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56
155화- 왕도로… (2)
예상 못한 인물의 등장에 루가 미간을 찌푸렸다.
“선생님이 여긴 웬일이세요?”
“이런. 내가 온 게 반갑지 않은 모양이군.”
“그게 아니라… 원래 여기 잘 안 들어오시잖아요.”
키리기스는 사강의 연구실을 좋아하지 않았다. 잘 오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런 그가 직접 왔으니, 루가 의아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혜성을 보러 왔다 겸사겸사 들렀어. 받을 게 있어서 말이지.”
키리기스는 그리 말하며 사강에게 손짓했다. 그제야 사강이 아차 하며 서랍을 열었다.
그는 작은 상자와 초록색 보석이 박힌 커프스를 꺼내 키리기스에게 건넸다.
“가서 상자 속 내용물이랑 똑같은 걸 받아오면 돼. 아마 상자를 보여주면 다들 알아서 챙겨줄 거야.”
“이 커프스는 뭐지?”
“그건 내 신분증. 그거 없으면 못 들어가니까, 꼭 차고 있어야 해. 아, 그리고 물건에 관련된 거 외에는 질문 금지. 이름도 물으면 안 돼. 그게 규칙이야.”
“이거 아무리 봐도 과학자들이 아니라, 뒤쪽 세계 사람들이 할 법한 암거래 같군.”
“틀린 말은 아니지. 왕가 몰래 열리는 시장이니까.”
두 사람의 의미심장한 대화에 루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런 대화는 저 없는 곳에서 하면 안 되나요. 아니면 저한테도 설명을 좀 해주시던가요.”
“아, 내가 부품 만드는데 필요한 게 있어서 왕도 간 김에 받아달라고 한 거야.”
왕가와 기사단에게도 연말과 연초는 가장 바쁜 시기였다.
연말은 정리로 바빴고, 연초는 신년 파티와 축제로 정신없었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이 시기를 노려 비밀 장터를 열곤 했다.
말 그대로 왕가가 허락하지 않은 약품이나 이계의 물품들을 주고받는 거였다.
사강은 바로 코앞에서 왕가 뒤통수를 치는 짜릿한 행사라며 킬킬 웃었다. 하지만 루는 그보단 ‘왕도’란 단어가 더 신경 쓰였다.
“왕도? 그럼 올해는 언니가 안 가고 선생님께서 가시는 거예요?”
매해 연말, 왕도의 총본부에서 총 회의가 열렸다.
일반적으로 왕도에서 하는 회의도 구역 본부 회의처럼 혜성과 은, 키리기스 이렇게 세 사람이 가곤 했다.
하지만 연말에 열리는 총 회의에선 두 명만 갔다.
회의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신년회, 더 나아가선 축제 개막식까지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은의 그림자를 타고 이동한다 해도 최소 3주는 왕도에 발이 묶여 있어야 했다.
때문에 6구역처럼 중앙과 멀리 떨어진 구역은 안전상의 이유로 간부 중 한 명은 영지를 지켰고, 간부가 키리기스와 은밖에 없는 오즈벨은 격년으로 돌아가며 한 명이 영지를 지켰다.
작년에는 혜성과 키리기스가 갔기에 당연히 올해는 은이 갈 줄 알았다. 그런데 하는 대화를 보니 올해도 키리기스가 갈 모양이다.
“의외네요. 선생님도 왕도 가시는 거 안 좋아하시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올해는 하은이 간다네.”
“예? 선생님도 왕도 가신다면서요.”
“난 회의 때문에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일 때문에 가는 거야.”
“다른 일이라뇨?”
루가 잘 모르겠다며 갸웃거리자, 사강이 친히 설명해 주었다.
“쿤네 형이 초대장을 보냈대. 중앙 법무부에서도 신년에 파티를 주최하잖아. 우린 이제 중앙 법무부랑 대놓고 친해도, 쿤 때문에 이상하지 않으니까, 이 기회에 가는 거지. 아마 6구역의 다른 판테테들도 가긴 할걸?”
일반적으로 판테테와 중앙 법무부는 사이가 나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중앙 법무부와 연을 맺고 싶어 하는 게 또 판테테였다.
그래야지 일 처리가 수월해지는데다 타 지부를 견제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섣부르게 친분을 만들려 했다간, 다른 지부의 견제와 비난을 받는다는 거였다.
그래서 다들 눈치만 살살 살피거나, 뒤쪽으로 연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오즈벨, 더 나아가 6구역은 그 부분에 관해선 조금 자유로워졌다. 레이포드의 동생인 쿤을 팔면 됐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 신참의 형이 중앙 법무부 이인자. 심지어 엄청 사이좋은 형제. 여러모로 최고의 구실이잖아.”
