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8
17화-오즈벨의 판테테 (04)
“이제 누구한테 갈 거야?”
쿤의 질문에 앞서 걷던 헤라가 몸을 돌렸다.
“사강 아저씨네요. 여기선 강이 아저씨네가 제일 가깝거든요.”
사강. 이 이름이라면 혜성이 심부름을 시킬 때 언급했었다. ‘은이, 강이, 보보, 루, 키리기스, 녹턴한테 가져다주고 오면 돼’라면서 말이다.
“사강 씨는 어떤 분이셔?”
“단장님하고 오즈벨 지부 최고 또라이 칭호를 두고 싸우신 분이에요.”
뭔데. 어떤 분이기에 묘사가 그래.
“작년에 누가 더 미친놈인지를 두고 투표했는데, 아슬아슬하게 사강 아저씨가 졌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덜 또라이라고 불리고 있어요.”
왜 그런 투표를 하는지는 둘째치고, 쿤이 보기에도 특이하다 못해 별난 혜성과 비등한 성격이라고 하니 어째 불길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우리 그분 꼭 만나야 하니? 그냥 건너뛰면 안 돼?
쿤은 진심으로 헤라에게 그리 말고 싶었으나 판테테 동료인 이상 어차피 한 번은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곤 꾹 참기로 했다.
“사강 아저씨는 3번가에 사세요. 거기가 과학자랑 공학자들이 모여 사는 곳인데, 아저씨 개인 연구실도 거기 있거든요.”
“사강 씨가 과학자셔?”
“네.”
과학자. 그리고 공학자. 과거까지만 해도 괴짜에 사이비 취급을 받는 분야였으나 차원문의 발견 이후 그 판도가 바뀌었다.
차원문을 통해 온갖 문명이 넘어온데다 마법사의 수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그 중요성이 높아진 것이다.
때문에 현재는 마법사와 과학자가 힘을 합쳤고,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 사람들의 편리를 돕곤 했다. 판테테의 무기나 비품 또한 과학과 마법의 결합물인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의 입지는 크지 않았는데, 리란티아가 마법을 중심으로 흘러가는데다 가장 큰 자원 또한 마법이기 때문이었다.
나라의 높으신 분들 역시 대부분이 마법이 절대적이던 시대에 태어났던 이들이라 과학자들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과학자들을 무시하는 마법사들도 많고.’
그리고 이런 태도 때문에 과학자 역시 마법사들을 반기지 않았다.
어찌 보면 애증과도 같은 관계였다. 서로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동시에 서로의 근본을 싫어하는 그런 사이 말이다.
“판테테 과학자들은 주로 본부에서 일한다고 들었는데 아니었구나.”
“아니에요. 다 본부에서 지내요. 강이 아저씨도 그랬고요. 근데 단장님이 오즈벨 지부 단장이 될 때 데려오셨어요. 아, 이쪽으로 가야 해요.”
헤라는 쿤을 안쪽 골목으로 이끌었다.
굽이진 골목을 지나자 이윽고 생경한 풍경이 쿤의 시야를 채웠다. 신식 건물들 사이로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물건들이 놓여 있었고, 바닥에 돗자리를 펴놓고 무언가를 뚜닥거리며 만드는 이들도 많았다.
쿤은 주변을 구경하며 헤라를 따라갔다. 그리고 두 골목을 지나 어느 저택 앞에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정원이 넓은 아담한 구식 저택이었는데, 창이나 문, 그리고 저택을 두르는 담은 보수 공사를 했는지 신식 형태를 띠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다고도 할 수 있으나, 솔직히 미관상 좋다곤 할 수 없는 외관이었다.
헤라는 문 앞에서 큰 목소리로 사강을 불렀다.
“사강~ 아저씨~!”
아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길목을 울렸다.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한편으론 당연했다. 정원이 저리 넓은데 여기서 부른다고 들리겠는가. 창문도 다 닫혀 있고.
헤라는 또 한 번 큰 목소리로 사강을 찾다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몸을 돌렸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금방 돌아올게요.”
헤라는 쿤이 채 어딜 가냐고 묻기도 전에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혼자 남게 된 쿤은 멍하니 문만 쳐다봤다. 그때, 어떤 익숙한 물건이 쿤의 시야에 들어왔다. 대문의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버튼. 초인종이었다.
“얘는 왜 이름을 부른 거야?”
그냥 초인종 누르면 되는 거 아닌가?
