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75
174화- 1월 1일 (02)
“내가… 이런 말을 들으려고 여기 온 건 아닌데.”
은의 목소리에 약간의 노기와 노골적인 살기가 어려 있었다.
일렁이는 그림자에 남자의 뒤에 서 있던 두 기사가 잔뜩 굳은 얼굴로 무기가 든 카드를 움켜쥐었다.
남자는 그들을 향해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괜찮아.”
짧은 한마디에 두 기사가 표정을 풀고 기척을 죽였다.
그제야 남자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가 난 건 알겠지만, 여기선 성질 좀 죽여. 그러다 목이 댕강 날아가면 어쩌려고.”
“해보던가.”
다시금 은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드러난 적의만 보자면, 도리어 은이 다른 이들의 목을 벨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엔 기사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 역시 한숨을 내쉬는 게 다였다.
“하여간 성격 더러운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너만 할까.”
“그보다 은아.”
“왜.”
“언제까지 서 있을 거야?”
“…….”
“좀 앉지 않을래? 누가 나를 내려다보는 게 익숙지 않아서 말이야.”
남자가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란 걸 모르는 이는 이 자리에 없었다.
은은 이를 콰득 깨문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잡담 그만하고 부른 용건이나 말해. 자꾸 헛소리하면 나 그냥 돌아갈 거야.”
목소리에서 화를 꾹꾹 눌러 담은 게 여실히 느껴졌다.
남자는 피식 웃어 보였다. 그리고 손가락을 가볍게 까딱였다.
마치 강아지를 부르는 듯한 태도에 휘장 너머에 있던 다른 이가 다가왔다.
은과 똑같이 판테테 정복을 입고 있는 이였다.
그는 은의 앞에 작은 쪽지를 내려놓았다.
“이게 뭐야?”
“보면 알아.”
은은 미심쩍은 눈으로 쪽지를 펴봤다. 순간 그녀의 미간이 구겨졌다.
“…좌표?”
역차원문 조사단일 때 지겹도록 봐왔던 좌표가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의아함을 담아 쳐다보자, 남자가 입을 열었다.
“최근 이상한 역차원문이 계속 나타나고 있어. 주기 간격은 대략 넉 달에서 넉 달 반.”
“…역차원문이 그렇게 짧은 주기로 나타난다고? 언제부터?”
“정확한 건 몰라. 보면 알겠지만, 위치가 위치거든.”
은은 다시금 좌표를 내려다봤다. 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좌표가 가리키는 곳은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북쪽 바다 한가운데였다.
“처음 발견한 건, 작년 2월.”
“그때 발견된 거면… 조사가 꽤 진행됐을 텐데?”
“총 아홉 명의 판테테가 갔어. 처음엔 네 명, 그다음엔 다섯 명이. 하지만 살아 돌아온 사람은 각각 한 명씩밖에 없어.”
“…….”
역차원문 조사단의 목표는 해당 차원의 정보를 얻어오는 거였기에, 어떤 경우라도 전멸을 피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상황이 극에 몰리면, 생존율이 가장 높은 한 명을 뽑고, 그를 지키는데 힘썼다. 그가 돌아가 정보를 전할 수 있도록 말이다.
각각 한 명씩 돌아왔다고 하니, 이번 역시 그런 상황이었을 것이다.
은은 그제야 남자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너무 위험한 차원이라 제 힘이 필요한 거였다.
“살아 돌아온 녀석 말로는 아주 위험한 괴물이 길을 막고 있어서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다더라고. 그래서 이번에는 정예로 꾸려서 보내볼 예정이야.”
“그러다 이번에도 다 죽으면?”
“그니까 안 죽을 만한 사람으로 보내려는 거지. 설령 다 죽는다 해도 너는 살 거야. 역차원문 조사단 중 너보다 생존율이 높은 사람은 없으니까. 다들 너를 살리려 하겠지.”
“…….”
남자의 시선이 은이에게 닿았다.
“역차원문 발생 예상 시기는 이번 주.”
“…….”
