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17
116화-형제와 이름 (06)
쿤은 곧장 숙소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 2m에 달하는 거구의 남자가 보였다. 레이포드의 보좌관인 데릭이었다.
“데릭 보좌관님!”
“쿤.”
데릭이 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흉터가 가득한 얼굴이 흉흉하게 일그러졌다.
그 위압감에 쿤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다 정신을 차렸다.
“형이 없어졌다뇨?”
“말 그대로입니다. 오즈벨 시내를 관광 중이었는데, 갑자기 사라지셨습니다.”
데릭의 얼굴이 한층 더 구겨졌다. 살기까지 느껴지는 것이 정말로 화가 난 듯싶었다.
레이포드가 사라진 건 의상점을 막 나왔을 때였다. 제 코트 한 벌과 쿤의 옷을 잔뜩 산 그는 짐이 너무 많다며 데릭에게 잠깐 들어달라 부탁했다. 그리고 데릭이 이를 받아 바로 옆 마차에 싣는 사이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정말이지…….”
데릭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겠는지, 깊은 한숨만 연거푸 내쉬었다.
그의 암담한 심정이 모두에게 전해졌다.
“어쨌든, 저 혼자 찾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아 도움을 청하러 온 겁니다.”
외지인인 데릭이 혼자 레이포드를 찾는 것보단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빨랐다.
뭐, 그 대상이 중앙법무부랑 앙숙에 가까운 판테테라는 것이 걸렸지만, 그래도 레이포드의 친동생인 쿤이 있으니 다들 협조적으로 도와줄 것이다.
“부탁드립니다.”
데릭이 정중히 부탁했다.
쿤은 거실을 쳐다봤다. 혜성과 은은 물론 루까지 흔쾌히 도와주겠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기다려 봐.”
은은 곧장 제 그림자를 펼쳤다. 새카만 그림자가 오즈벨 전역을 훑었다.
순간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 왜 내 그림자에 안 잡히지?”
“예?”
“이상하다. 이 인간 오즈벨에 있는 건 맞지?”
“아마 레이포든 님께 걸린 마법 때문일 겁니다.”
“형한테 마법이 걸려 있어요?”
“네. 디오나 님께서 걸어주셨습니다.”
레이포드가 하는 일은 워낙 많은 적을 만들 수밖에 없다. 당연히 암살 위험도 컸고, 실제로 습격해 온 이도 적지 않았다.
때문에 최고 법관 디오나는 제 소중한 오른팔이 위험하지 않도록 그에게 마법 저항 마법을 걸어주었다. 어지간한 마법이 그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마법의 힘 자체로만 보자면 은의 실력이 좀 더 상위였지만, 그녀의 추적 마법은 그림자, 즉 지면에 닿는 것을 분석하는 간단한 마법이었다.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는 디오나의 저항 마법을 깨기 어려웠다.
“그럼 좀 더 귀찮은 걸 써야 하네.”
은이 입술을 깨물며 땅을 가볍게 찼다. 마치 수면에 파문이 인 것처럼 그림자에 물결이 일었다.
잠시 후, 검은 그림자가 디오나의 마법을 뚫고 레이포드를 찾아냈다.
쾌재를 부르는 것도 잠시, 은의 얼굴이 당혹으로 얼룩졌다.
“엥? 내가 착각했나?”
은은 다시 한 번 집중했다. 그러나 제가 느낀 감각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형 찾았어요?”
쿤이 조급함을 못 참고 물어왔다.
은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두가 의아해할 만한 말을 꺼냈다.
“응. 찾았어. 근데… 이 인간 지금 지하에 있는데?”
* * *
“음. 또 길을 잃었네.”
레이포드가 허리를 짚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오즈벨의 지하 통로였다. 대형 차원문이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이 대피하는 그 길 말이다.
어째서 지상에 있던 그가 지하로 들어오게 된 건지는 알 수 없다. 물론 그 스스로도 전혀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걷다 정신을 차리니 지하에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할까 짧게 고민하다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뭐, 걷다 보면 밖이 나오겠지.’
그는 자신의 낙천적인 사고가 더 엄한 길로 안내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어느 쪽으로 갈까요~ 알아맞혀 보세요~”
레이포드는 손가락으로 좌우를 까딱이다, 오른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자 이상한 문이 하나 나왔다. 판테테들이 쓰는 전용 통로와 일반 지하 통로를 막는 문이었다.
