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73
172화- 12월 31일 (03)
평소였다면 누구 하나는 이상함을 눈치챘을 것이다.
헤라도 전이었다면 쿤에게 어느 쪽이 음료인지 확인했을 테고, 부용 역시 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술처럼 자기주장이 강한 마실 거가 또 어디 있는가. 첫 모금을 마신 순간 눈치채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일단 쿤이 술을 줬을 리 없다 생각했고, 맛있는 걸 먹는 거에 정신이 팔려 다른 것을 주의 깊게 살피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판테테, 혹은 판테테 체험생이라 이상한 것, 특이한 것에 너무 익숙하단 거였다.
뭐가 나타나도 놀랍지 않은 일상을 겪다 보니, 그냥 열매에서 술 비슷한 맛이 나는 거겠거니 하고 여겼다.
결국, 단원들은 별 의심 없이 부용이 따라준 모든 잔을 비웠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쿤은 건이와 곤이의 얼굴과 발을 깨끗하게 씻긴 후에야 손을 놓았다.
때아닌 목욕에 두 아이는 구석으로 도망쳤으나 이내 토야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어이, 조카님들. 그대로 다니면 감기 걸린다.”
토야는 주방에 있는 냅킨을 꺼내 건곤이의 젖은 털을 닦아주었다.
쿤은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봤다.
건곤이를 조카 취급하는 건 둘째치고, 저러고 있으니 진짜 조카를 놀아주는 삼촌 같았다.
“다 마셨어?”
주어가 빠진 질문 이었으나 토야는 그게 술이란 걸 단박에 알아챘다.
“응. 근데 더 마시고 싶어.”
“되겠냐.”
“쳇.”
“입은 헹궜고?”
“아니.”
“바로 물 마시라니까.”
쿤은 짧게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토야에게 물을 주기 물병을 꺼내 들었다.
문뜩 그의 시선이 옆에 놓인 간이 식탁으로 향했다.
“…어라?”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술이 담긴 병과 식탁, 토야가 내려놓은 빈 잔. 이상할 게 없는데, 묘하게 거슬렸다.
왜지 싶던 쿤은 이윽고 얼마 안 가 이유를 알아챘다. 음료가 담긴 병이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 거였다.
“야, 너 혹시 술이랑 음료랑 자리 바꿨냐?”
“뭔 소리야. 그걸 내가 왜 바…….”
꿔…….
점점 사라지는 말끝과 함께 토야의 시선이 식탁에 고정됐다.
이내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역시 사태를 파악한 거였다.
“헐, 안 돼. 우리 형 술 마시면 큰일 나.”
토야가 자릴 박찼다.
쿤 또한 곧장 그 뒤를 따랐다.
채 열 걸음도 가지 않아 도착한 식당은 토야의 걱정과 달리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우기 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두 사람의 뜀박질에 헤라가 잔을 든 손 그대로 굳었다.
“무슨 일 있어요?”
“너, 너, 너 그거 마시지 마!”
“예?”
쿤은 빠르게 헤라의 손에 들린 잔을 뺏었다. 역시나 술이 맞는지 특유의 향이 훅 풍겼다.
“마셨어?”
“어… 두어 모금?”
“으-!”
미성년자가 술을 마시게 뒀다는 죄책감도 잠시, 아이의 상태가 걱정됐다.
“너 괜찮아? 속이 매슥거리거나 어지럽진 않고?”
헤라가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쿤이 왜 멀미의 증상을 말하나 싶었다.
“멀쩡해요. 근데 왜요?”
“이거 술이야.”
“예?!”
헤라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녀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토야를 향했다.
‘쟤가 마시고 있어서 가져온 건데… 잠깐, 그럼 진짜 술을 마신 거였어?’
겁대가리를 상실한 것도 정도가 있지, 어떻게 단원들이 여기 다 있는데 술을 마실 수 있단 말인가.
헤라는 토야를 매섭게 흘겨본 뒤, 쿤에게 사과했다.
“으~ 죄송해요. 전 이게 당연히 음료인… 앗, 잠깐.”
헤라는 뒤늦게서야 단원들 전부가 술을 마셨음을 깨닫고 주변을 둘러봤다.
단원들의 시선이 쿤에게 고정되었다.
그들은 쿤의 입에서 ‘술’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부터 그만 쳐다보고 있었다.
