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37
136화-란셰의 상자 (07)
단원들은 그 뒤로도 란셰와 몇 가지 대화를 더 나누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다 끝나자 혜성이 그녀에게 상자를 돌려주었다.
란셰는 이를 소중하다는 듯 꼭 끌어안았다.
쿤은 그녀와 혜성을 번갈아보다 말했다.
“저희는 다시 건넛방으로 돌아갈게요.”
“그래.”
혜성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쿤과 보보, 그리고 루가 아까의 방으로 돌아갔다.
쿤이 돌아오자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이와 곤이가 날아와 그의 품에 안겼다.
“얌전히 잘 기다리고 있었어?”
쿤은 두 아이를 쓰다듬으며 잘 있었음을 칭찬해 주었다.
‘닷새라… 어제 마셨으니까, 최대 4일 남은 거네.’
쿤은 머릿속으로 달력을 그리며, 루와 은이 언제쯤 돌아올지를 계산했다.
“늦어도 주중 안으로는 두 분 다 돌아오겠네요.”
쿤의 말에 보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근데 녹턴 씨가 걱정이네요.”
란셰의 말론 때가 되면 깨어날 거라 했지만, 다른 셋과 달리 계속 잠들어 있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왜 행복한 순간으로 돌아가지 않았는지도 신경 쓰였고 말이다.
“날짜를 다 채워도 좋으니까, 제발 별 탈 없이 깨어나셨으면 하네요.”
보보의 중얼거림에 쿤이 동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원문도 안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지금 차원문이 또 열리면 신경써야 할 게 배로 늘어난다. 이를 관리할 일손도 턱없이 부족하고 말이다.
쿤은 제발 남은 시간을 탈 없이 보내길 바랐다. 그러다 문뜩 루가 지나칠 만큼 조용하단 걸 깨달았다.
그녀는 덩그러니 남은 식탁 의자에 앉아 뭔가를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다. 꽤나 복잡한 생각을 하는지 표정이 진지했다.
“무슨 생각 하세요?”
쿤의 질문에 루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 그냥…….”
“어디 아픈 거예요? 불안하니까 그냥 말해주세요.”
쿤의 재촉에 루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녀는 한참을 그러다 겨우 말을 꺼냈다.
“5일, 아니, 4일이 걸린다고 했잖아… 요.”
루의 존댓말에 쿤이 흠칫했다. 괜히 저까지 어색한 것 같았다.
“그, 그랬죠.”
“그럼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 방에 있어야 하는 거네… 요?”
“아…….”
쿤의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생각해 보니 정말로 그랬다.
“음. 아마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기억이 돌아올 거예요.”
루의 얼굴에 그늘이 짙어졌다.
역시 많이 갑갑한 걸까…….
쿤은 열심히 루를 달래며 설득했다.
그때 은이 들어왔다.
마치 제 방을 들어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왔던 은은 루의 시무룩한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 왜 그래? 너희가 괴롭혔어?”
쿤과 보보는 잠깐 말을 잃었다. 대체 그녀의 눈에 자신들은 어떻게 보이는 걸까.
“저희가 루 씨를 왜 괴롭혀요. 그냥 우울해해서 달래주는 중이에요.”
“그랬어? 미안.”
은은 식탁 의자를 끌고 와 루 앞에 놓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시선을 맞췄다.
같은 처지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아홉 살이란 어린 나이 때문일까. 은은 묘하게 루를 많이 신경썼다. 간식도 더 많이 챙겨줬고 말이다.
“진짜 우울한가 보네. 표정이 죽상이야.”
은은 루 쪽으로 좀 더 고개를 내밀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냥 답답해서요.”
“아, 맞다. 넌 계속 방에 있었지.”
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애를 가둬두는지 모르겠다니까. 뭐, 성인 몸에 애가 들어가 있으니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그리고 가둘 거면 좀 좋은 곳에 두던가, 창도 없는 지하에 가두는 게 어딨어? 얘가 죄인도 아니고.”
은이 다리를 꼬며 투덜거렸다.
그녀의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쿤은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나가고 싶단 걸 겨우겨우 달래고 있는데 저런 말을 하면 어쩌자는 건지.
“은이 씨, 혜성 씨나 사강 씨랑 안 계셔도 되는 거예요?”
