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49
148화- 차원이동자가 준 선물 (9)
쿤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루와 은이 미간을 찌푸렸다.
루는 기가 차서, 은은 대체 저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였다.
“거래랑 설득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먼저 입을 연 건 은이었다.
녹턴에게 간략한 내용을 전해 듣긴 했으나, 자세한 상황까지 몰랐던 은은 왜 여기서 갑자기 거래나 설득이란 단어가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런 걸로 저 둘을 완벽하게 입막음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녀는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쿤을 쳐다봤다.
“아까 숙소를 나오기 전에 티푸아님이 톨과 관련된 거래를 제안하셨어요. 만일 문제가 생기면 평생 톨을 공급하겠다고요.”
티푸아가 이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말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황녀라는 위치와 톨의 특징을 생각했을 때 빈말로 치부하긴 힘들 것이다.
“그걸 다시 제대로 했으면 해요. 만일 제가 마법사란 걸 어딘가에 발설하면, 그 이상의 손해배상을 하겠다고요.”
“손해배상? 그런 걸로 될 리가…….”
“좋다. 응하지.”
티푸아가 은의 말을 가르고 답했다.
“손해배상의 범위는 상관없네. 아샨탄에 있는 모든 톨을 적어도 좋아.”
“…그런 계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잖아.”
은이 말도 안 된다며 반박했다.
티푸아가 제아무리 황녀라 해도 황위 후계자도 아니고, 황제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 그녀에게 톨의 권리가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오히려 말도 안 되는 계약을 하게 했다고 가만 안 둘걸. 차라리 황녀님을 죽이고 사고라 위장하는 게 더 안전할 거야.”
“그건 내가 억지로 한 계약의 이야기지, 이런 경우는 전혀 다르네. 아샨탄에게 약속은 목숨. 우리는 절대 신의를 배신하지 않아. 친구를 배신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우리는 신을 닮은 자 앞에서 절대 거짓을 고하지 않는다네.”
티푸아의 시선이 쿤에게 향했다.
아샨탄에서 여우는 신으로 섬기는 동물이었다.
쿤이 진짜 여우인 것도 아니고, 여우를 닮은 게 고작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들의 여우신을 향한 광적인 추종을 생각하면 크게 이상한 근거는 아니었다.
은은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부분에 관해서까지는 따지고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이 되는 것도 아니었기에 팔짱을 끼며 침음을 흘렸다.
그러자 쿤이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티푸아님, 톨 말고도 몇 가지 조건을 더 걸었으면 합니다.”
“좋네.”
쿤은 그녀에게 몇 가지 구체적인 배상안을 제시했다. 거기엔 다른 교역품과 아샨탄의 안전까지 살짝 거론되었다. 누가 봐도 티푸아에게 불리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쿤이 마법사라는 걸 비롯해 오늘의 일을 어디에서도 발설할 생각이 없었다.
내용이 제아무리 억지라 해도 거리낄 게 없는 거였다.
거기다 그녀를 비롯한 여기의 모두가 알고 있다.
이 계약의 진짜 목적은 쿤이 아니라 티푸아를 지키기 위한 거라는 걸 말이다.
티푸아가 계약을 어기고 싶어도 어길 수 없는 처지가 되어야지만, 은 역시 그녀를 노리지 않게 된다.
“자세한 계약서는 나가서 쓰도록 하지. 여기엔 내 직인이 없으니 피로 서명하겠네.”
“알겠습니다.”
얼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정리되자, 이번엔 시선이 세르게이 쪽으로 건넸다.
사실, 문제는 이쪽이 더 컸다.
티푸아야 아샨탄으로 돌아가는데다, 톨을 비롯한 거래품이 확실하게 있어 문제될 게 없지만, 세르게이에겐 그런 게 없었다.
제아무리 니베로가라 해도 삼남이라 정치적 입지가 없고, 그렇다고 그가 엄청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무엇보다 설득이라는 단어가 거래보다 큰 무게를 주지 못했다.
