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03
102화-본부 회의(04)
퍽 소리와 함께 떨어진 사람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한참이 지나도 일어지지 않았다.
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눈만 끔뻑였다. 순간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판테테 재킷만큼이나 하얀 백발 아래로 새빨간 무언가가 스멀스멀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피?!”
그래, 분명 피였다.
너무 놀란 쿤은 빨리 사람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나갔다. 그러나 그보다 은이 먼저 그를 붙잡았다.
“괜찮아.”
“사람이 다쳤는데, 어떻게 괜찮-!”
순간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미역처럼 구불구불한 머리를 넘기고, 손으로 이마에 흐른 피를 대충 닦았다.
“아씨, 겁나 아프네…….”
잠을 못 잤는지 목소리가 피곤함에 가라앉아 있었다. 인제 보니 눈 밑에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안으로 들어오던 남자가 입구에 모여 있는 모두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느릿하게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또 한 번 갸웃거렸다.
“밖에 무슨 일 있었어?”
마치 저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곤 상상도 못 하는 투였다.
단장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단은 골치 아프다는 듯 그 커다란 손으로 이마를 짚었고, 핑은 아주 교양 있게 욕을 했으며, 혜성은 재밌는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소소리는 쿤에게 저런 거 따라 하면 절대 안 된다 말했다.
“무재.”
혜성이 백발을 불렀다. 이제 보니 그의 이름이 무재인 듯싶었다.
그는 구부정한 허리로 아주 느릿하게 걸어왔다.
“오래간만이야.”
처음으로 혜성이 먼저 인사를 걸었다.
“부용이 잘 지내?”
“그래.”
“지난번엔 우리 애들 때문에 미안했어. 걔들이 보고서를 좀 대충 쓰거든.”
무재의 말에 쿤은 전에 부용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때 피아논 영지랑 보고서가 꼬였다고 했는데. 그럼 피아논 사람인가?’
쿤은 재킷을 살폈다. 정말로 피아논의 상징인 붉은색 장식이 있었다.
“이쪽은 우리 신참, 쿤이야.”
“응? 안녕. 근데 웬 신참? 지금 신참 들어오는 시즌 아니잖아.”
“…몰라?”
무재가 무언가를 고민하는지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순간 그가 아! 하고 입을 열었다.
“어르신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그가 엘리아노를 향해 넙쭉 인사했다.
아주 잠깐 침묵이 내려앉았다.
핑과 소소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쿤의 양옆에 섰다. 그리고 마치 그가 제 소속 신참이라도 되듯 소개했다.
“엘리아노 님 손자. 이번에 오즈벨에 새로 들어온 판테테 쿤이에요.”
“맞아.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났잖아.”
“…….”
무재는 두 사람과 쿤을 봤다. 그리고 엘리아노의 얼굴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에이, 거짓말. 어르신은 결혼 안 했잖아.”
“그니까, 숨겨진 자식이 있었다고.”
“그럼 얘가 그 자식이야?”
“아니, 이쪽은 손자!”
결국, 소소리가 답답함을 못 참고 폭발했다.
“야! 너도 나와! 싸우자!!”
핑은 그런 소소리의 입을 틀어막은 뒤, 마저 설명했다.
“이번에 밝혀졌어요. 엘리아노 님도 직접 소개했고요.”
무재는 다시 쿤과 엘리아노를 번갈아 봤다. 한참 침음을 삼키던 그가 말했다.
“아닌데. 생긴 게 하나도 안 닮았잖아.”
“…….”
순간 단과 소소리, 그리고 핑이 입을 다물었다. 세 사람의 고개가 일제히 할머니와 손주로 향했다.
확실히 이 둘은 같은 종이란 것 말고는 닮은 점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머리색도 쿤은 갈색이었고, 엘리아노는 젊은 시절에 금발로 유명했다. 눈이야 말할 것도 없고, 분위기도 그랬다.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든 어떻게라도 공통점을 찾으려는 넷을 보며, 쿤은 새삼 ‘단장들이란 이렇게 하나같이 무례한 걸까’ 하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여우 닮으셨어요.”
