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36
135화-란셰의 상자 (06)
“너보다 1년 먼저 들어왔어.”
“…제가 나이 더 많다면서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먼저 시험 보고 합격한 쪽이 선배지.”
“…….”
루가 미심쩍다는 눈으로 쿤을 쳐다봤다. 진짜인지 묻는 거였다.
그는 사실대로 말해줄까 하다, 문뜩 이러는 편이 루를 달래는데 좀 더 좋지 않을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루 씨보다 1년 선배 맞아요.”
“근데 왜 처음부터 말 안 했어?”
“그, 그거야 루 씨가 기억을 잃었기도 하고, 경황이 없어서 그랬죠.”
“맞아. 기억 잃어서 정신없는 애한테 어떻게 서열을 따지고 들어.”
사강까지 거들고 나섰다.
루는 입을 꾹 다물었다. 표정이 오묘하게 변한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헷갈려하는 것 같았다.
“…진짜예요?”
“어. 심지어 너 판테테 시험 일곱 번이나 떨어진 빡대가리야. 그러다 혜성이가 스카우트해서 겨우 들어왔고.”
“…….”
사강의 말에 쿤도 입을 다물었다. 이미 자신이 일곱 번이나 시험에서 떨어진 빡대가리가 아니란 걸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내가 그렇게 멍청할 리 없는데.”
“아냐, 너 빡대가리 맞아. 정 뭐하면 가서 애들한테 물어봐. 일곱 번이나 시험에서 떨어진 애가 있는데 사실이냐고.”
“…….”
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으나 정말로 그렇단 대답을 들을까 봐 못 하는 거 같았다.
기억을 잃기 전의 루였다면 사강이 헛소리를 한다는 것을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거기다 결계 마법사는 판테테에서 손수 모셔갈 만큼 귀한 인재였다.
하지만 지금의 루는 사강의 특징도 모르고, 판테테와 관련된 지식도 없다.
때문에 그의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판가름내지 못했다.
이럴 때는 루가 정말로 기억을 잃은 것이 실감이 났다. 아무리 되바라져도 아직 어리고, 생각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으니 말이다.
사강은 루가 제 거짓말에 속아넘어가는 것 같자, 쐐기를 박았다.
“이거 안 되겠어. 너 앞으론 쿤이랑 나한테 선배님이라고 불러.”
“…선배님이라고요?”
“뭘 그렇게 정색해. 너 원래도 우리한테 선배님이라고 했어. 이렇게 버릇없이도 안 굴고 존댓말도 했다고!”
사강이 서운하단 투로 말했다. 그러나 자꾸 비죽비죽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길 수는 없었다.
쿤은 그런 그를 흘끔 흘겨봤다. 처음에는 루를 설득하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는데, 인제 보니 그냥 골탕먹이려는 거 같았다.
보보가 들어온 건 그다음이었다.
“쿤 씨, 지금 당장…….”
그는 다급히 말을 잇다 방안의 심상찮은 분위기에 말끝을 흐렸다.
“…무슨 일 있어요?”
“야. 내가 진짜 여우눈보다 후배야?”
“네?”
“이 둘이 정말 내 선배냐고.”
“예? 어…….”
보보의 호박색 눈동자가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좋지 않은 머리를 굴려 이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그때 사강이 그에게 눈을 깜빡이며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서둘러 새 판을 깔았다.
“야, 보보도 너보다 선배야. 제대로 보보 선배님이라고 해야지.”
“…….”
순간 보보가 눈을 크게 떴다. 사강이 무슨 짓을 하는지 눈치챈 것이다.
“맞아요. 제가 선배예요.”
루에게 맺힌 게 많았던 보보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열의를 보이며 의욕적으로 말했다.
“저한테도 꼬박꼬박 선배라고 했고, 매일 저녁 저 대신 일지도 작성했어요.”
“맞아. 그리고 아침마다 통신해서 문안 인사도 했어!”