은은 가만히 침묵을 지키다, 남자에게 쪽지를 돌려주었다.
“안 해.”
“정말?”
“그래. 난 이제 역차원문 조사원이 아니야.”
은은 이미 그 일을 그만두었다. 물론 아직도 몰래 역차원문을 타고 있긴 하지만, 이런 일에 끼어들고 싶진 않았다.
‘이 자식이 갑자기 이러는 것도 신경쓰여.’
역차원문 조사단은 소수 정예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그 수가 적었지만, 동시에 개인 하나하나가 손꼽히는 실력자들이었다.
그런데 자그마치 일곱 명이 죽었다.
보통 위험한 차원이 아니란 소리였다.
이쯤 되면 추가 조사를 포기하는 게 맞다.
때마침 장소도 북쪽 바다가 아니던가. 사람들이 실수로라도 들어가지 않도록 주변만 잘 통제하면, 어지간한 불상사는 다 막을 수 있었다.
‘실제로도 그래 왔고. 그런데 보낸다? 이건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야. 거기다…….’
은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해 말했다.
“안 가.”
“내가 이렇게 부탁해도?”
“그래서 더 안 가. 미리 말하는데, 나 역차원문 조사단 그만둘 때 너랑 계약서 다시 썼어.”
절대 저를 강제로 부리지 않기로 새로 약속했다. 남자 역시 흔쾌히 동의했고 말이다.
물론 그 이면에 다른 조건이 붙긴 했지만, 어쨌든 그 계약으로 인해 은은 왕명 앞에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흠. 그럼 네가 좋아할 만한 걸 던져 줘야겠군.”
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어 번 두드렸다.
“아, 그래. 이번 일을 도와주면 내가 네 빚을 다 없애줄게.”
순간 은이 움찔했다. 마치 못 들을 말을 들은 사람 같았다.
“어때?”
“…뭐가 어때야. 그건 내가 갚아야 할 몫이야. 절대 건들지 마.”
“그래? 하지만 평생을 다해도 갚지 못할 금액이잖아. 내가 없애주면 좋은 거 아냐?”
“그래도 건들지 마.”
은의 잿빛 눈동자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남자는 턱을 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이지 이상한 부분에서 고집이 있다니까.
“알겠어. 그건 건들지 않을게. 그래서, 정말로 안 갈 거야?”
“어. 안 가. 그리고 난 이제 돌아갈 거야.”
은은 그리 말하며 재킷을 여미곤 남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후,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할 수 없네. 알았어. 이만 돌아가 봐.”
남자가 잔뜩 아쉬운 투로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제야 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이곳이 정말 싫은지, 평소보다 걸음이 빨랐다.
남자는 그런 은을 향해 한마디 붙였다.
“아, 맞다. 새해 복 많이 받아.”
“…….”
마치 욕을 들은 사람처럼 은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남자를 매섭게 노려본 뒤, 그대로 집무실을 나섰다.
쿵!
다소 과격한 문소리와 함께 정적이 내려앉았다.
잠시 후, 남자 옆에 있던 판테테가 물었다.
“저리 보내도 괜찮으신 겁니까?”
“가기 싫다는데 어떡해.”
“하지만 하은님이 계셔야…….”
판테테가 말끝을 흐렸다.
남자는 그가 하지 못한 뒷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일반 판테테들에게 가장 큰 비극은 죽음이었지만, 역차원문 조사단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시신이 타 차원에 버려지는 거였다.
때문에 그들은 제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도 동료의 시신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살아 돌아온 두 사람 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 했다.
그래서 은이 함께하길 바랐다. 그녀는 어떤 경우에도 시신만은 회수해 왔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시신을 회수하지 못했단 말도 할 걸 그랬습니다.”
남자가 한쪽 입꼬리를 말았다.
‘설마 은이 그걸 모르려고.’
한 명씩 살아 돌아왔다는 시점에서 시신을 회수 못 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마음을 바꾸진 않았을 테지. 그녀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니까.