판테테만 쓰는 길은 일반인들이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었기에 당연히 굳게 잠겨 있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잠긴 문은 포기하고 돌아가거나 다른 길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레이포드는 그러지 않았다.
‘쿤한테 이 짓 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쩔 수 없네. 이번 한 번만 하자. 미안해, 동생.’
레이포드는 제 신발 밑창을 열어 칩과 핀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순식간에 마법 장치를 해제하고 문을 땄다. 철컥 소리와 함께 굳게 닫힌 문이 열렸다.
그는 깔끔하게 열린 문이 기분 좋은지 살짝 밝아진 얼굴로 나아갔다.
그렇게 또 얼마나 걸었을까. 꽤나 쾌적하면서도 깨끗하게 꾸려진 지하 방이 나왔다. 그리고 그 앞엔 반듯하게 깎인 돌계단이 있었다.
드디어 위로 가는 계단이 나오자, 그는 조금 전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두 칸씩 뛰어올랐다. 그리고 아까 그랬던 것처럼 핀을 이용해 잠긴 천장의 문을 열었다.
순간 높은 천장과 함께 무수히 많은 책장이 보였다.
서재인가? 비싼 책 많네.
레이포드는 앞에 있는 책장을 보며 위로 올라왔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이런. 손님이 오셨군.”
레이포드는 바로 뒤를 돌아봤다. 짙은 색의 소파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밝은 잿빛 머리 아래로 붉은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어라? 키리기스 씨네요.”
“그 문으로 손님을 맞이해 보는 건 처음이군.”
키리기스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대체 문은 어떻게 연 거지?”
“제가 잔재주를 좀 배웠거든요.”
레이포드가 그를 향해 핀 두 개를 들어 보였다.
“원래부터 할 줄 알았나?”
“그런 건 아니고요, 동생 가르쳐 주려고 공부했어요.”
쿤이 납치를 당했을 때, 레이포드는 쿤뿐 아니라 제 동생들에게 이런 일이 계속 생길 수 있다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동생들이 쉽게 탈출할 수 있도록 잔기술을 배워 가르쳐 주었다. 문을 따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온 김에 식사라도 하고 가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오면 밥부터 먹이시려고 하시네요.”
“요즘은 그러지 않아.”
전에는 그랬지만, 요즘은 부쩍 바빠지는 바람에 손님이 와도 잘 챙겨주지 못했다.
일례로 지난번 쿤과 루가 왔을 때가 그랬다.
하지만 오늘은 여유가 있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이기도 하고 말이다.
“자네가 좋아하는 걸로 준비하라 하지.”
“괜찮아요. 저녁은 동생이랑 먹을 거거든요. 시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레이포드는 핀과 칩을 다시 신발 밑창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털었다.
“그러니 식사 초대는 다음에 받겠습니다. 그보다 그거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레이포드가 테이블에 놓인 새하얀 가면을 가리켰다. 키리기스가 항상 쓰고 다니는 거였다.
“전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은 보면 안 되잖아요.”
“이런. 까먹고 있었군.”
키리기스는 가면을 썼다. 그의 붉은색 눈동자가 반달 모양의 눈구멍 사이로 사라졌다.
고작 가면 하나 썼을 뿐인데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눈동자의 색 역시 점차 변해갔다.
“그러고 보니 디오나 님은 잘 계시나?”
조금 전보다 살짝 더 낮은 목소리가 레이포드의 귓가를 두드렸다.
“아, 까먹고 있었네요. 디오나 님께서 키리기스 씨를 만나면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레이포드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고급스러운 편지지 하나를 꺼냈다. 원래는 오즈벨을 떠나기 직전에 주고 가려 한 거였지만, 이렇게 된 거 지금 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초대장 같던데요.”
“내용물은 모르는 건가?”
“제 물건도 아닌데 왜 봅니까.”
“이런. 이상하게 닮은 형제군.”
키리기스는 그 자리에서 바로 봉투를 뜯었다. 레이포드를 통해 보낸 것치곤 내용은 너무나 싱거웠다.
“신년 파티의 초대장이군.”
“윽. 왜 저를 통해서 보냈는지 알 것 같네요.”
키리기스는 사교 파티에 참여하지 않는 걸로 유명했다. 특히 우편으로 보내는 초대장은 답장조차 주지 않은 채 무시했다.