“저를 향한 배려와 존중도 넘쳐났고요! 말도 예쁘게 하고, 청소도 깨끗하게 하고! 심부름도 대신 해줬다고요!”
“맞아 맞아! 싹싹하고 상냥했다고!”
보보와 사강이 합세해 거짓된 루를 만들어냈다.
진짜 웃기고 환장할 일이었다. 개중 가장 웃긴 건 루였다.
“이상하다. 내가 그렇게 착하게 클 리 없는데…….”
어린 그녀는 아이답지 않게 자기객관화가 정확했다.
“아무리 선배여도 일을 대신하고, 아침 문안을 할 성격이 아닌데… 내가 정말로 그랬다고? 그것도 저런 귀찮은 아저씨한테?”
루가 세상 진지한 얼굴로 고민했다.
표정을 보니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고 싶은데, 진짜라는 답을 들을까 못 물어보는 것 같았다.
“어디 하늘같은 선배한테 귀찮은 아저씨라니!”
“전 꼭 선배 소리를 듣고 말 거예요. 존댓말도 들을 거라고요!”
사강과 보보의 눈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거 같았다.
“자, 어서 선배라고 해봐!”
“배려와 존중!”
“윽… 서, 선…….”
“어서!”
“빨리요!”
“서, 선배…….”
루가 마지못해 선배 소리를 내뱉었다.
사강과 보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루에게 몇 번이나 존댓말과 선배님 소리를 하게 만들었다.
쿤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참 재밌게들 논다 싶었다.
‘근데 저러다 루 씨가 기억을 되찾으면 어쩌려고 저러지?’
만일 루의 모든 기억이 돌아온다면, 사강과 보보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숙원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좋아. 나는 여기서 발을 빼자. 나한테도 뭐라 하면 사강 씨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 거라고 해야지.’
쿤은 만일을 대비해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지를 짜놨다.
“근데 보보 씨, 전 왜 찾은 거예요?”
쿤의 질문에 보보가 아차 했다.
“맞다. 본부에서 보낸 자료가 도착했어요.”
“벌써요? 혜성 씨는 어디 계세요?”
“건너편 방에 계세요.”
쿤은 북청 사자들더러 방에 있으라 한 뒤, 방을 박차고 나갔다. 보보와 사강, 루도 곧장 그 뒤를 따랐다.
란셰가 머무는 건너편 방문을 열자 소파의 팔걸이에 걸터앉은 은과 그 옆에 있는 혜성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앞엔 부용이 서 있었다.
“보고서 도착했다면서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예요?”
쿤의 질문에 은이 활짝 웃었다.
“아니, 내가 직접 가지고 왔어. 혜성이가 그림자 타는 법 가르쳐 줬거든. 그래서 본부? 거기까지 금방 다녀왔지.”
중학생 때의 은은 마법의 활용 범위가 좁아 그림자를 타고 이동할 줄 몰랐다. 그러나 혜성의 설명을 듣고 금방 사용법을 익혔다.
제아무리 몸이 기억하고 있다 해도, 말만 듣고 바로 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하물며 코앞도 아니고 본부라니. 진짜 어릴 때부터 마법 실력이 좋았구나 싶었다.
“이런 게 되는 줄 알았으면 귀찮게 걸어서 안 다니는 건데.”
학교도 먼데 힘들게 걸어 다녔다며 은이 투덜거렸다.
혜성은 희미하게 웃으며 읽고 있던 서류를 덮었다. 그리고 쿤에게 건넸다.
“11페이지부터 보면 돼.”
쿤과 보보, 부용, 그리고 사강은 서류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혜성이 말한 페이지를 펼쳤다.
상자와 행복에 관한 내용이 무려 네 장에 걸쳐 적혀 있었다.
네 사람은 빠르게 이를 읽어내렸다. 그리고 금세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달았다.
“그니까 행복이라는 게…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되돌려준다는 거예요?”
