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91)
마족답게 사는 법-91화(91/385)
마족답게 사는 법 91화
091 녹조 현상 (3)
레온타인의 연락을 받고 다시 호수로 나온 루시어스는 타리크, 정확히는 그의 집사가 보낸 답장을 읽으며 이마를 짚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장로님께 말씀드리기엔 부끄럽게도, 얼마 전 구스타프 제전을 보러 갔다가 지난번에 입은 부상이 덧났습니다.
그 때문에 요즘 거동이 힘들고 힘을 행사하는 데에 제약이 있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너른 바다를 통치하시는 3장로님의 명성을 익히 들어온바. 최대한 노력하여 명성에 누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보내 주신 좌표로 시간 맞춰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러드에서, 라티크 라하위스.」
공손하고 정중한 답신이었지만 루시어스가 보기엔 전혀 아니었다. 구스타프 때에도 멀쩡히 돌아다니던 녀석이 왜 갑자기 거동이 힘들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하는가.
애초에 이곳은 마계다.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부상 사실은 최대한 숨겨야만 했다. 고위 네임드일수록 그랬다. 소문을 듣고 틈을 노리고 덤벼올 마족들이 얼마나 많겠나.
그런데 일부러 구구절절 몸 상태를 언급하는 이유는 달리 없었다.
루시어스가 이번 일에 관여하고 있음을 알고는 일부러 이런 행동을 취한 것이다.
당신께서 입힌 상처 때문에 이렇게 끙끙 앓고 있지만, 그래도 당신께서 부르니 찾아가는 거랍니다. 라고.
‘벌을 달게 받고 자숙하지는 못할망정 그걸 빌미로 협박을 해?’
어이가 없는 동시에 무척이나 그다운 대처라 웃음이 나왔다.
건방이 아주 하늘을 찌르는군.
루시어스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레온타인에게 물었다.
“제 이야기를 그에게 했습니까?”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단지 조력자가 있다고 했을 뿐이지. 그대와 타리크 경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아 조심스럽게 돌려 이야기했는데.”
“……조력자라.”
“아무래도 그렇게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모양이군. 아예 언급하지 않는 편이 나았나?”
“아닙니다. 그랬으면 답도 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어차피 오면 만나게 될 텐데요.”
타리크의 성정은 알고 있다. 그는 3장로가 연락을 넣었다고 고분고분하게 따를 놈이 아니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답신조차 없이 레온타인의 편지를 무시했을 것이다.
레온타인이 어깨를 들썩였다.
“참 어려운 마족이군. 그래도 돕겠다니 다행인가. 전하의 칙서라도 받아 와야 하나 걱정했는데.”
“저런 놈 때문에 전하의 손을 번거롭게 하고 싶진 않네요. 칙서를 받으면 신경 써야 할 것도 훨씬 많아지는데요.”
“음, 그 정도인가.”
“그럼요.”
고개를 끄덕일 때쯤, 가벼운 빛이 일렁이며 안에서 한 명의 마족이 등장했다.
타리크 라하위스였다.
‘……정말 도망이라도 가고 싶군.’
빛무리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그를 바라보며 루시어스가 잠깐 생각했다. 설마 타리크와 공동 작업을 해야 할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해도 지난 시간 시달린 게 많은 터라 내색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불편함은 타리크를 마주한 루시어스의 눈썹이 한 번 정도 꿈틀 움직이는 것으로 끝났다.
흐린 눈동자가 루시어스를 똑바로 향했다.
타리크의 눈초리가 빙긋하니 휘었다. 루시어스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만나니 새삼스럽게 반가웠다.
구스타프 제전 이후로는 처음 만나는데, 루시어스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이전과 사뭇 달라 신기하기도 했다.
‘외모가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고.’
시력이 좋지 않으니 불편한 점이 참 많다.
근질근질한 손을 꾹 말아 쥐었다. 저 괴물처럼 강한 어린 마족이 성장통을 겪으며 손에 넣은 것이 대체 무엇일까. 좀 더 가까이에서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타리크는 궁금증을 웃음 뒤로 묻어둔 채 먼저 3장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인사는 처음 올리는군요. 타리크 라하위스입니다. 이번에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3장로님.”