쿤은 화두를 바꾸기 위해 다른 말을 던졌다. 그러나 은은 여기에 낚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술 더 떠 루를 부추겼다.
“됐어. 그냥 루랑 놀래. 루, 우리 나가서 바람이나 쐬다 올까?”
루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던 눈치였다.
반면 쿤과 보보는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잠깐만요. 지금은 안 된다니까요.”
“한 시간 정도면 괜찮을 거 아냐. 정 걱정되면 어른 하나가 따라가면 되고.”
“그럼 일단 혜성 씨한테 허락부터 받고 와요.”
“혜성이 허락?”
은이 피식 웃었다. 미묘하게 올라간 한쪽 입꼬리가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걔가 허락하든 말든 알게 뭐야.”
“예?”
“미안한데, 난 원래 혜성이 말 안 들어.”
쿤과 보보가 숨을 들이켰다. 어느새 은의 그림자가 루의 그림자를 다 덮고 있었다.
아차 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우리 나갔다 온다.”
은이 두 사람을 약 올리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쿤과 보보의 심정을 대변하듯 쿵 소리와 함께 식탁 의자가 쓰러졌다.
그렇게 두 사람이 지하방을 탈출했다.
* * *
오즈벨 지부에 비상이 걸렸다. 도주 대상은 판테테.
란셰와 녹턴을 마냥 둘 수 없었기에 부용과 혜성은 숙소에 남고, 쿤과 보보, 그리고 사강이 사라진 두 사람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살다 살다 판테테가 도망쳐서 비상이 걸릴 줄은 몰랐어요.”
쿤이 빠르게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너만 처음이냐. 나도 처음이다. 젠장, 하은 얘는 왜 또 난리인 거야.]통신기를 통해 사강의 욕이 들려왔다.
“영지 안에는 있겠죠?”
[그러지 않을까요? 기억을 잃었으니까, 불안해서라도 영지 밖으로는 못 나갈 것 같아요.] [그럼 좋겠는데, 안 그럴까 봐 걱정이네. 걔가 지금은 많이 얌전해졌지만, 옛날엔 진짜 대책 없었거든. 앞뒤 안 보기로도 유명했어.]“진짜요?”
[어. 내가 전에 말 안 했어? 귀족 가문 하나를 날려 버렸다니까. 그게 일반적인 중학생이 할 일이냐고.]“…….”
쿤은 마른침을 삼켰다.
갑자기 사라지기 직전의 은이 떠올랐다. 무언가 불만이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괜한 감정에 휘둘려 치기 어린 행동을 할까 걱정이었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쿤은 조급함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혜성이 루를 가둬두고 은을 혼자 못 돌아다니게 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엘리아노와 레이포드의 일로 오즈벨이 여러 매체에 소개된 덕인지 관광객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수가 많진 않았으나 영지에 새로운 바람이 분 건 확실했다.
문제는 그들이 순수한 관광객인지, 오즈벨에 원한을 가진 곳에서 보낸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단 것이다.
만일 악의를 품은 이들이 루와 은을 마주하거나 기억을 잃은 상태라는 걸 알면 위험한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으~ 이럴 줄 알면 은이한테 본부 가라고 안 하는 건데.]“그게 무슨 소리예요? 일부러 보낸 거였어요?”
[당연하지. 우리가 보고서 요청하는 게 흔한 일이냐. 지금쯤이면 보고서의 내용이 뭔지까지 다 알려졌을걸.]오즈벨은 본부에 자료 요청을 잘 하지 않을 뿐더러, 하더라도 항상 보고서를 작성할 때나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게 아니었다.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오즈벨에 무슨 사달이 났음을 파악했을 것이다.
그리고 각 지부에서 본부에 심어놓은 연락책들은 곧바로 해당 보스에게 연락할 것이다.
때문에 혜성은 일부러 은을 본부에 보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기억을 잃었다’까지는 유추해도, 설마 그게 은이라곤 생각하지 못할 거 아닌가.
은과 밖을 나돌 때도 엄청나게 신경을 썼다. 가게나 식당을 갈 때에도 믿을 수 있는 곳만 갔고 말이다.
하지만 이 꼴이 되고 나니 괜히 은을 노출시켰다 싶었다.