특히 쿤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루는 파스타를 돌돌 말던 자세 그대로 멈춰 눈만 끔뻑였다.
“이게 술이라고?”
“네.”
쿤은 그리 답하며 병을 찾았다. 다행히도 다들 얼마 안 마셨는지 그렇게 많은 양이 비어 있진 않았다.
“이게 술이었구나… 어쩐지 입에 안 맞더라.”
루는 그리 말하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술병을 집었다.
쿤은 순간 이게 뭐지, 싶었다.
“뭐 하세요?”
“목말라서.”
“근데 왜 술을 드세요. 입에 안 맞는다면서요.”
“뭐? 이게 술이야?”
“…….”
“어쩐지 맛이 별로더라.”
루는 그리 말하며 제 잔에 술을 따랐다.
쿤은 빠르게 그 손을 저지했다.
“잠깐잠깐. 동작 그만.”
“왜.”
“행동이랑 말이 다르잖아요. 루 씨 설마 취하셨어요?”
“뭐? 얘가 미쳤냐. 내가 왜 취해.”
루가 인상을 팍 구기며 짜증을 냈다. 쿤이 익히 잘 아는 그 표정이었다.
그래. 끽해야 한두 잔 마신 걸 텐데, 그런 걸로 취했을 리가 없지.
쿤은 그리 생각했다.
“술도 안 마셨는데 내가 왜 취해.”
이 말을 듣기 전까진.
“…….”
쿤은 손가락 두 개를 편 뒤, 루 앞에서 흔들었다.
“루 씨, 이게 몇 개로 보이세요?”
“죽을래?”
“몇 개예요.”
“음…….”
루가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그리고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세 개.”
“…….”
이제는 손가락을 흔들지 않고 있음에도 루는 아주 거만한 표정으로 ‘세 개!’라고 또 한 번 말했다. 그리고 다시 잔을 들었다. ‘음료 맛이 독특하더라’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쿤은 말없이 술잔을 빼앗았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물잔을 대신 쥐여주었다.
로도 베리주는 일반 담금주보다 도수가 낮았다. 함께 나눠 마시는 데 의의를 둔 술인 만큼 어지간한 사람들이 다 마실 수 있도록 담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취했다고? 많이 쳐 봐야 두 잔밖에 안 마셨을 텐데?
“진짜 못 드시는구나…….”
쿤이 푹 한숨을 내쉬며 루를 어떻게 할지 고민할 때, 옆에 있던 부용이 불쑥 말을 꺼냈다.
“원래 루 주량이 와인 한 잔밖에 안 돼요.”
“진짜요?”
“네.”
“그렇구… 근데 부용 씨는 뭐 하세요?”
쿤의 시선이 부용의 접시에 꽂혔다.
그녀는 포크와 나이프로 얇은 양상추를 열심히 접고 있었다. 이 와중에 표정은 또 어찌나 신중하고 진지한지 누가 보면 위험 물질을 만지는 걸로 착각할 것 같았다.
“뭐 접는 거예요…….”
“비행기요.”
“비행기는 왜…?”
“예쁘게 접어서, 양상추한테 자유를 줄 거예요.”
부용이 의욕을 가득 담아 말했다.
“씨앗일 때부터 그 무거운 흙을 뚫고 겨우 싹을 틔웠는데,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자랐는데 사람한테 잡아먹히는 건 너무 슬프잖아요.”
“…….”
“그래서 제가 꼭 양상추의 자유를 찾아줄 거예요.”
부용은 마치 양상추가 차원이동자라도 되는 듯 열과 성을 다해 비행기를 접었다.
그때, 옆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 쳐다보자 사강이 입을 틀어막으며 눈물을 후두둑 떨구고 있었다.
“크흡. 맞아… 이렇게 잡아먹히는 건 너무 불쌍해……. 얘들에게도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고.”
…이 인간은 또 왜 이래.
“기다려, 앤드류 3세. 내가 너를 구해줄게.”
사강은 먹기 편하도록 조각낸 앤드류 3세, 아니, 스테이크를 다시 짜맞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반 절 이상 먹은 터라,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안 돼… 조각이 부족해…….”
사강이 포크와 나이프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접시를 잡으며 오열했다.
“앤드류 3세-!”
으허어어어으응흐규그그구.
정체 모를 울음소리가 식당을 울렸다.