하지만 레이포드를 통해 직접 보내는 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른 누구도 아닌 중앙법무부의 수장이 제 오른팔을 통해 한 배달이다. 받는 이는 판테테이자 귀족인 키리기스. 오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일종의 협박이었다.
“이번엔 꼭 가겠다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린 건 그다음이었다.
둘은 자연스레 문을 쳐다봤다. 약간의 틈 후, 집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방 안에 있는 레이포드를 보곤 잠시 흠칫하다 이내 곧 평정을 되찾았다.
“도련님, 밖에 손님이 오셨습니다. 쿤 씨와 하은 씨입니다. 그리고 레이포드 님의 보좌관분도 함께 계신 것 같았습니다.”
“이런. 하은이 자네가 여기 있는 걸 알아챈 모양이야.”
키리기스가 약간의 감탄을 섞어 말했다.
레오포드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제게 마법을 건 디오나는 리란티아 내에서도 손꼽히는 마법사였다. 은이가 대단한 거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저를 추적해서 올 줄은 몰랐다.
“마차를 내주지.”
“감사합니다.”
키리기스는 집사에게 하은은 들여보내고, 레오포드에겐 마차를 내주라 명령했다.
눈치가 빠른 집사는 바로 이를 이해했다. 형제가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란 소리였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신년에 보도록 하지.”
“네.”
레이포드는 키리기스에게 아주 정중히 예를 올린 후, 서재를 빠져나왔다.
* * *
왜 지하에 있다는 형이 키리기스 씨의 저택에 있는 걸까.
형을 찾아 지하로 내려갔었던 쿤은 채 10분도 되지 않아 바뀐 형의 위치에 당황하고 말았다.
원체 빠른 사람인 건 알았지만, 길을 잃었을 때조차 빠를 건 없지 않았나 싶었다.
하물며 키리기스의 저택이라니.
쿤은 단 한 번도 편한 적 없는 곳에 형이 있단 사실이 참으로 불편했다. 이 와중에 눈치 없는 집사가 은만 불러가 쿤은 데릭과 정문 앞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왜 아무도 안 나오는 걸까 싶을 때,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쿤-!”
레이포드가 키리기스의 마차를 탄 채, 손을 흔들었다. 사람을 몇이나 걱정시킨 사람치곤 참으로 해맑았다.
“…저희 형이지만 참 대책이 없네요. 보좌관님께서 고생이 많으세요.”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일은 잘하죠?”
“네. 일은 잘합니다. 일만 잘해서 문제지만요.”
데릭이 빠드득 이를 갈며 작게 중얼거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레이포드를 향한 불만과 비난이었다.
쿤은 잠시 귀를 닫기로 했다.
잠시 후, 마차가 쿤과 데릭 앞에 섰다.
레이포드는 마치 자신의 마차라도 되는 양 당당하게 말했다.
“타.”
“…….”
쿤과 데릭은 잠시 굳었다. 이 사람에게 이 나라의 법을 맡겨도 되나 하는 의심이 아주 잠깐 들었다.
“…형, 그전에 해야 할 말이 있지 않을까?”
“뭐? 아, 쿤 너 오늘 안 바쁘면 형이랑 저녁 먹자.”
“그게 아니잖아! 사람을 걱정 끼쳤으면 미안하단 말을 먼저 해야지!!”
“아, 미안.”
“그게 미안하단 사람의 태도냐!”
쿤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가뜩이나 머리 아파 죽겠는데, 왜 나타나서 형까지 저를 괴롭히는 건지.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이제 좀 불어. 대체 왜 온 거야?”
“관광하러 왔다니까.”
“거짓말하지 마. 진짜 온 이유가 있잖아. 기자들 때문에 그래? 형한테 시선을 집중시키려고 온 거야?”
“그것도 노리긴 했는데, 꼭 그래서만은 아니야.”
레이포드에게 이는 부수적인 거였다. 되면 그만, 안돼도 그만인 그런 일.
그저 운이 좋게 잘 풀려 쿤이 편해진 거지, 설령 기자들이 제게 몰리지 않았더라도 어떻게든 남매들이 피해를 보지 않게 했을 것이다.
레이포드는 창틀에 턱을 괴었다.
“진짜 그냥 휴가 쓴 거야. 관광도 하고 네 얼굴도 볼 겸. 난 너한테 숨기는 것도 거짓말한 것도 없어.”
그가 동생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