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77
176화- 영원을 바란 순간 (01)
쿤과 루는 가만히 잠이 든 차원이동자를 내려다봤다.
깊게 팬 주름과 앙상하게 마른 몸, 민머리에 하얀 턱수염까지…….
“완전 어르신이네.”
“그러게요.”
차원이동자는 외모만으로 나이를 판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냥 봤을 때에는 꽤나 연세가 많은 듯했다.
거기다 산양처럼 양쪽 관자놀이 부근에 난 뿔만 아니었다면 리란티아인이라고 해도 믿을 외모였다.
반면 차림새는 조금 생소했다. 커다란 하얀 천을 그대로 두른 것 같은 옷에, 소매가 길고 폭이 넓은 황토색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가장 시선을 잡아끈 건 목에 걸린 목걸이였다. 갈색의 투박한 끈 아래로 5㎝ 정도 되는 유리 장식이 달려 있었는데, 그 형태가 호리병과 매우 흡사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입구로 보이는 주둥이가 위아래 다 달려 있단 거였다.
쿤은 텅 빈 유리 호리병을 홀린 듯 바라보다 고갤 들었다.
“근데 여기다 모셔도 되는 거예요?”
지금 그들은 지부 별관 감옥에 있었다. 쿤이 처음 오즈벨에 왔을 때 갇혔던 감옥 말이다.
“그때 이후로 처음 쓰는 거죠?”
“응. 어디의 누구 씨가 탈출하는 바람에 안전성을 의심받아서 말이야.”
“그게 왜 제 탓이에요.”
쿤이 억울하다며 따졌지만, 반 정도는 맞는 이야기였다.
쿤의 탈출, 그리고 죄수 차원이동자의 도주를 겪으며 오즈벨 단원들은 이곳이 그리 안전한 곳이 아니라 판단했다.
그래서 가급적 지하 방을 애용했다. 그쪽이 좀 더 차원이동자를 관리하기도 편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얼추 청소했다고는 해도 지하 복도 곳곳에 균열의 흔적이 남아 있고, 일부 방은 아예 무너져 내려 전문가의 손이 필요했다.
차원이동자 방에 걸린 보호 마법도 다시 손봐야 했다.
이래저래 차원이동자를 돌보거나 가둘 환경이 아닌 것이다.
“당분간은 뾰족한 수가 없으니까 여길 쓰는 수밖에.”
“음… 그건 그런데, 영 그러네요.”
“또 뭐가.”
“풍경이요.”
쿤이 그리 말하며 주변을 크게 둘러봤다.
평범한 방처럼 꾸며진 지하와 달리 이곳은 철창부터 시작해 모든 풍경이 감옥 그 자체였다.
심지어 침대도 없어 쿤이 직접 매트를 들고 옮겨와야 했다.
이곳 말고는 마땅한 방이 없다는 건 알지만, 차원이동자가 눈을 떴을 때 느낄 당혹감을 생각하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여기서 눈뜨시면 많이 놀라실 텐데…….”
“좋게 생각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인생을 돌아보겠어.”
“그게 무슨 망언이에요.”
쿤이 혀를 차며 루를 나무랐다.
그때였다. 차원이동자가 낮은 신음을 흘리며 움찔거렸다.
두 사람은 서둘러 아래를 내려다봤다.
차원이동자의 얇은 눈꺼풀이 몇 번 움찔거리더니 이내 천천히 올라갔다. 칠흑처럼 새카만 눈동자가 주변을 살폈다.
“여긴…….”
잔뜩 쉰 목소리가 들렸다.
낯선 이계어가 아닌 두 사람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리란티아어였다.
“말이 통하네요.”
“잘됐다.”
쿤과 루는 바로 옆에 자릴 깔고 앉았다.
차원이동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루와 쿤을 마주했다.
행동 자체만 보자면 굉장히 느릿하고 차분했으나, 크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그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여긴 어디입니까……?”
차원이동자가 물었다.