“그대의 소문은 자주 들었지. 레온타인 네거스라네. 흔쾌히 부름에 응해 주어 고맙군.”
“말씀드린 대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제대로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걱정이군요.”
들으라는 듯이 말한 타리크의 시선이 루시어스에게로 돌아왔다. 레온타인과 간단한 인사를 마친 후에야 성큼 다가온 그가 살며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5장로님.”
“오랜만이군. 답지 않게 약한 소리를 하기에 얼마나 몸이 안 좋은가 했더니, 생각보다 멀쩡해 보여서 다행이야.”
“그렇게 보이십니까? 이래 뵈도 지금 딱 죽기 직전이랍니다.”
어리광을 부리듯 가볍게 말하기는 했지만, 타리크는 진심이었다.
마왕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얼마나 속이 뒤집혔는지. 그날 어전에서 피를 토하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기적적인 인내의 결과였다.
그 이후로 몸이 많이 회복되기는 했지만 큰 힘을 쓰긴 부담스러웠다. 베르틴이 보낸 편지는 정말 반 정도는 진담이었다.
물론 루시어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태양처럼 따뜻한 금색 눈동자에 한기가 스며들었다. 평소에는 듣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피해버리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어디 한번 말해 보라는 듯 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싸늘하게 내리꽂히는 시선. 타리크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겨우 내리눌렀다.
“그래서 저는 뭘 하면 됩니까?”
호수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은 그 또한 알 수 있었다. 시원하고 청명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야 할 장소가 악취와 독기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타리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음, 조금 힘들겠습니다.”
“……힘들다니?”
레온타인이 한 번 더 설명을 촉구했다. 그가 턱을 매만지더니 데자트를 손에 쥐어 한 번 슥 뽑아냈다.
뚜두둑.
뿌리가 끊기며 풀이 쑥 뽑혔다. 그리고 식물이 바짝 마르더니 검게 물들었고, 점차 먼지처럼 으스러지며 흩날렸다.
손 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루시어스가 보기에도 완벽했다. 데자트는 씨앗도 흩날리지 못한 채 말라 죽었다.
“원하시는 게 뭔지는 알겠습니다. 이 식물들을 전부 이렇게 말려 죽이면 되는 거죠?”
“맞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네, 작은 문제이기는 한데…….”
타리크가 흘금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부상 중이라서요.”
“타리크 경.”
“루시어스 님, 꾀병이 아닙니다. 듣자 하니 데자트의 뿌리가 호수 밑바닥까지 닿고도 남을 정도로 번식한 모양인데.”
“…….”
“이 녀석들을 다 없애기 위해서는 이 일대를 모조리 사막화해야 하지 않습니까. 문제는 제가 그만큼 힘을 끌어올리면…….”
주르륵.
마기가 크고 격렬하게 일렁임과 동시에, 타리크의 입가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꽤 창백해진 안색의 그가 잠시 몸을 비틀거렸다. 턱 끝을 손등으로 슥 쓸어내어 피를 훔친 그가 피 냄새가 물씬 풍기는 숨을 내쉬었다.
“……이 꼴이 나거든요.”
타리크가 어깨를 으쓱이며 루시어스의 반응을 살폈다. 이번만큼은 정말 진심이었다. 단순한 내상이었으면 금방 회복했을 것을, 그가 심었던 약초 때문에 회복하기가 힘들었다.
마기를 조금만 끌어 올려도 뿌리가 혈관을 타고 꿈틀거리며 자라나고, 감정이 크게 일렁이며 독성이 강해지면 꽃을 틔우며 속을 뒤집는다.
괜히 레녹스 자카르라는 재수 없고 건방진 꼬맹이를 순순히 놓아준 것이 아니었다.
“루시어스 님께서 서임이라도 해 주신다면 이 목숨 바쳐서라도 어떻게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은 정말 원하는 게 많아.”
“명을 수행하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네요.”
침침한 눈동자가 빙긋 휘었다.
타리크는 루시어스가 잠깐이라도 낭패감을 느끼기를 바랐다. 그러며 네 힘이 필요하다고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루시어스는 언제나처럼 고요하고 잠잠했다. 그 모습이 저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던 그 날들과 똑같았다.
