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4
13화-안녕하세요, 신참입니다 (09)
어느새 꼭대기에 걸쳐 있던 태양이 기울어 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갔다.
등줄기 산에서 붙잡은 차원이동자를 끌고 차원문 발생지로 왔을 땐, 보보가 다른 차원이동자들을 모두 데리고 온 후였다.
다행히도 반송 차원문은 놓치지 않았다. 루와 녹턴은 보보를 도와 모든 준비를 마쳤고, 쿤의 가방과 코트를 되찾아 돌려주었다.
“자.”
“감사합니다.”
코트를 받은 쿤이 가장 먼저 한 건 배지를 확인하는 거였다. 혹여 흠집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꼼꼼히 살피던 쿤은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배지야.”
마치 보물을 대하는 듯한 태도에 루는 픽 실소를 머금었다.
“그게 그렇게 좋아?”
“당연히 좋죠. 판테테란 증거잖아요.”
“너 아직 정식 등록 안 했잖아.”
“거참. 의미상으론 그렇잖아요. 근데 제 옷은 어떻게 해요?”
쿤이 제가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
차원이동자는 온 모습 그대로 돌려보내는 게 기본이었기에 이 옷을 돌려주고 제 옷을 돌려받는 게 맞았다.
하지만 루는 됐다며 고갤 가로저었다. 시간이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거기다 쿤의 옷을 입은 차원이동자는 둘인데, 이쪽이 가지고 있는 죄수복은 하나였다.
쿤의 옷을 챙기면 한 명은 빨가벗긴 채 보내야 했다.
사실 루야 차원이동자가 빨가벗든 아니든 제 알바 아니라 보는 파이지만 나머지 셋은 그러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일반 의류 정도는 넘어가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이대로 보내도 돼.”
그리고 이래야 그쪽에서도 교도소에 차원문이 생길 때를 대비해 보안에 더 힘쓰지 않겠는가.
“옷값은 나중에 보스한테 뜯어내고.”
“그래도 돼요?”
“응. 돈 하나만큼은 잘 쓰는 인간이거든.”
“……루 씨나 다른 분들이 혜성 씨를 어떻게 보는지 알 것 같아요.”
“보스의 행실이 그 모양인 걸 어쩌라고.”
루가 퉁명스레 답했다.
부정하기엔 쿤이 봐왔던 혜성의 모습도 만만찮았기에 쿤은 저도 모르게 고갤 끄덕이고 말았다.
그로부터 십몇 분이 흐르고, 차원문이 사라진 지 72시간이 되었다.
1m 정도 높이의 허공에 검은 점이 나타나더니 이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공간이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흡사 종이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점점 몸집을 키운 차원문은 금세 사람 셋은 드나들 수 있을 만한 크기가 되었다.
반송 차원문은 기존 차원문을 통해 넘어온 이들만 빨아들였기에 근처에 가도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쿤은 그 위용에 눌려 두어 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처음이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차원문을 보는 것은.
루는 결계를 풀었다. 그러자 차원이동자들이 짧은 비명과 함께 반송 차원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차원문은 그 후로도 몇 분 정도 그 형태를 유지하다 모습을 감추었다. 휑 한 허공과 드러난 시야가 모든 것이 끝났음을 대신 말해주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뭐랄까. 살짝 벅차면서도 뭉클할 걸 예상했는데 그보단 얼떨떨하달까, 멍하달까.
허공에 붕 뜬 것처럼 묘한 느낌이 계속됐다.
‘혜성 씨하고 있었을 때에도 이러진 않았던 거 같은데…….’
그때는 그저 도주한 차원이동자를 쫓아가 잡는 게 전부인데다 실질적으로 혜성이 다 해결했기에 견학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이번은 아주 작게나마 판테테에 도움도 되고, 그들과 함께 일했다.
‘근데 마음이 좀 이상하네. 뿌듯할 줄 알았는데 그보단 좀 얼떨떨하달까…….’
쿤은 멍하니 허공만 바라봤다.
한편, 루는 귀찮은 일을 끝냈다는 듯 개운한 얼굴로 기지개를 켰다.
“드디어 끝났네요.”
“이제 보고서 정리만 하면 돼.”
녹턴이 꺼낸 현실적인 이야기에 루의 얼굴이 삽시간에 구겨졌다.
“꼭 이 상황에 일 이야기를 해야 해요?”
“지금이니까 해야지. 보고서 어떻게 쓰지?”
“그러게요. 마냥 거짓말을 하기엔 목격자가 너무 많고, 사실대로 적자니 단장님께 혼날 것 같고…….”
보보 또한 난감한 듯 말하자 루가 허리를 짚었다.
“고민할 게 뭐 있어. 대충 적으면 되지.”