쿤은 늘 그래 왔듯 차원이동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곳이 어디이고, 자신들은 누구며, 72시간 후에 돌아갈 수 있단 것까지 말이다.
이야기를 다 들은 차원이동자가 턱을 짚었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것 같았다.
“그니까… 제가 다른 세계로 넘어왔단 거군요. 아가씨와 도련님은 제가 원래 세계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고요.”
“맞습니다.”
“정확하게 이해하셨어요.”
“그렇군요… 헌데 제가 왜 감옥에…….”
“아, 그건 원래 있던 방이 망가져서 그래요.”
쿤은 서둘러 왜 그를 감옥에 모셔야 했는지를 설명했다.
낯선 차원이란 것보다 감옥이라는 게 더 신경 쓰였던 걸까.
아까와 달리 그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딱딱하게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다행입니다. 전 또 제가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줄 알고 놀랐거든요.”
“하하하… 죄송해요.”
“그럼 계속 여기서 지내야 하는 겁니까?”
“네. 죄송하지만, 지금 상황으론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다른 건 다 괜찮지만, 하늘을 볼 수 없는 건 아쉽군요.”
차원이동자의 말에 루가 한숨을 푹 내쉬며 답했다.
“상황 봐서 안전하다 판단되면 보여 드릴게요.”
“안전이란 건, 저를 말하는 겁니까, 밖을 말하는 겁니까?”
“둘 다요.”
둘 다라곤 했지만, 따지고 보면 네가 아직 못 미더워 내보낼 수 없단 소리였다.
그러나 차원이동자는 기분 나빠하기보단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세 끼 꼬박꼬박 나오고, 춥지 않도록 난로도 가져다 드릴 거니까요.”
“알겠습니다.”
차원이동자는 다시금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이불을 걷고 몸을 움직였다.
순간 루와 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차원이동자가 두 사람을 향해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뭐, 뭐하는 거예요?”
“어, 어르신?”
루와 쿤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게 웃겼던 걸까. 차원이동자가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저희 식으로 인사드리는 겁니다.”
차원이동자는 두 손을 모아 바닥에 붙인 후, 천천히 절을 했다.
“제 이름은 나딘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쿤과 루는 크게 당황했다.
당연했다. 할아버지보다도 연배가 많아 보이는 어르신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데, 어떤 이가 놀라지 않겠는가.
심지어 둘은 귀족이나 왕족이 아니었기에 어른에게 이런 식의 인사를 받는 게 처음이었다.
쿤과 루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릎을 꿇은 후, 나딘을 향해 맞절을 했다.
“저희도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려요.”
다소곳한 인사와 서로를 향한 존중.
시린 감옥이란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훈훈한 풍경이었다.
자정에 온 탓인지 나딘은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이른 새벽에 깨어나 아침을 맞이했다.
루와 쿤은 같이 감옥에 머물며 그의 곁을 지켰다. 필요한 게 보이면 곧장 챙겨주었고, 중간중간 말도 건네며 무료함도 달래주었다.
나딘을 향한 두 사람의 평은 똑같았다.
‘참으로 인자한 사람.’
나딘은 정말로 ‘인자하다’를 몸에 새기고 태어난 사람처럼 행동 하나하나가 반듯하고 어질었다.
심지어 그는 쿤과 루를 비롯한 단원들에게 항상 존대했고, 고운 언사를 사용했다.
덕분에 혜성과 천호에게도 반말을 하던 루가 그에게만은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다.
“나딘님, 원래 세계에선 무슨 일을 하셨어요?”
쿤의 질문에 나딘이 차분하게 답했다.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만, 그전에는 전하를 보필했습니다.”
“아~”
쿤이 고갤 끄덕이며 납득했다.
묘하게 기품이 넘친다 했는데, 이제 보니 왕을 섬기는 신하여서 그랬던 모양이다.
“도련님은 원래부터 판테테 일을 하셨던 겁니까?”
“판테테가 된 건 몇 달 안 됐고요, 전에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아르바이트?”
나딘이 생소한 단어에 고갤 갸웃거렸다.