이 와중에 옆에 있는 루가 다시 술병을 집었고, 비행기를 다 접은 부용이 양상추의 자유를 찾아주었다.
쿤은 돌아버릴 것 같았다.
“아니, 어떻게 해야 이렇게까지 못 마실 수 있는 건데!”
한 명도 아니고, 자그마치 셋이나 이렇게 취해 버리다니.
그것도 고작 로도 베리주에!
“진짜 제대로 마실 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야?”
“걱정하지 마, 쿤. 나는 잘 마시니까.”
쿤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녹턴이 다리를 꼰 채 칼질을 하고 있었다.
“저, 정말요?”
“내 주량은 와인 반 잔이거든. 근데 한 잔밖에 안 마셔서 괜찮아.”
“뭐가 괜찮아요. 셈부터 틀렸는데!”
“아, 그런가. 그래도 걱정하지 마. 난 주사 없거든. 뭐,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어서 두드러기가 나긴 하지만.”
“댁이 제일 심각하잖아!”
쿤은 비상약을 찾아 몸을 돌렸다. 그때 그의 눈에 토야가 들어왔다.
어느새 주방에서 마늘 빻는 절구를 들고 온 그가, 보보의 뒤에 서서 제 형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야, 어떻게 때려야 후유증 없이 기절시킬 수 있을까.”
“너도 취했냐?”
“나 지금 진지하다.”
“진지해서 더 무서워. 빨리 그거 내려놔.”
“안 돼. 우리 형이 각성하기 전에 재워야 한다고.”
“뭐?”
그러고 보니 묘하게 조용한 보보였다. 다른 단원들처럼 헛소리하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얌전하게 앉아 있는 게 다였다.
하지만 그게 더 불안했다.
마치 폭풍전야처럼 고요한 그의 모습에 쿤이 마른침을 삼켰다.
“…주사가 뭔데 그래.”
쿤이 불안을 담아 물었다.
그때 보보가 자릴 박차고 일어났다.
그 반동에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쿵.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정적이 내려앉았다.
보보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제일 소름 끼치는 주사가 눈앞에 펼쳐졌다.
“내 동생~♥”
보보가 팔을 뻗어 토야를 꼭 끌어안은 것이다.
“우아악-!”
토야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새하얀 피부에 닭살이 오른 것이 쿤에게까지 보였다.
“저리 꺼져!”
그는 티아문인 척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필사적으로 제 형을 밀쳐 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단련한 보보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보보는 동생을 꼭 끌어안고 동그란 이마에 쪼는 듯한 뽀뽀를 했다.
“내 동생~ 귀여운 내 동생~”
“으아아악! 하지 말라고, 이 미친놈아!”
“형이 노래 불러줄까?”
“하지 마!”
보보는 토야의 말을 외면한 채, 아이에게 들려줄 법한 자장가를 불렀다.
쿤은 어째서 토야가 보보를 기절시키려고 했는지 이해했다.
술만 마셨다 하면 애정이 넘쳐나는 형. 심지어 뽀뽀도 서슴지 않는 형.
만일 레이포드나 로건이 저랬다면 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그나저나,
“보보 씨, 노래 진짜 못 한다…….”
리란티아인이라면 다 알만큼 유명한 곡을 부르는데 어찌나 음이 엉망인지, 제가 아는 노래가 맞나 싶었다.
“야! 빨리 이 인간 기절시켜!”
“…힘내라.”
“야!!”
“난 약 찾으러 간다.”
쿤은 토야를 버려둔 채, 알레르기약을 찾으러 갔다.
헤라는 가만히 앉아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미트볼로 스테이크의 빈 부분을 채우고 있는 사강, 양상추들의 자유를 찾아주는 부용, 술이 음료인 줄 알고 자꾸 마시는 루, 두드러기가 올라오는지 얼굴을 찡그리는 녹턴. 그리고 동생을 끌어안고 노래와 뽀뽀를 반복하는 보보. 거기에 토야의 비명까지.
“개판이다.”
헤라는 그리 중얼거리다 주변의 눈치를 스윽 살폈다. 작은 손이 식탁 위를 꼬물거리더니 이내 쿤이 빼앗아 간 제 잔을 도로 가져왔다.
헤라는 순식간에 잔을 비웠다.
“맛있다.”
아이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