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18
117화-형제와 이름 (07)
나는 말이야.
다섯 음절의 문장이 쿤의 귀에 콕 박혔다.
“…뭐?”
쿤은 저도 모르게 이맛살이 찌푸렸다. 저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 하며, ‘나는 말이야’라니. 그 소린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는 소리 아니던가.
‘내가 뭘 숨긴다고 생각하는 거야?’
대체 뭘? 설마 마법 얘기인가? 하지만 형이 이걸 알 리가 없는데…….
제 마법은 역 차원문을 타야지만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형하고는 역차원문은커녕 일반 차원문도 함께 본 적이 없다.
‘할머니가 말했나? 하지만 할머니 성격에 형한테 이런 걸 말할 리 없는데…… 그럼 마법이 아니라 다른 걸 말하는 건가?’
쿤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레이포드는 그런 동생을 빤히 내려다봤다. 저 작은 머리통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다.
“동생아, 머리 쓰는 건 참 좋은데, 마차에 타고 해라. 네가 그러는 바람에 데릭도 서 있어야 하잖아.”
쿤이 흠칫하고 놀랐다. 인제 보니 정말로 데릭이 제 옆에 서 있었다.
쿤은 아차 하며 빠르게 마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데릭이 기다렸다는 듯 따라 올랐다.
레이포드의 옆에 앉아 다시 그가 한 말을 곱씹고 있는데, 갑자기 마차가 출발했다.
“은이 씨 아직 안 탔는데?”
“걱정하지 마. 그분은 알아서 그림자 타고 잘 오실 거야.”
레이포드가 그리 말하며 창문을 닫았다.
그가 은을 아는 거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뭔가 뉘앙스가 미묘했다. 마치 사적으로 잘 아는 것처럼 친근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형, 혹시 은이 씨도 혜성 씨처럼 전에 만난 적 있어?”
“아니.”
“근데 왜 그렇게 친하다는 듯이 말해?”
“누가 편지마다 뻔질나게 쓰는데 어떻게 안 친해. 그쪽은 몰라도 이쪽은 내적 친밀감이 넘쳐난다고.”
레이포드가 그리 말하며 다리를 꼬았다.
쿤은 턱을 괬다. 생각해 보니 집에 보내는 편지에 단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섰었다. 특히 은이의 경우는 워낙 대단한 마법사라 몇 번이나 이런 일이 있었다며 적었다.
‘하긴. 그렇게 많이 읽었으면 익숙할 만하겠… 응?’
순간 쿤이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잠깐, 나 형한테 편지 쓴 적 없잖아.”
제가 보내는 편지는 로비츠 영지의 본가로 가는 거였다. 즉, 큰누나와 작은누나, 작은형이 보는 거지, 큰형이 보는 편지는 아니었다.
쿤이 이를 꼬집자 레이포드가 작은 한숨과 함께 답했다.
“그래. 없지. 단 한 번도.”
기분 탓일까. 말투가 묘하게 뾰족했다.
“그럼 어떻게 알았어?”
“리나가 말해줬어.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단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다. 그래서 좀 알아.”
“…….”
쿤은 제 형을 가만히 쳐다봤다.
아까부터 날이 선 어투하며, 불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시선까지. 평소 제가 알던 형과는 그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
다른 일로 화풀이할 사람은 아니니 분명 원인이 제게 있을 것이다.
쿤은 다시금 형이 했던 말을 되짚어봤다.
순간 어떤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형, 설마… 내가 아무 말 안 해서 서운했던 거야?”
레이포드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쿤은 제 추측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그는 여태 형에게 판테테가 되었다는 것은 물론이고, 어떻게 지냈는지를 말한 적이 없다.
레이포드의 성격상 동생의 뒷조사를 할 리 없으니 그가 이 일을 알게 된 건 신문을 본 후나 남매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일 것이다.
그렇다. 레이포드는 동생에 대한 모든 걸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를 통해 알게 되었다.
‘돌겠다 진짜.’
