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20
119화-형제와 이름 (09)
언덕을 내려온 쿤은 가장 먼저 보보한테 연락했다.
“보보 씨, 어디 계세요?”
[루 씨가 불러서 청소하러 가고 있어요…….]보보의 힘없는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전해졌다. 청소를 떠나, 루에게 부려지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근데 갑자기 저는 왜 찾으세요? 무슨 일 있나요?]“아뇨, 제가 어제 형 도시락 싸면서 보보 씨 주려고 반찬 만들었거든요. 우체국 가는 길에 주고 가려고 했는데 길이 엇갈렸네요.”
아무 이유 없이 보보네 가면 수상할 것 같았기에, 실제로 반찬을 만들어왔다.
물론, 그 외엔 다 거짓말이었지만.
쿤은 진실과 거짓을 섞어가며 제가 원하는 정보를 물었다.
“들고 다니기 뭐한데, 집에 티아문 있나요?”
[네, 있을 거예요.]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제가 원하는 답이 딱 나왔다. 심지어 보보까지 집에 없으니, 티아문을 데리고 자릴 옮길 번거로움도 사라졌다.
“그럼 티아문한테 대신 전해줄게요.”
쿤은 통신을 끊고 보보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제 주머니에 얌전히 있는 북청 사자들을 확인했다. 티아문을 찾거나 잡을 때,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데리고 나온 거였다.
그는 티아문이 도망칠 때를 대비해 북청 사자 두 마리를 창문들 앞에 대기시켜 놓은 뒤, 현관문을 두드렸다.
똑똑.
꽤나 크게 두드렸음에도 집안에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설마 그 잠깐 사이에 내뺀 건가? 아니면 없는 척하는 건가?
쿤은 다시금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이번엔 목소리를 냈다.
“티아문, 집에 있는 거 다 알아. 빨리 문 열어. 안 열면 보보 씨한테 받은 열쇠로 따고 들어갈 거야.”
물론 받은 열쇠 같은 건 없었다. 보보가 열쇠를 줄 성격도 아니고 말이다.
쿤은 제가 해놓고도 너무 말이 안 되는 거짓말을 했나 싶어 뒷목을 긁적였다.
그때였다.
드르륵.
“우악!”
쿵-
다소 요란스러운 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쿤은 창쪽으로 갔다. 그러자 형 북청 사자 밑에 깔린 티아문이 보였다.
창고로 다시 온 헤라도 그렇고, 이런 뻔한 거짓말에 속는 티아문도 그렇고. 이렇게 허술하면서 여태 이 큰 비밀을 어떻게 숨겼나 싶었다.
“괜찮냐?”
쿤의 질문에 티아문이 빠드득 이를 갈았다.
창고에서 보았던 청년이 아닌, 쿤이 익히 잘 아는 열일곱 살의 모습이었다.
“네 발로 들어갈래, 아니면 물려서 들어갈래? 참고로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네가 아무리 빨라도 얘들보단 아니니까.”
“…무거우니까 얘 좀 치워.”
쿤의 턱짓에 북청 사자가 등에서 내려왔다.
티아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사이 다른 쪽 창에 있던 동생 북청 사자가 다가왔다.
“…한 마리가 더 있었어?”
티아문은 정말로 도망칠 길이 없다는 걸 깨닫고 모든 걸 포기했다.
그는 다시 창을 넘어 방안으로 들어갔다. 어찌나 능숙한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쿤과 북청 사자들도 그를 따라 창을 넘었다.
밖에서 보지 못하도록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자, 티아문이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보보가 항상 청소해 주는 걸까. 아니면 그 역시 형을 닮아 깔끔한 걸까. 신발을 신고 서 있기 미안했다.
하지만 여기선 틈을 주면 안 되었기에, 쿤은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헤라한테 다 들었어.”
“…젠장.”
티아문이 짤막한 욕을 내뱉었다.
쿤이 모든 걸 안다 해서 그런 걸까. 아이의 태도와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것이 내숭을 떠는 것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거였다.
“그냥 관심 끄면 안 돼? 헤라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왜 이렇게 남한테 관심이 많은 거야.”
“일반적인 일이라면 그랬겠지.”
자그마치 죽은 사람이 뒤바뀌었다.
못 본 척 넘길 만한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이는 객관적인 상황만 보더라도 신분 사칭이란 범죄를 저지르는 거였다.
흡혈 일족이란 걸 숨기기 위해서라도 조용히 살아야 하는데, 이 일이 알려진다고 해봐라. 기사단은 물론 중앙 소속의 판테테에게까지 조사를 받아야 했다. 여러모로 곤란해지는 것이다.