쿤은 무의식적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걸어잠그던 걸쇠가 빠졌다.
바람에 살짝 열린 문틈을 보던 쿤은 문을 살짝 밀고 안으로 몸을 내밀었다.
“실례합니다. 사강 씨 계신가요?”
쿤은 정원을 둘러보며 또 한 번 목소리를 냈다.
발밑이 쑥 꺼진 건 그다음이었다. 갑자기 시야가 뒤집히더니 몸이 아래로 추락했다.
“우악-!”
이윽고 적잖은 충격이 몸을 강타했다.
쿤은 아픈 허리를 짚으며 끙끙거렸다.
“으… 이게 무슨… 응?”
순간 쿤의 머리 위로 커다란 물음표가 그려졌다. 새하얀 쇠창살이 시야 가득 들어찼기 때문이었다.
쿤은 설마 하는 생각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이내 이곳이 어디인지 깨달았다.
“아니, 왜 또 감옥인 건데…….”
이 와중에 웃긴 건 그래도 두 번째라고 어제만큼 당혹스럽진 않단 것이다.
“이런 거에 익숙해지면 어쩌자는 거야…….”
쿤은 이곳이 어디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내부 자체는 어제 들어갔던 판테테 감옥과 비슷했으나 환했던 그곳과 달리 여기는 어둡고 음침했다.
‘거기다 추워.’
감옥에 저밖에 없어서 그런 걸까. 서늘한 냉기가 피부를 타고 올라왔다.
‘또 탈출해야 하나.’
쿤은 철창의 입구를 찾았다. 그때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어둠 너머에서 들려왔다.
잠시 후, 한 남자가 어둠을 가르고 나타났다.
쿤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하얀 수건을 두건처럼 머리에 두른 남자는 초록색 점프슈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감옥에 이어 점프슈트까지. 정말 어제의 반복인가 싶을 때, 익살맞은 목소리가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야~ 이거 진짜 오래간만인데.”
남자는 감옥 앞에 쭈그려 앉았다. 헤라나 티아문과 비슷한 키였지만, 그 또래로는 보이지 않았다.
제 또래, 아니, 저보다 어른이었다.
“이번엔 어디서 왔냐?”
“…오즈벨 지부 판테테에서 나왔습니다.”
“뭔 개소리야. 내가 그 오즈벨 지부 판테테인데.”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였냐.
쿤은 체념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안녕하세요, 사강 씨. 어제부로 오즈벨 지부에 온 신입 판테테 쿤이라고 합니다.”
“신참이라고? 지금 발령 시기 아닌데?”
“혜성 씨가 스카우트했어요.”
쿤은 그간의 일을 차분히 설명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어제가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쐐기를 박듯 사강 역시 어제의 루와 똑같은 반응을 내보였다.
“구라치지 마. 내가 걔랑 알고 지낸 게 몇 년인데. 걔가 너같이 쥐뿔도 없는 애를 왜 뽑아.”
대체 혜성 씨는 어떤 식으로 사람을 뽑아왔던 걸까.
“진짜라니까요.”
“너 귀족이냐?”
“평민인데요.”
“그럼 부자냐?”
“아뇨.”
“그럼 어마어마한 비밀이나 엄청 희귀한 마법이라도 사용할 줄 아냐?”
“질문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는데, 저 정말 신입 맞아요. 루 씨도 알고요, 보보 씨도 알고요, 녹턴 씨도 알아요.”
“그건 오즈벨 사람이라면 다 알아.”
“전 오즈벨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네가 오즈벨 사람이면 내가 기억 못 할 리 없으니까.”
“그쵸. 애초에 제가 혜성 씨 심부름 아니면 여길 왜 오겠어요.”
“내 천재적인 작품을 훔치러 온 거겠지!”
사강이 당당하게 말했다. 콧대가 빳빳하게 선 것이 본인의 작품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미안하게도 쿤은 그의 작품에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그 작품이 뭔진 모르겠지만, 저 정말 도둑 아니에요. 세상에 초인종을 누르는 도둑이 어디 있어요. 그것도 환한 대낮에.”
“것도 그렇지.”
“뭐가 것도 그렇지예요! 조금만 생각해도 도둑이 아니라는 게 다 보이잖아!”
결국, 참다못한 쿤이 버럭 소릴 질렀다.
“정 뭐하면 혜성 씨한테 물어보세요!”
“걔 오즈벨에 없어.”
“어제 오셨어요!”
“진짜? 젠장, 이 새끼는 지가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어.”