보다 못한 쿤이 한마디 하자 그제야 단장 네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
“음.”
“아…….”
내내 가만있던 은 역시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그렇구나’라며 작게 중얼거렸다.
쿤은 나중에 이를 제대로 공표할 때, 꼭 할아버지의 외모 이야기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소란스러웠던 인사가 끝나고 다들 자연스럽게 흩어지게 되었다.
회의에 오는 판테테들은 하나씩 숙소를 배정받았다. 밖에서 보았던 빌라는 아니었고, 본부 건물 별관이었다.
건물이 으리으리해 방 또한 클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오즈벨의 제 방보다 좁아 보였다.
파티 겸 저녁 식사는 오후 6시. 그때까지는 자유시간인데다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된다기에 쿤은 본부 탐험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은더러 함께 나가자고 하려 했으나 혜성과 은, 키리기스는 내일 있을 회의 자료를 정리해야 했고, 엘리아노는 중립 영지 담당자가 불러 지금 이곳에 없었다.
결국, 쿤은 북청 사자들을 주머니에 넣은 뒤, 홀로 탐방을 시작했다.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이 쿤을 알아봤다.
워낙 정보력이 좋은 집단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쿤이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말까지 퍼져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쿤은 은에게 모자 하나를 빌려 쓴 채,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자유 시간이라 다들 옷차림이 가벼워 귀 달린 모자가 튀어 보이진 않았다.
‘와, 뒤에 정원도 있어.’
쿤은 뒷마당에 가기 위해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그때 올라오는 소소리와 딱 하고 눈이 마주쳤다.
“엥? 쿤 너 어디가?”
“안녕하세요, 소소리 단장님.”
“단장 아니라니까. 그리고 그냥 편하게 형이라 불러.”
“그래도 그건 남들 보기 그러지 않을까요?”
“반대야. 격식 있는 자리에서도 편하게 형이라 해. 그래야 품위 문제로 단장을 안 시킨단 말이야.”
“음… 일단 알겠어요. 근데 품위가 단장을 결정하면, 혜성 씨는 아예 단장에 ‘ㄷ’ 자도 못 달지 않았을까요?”
“…….”
소소리는 그제야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거처럼 눈을 크게 떴다.
“아씨, 그러네. 그럼 어쩌지? 더 개차반처럼 살아야 하나?”
그는 정말로 단장이 하기 싫은지 연거푸 푸념을 늘어놨다.
쿤은 조금 궁금해졌다.
“근데 왜 그렇게 단장이 되기 싫은 거예요?”
“인생이 피곤해지거든. 해야 할 일도 엄청 많고, 매번 이렇게 회의도 와야 하고, 단원들도 살펴야 하고, 돈 관리부터 시작해 두루두루… 어휴, 말만으로도 지친다.”
소소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의 말을 듣다 보니 그렇게 일이 많은가 싶었다.
‘영지가 넓어서 그런가?’
켈카르타닌 영지는 6구역 중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었다. 논과 밭도 많았고, 산 역시 많았다. 하지만 반대적으로 인구수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6구역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는 영지는 단이 맡는 루아놈 영지였다. 거긴 땅도 넓고, 인구도 많은데다 내륙하고 가장 가까웠으니 말이다.
생각해 보니 영지의 특징이 해당 지역의 단장들하고 닮았단 생각이 들었다.
오즈벨은 작고 고립됐지만, 자기만의 개성과 문화가 강한 곳이었다.
핑의 파파루아는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고, 건축물도 예뻐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리고 무재가 맡는 피아논은 전반적으로 여유롭고 느긋한 영지였다.
오즈벨 중 시골의 느낌이 가장 강한 곳을 고르라면 단연 여기일 것이다.
‘구분하기는 쉽겠다.’
“근데 너 진짜 어디 가?”
“아, 뒤에 정원이 보여서 가보려고요.”
“나도 같이 갈까?”
“괜찮아요. 그리고 위로 올라가시던 거 아니었어요?”
“맞아. 회의 준비 해야 해.”
