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35
134화-란셰의 상자 (05)
“…알겠으니까, 빨리 나오기나 하세요.”
쿤이 재촉에 루가 마지못해 방으로 나왔다.
그녀는 자리에 앉으면서도 제 얼굴과 머리칼을 신기하다는 듯 매만졌다. 그러다 부용을 빤히 쳐다봤다.
“네가 진짜 부용이라고?”
“응.”
부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쿤의 생각과 달리 루는 부용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녀의 머릿속엔 아홉 살의 모습만 있었기에 이름을 들었어도 같은 사람일 거라 생각하지 못한 거였다.
둘이 안 친했던 것도 한몫했다.
둘은 같은 유치원 출신이긴 했으나, ‘친구’란 단어에 맞는 사이가 된 건 열 살 때의 일이었다. 그전에는 ‘나 걔 알아’ 정도의 데면데면한 사이였으니 못 알아보는 것도 이해는 갔다.
“음. 너도 잘 컸구나.”
루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기억을 잃었단 것보단 훌륭하게 성장한 모습을 본 게 더 기쁜 듯했다.
쿤은 조금 의아했다. 여태 루와 함께 일해왔지만 그녀가 제 외모를 높이 사거나 자화자찬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쓸데없는 편지만 온다며 귀찮아했다.
“어릴 때는 자기 외모를 꽤 좋아했던 모양이네요.”
쿤의 중얼거림에 부용이 멋쩍게 웃었다.
“좋아한다기보단 본인이 예쁜 걸 아는 편이었죠.”
하도 그런 말을 듣기도 했고, 어릴 때부터 심미안이 뛰어난 편이라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외모나 꾸밈에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이 작고 예쁜 아이한테 약하다는 걸 알고, 이를 잘 써먹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루는 어릴 때부터 되바라진 부분이 있었다.
‘그것도 중학교 가서는 완전히 바뀌었지만.’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는 외모 때문에 본 득보단 실이 좀 더 많았다.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고백했기 때문이었다. 개중에는 골치 아픈 귀족이나 질 나쁜 사람들도 있어 루는 달에 한 번꼴로 기사단을 불렀어야 했다.
“나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해?”
루가 턱을 괴며 물었다.
쿤은 대답 대신 혜성을 쳐다봤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시선이었다.
“음…….”
혜성은 침음을 삼켰다.
돌봐야 할 차원이동자 하나와 기억을 잃은 사람 둘, 거기에 아직 깨어나지 못한 녹턴까지.
란셰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본부의 보고서가 도착할 때까진 딱히 방도가 없었기에 일단은 나눠서 이들을 돌봐야 할 것 같았다.
“차원이동자랑 녹턴은 부용이 네가 맡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부용만은 보라색 연기를 들이마셨음에도 기억을 잃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은 그녀가 란셰와 녹턴을 맡는 게 맞는 거 같았다.
“그래도 혼자는 위험하니까 보보, 네가 같이하고.”
“알겠어요.”
보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는 쿤 네가 맡아.”
“예? 저 혼자요?”
“혼자가 불안하면 사강이도 붙여줄게.”
“…….”
쿤은 잠깐 고민하다 거절했다. 여기에 사강이까지 붙으면 돌봐야 할 애가 둘이 될 것 같았다.
“그냥 저 혼자 할게요.”
“잘 생각했어. 그리고 은이 넌…….”
옆을 바라본 혜성이 그 모습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은이 그를 빤히 올려다보며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웃어?”
“네가 이러니까 진짜 단장 같아서.”
“…진짜 단장 맞아.”
“알아. 그냥 신기해서 그래. 근데 나도 보호 대상이야?”
“그래. 혹시 모르니까 나랑 강이 옆에 있어.”
“흐음~ 너희가 나를 지킨단 말이지? 뭔가 색다르네. 항상 내가 너희를 지켜줬잖아.”
“…그랬지.”
“좋아. 이렇게 된 거 왕처럼 부려 먹어야지~”
은이 그리 말하며 혜성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혜성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은이 저렇게 웃거나 접촉할 때마다 멈칫하는 것이 꼭 고장 난 장난감 같았다.
하긴, 보는 저희도 이렇게 이상한데, 당사자는 오죽하겠는가.