쿤이 냉정하게 상황을 꼬집자 티아문이 빠드득 이를 갈았다.
“내가 원해서 된 게 아니야.”
“알아.”
이미 헤라에게 들어 그가 어떻게 티아문으로 살게 된 건지는 알고 있다.
“그래도 사실대로 말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닐 거 아냐.”
“…….”
쿤의 말대로다. 티아문에겐 상황을 되돌릴 기회가 있었다. 보보에게 진실을 밝힐 기회는 더 많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너라면 어떡할 건데.”
“뭐?”
“형이 겨우 눈을 뜨고, 모든 상황을 전해 들었을 때, 처음으로 한 말이 뭔지 알아?”
그건 그가 아직 동생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막 눈을 뜬 형에게 의사와 기사단이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심지어 그 역겨운 시체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당시 보보는 울지 않았다. 그저 시체를 외면한 채 제게 말했다.
“‘네가 살아서 다행이야’.”
“…….”
“그리고 그 뒤론 단 한 번도 내 얘기를 하지 않더라.”
자신도 제가 얼마나 개망나니처럼 살았는지 알고 있다. 제 형에게 어떤 말을 하고, 그 속을 얼마나 뒤집었는지 역시 잘 안다.
그래도 제가 죽었다고 했을 때, 슬퍼해 줄 거라 생각했다.
근데 보보에게 자신은 그런 존재조차 되지 못했다.
“이게 다가 아니야. 그날 난 아픈 동생을 두고 혼자 밖으로 나왔어.”
그의 입을 막은 족쇄는 보보의 말뿐만이 아니었다.
그 전날 보보가 저와 싸우고 외박을 했다. 그리고 당일 집에는 저와 티아문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아픈 동생을 두고 혼자 밖으로 나왔다.
만일 그때, 자신이 동생 곁에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어쩌면 그렇게 처참하게 죽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그 사실이 계속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헤라한테는 티아문이 부탁해서 나간 거라고 했지만, 사실 그거 거짓말이야. 걔 나한테 그런 부탁한 적 없어.”
그때 티아문은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부득부득 학교에 가려고 했었다. 그래서 그냥 제가 대신 가겠다 한 거였다. 저대로 두었다간 정말 사고가 날 것 같아서.
“마냥 걔만을 위한 건 아니었어. 솔직히 집에서 애 보기 싫었거든. 학교도 적당히 있다 째려고 했고.”
티아문은 자신으로 변신한 둘째 형을 말렸다.
그것이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그런 건지, 아니면 혼자 집에 있는 게 싫어서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저 동생의 말 하나하나가 귀찮고 성가셔, 티아문이 평소 갖고 싶어 하던 아버지의 팔찌를 빌려주며, 이거 줄 테니 집에 얌전히 있으라고만 했다.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그깟 팔지 따위를 주는 게 아니라 곁에 있어야 했다. 아니, 차라리 학교에 가게 둘걸. 그럼 진짜 그따위로 죽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는 그때의 모든 걸 후회했다.
전날 형과 싸운 것도, 동생을 혼자 두고 나온 것도, 티아문으로 변신한 채 구조된 것도, 병원을 수시로 오가는 기사와 판테테한테 걸릴까 싶어 내내 마법을 풀지 못했던 것도 전부 다 후회했다.
“형한테도 동생한테도 나는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었어. 그런데 내가 이걸 어떻게 형한테 말해.”
“…….”
“난 못 해.”
그가 또 한 번 강조해 말했다. 그리고 천천히 쿤을 올려다봤다.
“그니까 말하고 싶으면 네가 해.”
그의 목소리 안에서 이제 지쳤다는 듯한 체념과 끝까지 형이 몰랐으면 하는 양면의 감정이 엿보였다.
쿤은 가만히 그를 내려다봤다.
열일곱 살인데, 분명 제가 알던 청소년의 모습인데 꼭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에 완벽한 비밀이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존재해선 안 되는 비밀은 있다고 생각해. 지금 이 일이 그렇고.”
쿤은 길게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근데 내가 말할 일은 아닌 거 같아.”
헤라가 했던 ‘보보한테 어떻게 말할지 몰라 비밀을 지키고 있다’던 그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이건 남이 대신 전하기엔 너무나 무겁고 큰 내용이었다.
“그니까 네가 직접 말해.”
“말 못 한다니까.”