보고서도 그랬다. 이런 경우는 키리기스의 정보망보다 본부가 더 빠르고 정확해 그냥 요청한 거였는데, 전체적으로 잘못했단 생각이 들었다.
[얘네 진짜 괜찮을지 모르겠네.] [괜찮을 거예요. 그 정도로 눈치 없는 사람들은 아니잖아요.]보보가 사강을 안심시켰다. 쿤 역시 진심으로 그러길 바랐다.
‘제발 부탁이니까 사람 없고 조용한 곳에 계셔라.’
쿤은 그리 빌며, 뛰는 속도를 높였다. 그때 골목 모퉁이에서 익숙한 사람 둘이 걸어나왔다. 헤라와 토야였다.
둘은 뭔가를 열심히 떠들다 쿤을 발견하곤 걸음을 멈췄다.
쿤은 일단 통신을 끊은 뒤, 둘 앞에 섰다.
“헤라, 토, 아니, 티아문!”
“안녕하세요, 오빠.”
“여- 쿤. 오래간만이다.”
쿤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뒤, 곧장 본론을 물었다.
“너희 은이 씨랑 루 씨 못 봤어?”
그의 다급한 질문에 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니들은 왜요?”
“지금 사라져서 찾는 중이야.”
“아, 그럼 그거 진짜 은이 누나 맞나 보네.”
“봤어? 어디서?”
“아이스크림 가게에 있던데?”
조금 전, 토야와 헤라는 은과 루로 추정되는 사람을 목격했다. 하지만 워낙 값이 나가는 아이스크림 가게라 잘못 본 거라 여겼다. 은이 그렇게 비싼 간식을 사 먹을 리 없으니 말이다.
“웬일이래. 은이 누나가 돈을 다 쓰고.”
“그럴 일이 있었어. 그보다 학교 후문에 있는 가게 말하는 거야?”
“아니, 광장에 있는 거.”
젠장, 왜 하필 가도 사람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곳에 있는 건데.
쿤은 두 사람에게 고맙다 한 뒤, 곧장 광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면서 다른 단원들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쿤이 아이스크림 가게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은과 루가 떠난 후였다. 빠르게 아이스크림만 포장해 간 터라, 가게 사장님도 둘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지 못했다.
결국, 그는 다시 주먹구구식으로 광장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사십여 분 후, 자주 가는 식료품점 점원을 통해 두 사람이 해안 절벽에 있다는 걸 듣게 되었다.
* * *
루는 절벽 끄트머리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쳐다봤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며 새하얗게 부서졌다.
차가운 바닷바람과 잔잔한 파도 소리.
“예쁘네요.”
“그러게.”
은은 루와 사온 컵케이크를 꺼내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이거 맛있다. 아침에 사온 것보다 더 맛있는 거 같네.”
사강은 은이 무모한 짓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그녀는 안전하게 혜성이나 사강과 함께 갔던 곳만 돌아다녔다.
그것도 빠르게 계산만 하고 나와 사람들은 은이 과소비를 한다는 것 외에는 이상한 점을 찾진 못했다.
“루, 너도 먹어봐.”
루는 은이 주는 컵케이크를 받았다. 그러나 먹진 않고 그냥 손에 들고만 있었다. 반대쪽 손에는 이미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 컵이 들려 있었다.
뭐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하는 루를 보며, 은 역시 손을 내렸다.
“왜 그래? 아직도 답답해?”
“그냥 좀, 그래요…….”
시원찮은 대답에 은은 루가 단순히 답답해서 우울한 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에휴… 너도 너대로 복잡한가 보구나.”
“언니도 그래요?”
“마음이 아~주 불편하지.”
은은 무릎을 세운 후, 거기에 팔을 걸쳤다. 고개를 드니 어느새 붉게 물든 하늘이 보였다.
뻥 뚫린 시야와 달리 마음은 좁은 방에 갇힌 것처럼 답답했다.
“아 씨, 엄마 아빠 보고 싶다.”
“저도 엄마 보고 싶어요.”
“그냥 집에 확 가버릴까?”
“혼나지 않을까요?”
“혼나도 그냥 가고 싶어. 넌 안 그래?”
“저도 그래요…….”
둘은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은이 씨! 루 씨!”
둘은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가쁜 숨을 내쉬는 쿤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