보고서에 적기 곤란할 만큼 복잡한 상황이 연달아 터지긴 했지만, 목적 자체로만 보자면 성공했다. 주민들에게도 혜성에게도 자신들의 지각을 들키지 않고, 일도 나름 잘 마무리 했으니 말이다. 시말서를 쓰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루는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옮겼다. 쿤은 여전히 차원문이 사라진 자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신참.”
특유의 어조 없는 어투로 그를 부르니 쿤이 퍼뜩 고개를 돌렸다.
루는 천천히 쿤에게 다가갔다.
“고생 많았어. 서류나 그 밖의 마무리는 우리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넌 신경쓰지 말고 쉬도록 해.”
“저도 도와드릴게요.”
“됐어. 나중에 지겹도록 할 텐데 뭐 하려 해. 지금은 그냥 쉬어. 오즈벨 구경도 하고.”
루가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쿤은 루를 가만히 쳐다봤다. 겉으로 보기엔 저를 배려하는 것 같았으나, 그 안에 담긴 뜻을 모를 만큼 눈치가 없진 않았다.
“보고서에 적으면 안 되는 일들이 있어서 그래요?”
“눈치 한번 빠르네. 맞아. 그러니까 너도 모르는 척해.”
“알겠어요.”
“아, 그리고.”
루가 다시 띄운 운에 쿤이 또 한 번 고갤 갸웃거렸다.
루는 특유의 평이하면서도 높낮이 없는 어조로 짧게 말했다.
“미안.”
“…예?”
“네 말 안 믿어서 미안하다고. 폭력적으로 군 것도 미안하고.”
거듭 들려오는 사과에 쿤의 눈이 살짝 떠졌다.
쿤은 얼떨떨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마치 지금 제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어… 어…….”
“왜 그래?”
“아뇨, 좀 놀라서요.”
“내가 아니면 사과한다고 했잖아.”
루의 말에 독방에서 있던 일이 쿤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돌겠네, 진짜! 나중에 사실인 거 알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그럼 그때 사과할게.”
상황도 상황이고 툭 던지듯 가볍게 뱉었던 거라 당연히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아니었던 모양이다.
쿤인 연신 얼떨떨한 얼굴을 하자 루가 못마땅하다는 듯 허릴 짚었다.
“내가 사과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한 말은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거든.”
“아… 어… 음… 사과해 줘서 감사합니다.”
“고마울 것도 많다.”
루는 그리 말하며 손가락을 하나둘 풀기 시작했다. 뚜둑. 뚝. 뚝. 다소 살벌한 뼈 소리가 연이어졌다.
“갑자기 손은 왜 푸세요?”
“내가 한 말 지키려고.”
“사과하셨잖아요.”
“그거 말고.”
“무슨 말을 또 하셨어요?”
“잊었어? 차원이동자여도 죽고, 내 후배여도 죽인다고 했잖아.”
“…….”
쿤은 루가 제게 한발 다가오는 걸 보고, 뒤로 물러났다.
“농담이시죠?”
“진담인데.”
정말로 죽이진 않겠지만, 그 직전까지는 가겠다는 눈빛에 등을 타고 식은땀이 비죽비죽 흘러내렸다.
“아니,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총, 폭탄, 연막탄.”
“내가 쓴 거면 억울하지도 않지!”
“총은 쐈잖아.”
“그건 루 씨가 줘서잖아요!”
“근데 너 진짜 무슨 수로 탈옥한 거냐? 네 신발 밑창 좀 확인해 보자.”
“우리 사소한 건 잊도록 해요. 이미 지난 일이잖아요.”
“그럼 뭐가 중요한데?”
“루 씨가 딴짓하다 차원이동자를 놓친 거?”
“진짜 죽을래?”
“하하하. 농담이에…….”
“아~ 딴짓하다 놓친 거였어?”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루와 쿤의 몸이 뚝 하고 굳었다.
루와 쿤의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 두 사람의 투닥거림을 구경하던 녹턴과 보보도 마찬가지였다.
차원문이 열댓 개가 나타났을 때보다 더 오싹한 한기가 전신을 뒤덮었다.
루는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혜성이 나무에 기대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보, 보스? 대체 언제…….”
“얼마 안 됐어. 보고서를 어떻게 쓰네 마네 할 때부터였나?”
“…….”
“오는 길에 들었는데 인질 사건에 폭파 사건까지 있었다며?”
“…….”
“야~ 그렇게 위험하고 폭력적인 애들이 넘어왔는데, 우리 루는 딴짓하다 늦은 거구나. 거기다 쿤을 차원이동자로 오해하기도 하고.”
“그건 또 어떻게…….”
“찔러본 거였는데, 진짜였어?”