“보호한다고 했지, 하인이 된다고 한 적은 없는데…….”
혜성의 중얼거림에 은이 기지개를 쭉 켰다.
“그거나 그거나~ 아, 맞다. 나 밖에 구경하고 싶은데 그래도 돼?”
“…강이랑 같이 가는 거면 괜찮아.”
“넌 안 가?”
“난 본부에 연락해야 해.”
“기다릴게. 그거 기다리는 게 뭐 어렵다고 못 기다리겠어. 나간 김에 컵케이크도 먹고 오자. 너 지금 당 땡길 거 아냐. 내가 사줄게.”
은이 활짝 웃어 보였다.
혜성은 또 고장 나고 말았다. 그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깊은 한숨 소리가 쿤이 있는 곳까지 들렸다.
저것도 저거대로 고생이겠구나 싶을 때, 루가 쿤의 손을 톡톡 두드렸다.
“왜 그러세요?”
“나도 나갈래.”
“…안 됩니다.”
“왜?”
“루 씨는 너무 어려서 안 돼요.”
“너보다 나이 많다며.”
“정신은 아홉 살이잖아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아직은 안 돼요.”
“이렇게 부탁해도?”
루가 빤히 쳐다보며 최대한 예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시달린 전적이 워낙 많았던 쿤에겐 무미건조하다 못해 성가시기만 할 뿐이었다.
“절대 안 돼요. 그리고 이런 거 안 통하니까 해도 소용없어요.”
“쳇.”
루는 혀를 차며 식탁에 엎드렸다. 긴 머리칼이 미역마냥 흘러내렸다.
연신 혜성을 고장 내는 은과 되바라진 꼬맹이가 된 루.
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란셰든 본부든 빨리 해결책을 내놓길 바랐다.
* * *
사강과 혜성을 끼고 자유롭게 밖을 돌아다닌 은과 달리 루는 지하의 다른 방에 처박히게 되었다.
그녀의 활동 범위는 본인이 머무는 방과 란셰가 있는 방 딱 두 곳으로 제한되었으며, 그 외에는 일절 돌아다닐 수 없었다.
처음엔 ‘그래도 숙소 안은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되지 않나?’ 싶던 쿤이었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됐을 때 이 생각을 접고 말았다.
루가 검을 써보겠다면서 설치다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홉 살의 루는 훨씬 더 호기심이 많고 무모했다. 물론 타고난 귀찮음 때문에 그 흥미와 도전이 오래가진 못 했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벌이는 사고의 규모가 애답지 않았다.
건이 곤이와도 죽이 잘 맞았다. 전이었으면 귀찮다며 저에게 맡기지 말라 했을 텐데, 지금은 신기한 듯 툭툭 건드리며 장난을 걸었다.
갑작스러운 루의 변화에 북청 사자들은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장난을 받아들였고 그녀와 함께 놀다 또다시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았다.
덕분에 쿤은 루를 부용과 보보에게 맡긴 뒤, 부러진 식탁을 치워야만 했다.
“차라리 차원이동자 돌보게 해달라고…….”
쿤은 눈물을 삼키며 바닥을 정리했다. 그때 사강이 들어왔다.
“헉, 여기 왜 이래?”
“루 씨 작품이에요.”
“와… 너 아침에도 방 치우지 않았냐?”
“네, 지금이 두 번째예요.”
쿤의 한숨에 사강이 답지 않게 어깨를 토닥였다.
“힘내라.”
“이게 뭐예요. 내가 차원이동자 돌보려고 판테테 됐지, 루 씨 돌보려고 됐냐고요……!”
정작 차원이동자인 란셰는 아직도 꿈나라인데 루가 이러고 있다.
이쯤 되니 보오보의 향수병을 달래거나 호수를 돌보는 게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쿤이 쓰레기봉투를 묶으며 울분을 토하자, 사강이 허탈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래도 넌 나. 루를 나무랄 수 있잖아.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고.”
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루 동안 거나하게 사고를 친 루와 달리 은은 별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그저 가끔 혜성을 고장 낸 게 다였다.
“혹시 제가 모르는 사이 사고라도 치셨어요? 아니면 혜성 씨가 완전히 고장 난 거예요?”
“그건 아닌데… 아니다. 사고는 사고구나.”
