 있었다. 수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
“몇 번이고 걷어 내도 어느 순간 다시 자라나 있습니다.”
“……하아.”
“장로님.”
보좌관이 간곡히 그를 바라보았다. 이마를 짚고 깊은 한숨을 내쉬던 레온타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식물에 대한 문제라면 그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겠지.”
“그렇다면……!”
보좌관의 안색이 확 좋아졌다.
아름다웠던 석호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점점 흉측해지니 주인의 근심이 나날이 깊어져 가던 와중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회생시켜 놓으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호수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지 못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녹조가 짙어지고 있었다.
레온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어스 장로에게는 내가 알아서 편지를 보내마. 부탁을 거절하지는 않는 마족이니 받아들여 줄 거다. 충분한 보답을 해야 할 테니 준비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금화를 비롯해 아쿠아마린을 포함한 바다의 보석들과 해양 마수들의 뼈를 준비하겠습니다.”
“음. 그 정도면 흡족해하겠군.”
레온타인이 펜을 들었다.
루시어스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써야 했다.
* * *
“……라고 하는군요.”
“흐음.”
레온타인에게서 도착한 편지를 하멜이 또박또박 읽어 주었다. 하멜이 루시어스의 앞에 편지를 내려놓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제 영역에 생긴 문제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다른 장로에게 손을 벌리다니.
그것도 주인은 아카데미의 일정과 장로의 업무를 동시에 소화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정말 무능한 마족이었다.
루시어스는 하멜이 내려놓은 편지를 다시금 읽어 보았다.
“녹조인가…….”
“자연정화가 되지 않을 정도면 심각한 수준이기는 할 거다.”
레녹스가 서류를 정리하던 손길을 잠시 멈추며 프레이스 호수의 위치를 되짚었다.
프레이스는 마계에서 유명한 석호다. 지하가 바다와 이어져 계속해서 물이 섞이는 거대한 호수로, 독특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레온타인의 능력으로도 녹조가 사라지지를 않는다니. 그 식물의 번식력이 경이로울 정도였다.
“어떻게 할 거냐. 갈 건가?”
“레온타인 장로의 성격상 괜히 일을 떠맡기려고 내게 연락을 하지는 않았을 거다. 네 말대로 상태가 심각하겠지.”
그가 손을 빌리는 보상은 충분히 하겠다고 편지에 명시해 놓기까지 했다. 충분한 보상을 언급하며 ‘부탁’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매몰차게 거절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바다의 재료들은 무척 구하기 힘든 편에 속하기도 한다. 받아 두어 나쁠 일이 없다.
“영역 밖의 일이기는 하다만…….”
레녹스가 말끝을 흐렸다. 레온타인이 자신의 영역을 끔찍이 아낀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도 루시어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꽤 많은 고민을 했을 터다.
하지만 레녹스 또한 하멜과 같은 이유로 그의 요청이 불만스러웠다.
자신을 기사로 맞이하며 루시어스의 업무 부담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루시어스는 지금도 충분히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낮에는 아카데미에서 생활하고 며칠 밤마다 돌아와 밤을 새가며 업무를 돌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피곤하고 귀찮은 일상이었다.
그런데 거기다가 호수의 일까지 처리해달라니. 이러다 루시어스가 과로로 쓰러지지는 않을지 걱정이었다.
“네 말대로, 내 영역은 아니니 거절해도 상관은 없지.”
루시어스가 편지를 접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문제는 없는 일이었다. 아카데미에 다니라는 마왕의 명령을 수행하느라 당신의 부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날의 바다는 참 아름다웠다.
바다 위에서 했던 공놀이도, 아이들 쳤던 물장난도, 바다 깊은 곳에서 바라보았던 수많은 형형색색의 산호초들도.
꾸욱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돌고래 떼와 수평선 너머로 저물어 가던 태양, 그리고 아름다운 두 달 조각 옆으로 피던 얼음꽃과 불꽃들.
하하 호호 웃는 아이들의 시끄럽지만 정겨운 목소리가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어우러지던.
그날.
정말 긴장을 풀고, 마음을 놓고 웃어 버렸던 그 날.
“그 풍경을 다시 볼 수 없다면 아까울 거야.”
“……루시어스.”
“우선 상태만이라도 보러 간다고 전해라. 식물이 문제인 것 같다니 확인은 해줘야 도리겠지.”
루시어스가 옅은 웃음을 삼켰다. 그런 이유로 좋은 추억을 더럽히기는 아까울 것 같았다.
“거기에 한두 번 가야 하는 게 아닐 겁니다, 루시어스 님.”
하멜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레온타인도 뾰족한 수가 없어 골머리를 앓다가 루시어스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 아닌가.
루시어스가 간다고 해도 바로 일이 해결되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았다.
문제가 명확하다면 괜찮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한 번 방문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방문해 생태계의 변화를 확인하고 분석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게다가 식물의 생장을 지켜보려면 밤이 아니라 낮에도 주기적으로 방문해야 효과적일 테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아카데미의 일정이 걸린다.
레녹스는 식물과는 전혀 연이 없는 정신계 마족이니 도움을 바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를 기사로 들였다는 사실은 계속 숨기고 있어야 했다.
샤먼인 더미트는 오히려 독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고.
하멜도 수업을 해야 하니.
“……우선은 직접 확인하는 게 좋겠다.”
“당신께서는 왜 거절이라는 걸 모릅니까.”
하멜이 뚱하니 불평하면서도 레온타인에게 보낼 편지에 쓸 종이를 가져왔다. 루시어스가 작게 웃으며 펜을 들고 답신을 적었다.
이름을 적고 인장까지 찍은 후 마법으로 봉했다. 레온타인이 직접 제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이니, 이쪽도 직접 편지를 보낼 생각이었다.
손 위에 작은 마법진이 떠올랐다. 마법진 안으로 편지가 쏙 빨려 들어갔다.
아마 편지가 바로 레온타인의 저택으로 도착했을 것이다.
“호수에는 내일 혼자 다녀오도록 하지.”
“혼자?”
“이번에는 직접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서.”
“…….”
“이건 네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다. 너무 실망하지 마라.”
조금 풀이 죽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레녹스가 한숨을 작게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쯤이나 되어야 어엿한 기사가 될 수 있을지.
“혹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너희를 부르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고, 우선은 아카데미로 돌아가도록 하자. 시간이 많이 늦었다.”
루시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녹스와 하멜도 보던 서류를 정리하고 함께 아카데미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레온타인에게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호수의 정확한 좌표가 찍힌 답신이 돌아왔다.
루시어스는 아카데미 일정이 끝나는 대로 프레이스 호수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