덕을 본 건 6구역의 다른 지부 판테테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번 구역 본부 회의 때, 모두 쿤을 만나지 않았던가.
그들 역시 쿤과 연이 생겼으니 이를 팔아 중앙 법무부와 친분을 만들어가면 됐다.
사강은 상황을 계속 설명해 줬다. 그러나 루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판테테는 보기보다 구역별로 사이가 나빴다. 같은 구역 안의 지부도 담당 싸움이니, 지원금이니 뭐니 하며 박 터지게 싸우는데 구역끼리는 오죽하겠는가.
그런 그들이 쿤이 레이포드의 동생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6구역과 중앙 법무부의 친분 쌓기를 보고만 있을 리 없다.
“오히려 쿤이 있어서 더 조심해야하는 거 아니에요? 저라면 쿤이 레이포드의 동생인 걸 이유 삼아 귀찮게… 아, 영웅이 있구나.”
“그렇쥐~ 영웅이 사랑해 마지않는 손자. 그게 바로 우리 막내지~”
다른 구역에서 쿤이 레이포드의 동생인 걸 팔아 공격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건, 그가 판테테 내부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엘리아노의 손자이기 때문이었다.
즉, 오즈벨 지부는 쿤으로 인해 대놓고 두 집단과 교류하는 동시에 양 집단에서의 안전을 보장받는 거였다.
6구역은 겸사겸사 덕을 보는 거였고 말이다.
“혜성이도 바빠졌어. 쿤이 누군지 알려진 후부터 켈카르타닌, 파파루아, 루아놈에서 계속 연락이 오거든.”
소소리 부단장이 속한 켈카르타닌은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으니 그렇다 쳐도, 파파루아와 루아놈에서도 연락이 왔었다니.
“핑 단장님이랑 단 단장님 입장에선 자존심이 많이 상하겠네요.”
“이 와중에 무재는 연락 한 번 안 하더라.”
“그치는 안 하는 게 도와주는 거예요.”
루는 무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혜성을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것도 그렇고, 자꾸 부용이를 스카우트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지원 요청도 거기서 제일 많이 들어왔다.
“어쨌든 그래서 우리는 이번에 중앙도 가고, 중앙 법무부도 가고 그럴 거야.”
“…간부가 꽤 오랫동안 비우네요.”
“나는 신년회만 참석하고 올 거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그렇다 해도 2주나 비우시는 거잖아요.”
루는 팔짱을 끼며 이번에는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하고 걱정했다. 그러다 문뜩 어떤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잠깐, 이거 쿤이 같이 가도 되는 거 아냐? 가서 이야기 들으면 딱일 거 같은데.’
중앙 법무부, 다른 곳도 아닌 쿤의 형이 있는 곳이었다. 초대장이 없다 해도 들어가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선생님, 거기 쿤도 데리고 가면 안 되나요?”
“글쎄. 근데 갑자기 쿤은 왜 데리고 가라는 거지?”
“쿤네 형이 놀러 오라고 했대요.”
“…….”
“…….”
사강과 키리기스가 입을 다물었다. 둘 다 그게 지금 말이 되냐는 소리였다.
“야, 가뜩이나 사람 없어 죽겠는데 걔까지 보내면…….”
“알아요. 근데 놀러 오라고 했다니까, 그냥 한번 보내봐요. 걔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제 형을 맘 편히 보겠어요. 그리고 쿤을 데려가야 선생님도 눈치 안 보고 중앙 법무부랑 친해질 거 아니에요.”
“선생은 원래 눈치 안…….”
“이렇게 된 거 무늬만 말고 진짜 가교로 써먹어요.”
루는 필사적으로 키리기스를 설득했다.
“흠…….”
키리기스는 침음을 삼키며 턱을 매만졌다.
다른 말은 다 그렇다 쳐도, 쿤을 진짜 가교로 써먹는 건 괜찮을 것 같았다. 저 역시 확인하고 싶은 게 있기도 하고 말이다.
잠시 후, 그가 흔쾌히 고갤 끄덕였다.
“그래. 내가 데리고 가도록 하지.”
* * *
“은이 씨!”
“우악!”
골목에서 전단지를 정리하던 은이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물렸다.
그녀는 놀란 심장을 달래며 쓰고 있던 돼지 탈을 벗었다. 붉은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뺨에 들러붙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는데, 쿤이 갑자기 골목에서 튀어나왔다.
“뭐야. 너 어디서 나타난 거야. 아무 기척 못 느꼈는데?”
“건이 타고 왔어요.”