쿤은 친절하게 아르바이트가 뭔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렇군요. 아르바이트라…….”
나딘이 작게 읊조리며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그곳에 아르바이트에 관한 것을 적었다.
눈을 다시 뜬 새벽부터 밤이 된 지금까지, 나딘은 매 순간을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자신이 먹은 것, 본 것, 새롭게 알게 된 것 등 전부 다 말이다.
비록 리란티아와 문자가 달라 노트의 내용을 읽을 순 없었지만, 나딘은 글을 쓸 때 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기에 쿤도 루도 그가 뭘 적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르신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올해로 아흔아홉입니다. 날을 서른 번 더 맞이하면, 백 살이 되는군요.”
“와.”
쿤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요즘 리란티아도 의술이 발달해 평균 수명이 늘긴 했으나 백을 넘긴 이는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백을 약 한 달 남겼다니.
심지어 나딘은 아흔아홉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했다.
행동이 조금 느리긴 했으나, 무거운 테이블을 척척 옮길 만큼 힘도 좋았고, 서 있는 자세 역시 반듯했다. 거기다 이빨도 튼튼해 질긴 고기도 맛나게 먹었다.
“워낙 정정하셔서 아흔아홉이라곤 생각 못 했어요.”
“그렇습니까?”
“나딘님의 세계에선 다들 백 세를 넘기시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 친구들 역시 다 세상을 떠났고요.”
“아…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나딘은 어린 손주를 달래듯 미안해하는 쿤을 다독였다. 그리고 주름진 손을 뻗어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이따금 먼저 떠난 친구들을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지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친구들을 계속 추억하기 위해서라도 오래 살고 싶더군요.”
“오래 사실 거예요. 그것도 아주 건강하고 행복하게요.”
“감사합니다.”
나딘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그때, 누군가가 철창을 툭툭 두드렸다. 사강의 호출로 잠시 자릴 비웠던 루였다.
“일 다 보신 거예요?”
“그건 아니고, 너 잠깐 나와봐.”
루는 쿤에게 손짓하다, 제 쪽을 빤히 쳐다보는 나딘을 보고 손을 내렸다.
“어르신, 잠깐 일이 있어서 그런데 혼자 계셔도 괜찮으시겠어요?”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십시오.”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오전에 드린 벨을 울리세요.”
나딘이 알겠다며 고갤 끄덕였다.
“그럼 다녀올게요.”
쿤은 나딘에게 금방 오겠단 말을 남긴 뒤, 감옥을 나섰다. 그리고 루를 따라 숙소 1층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루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뭇 심각해 보이는 표정 하며, 굳게 다문 입까지.
묘한 불안감에 눈치만 살피던 쿤은, 루가 숙소에 들어서기 무섭게 결계를 만드는 걸 보며 무슨 사달이 났음을 짐작했다.
“…큰 문제라도 생긴 거예요?”
루는 아무 말 없이 턱으로 앞을 가리켰다.
거실의 정중앙, 사강을 비롯한 오즈벨 지부의 모든 단원이 모여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던 그때, 쿤의 눈에 이상한 게 들어왔다. 벚꽃색이었던 녹턴의 머리카락이 새하얀 순백으로 변한 것이다.
분명 나딘의 저녁을 챙기러 왔을 때까지만 해도 본래의 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하얗게 변한 거지?
의아함에 가는 눈만 깜빡이자, 옆에 있던 루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녹턴 씨의 마법이 풀렸어.”
“예? 마법이요?”
그러고 보니 쿤은 여태 녹턴의 마법이 무엇인지 듣지 못했다. 그녀 스스로가 밝히질 않는데다 다른 단원들도 쉬쉬는 분위기라 묻지 못했던 거였다.
그래서 쿤은 항상 제 호기심을 억눌러 왔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걸 물어봐도 될 것 같았다.
“녹턴 씨 마법이 뭔데요?”
쿤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녹턴에게 향했다.
잠시 후, 그녀가 짧게 말했다.
“행운. 그게 내 마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