쿤은 요지를 모르겠어서 고갤 갸웃거렸다.
사강은 그런 그에게 손에 들고 있던 종이 가방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들고 있었는데 뭐인지 묻는 걸 까먹었다.
“이게 뭔데요?”
“오즈벨에서 제일 비싼 컵케이크. 은이가 사비로 산 거야.”
“헉.”
“심지어 스무 개나.”
“헉!!”
쿤은 제 입을 틀어막았다. 이 비싼 걸 빚쟁이에, 짠돌이인 은이 구매했다고?
“지, 진짜 사비로 산 거예요? 오즈벨 지원금은요?”
“그냥 지 돈으로 사고 싶대. 성인이 됐으니까 이 정도 소비는 해도 되지 않냐는데 차마 말릴 수가 없었어.”
“아니, 그걸 보고만 있으면 어떡해요. 어떻게든 뜯어 말리셨어야죠!”
티를 잘 안 내서 그렇지, 과자 하나 사는 것도 벌벌 떠는 은이었다.
쉬는 시간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일만 하는 그녀가 일주일치 아르바이트비를 쓰는데도 안 말리다니.
“나중에 은이 씨 기억 돌아오면 어쩌시려고요!”
“야, 그럼 너라면 어떡할래! 돈 번다고 좋아하는 애한테 ‘사실 너한텐 평생 일해도 못 갚을 빚이 있어’라고 말할 수 있어?!”
“…….”
쿤은 고개를 내저었다. 설령 그 상대가 루였다도 그건 쉽게 말 못 할 거 같았다.
기억이 사라진 것도 불안한데, 그사이 어마어마한 빚까지 생겼다고 하면 누가 쉽게 버틸 수 있겠는가.
“그건 알겠는데… 그래도 그렇지…… 진짜 괜찮은 거예요?”
“몰라… 난 아무것도 모르기로 했어.”
사강이 파들파들 떨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쾅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루가 건이와 곤이를 이끌고 돌아왔다.
“와씨, 깜짝이야.”
“우악. 살살 좀 다녀요!”
“아, 미안.”
루가 전혀 미안하지 않은 투로 사과한 뒤, 쿤 앞에 성큼성큼 다가왔다.
“야. 나도 나갈래.”
“…안 된다니까요.”
“빨간 머리 언니는 나갔잖아.”
“그건 은이 씨니까…….”
“그럼 1층이라도 올라갈래. 지하에만 있는 거 답답해.”
“그것도 이미 안 된다고 했잖아요.”
쿤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탁이니까, 조금만 참아주세요. 차원이동자들도 72시간을 잘 버티는데, 왜 루 씨가 이래요.”
“난 차원이동자가 아니잖아.”
“…그럼 더더욱 잘 참아야죠. 판테테잖아요.”
“판테테의 기억이 없는데 판테테라고 할 수 있나?”
“당연하죠. 루 씨가 지금 입고 있는 것도 판테테 재킷이잖아요.”
쿤의 말에 루가 제 몸을 내려다봤다. 춥기에 별생각 없이 아무거나 주워 입었는데, 지금 보니 판테테 재킷이었다.
“이걸 입으면 판테테가 되는 거야?”
“배지 달았으면 판테테죠.”
“좋아. 그럼 나갈래.”
“…왜 결론이 그렇게 되는 거죠?”
쿤이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루가 허리를 짚으며 답했다.
“내가 판테테라며. 그럼 여기 갇혀 있을 이윤 없지. 여기 차원이동자들만 가두는 방이라며. 그리고 내가 너보다 선배잖아. 그럼 내 결정권이 더 높은 거 아니냐?”
“…….”
쿤은 말을 잃었다. 따박따박 이어지는 말대꾸에 속에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아니, 이 인간은 왜 애일 때도 한 마디를 안 지는 거야.
아홉 살이면 좀 아홉 살답게 순수하고 귀여우면 안 돼? 요즘 애들이 얼마나 착한데, 왜 이 모양인 거냐고.
쿤은 길게 숨을 쉬며 화를 달랬다.
그때였다. 사강이 태연하게 말했다.
“아닌데. 쿤이 너보다 선배야.”
엥?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쿤은 가만히 사강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가 뻔뻔하게 거짓말을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