쿤이 그리 말하며 제 양 주머니를 가리켰다. 그러자 건이와 곤이가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천호에게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급해진 쿤은, 거대해진 건이의 등에 탄 후, 곤이의 투명화 기술을 사용했다. 그리고 사람들 눈을 피해 은을 찾았다.
상황을 이해한 은이 미간을 찌푸렸다.
골목 안이어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들킬 뻔했다.
“밖에서 애들 기술 쓰지 말라니까. 그러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죄송해요. 그보다 왕도에서 하는 총 회의에 간다는 게 사실이에요?”
“응? 응.”
“저도 같이 가도 돼요?”
“어? 너도 총 회의에 참석한다고?”
“아뇨, 전 그냥 왕도에만 떨궈주세요. 도사님 말씀이 이번엔 그림자 타고 간다면서요.”
“어… 그치, 오가는 시간 아까우니까.”
오즈벨 내부를 돌아다니거나, 저 혼자 다니는 거면 몰라도 은은 장거리 이동에 그림자를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말 회의의 경우는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만큼 아껴야 했기에 그럴 예정이었다.
“저도 태워주세요. 혹시 저까지는 이동이 어려운 건가요?”
“아니, 상관없어. 근데 왕도는 갑자기 왜?”
“제가 형을 만날 일이 있거든요. 딱 반나절이면 돼요.”
쿤은 정말 형만 만나고 올 예정이었다. 길어야 반나절이니 휴가를 쓰게 되더라도 하루치만 사용하면 됐다.
거기다 어차피 은은 그림자를 타고 이동할 계획이었다. 그렇다면 과거의 사건을 설명하지 않고도 얻어 탈 수 있지 않은가.
여러모로 최적의 기회였다.
쿤은 제 계획이 완벽하다 확신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올 때는 어떡하게?”
“…예?”
“올 때는 어쩌려고. 혼자 기차 타고 오게?”
“…….”
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림자를 탈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돌아올 때를 계획하지 않았다.
“은이 씨가…….”
“난 본부 들어가면 못 나오지.”
“그럼 할머니를 찾아서 부탁해야겠네요… 통신 번호 주셨으니까 연락하면 데리러 와주실 거예요…….”
여러 번 끊어 순간이동을 하면 오즈벨까지 오는 게 가능할 것이다.
“근데 엘리아노님도 회의에 오지 않으실까?”
“…할머니 배지 반납하지 않았어요?”
“연말 회의랑 파티는 참석하셨거든.”
“…….”
쿤의 등을 타고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렸다.
“간부가 셋이나 비웠는데, 일주일 휴가 쓰면 욕먹겠죠?”
“욕만 먹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에휴…….”
쿤이 한숨을 푹 내쉬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하루 안에 끝내려던 제 계획이 허무하게 끝나 버리고 말았다.
은은 피식 웃으며 그런 쿤의 등을 토닥였다.
“뭔진 모르겠지만, 중요한 거 같으니까 도와줄게.”
“정말요?”
“응. 대신 너도 같이 총회의 들어가자.”
“예? 그래도 돼요?”
“안 될 게 뭐 있어.”
간부 이상이 참여하긴 했지만, 그런 규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거기다 은은 혜성과 단둘이 있고 싶지 않았다. 지금만 해도 숨 막히는 데 3주나 같이 있으라고?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하지만 쿤이 함께 가준다면 이를 피할 수 있다.
혜성과 단둘이 있을 확률도 줄어드는데다, 무엇보다 대화할 상대가 생기는 게 아니던가.
지긋지긋한 3주가 조금은 나아지는 것이다.
“회의 끝나면 파티 전까지는 자유시간이니까, 그때 형 만나고 오면 될 거야.”
“알겠어요. 근데 제가 그렇게 오랫동안 비우면 다들 뭐라 하지 않을까요?”
“이건 휴가가 아니라 업무잖아. 자기들이 따져 봤자지.”
애초에 쿤 한 명 없다고 문제가 생길 곳이었으면 진작 터지고도 남았다.
‘뭐, 다른 애들한테 원망은 좀 듣겠지만 어쩔 수 없지.’
은은 이번만큼은 조금 이기적으로 굴기로 마음먹었다.
“좋아. 그럼 내가 가서 혜성이한테 말할게.”
“은이 씨가 직접요?”
“응. 네가 말하면 안 된다고 할 게 뻔하거든. 그니까 내가 가서 말할게. 하지만 그전에 알바부터 하고.”
은은 비장한 어투로 인형 탈을 다시 썼다. 그리고 전단지를 옆구리에 끼었다.
겨울바람에 돼지 귀가 펄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