“……젠장.”
루의 얼굴이 낭패감으로 물들었다.
혜성은 눈을 예쁘게 휘며 나무에 기댔던 몸을 세웠다. 그리고 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넘어왔다.
루는 숨을 삼켰다. 부러진 나무 기둥을 넘어오는 모습이 참으로 우아했으나 저희에겐 저승사자의 발걸음보다 더 섬뜩했다.
“근데 루 하나 늦었다고 이 사달이 날리는 없고, 나머지 둘은 뭐 하다 늦은 거야?”
“…….”
“…….”
보보와 녹턴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선을 피했다. 이럴 때만큼은 혜성을 무서워하는 보보나, 편히 대하는 녹턴이나 똑같았다.
둘은 끝까지 입을 열지 못했다.
길어지는 침묵에 혜성은 얼추 짐작한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뭐, 사람이 살다 보면 늦을 수도 있지. 차원문이 예고하고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저마다의 일이란 게 있으니까. 사람이 셋이니 다른 사람이 하겠거니~ 하고 여길 수도 있고.”
차라리 혼을 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비꼼이었다.
결국, 루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잘못을 시인했다.
“…죄송합니다. 앞으론 주의할게요.”
혜성은 그제야 원한 답을 들은 사람처럼 표정을 자연스럽게 풀었다.
“시말서 써야 하는 거 알지?”
“…….”
루는 조용히 재킷 안주머니를 만졌다. 그러자 그 안에 뭐가 든지를 잘 아는 혜성이 먼저 말했다.
“시말서 쓰기 싫다고 사표 내면 시말서 두 배야.”
“윽…….”
“원칙대로면 셋 다 써야 하지만, 그래도 일은 잘 해결한 것 같으니까 대표로 루가 다 쓰도록 해.”
“…알겠어요.”
루는 참담한 얼굴로 고갤 떨구었다.
혜성은 쿤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조금 전, 루에게 지었던 것과는 딴판인 표정을 했다. 정말로 환영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미소가 그의 입가에 번졌다.
“오래간만이야, 쿤.”
“안녕하세요.”
“일찍 올 줄은 알았지만 나보다 일찍 올 줄은 몰랐네. 설마 배지 받자마자 출발한 거야?”
“이튿날 바로 출발했어요.”
“오자마자 욕봤네. 그래도 별 탈 없어서 다행이야.”
쿤은 차원이동자에게 뒤통수를 맞고, 도둑질을 당하고, 차원이동자로 오해받아 감옥에 갇힌 게 과연 별 탈 없는 일인가 하는 의문이 아주 잠깐 들었지만, 여기서 이 말을 했다간 나머지가 더 혼날 게 안 봐도 뻔했기에 함구하기로 했다.
“시간이 늦었으니까 자세한 건 나중에 날 잡고 이야기하자.”
“네.”
“그럼 이만 돌아갈까?”
혜성의 질문에 쿤은 물론 모두가 짧게 답했다. 그때, 혜성이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난 듯 쿤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그거 줘.”
“그거라뇨?”
“판테테 배지.”
쿤은 여전히 제 손에 고이 들고 있던 배지를 내려다봤다.
준 게 아니라 빌려준 거였나?
쿤은 아쉬운 마음을 숨기며 배지를 건넸다. 그러자 혜성이 좀 더 다가오라며 손짓했다.
멍하니 앞에 서자 그가 제 가슴팍에 배지를 달아주었다.
“배지는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여기다 달고 다니는 거야.”
“…….”
“옷이 조금 그렇지만, 그래도 배지는 잘 어울리네.”
그 말과 동시에 벅찬 감동이 밀려들어 왔다.
쿤은 그제야 왜 조금 전에 그리 묘한 감정을 느꼈는지 알 수 있었다.
분명 판테테 일을 하긴 했는데, 마치 겉돈 것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배지를 달아주는 혜성의 행동으로 그 현실감이 저를 덮쳐왔다.
아. 진짜 판테테가 된 거구나. 내가 정말로 판테테가 된 거야.
쿤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눈가가 시큰해지며 이내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혜성이 작게 웃었다.
“또 울어?”
“안 울어요. 그냥 좀 감동한 거예요.”
“배지 처음 받는 것도 아니잖아.”
“그때랑은 느낌이 또 다르다고요.”
“이거 일 끝낼 때마다 울겠네.”
혜성은 눈물 참 많다며 키득거렸다.
쿤은 고갤 들었다. 혜성의 뒤로 루와 녹턴, 그리고 보보가 보였다.
사실상 도착한 것은 몇 시간 전이건만, 이제야 오즈벨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혜성이 말했다.
“오즈벨에 온 걸 환영한다.”
쿤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