“그래도 하라고. 절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알게 하지 마. 그거 진짜 못 할 짓이야.”
레이포드와 보보를 같은 선상에 둘 순 없겠지만, 적어도 둘 다 동생을 둔 형이란 건 같았다.
보보가 설령 그를 정말 미워하고 싫어했다 하더라도 남을 통해 아는 것보단 직접 듣고 싶어 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나도 모른 척해줄게.”
“…….”
그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쿤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 예상 못 한 듯싶었다.
“그리고 앞으로 마법 못 쓸 거 같거나 갈 곳이 없으면, 그 창고 가지 말고 내 방에 와. 창문 안 잠글 테니까.”
“…왜 갑자기 잘해줘? 동정하냐?”
“내가 왜 널 동정해. 그냥 보보 씨한테 미안해서 그런다. 어쨌든 나도 이제 공범인 거잖아.”
나중에 보보가 이 일을 알게 되었을 때, 동생이 창고에 몰래 숨어 지낸 것보단 따뜻한 방에서 지낸 편이 덜 속상할 테니까 하는 거였다.
“진짜 비밀로 해줄 거야?”
“어.”
쿤은 거듭 약속했다.
그사이 북청 사자 두 마리가 다가 와 다리에 매달렸다. 가만히 기다리는 게 지루했던 모양이다.
쿤은 안주머니에서 사과 말린 걸 꺼냈다. 그리고 북청 사자들에게 하나씩 주었다.
빤히 쳐다보는 그의 입에도 하나 물려주었다.
쿤이 비밀을 지키겠다고 해서 그런 걸까. 그의 표정이 조금은 편해졌다.
“맛있네…….”
“그치?”
그는 잠시 쭈뼛거리다 북청 사자들을 보며 물었다.
“근데 얘들은 뭐야?”
진짜 궁금해서라기보단 어색한 분위기를 탈피하고자 하는 질문 같았다.
“내가 돌보는 차원이동자들. 아, 얘네도 형제야.”
그러고 보니 참 형제가 많았다. 저와 레이포드, 티아문과 보보, 거기에 북청 사자들까지 다 형제 아니던가.
“누가 형이야?”
“얘가 형, 얘가 동생.”
“왜 얘라 그래? 이름 없어?”
“아직 못 지었어.”
이왕 제가 돌보게 된 거 제대로 된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데, 좀처럼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이름 짓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진짜 마늘이랑 쑥이로 할까.”
“최악인데.”
“그럼 너도 하나 추천해 보던가.”
“음…….”
그는 바닥에 내려와 앉았다. 그리고 말린 사과를 우물거리는 두 아이를 빤히 쳐다봤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작게 말했다.
“건이랑 곤이 어때?”
“건이 곤이?”
“전에 티아문한테 읽어준 책이 있는데, 그때 나온 두 장수 이름이 건이랑 곤이었어. 하늘이랑 땅이란 뜻이었나.”
“오.”
처음으로 그럴싸한 이름이 나왔다. 뜻도 나름 괜찮은 것 같았다.
보보 씨는 이름 짓는 센스가 최악이던데, 이런 건 안 닮은 모양이다.
“진짜 건이랑 곤이 할까?”
쿤은 피식 웃으며 북청 사자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 문뜩 든 생각에 고갤 들었다.
“아, 맞다. 넌 이름이 뭐야?”
“내 이름?”
“어. 계속 티아문이라고 부를 순 없잖아.”
보보에게 모든 사실을 밝힐 때까지, 어쩌면 그 이후에도 계속 티아문으로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적어도 저랑 있을 때만큼은 본래의 그로 사는 게 낫지 않겠는가.
“뭔데?”
“…토야.”
“토야?”
보보 씨도 그러더니 너도 꽤 이름이 귀엽구나…….
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말린 사과를 다 먹은 북청 사자들이 쿤을 보채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슬슬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음. 그래, 토야.”
“…….”
쿤은 가방에서 챙겨왔던 반찬을 꺼냈다.
“보보 씨가 나 왔냐고 물어보면 이거 주고 갔다 그래.”
“…알겠어.”
쿤은 북청 사자를 작게 해 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현관문을 통해 집을 나섰다.
티아문, 아니, 토야가 마당까지 따라 나왔다.
“그럼 다음에 보자.”
쿤은 손을 흔들어 보인 뒤, 몸을 돌려 숙소로 향했다.
토야는 그런 쿤을 가만히 쳐다봤다.
아주 오래간만에 듣는 제 이름이 낯설면서도 반가워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