“역시 협박이 좀 더 나은 거 같은데…….”
“안 된다니까요.”
쿤은 은을 막은 뒤, 세르게이에게 말을 건넸다.
“충분히 보셔서 알겠지만, 상황이 좀 많이 곤란합니다.”
“제가 티푸아님보다 더 곤란한 상황인 것 같군요. 아니, 위험하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뭘 어떻게 하겠단 거죠? 전 쿤 씨의 일을 발설할 생각이 없습니다. 근데 여기서 설득이 무슨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군요.”
사실 이는 루 역시 의아하던 차였다.
적어도 세르게이가 눈치가 있고 머리가 있는 자라면 저 혼자만 볼 수 있는 일기장에도 쿤에 관한 것은 적지 못하리라. 까딱하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데,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거기다 그의 인품을 생각했을 때, 자신을 지켜주려고 든 쿤과 루를 배신할 리 없다.
문제는 이를 백 날 천 날 말해도 은이 그를 못 믿는다는 거였다.
‘여기서 세르게이한테 무슨 설득을 더… 잠깐, 설마…….’
루는 흠칫하며 쿤을 쳐다봤다. 그러자 정확히 그녀가 생각했던 말이 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죄송하지만, 이번엔 반대입니다.”
“네?”
“세르게이님께서 은이 씨를 설득해 주셔야 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쿤에겐 은을 설득할 묘책이 없었다. 세르게이에 관해 아는 것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넘기는 거였다. 그 스스로 은을 설득할 만한 무언가를 꺼내도록 말이다.
“…곤란해졌군요. 말이 설득이지, 대가를 알아서 내놓으란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고요.”
세르게이는 한숨과 함께 품 안에서 10㎝ 정도로 보이는 장식용 칼을 꺼냈다.
“하은님을 설득하려면 보통 것으론 안 되겠죠. 그러니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걸 걸겠습니다.”
“그게 뭐죠?”
“제 목숨입니다.”
그의 대답에 쿤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설득은 세르게이님의 안전을 지키려고 하는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걸겠다는 거고요. 뭣보다 제 죽음은 왕가에 치명적인 실입니다.”
“예?”
“그게 뭔 소리야?”
세르게이는 의아한 쿤과 루를 향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니베로 가문에게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혈족 마법이 있습니다. 저는 할아버님 다음으로 유일하게 이를 쓸 수 있는 마법사고요. 세간엔 간단한 증명 마법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세르게이는 검날로 제 엄지손가락을 깊게 베었다. 새빨간 피가 금세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니베로 가문의 진짜 마법은 맹세. 술자가 죽어도 풀지 못하는 절대적 계약이죠.”
니베로 가문에 내려오는 마법은 정말 간단했다. 상대가 뱉은 맹세를 무조건 지키게 하는 것. 그리고 이를 어길 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어떻게든 받아내는 계약의 마법이었다.
그리고 왕가는 직위와 영지를 하사받은 모든 귀족에게 이 마법을 걸어두었다. 절대 왕가를 배신하지 않고, 만일 그럴 경우 죽음으로 갚도록 말이다.
때문에 리란티아의 내로라하는 귀족들은 제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절대 왕가를 배신하지 못했다. 거기다 일부는 그 계약의 대가가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에게까지 연결돼 있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이 계약은 귀족뿐 아니라 여러 일반인에게도 걸려 있었다.
“하은님도 알고 계시죠. 이 마법이 얼마나 큰 힘을 왕가에 주었는지.”
“…알고 있어. 지금 맹세 마법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게 너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현재 세르게이의 조부는 많이 노쇠해진 상태라 언제 세상을 떠날지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지금 왕가를 도와 마법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건 세르게이밖에 없었다.
왕가 입장에선 하나 남은 중요한 무기인 것이다.
“근데 그거 자기 자신한테는 못 쓰는 거 아니었어? 그래서 너희 할아버지가 그렇게 당당하게 굴 수 있는 거였잖아.”