혜성도 그러더니 이쪽도 이쪽대로 준비할 게 많은 모양이다.
“그럼 가서 준비하세요. 저 혼자 돌아다닐 수 있어요.”
“그래? 정 못 찾겠으면 내 방으로 찾아오고.”
소소리는 제가 몇 층 몇 호실 방에 묵는지 말해주었다.
“아, 그리고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된다.”
그는 그 말과 함께 계단을 타고 호다닥 올라갔다.
쿤은 정말로 궁금해졌다. 대체 왜 다들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중립 영지는 왕국에서 관리하는 데다 일반인은 거주할 수 없으니 납치범이 들끓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 종교 단체가 길을 묻는답시고 데려가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아니면 그냥 6구역의 인사말 같은 걸까?
쿤은 골똘히 고민하며 정원으로 나갔다.
밖에 나가자 따스한 햇볕과 함께 잘 꾸려진 화단이 보였다. 작은 정원처럼 화단이 만든 길을 따라 산책할 때, 문뜩 누군가가 화단 구석에 쭈그려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게 보였다.
덥수룩한 머리에 동그란 안경. 상당히 앳돼 보이는 것이 저보다 어린 거 같았다.
연하의 판테테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쿤은 신나라 달려갔다.
‘어디 영지 소속이지?’
소속을 알아보려고 재킷을 살피던 쿤의 머리 위로 커다란 물음표가 그려졌다. 분명 저와 똑같은 흰색 재킷이었는데, 신기하게도 포인트 색이 없었다. 그저 재킷과 똑같은 순백색이었다.
“안녕하세요.”
“히익-!”
쿤의 인사에 남자애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 놀라게 해서 죄송해요.”
“아, 아뇨, 괜찮아요.”
“뭐 쓰고 계세요?”
“식물 관찰 일지요. 이 텃밭 제가 가꾸거든요.”
“아~”
쿤은 그 옆에 쭈그려 앉았다. 다행이 이번에는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저 뭐 하나 여쭤봐도 되나요?”
“네? 네.”
“몇 살이세요?”
“아, 저요? 저도 스물세 살이에요.”
“아~”
음? 뭔가 방금 답이 좀 이상했던 거 같은데.
저도 스물세 살? 내가 스물셋인 건 어떻게 알았지?
쿤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제가 이곳에서 유명인이 됐음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상이 다 털린 마당에 나이라고 안 털렸겠는가.
쿤은 대충 그러려니 하고 옷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가 설명을 해주었다.
“이건 구역 본부 소속 판테테의 재킷이에요.”
“구역 본부는 다 검은색 입지 않아요?”
쿤이 알기로 본부 소속 판테테들은 재킷도 장식도 검은색을 입는다고 했다. 아니면 정복을 입거나.
그런데 흰색이라니?
답을 요하는 눈으로 쳐다보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아~ 올해부터 규정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다들 구역의 재킷 색을 입어요.”
“아. 그렇구나.”
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안 물어봤네요.”
“벨로예요.”
“오. 귀여운 이름이네요.”
“감사합니다. 저기, 저는 그럼 이만 가볼게요. 할 일이 있어서…….”
벨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그의 무릎에 얹어져 있던 수첩이 툭 떨어졌다.
쿤은 대신 주워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쓰여 있는 글에 멈칫하고 말았다.
그는 벨로가 줍기 전에 수첩을 채겠다.
“헉!”
벨로의 비명을 뒤로한 채, 수첩을 보자 아주 날아가는 글씨로
11시 22분 : 계단에서 소소리 단장 대리님과 대화.
11시 27분 : 화단에 나왔음. 꽃 구경 중.
가 적혀 있었다.
앞장 역시 쿤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설마 기자한테 정보를 팔려는 건가 싶어 빠르게 수첩을 살피던 쿤의 눈에 어떤 글이 보였다.
역 차원문 보고서 들어옴, 엘리아노 님에게 바로 연락할 것.
“…….”
쿤은 도망치려는 벨로를 붙잡았다. 그리고 싱긋 웃어 보였다.
“너였구나, 할머니한테 내 정보 넘긴 염탐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