쿤은 그제야 레이포드가 말했던 ‘나는 말이야’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동시에 그가 왜 오즈벨에 왔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는 기자들을 낚거나 다른 의중이 있어 온 게 아니었다.
그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러 온 거다. 동생이 판테테가 된 것부터 시작해, 어떻게 지냈는지까지. 다른 남매들과는 직접 편지로 주고받았던 그 모든 내용을 말이다.
“나를 보러 왔단 말이 진짜였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것 때문에 휴가를 냈다고?”
“음. 그렇게 말하면 형 진짜 서운한데.”
“…….”
“너한테는 그게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선 그렇지 않단 말이지.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되기도 하고.”
“…….”
“뭐, 그래도 이제는 직접 봤으니까 됐어.”
레이포드는 그리 말하며 창 너머를 쳐다봤다.
됐다는 사람치곤 그 표정이나 행동이 전혀 안 괜찮아 보였다.
쿤은 끙끙거리며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했다. 그사이 마차가 오즈벨 지부에 도착했다.
레이포드는 동생을 위해 친히 마차의 문까지 열어주었다.
“일 열심히 해.”
“형은 안 내려?”
“난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야지, 기자도 만나야 하고.”
“밥 먹자며.”
“그거야 그냥 한 말이고.”
“…….”
“수고해라.”
레이포드는 쿤이 내리기 무섭게 마차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정말 그대로 가버렸다.
쿤은 바보처럼 멍하니 눈만 끔뻑였다.
인제 보니 서운한 걸 넘어서 단단히 삐친 모양이다.
거기다 쿤은 레이포드가 이곳에 온 지 이틀이나 지났음에도 형을 위해 시간을 따로 뺀 적이 없었다.
서른한 마리의 차원이동자와 티아문에게 정신이 팔려 형을 신경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고야…….’
큰형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쿤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실수하고 말았다.
우선순위도 틀렸다.
쿤은 지금 제게 일어난 세 가지 일의 우선순위가 티아문, 차원이동자, 형 순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뒤의 두 일은 제가 움직이지 않아도 알아서 해결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 보니 이거야말로 제가 직접 풀어야 할 일이었다.
쿤은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궁리했다.
* * *
레이포드는 숙소 방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드러누웠다.
잔뜩 구겨진 고급 재킷을 보며 데릭이 미간을 좁혔다.
“옷 구겨집니다.”
“몰라. 구겨지라 해.”
“제게 주십시오.”
“됐어. 그냥 있을래.”
“정말이지…….”
데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은 그렇게 잘하면서 평소에는 왜 저 모양인지. 정말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기자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정말 만나실 겁니까?”
“이미 볼 만큼 봤는데, 뭘 또 만나.”
“역시 쿤을 떼어내기 위해 거짓말한 겁니까?”
“…….”
레이포드가 입을 꾹 다물었다. 표정만 보면 간식을 주지 않는다고 엄마에게 심통 부리는 아이 같았다.
“말 안 할 수도 있지, 그게 그렇게 서운하십니까?”
“네가 아들 같은 동생이 없어서 내 기분을 모르는 거야.”
신문 기사와 리나를 통해 쿤의 이야기를 알게 됐을 때, 레이포드가 느낀 감정은 일반적인 분노나 서운함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굳이 따지자면 배신감에 좀 더 가까웠다. 그것도 아주 속이 쓰린 배신감.
“걔가 왜 나한테 말을 안 했는지는 알고 있어. 내가 그 여자를 싫어하고, 판테테도 안 좋아하니까 뭐라 할 거라 생각한 거겠지. 근데 그것도 좀 짜증 나더라. 내가 얘한테 그 정도로 믿음을 못 줬나, 싶고.”
레이포드 역시 남매들처럼 쿤에게 다른 꿈을 찾는 게 어떠냐는 말은 했었다.
하지만 그는 동생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판테테란 꿈을 꿔왔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레이포드는 오 남매 중 유일하게 쿤의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이였다.