장황한 설명이 적혀 있지만 요약하자면 그랬다. 상자 안에 든 보라색 기체는 이를 마신 자를 가장 행복한 시절로 되돌려주는 물질이고, 은과 루는 이를 마셔 본인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간 거라고.
“설마 싶긴 했지만, 진짜일 줄이야…….”
혜성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쿤 역시 아주 잠깐 비슷한 생각을 했기에 이 내용이 그렇게까지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왜 원래대로 돌아가는 방법은 없어요?”
혹시 몰라 몇 번이나 서류를 훑어봤음에도 그 어디에도원래대로 돌아가는 방법이 적혀 있지 않았다.
“설마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하는 거예요?”
불안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서류를 꽉 움켜쥔 순간, 란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기억이 돌아올 거예요.]쿤이 흠칫 하며 침대 쪽을 쳐다봤다. 지금 막 깨어났는지, 란셰가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 상자는 어디 있죠?]“다른 곳에 보관 중이야.”
혜성의 대답에 란셰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돌려주세요.]“모든 걸 다 말해주면 돌려주지.”
[…상자를 먼저 돌려주세요.]“이야기가 먼저야.”
[제가 상자를 줄 때까지 아무 말 안 하면요?]“그럼 상자를 부수는 수밖에.”
란셰가 크게 동요했다. 혜성이 한 말이 진담이란 걸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싸늘하고 낮은 어조에 당황한 건 은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 왜 그렇게 무섭게 말해. 아직 어린애잖아.”
“어린애가 아니야.”
혜성의 말대로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억만 잃은 은들과 달리 피루나 사람들은 신체 또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한다. 때문에 외관으로 나이를 판가름할 수 없었다.
‘행복을 많이 마시는 사람일수록 몸이 자라지 않겠지.’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성장이란 행복을 열지 않거나, 과거보다 더 행복한 일이 생겼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이야기를 할 마음이 생겼어?”
혜성의 질문에 란셰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뭐가 궁금하신데요?]“일단 아까 했던 이야기부터. 원래대로 돌아갈 거라는 게 무슨 소리지?”
[다른 사람의 행복은 효과가 오래가지 않아요. 짧으면 이틀, 길어도 닷새를 넘기지 않죠.]피루나 사람들의 행복은 본인의 영혼을 갈아서 만드는 마법의 기체였다. 때문에 소유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마시면 그 효과가 오래가지 않았다. 은이나 루가 어려지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또한, 그들은 보라색 기체 안에 중요한 기억을 담을 수 있었다. 그래서 제아무리 행복을 많이 마셔도 해당 기억만은 까먹지 않았다.
[저희는 행복에 관한 모든 걸 기억하고 있어요. 그니까 믿으셔도 돼요.]“…만일 원래대로 돌아가면, 지금의 기억은 어떻게 되지? 사라지는 건가?”
란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사라지지 않아요. 이 역시 기억이니까요.]“그렇다면 닷새까지 기다릴 수 없어. 지금 당장 기억을 되돌려야 해.”
혜성의 단호하게 말했다.
란셰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상하네요. 행복하면 좋은 거 아닌가요? 왜 다시 불행한 순간으로 돌아가려고 하죠?]정말로 이해 못 하겠다는 투에 혜성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기억이 돌아왔을 때 느낄 감정은 생각 못 하는 것 같군.”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면 기억이 돌아와도 큰 타격이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는 더 큰 불행이 된다.
“행복한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비참함만 커질 뿐이야.”
혜성이 어느 때보다 단호하게 말했다.
쿤은 그런 그를 가만히 쳐다봤다. 왜일까. 지금 하는 말이 은이나 루가 아니라 꼭 그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미안하지만, 그런 방법은 없어요.]란셰의 대답에 혜성이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쿤은 괜히 그런 그가 신경 쓰였다. 부용과 사강, 그리고 보보조차 그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그래서 다들 알지 못했다. 지금 은과 루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