자기 자신에게는 맹세 마법을 걸 수 없는 탓에, 왕은 마음껏 세르게이의 조부를 부려 먹을 수 없었다.
거기다 일부 귀족이 그를 중심으로 집결해 왕 입장에서는 꽤나 골치 아픈 일을 몇 번이나 겪어야 했다.
왕가가 세르게이가 삼남이라는 점을 이용해 그의 정치적 입지를 다 앗아간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좀 더 쉽게 써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그에 따른 혜택을 잔뜩 주었지만.’
어쨌든 은이 알기로 맹세 마법은 마법사 본인에게는 걸지 못했다. 그런데 세르게이의 폼을 보니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다.
“자기 자신한테 걸 수 있는 거야?”
“네, 가능합니다.”
세르게이는 제 손등에 피로 십자가를 그렸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서서히 붉게 물들었다.
“여기 있는 모두께 맹세하겠습니다. 저는 그 어떤 경우에도 쿤 씨의 비밀을 남들에게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어기면?”
“제 목숨을 내놓겠습니다.”
순간 따뜻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세르게이의 손등에 그려진 피가 서서히 그의 피부 속으로 스며들었고, 붉어진 눈동자 역시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쿤이 한참 만에 물어왔다.
“이제 다 된 건가요?”
세르게이는 그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네. 이제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은을 쳐다봤는데, 어쩐지 그 시선이 이제 되었냐고 묻는 것 같았다.
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결 편해진 표정을 보니 더는 걸릴 게 없는 듯했다.
세르게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검을 챙겼다.
“쿤 씨도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제 어디서 쿤 씨의 비밀이 발설될 일은 없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쿤은 머릴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가 완벽하게 은을 설득해 준 게 고마운 한편, 정말로 그의 비밀을 까발리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저도 절대 니베로가의 마법에 대해 떠들지 않을게요. 원하신다면 제게 맹세 마법을 걸어도 좋습니다.”
“쿤!”
“야!”
은과 루가 쿤을 잡았다. 그리고 세르게이를 노려봤다. 절대 이 위험한 마법을 쿤에게 걸지 말라는 듯 말이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이기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르게이는 조금도 불쾌해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딱히 비밀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금 알려졌으면 좋겠군요. 왕가가 많은 귀족에게 어떤 마법을 걸었는지요.”
“…그러다 세르게이님이 위험해지실 수도 있어요.”
“전 못 죽이죠. 제가 얼마나 귀한데. 전 제 가치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르게이 씨에게 복종과 관련된 맹세를 강요할 수 있잖아요.”
“맹세 마법은 한 사람에게 한 번만 걸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진다 해도 저에게 다른 맹세를 강요할 순 없습니다. 뭐, 후세에 태어날 혈족 마법사들은 곤란해지겠지만요.”
만일 왕가가 맹세 마법을 자기 자신에게 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새로운 마법사가 태어났을 때, 바로 이를 쓰게 할 것이다.
절대적으로 왕가에 복종하도록 말이다.
쿤은 그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럼 미래를 위해서라도 더더욱 함구해야겠네요.”
쿤의 말에 세르게이가 웃어 보였다.
“하하하. 그럼 믿겠습니다.”
그는 그리 말하더니 루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보다 전 루 씨가 저를 그렇게 지켜주실지 몰랐습니다.”
세르게이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아무래도 그에겐 맹세 마법을 사용했단 것보다 루가 진심으로 저를 지키려고 들었던 것이 더 중요한 듯싶었다.
“역시 내 사랑. 언사와 달리 마음은 따뜻한 분이셨군요.”
“…그냥 죽일 걸 그랬나…… 왜 살려줬지?”
루의 질색. 그리고 세르게이의 해맑은 태도.
이걸 보니 이제야 상황이 일단락된 것 같았다.
‘하아… 별일 없이 끝나서 다행이다.’
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뒤늦게 잊고 있던 사실을 기억해냈다.
“맞다, 우리 아들들!”
제 사랑스러운 북청 사자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