남자는 등받이에 몸을 파묻으며 느긋하게 다리를 꼬았다.
뭐, 은의 생각이 어떻든 그녀는 결국 그 역차원문을 타게 될 것이다.
여태껏 제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은 건 없었으니 말이다.
* * *
은은 집무실을 빠져나와 긴 복도를 타고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가는 중간중간 궁인들이 은에게 인사를 건넸으나, 생각에 빠져 있던 그녀는 이를 보지 못했다.
‘시신… 회수 못 했겠지?’
역차원문 너머의 위험보다 그곳에서 썩어갈 이들의 시신이 계속 걸렸다.
비단, 같은 역차원문을 탄다 해도 시신을 찾을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그곳이 리란티아와 같은 시간으로 흐르는지 아닌지 알 수 없고, 어쩌면 그 흐름이 뒤죽박죽 섞여 있어 한참 후의 미래나 과거로 갈 수 있다.
역차원문 조사단이 시신이 버려지는 걸 가장 큰 비극으로 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시신을 되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기에.
그리고 이를 겪는 유족의 비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이라도… 아니야. 가면 안 돼.’
은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마음이 자꾸 그쪽으로 기울였지만, 절대 그래선 안 됐다.
‘내가 가면 혜성이가 혼자 남아.’
그렇다. 만일 지금 은이 역차원문을 타게 되면, 혜성은 혼자 지내야 한다.
이곳에 혜성을 노리는 자들이 얼마나 많던가.
심지어 그는 아직 어깨 부상도 다 낫지 않았고, 남들을 계속 속이기 위해 제힘을 온전히 드러내지도 않을 것이다.
은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걸음을 한층 더 빨리했다.
순간 그녀가 뚝 하고 멈춰 섰다. 혜성이 복도 벽에 기대 서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왜 네가 여기 있어?”
“하도 안 와서 마중 나왔어.”
혜성이 여유롭게 웃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얘기는 다 끝났어?”
“대충. 그보다 너 괜찮아?”
“뭐가?”
“너 여기 싫어하잖아.”
넓은 왕성 중에서도 왕의 집무실이 있는 본궁. 그 깊은 지하에는 혜성이 갇혀 고초를 겪은 감옥이 있었다.
때문에 그는 이곳에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방에 있을 것이지, 뭐 좋은 곳이라고 와.”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너도 여기 안 좋아하잖아.”
저마다의 지부나 건물이 있는 판테테들과 달리 역차원문 조사단은 왕궁 본궁 2층에 방이 있었다. 특히 은의 경우는 왕을 호위하는 일까지 겸했기에 거의 본궁에 살다시피 했었다.
궁인 대부분이 은을 알아보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 인간이랑 무슨 이야기 했어?”
“역차원문 타래.”
은은 그리 말하며 남자와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들려주었다.
역차원문 조사에 관한 건 기밀에 가까웠지만, 그녀는 이를 신경쓰지 않았다.
남자가 비밀로 하라 한 것도 아니고, 뭣보다 혜성이 이를 어디다 떠벌릴 사람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안 간다고 했다고?”
“내가 왜 가.”
“시신회수 해야 하는 거 아냐?”
“너까지 속 뒤집냐? 그리고 간다 해도 찾을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어.”
“하지만 넌 포기 안 하잖아.”
“…그거야 경우 따라 다르지.”
“나 때문이면 가도 돼.”
“안 가. 너 때문도 아니고.”
은이 뻔뻔하게 거짓말하며 걸음을 다시 했다.
혜성 역시 그녀를 따라 걸었다.
“맞다. 녀석이 쿤에 대해 물었어.”
은이 혜성이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잔뜩 긴장한 그녀와 달리 그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알고 있었어?”
“그러지 않을까 했어. 오즈벨에 관심을 가지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잖아. 보보 때도 그랬고, 녹턴 때도 그랬고.”
“그건 그런데… 괜히 좀 찜찜하네.”
쿤이 마법사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가족이 중앙 법무부와 영웅이어서 그런 걸까.
영 신경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