루시어스는 항상 그랬다. 자신이 일부러 화를 돋우며 싸움을 걸어도 절대 공사를 그르치지 않았다. 절대 감정적으로 나서지 않으니, 비집고 들어갈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입술을 빼죽 내밀며 말했다.
“아니면 칭찬이라도 해 주시던가요.”
“……칭찬?”
타리크의 요구에 루시어스가 어이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루시어스가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끼고 되물었다.
“언제는 내게서 장로직을 가져가겠다는 건방진 말을 하지 않았나?”
“물론 그럴 생각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께 당한 상처가 너무 아파서 힘들거든요. 그러니 당장은 기사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그것참 편한 자기합리화군.”
“객관화를 잘 한다고 해 주세요.”
아무튼, 한 마디를 안 지려고 하지.
루시어스가 타리크를 바라보며 고민했다. 사실 그가 제게 원하는 건 딱히 크지 않았다. 제가 기사 서임을 해 주지 않을 것은 뻔히 알고 있을 테니.
한숨을 작게 내쉰 루시어스의 눈매가 잠시 가늘어졌다. 그래도 저번 납치사건 이후, 타리크도 나름대로 조용히 지내곤 있으니.
군말 없이 제대로 일을 처리해 주기만 하면 칭찬쯤이야 몇 번이든 해줄 수 있다.
“내가 지금 궁금한 건 딱 하나다. 경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우선 그것부터 들어보도록 하지.”
“음…….”
“어떤가? 할 수 있겠어?”
타리크가 잠시 눈을 굴리고는 대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
“걸리는 시일은?”
“원래 이 정도라면 한나절이면 충분했을 겁니다. 하지만 몸을 좀 사려야 하니, 닷새 정도 걸릴 것 같네요.”
“원하는 보상은?”
“네?”
루시어스의 물음에 그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레온타인도 조금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끼어들었다.
“5장로. 굳이 그대가 타리크 경에게 뭔가를 보상해 줄 필요는 없어. 이건 내 일이 아닌가.”
“괜찮습니다. 이 녀석은 제가 상대가 아니면 원하는 게 딱히 없거든요.”
“그…… 그래도.”
괜한 짐을 지게 하는 듯한 기분이다. 레온타인이 이마를 짚었다. 루시어스라면 흔쾌히 협조해 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해 줄 줄은 몰랐다.
타리크 경을 싫어하는 것 같았는데.
둘의 사이가 생각만큼 나쁘진 않은가?
방금 나눈 대화를 들어보니 크게 싸우기는 싸운 모양인데.
이렇게 된 이상 루시어스가 대신 희생해 준 만큼 보상을 충분히 해 줘야겠다. 저택에 돌아가면 보좌관에게 루시어스에게 보낼 물품들의 목록을 다시 짜라고 할 생각이었다.
“칭찬이라도 해달라고 하지 않았나.”
“그거야 그랬지요.”
“따로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봐라. 순순히 협조해 준다면 못 해 줄 것도 없으니까.”
“…….”
“서임해달라는, 당치도 않은 요구만 아니라면 최대한 편의를 봐주지.”
루시어스가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타리크는 꿀이라도 먹은 것처럼 말을 잇지 못하며 눈치를 흘긋 살필 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정말 진심인가?
이렇게 호의적인 태도는 처음이라 무척 당황스럽다.
“어서.”
우물쭈물하기만 하는 타리크에게 루시어스가 재촉했다.
루시어스는 진심이었다. 어쨌든 타리크가 아픈 몸을 이끌고 힘을 쓴 만큼 뭔가 마땅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맞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를 싫어한다고 해도 장로로서 부당한 대우를 할 수는 없지 않나. 물론 끝까지 돕기 싫다고 박박 우겼으면 두들겨 패서라도 말을 듣게 했을 테지만.
어쨌든 일을 순순히 도와준다면 해 주지 못할 것도 없다.
타리크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서임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의 생각이 겨우 이런 것으로 꺾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정말 서임만 아니면 괜찮습니까?”
“그래. 말해 봐라.”
“……당신의 시간을 조금만 제게 할애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