문제는 쿤이 그 사실을 몰랐단 거지만.
“제일 열받는 건, 나보다 그 여자가 이 사실을 먼저 알았단 거야.”
“역시 가장 화가 난 부분이 그겁니까.”
“짜증 나잖아. 심지어 뭐? 조작? 미쳤나. 차라리 애를 설득할 것이지, 그게 할 짓이냐고.”
레이포드가 빠드득 이를 갈았다.
데릭은 그런 제 상관을 빤히 구경했다.
판테테를 싫어하면서 이를 반대하지 않는 레이포드와 판테테의 초석이면서도 손자를 막는 엘리아노. 참으로 아이러니한 가족이었다.
“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알겠습니다, 레이포드 님이 아주 분한 상태라는 것도요. 하지만 지금은 투정을 부리기보단 다른 일을 먼저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일?”
데릭은 제 트렁크 중 하나를 열었다.
뭔가 싶어 보니 서류 뭉치가 가득 들어 있었다.
레이포드가 승인해야 할 서류들이었다.
“대체 이걸 왜 챙겨온 거야……. 나 지금 휴가 중 아니었어?”
“맞습니다. 하지만 어디의 누구 씨가 제일 바쁜 시기에 휴가를 내서 말이죠. 이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이라도 해놓으셔야 합니다.”
“하아… 나 그냥 기자 만날래.”
“실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 하나라도 더 확인하세요.”
데릭이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 안에 일을 다 끝내겠다는 결의가 엿보였다.
레이포드는 그를 보좌관으로 뽑은 걸 후회하며 몸을 일으켰다.
* * *
쿤은 삼십여 분간 제 형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그 끝에 내린 결론은 ‘일단 쳐들어가자’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혼자 끙끙대는 것보다 그냥 가서 대화하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았다.
옛날부터 쿤네 오 남매는 화해하거나 어색한 상황을 풀 때 식사 시간을 이용하곤 했다.
거절당했지만, 밥 먹자는 이야기도 나왔겠다, 조금 있으면 저녁 식사 때이니 이걸 핑계 삼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기자들이 있으니까 외식은 무리겠지?’
가장 편한 건, 그냥 레이포드를 오즈벨 숙소로 부르는 거였지만, 그건 단원들에게 민폐일 것 같았다.
결국, 쿤은 도시락을 싸 가기로 결정했다.
담당은 아니지만, 차원이동자가 있었기에 쿤은 가장 먼저 혜성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도 그는 별말 없이 쿤의 외출을 허락해 주었다.
다음엔 지하로 가 루와 녹턴에게 오늘 오후는 형과 보낼 거라 말해두었다.
개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루는 치사하게 저 혼자 도망가냐며 나무라다 다른 단원들의 밥도 해놓겠다는 말에 흔쾌히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쿤은 빠르게 도시락을 싼 후, 북청 사자에게 부탁해 은신을 썼다. 그리고 레이포드를 찾아 나섰다.
레이포드와 데릭이 머무는 숙소는 광장에 있는 작은 여관이었다.
오즈벨은 관광객이 없다 보니 숙박 시설도 적었고, 숙박업 자체도 잘 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건물 자체는 깔끔했다. 시설도 나쁘지 않았고. 하지만 영 내키지 않는 게 동생 된 마음이었다.
‘301호라고 했던가?’
쿤은 몰래 층계를 타고 올라갔다.
레이포드가 기자를 만난다고 해서, 여관에 기자들이 바글바글할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텅텅 비어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북청 사자들 안 데리고 오는 건데.’
쿤은 301호 앞에서 은신을 풀고 방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데릭이 문을 열었다.
“누구십… 쿤?”
“데릭 보좌관님도 같이 계셨네요. 형 보러 왔어요.”
“아, 지금 안에 계십니다. 근데…….”
데릭이 말끝을 흐리며 방안을 쳐다봤다.
쿤의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이동했다. 순간 그가 멈칫했다. 서른한 마리의 개가 지내는 훈련장보다 더한 개판이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