사강이 빠드득 이를 갈았다. 지 필요할 때만 찾는다는 둥, 이래 놓고 보고는 따박따박 받는다는 둥 온갖 불만이 터져 나왔다.
사강의 주절거림이 길어질수록 쿤의 분노 역시 커졌다.
“저기요… 혜성 씨 욕을 하든 따지든 상관없으니까, 일단 문 좀 열어주실래요?”
“너 진짜 도둑 아냐?”
“아니라고!”
쿤의 버럭질에 사강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 감옥 문을 열어주었다.
어제와 달리 떳떳하게 문을 열고 나온 쿤은 가방을 뒤져 혜성이 전해주라던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때 저 멀리서 헤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강 아저씨!”
“헤라라라라?”
이쪽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헤라는 쿤을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쿤 오빠가 여기 왜 있어요?”
“초인종을 눌렀더니 감옥으로 이동했어.”
“헉. 그걸 눌렀어요? 사강 아저씨 집엔 이상한 게 많아서 아무거나 만지면 안 돼요.”
“나도 후회 중이야. 잠깐, 근데 어떻게 이동한 거지? 사강 씨 이동마법사세요?”
“미친. 지금 누구더러 마법사라는 거야.”
사강의 삼백안에 경멸의 빛이 띠었다. 과학자랑 마법사가 사이가 안 좋은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싫어할 줄이야.
용케 마법사들하고 함께 일하는구나 싶을 때 헤라가 충격적인 말을 뱉었다.
“아저씨 마법사 맞잖아요.”
“…….”
“마법도 잘만 쓰면서.”
“…….”
쿤은 사강을 지그시 쳐다봤다. 헤라의 말이 사실인지 그의 얼굴에 당황의 기색이 엿보였다.
“나, 난 마법사가 아니야! 그리고 정말 특수한 경우에만 쓰지, 평소엔 안 쓴다고!”
진짜 마법사였냐?
“애도 아니고 왜 그런 거짓말을…….”
“마법사라고 하면 인생 쉬워 보이잖아! 내 천재적인 실력은 마법에서 기인한 게 아니란 말이다… 가 아니라 나 마법사 아니니까 너도 그렇게 알아! 알겠어, 도둑?”
사강은 제가 뛰어난 건 절대 마법사여서가 아니라며 거듭 강조했다.
쿤은 울컥해졌다. 누구는 그놈의 마법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설움을 견뎠는데 있는 마법 필요 없다고 떼를 쓰다니.
제아무리 좋은 거라도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평이 내려진다는 건 알고 있지만, 간절한 사람 앞에서 저러니 정말 없던 자격지심도 생길 것 같았다.
‘진짜 가능만 하면 그 마법 내가 가져가고 싶다. 근데 왜 자꾸 도둑이라는 거야. 내가 뭘 훔쳤다고.’
쿤은 짜증을 삼키며 들고 있던 서류를 건넸다.
“혜성 씨가 전해 드리래요.”
“이게 뭔데?”
“몰라요.”
“넌 심부름 하는 애가 뭘 배달하는지도 모르냐?”
“그냥 좀 받으세요. 빨리 주고 가게.”
“뭐? 바로 가려고? 심심하지 않아서 좋았는데. 좀만 놀다 가.”
“싫어요.”
“쳇. 그럼 나도 이거 안 받아.”
사강은 서류 봉투를 다시 쿤의 손에 쥐여주었다. 쿤은 이게 대체 뭐 하는 건가 싶었다.
“안 받으시면 그냥 두고 갈 거예요.”
“다시 혜성이한테 돌려보낼 거야.”
“아씨, 그럼 어쩌라고요!”
“내가 내 새끼들 보여줄게. 훔쳐가지만 않으면 창고도 보여줄 수 있어.”
“저 도둑 아니라고 했죠.”
쿤이 짜증을 담아 항의했지만, 사강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저 제 작품을 보여줄 생각에 잔뜩 들떠 있었다.
그는 쿤과 헤라에게 따라오라며 손짓하더니 총총걸음으로 나아갔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를 보며 쿤은 또다시 헤라에게 질문을 건넸다.
“헤라야, 나 뭐 하나만 더 묻자. 원래 저래?”
“아뇨, 평소보다 얌전하신 거예요.”
“평소엔 어떤데?”
“뭘 생각하든 그 이상이세요.”
대체 어떻게 사는 거야.
“…안 가면 서류 안 받아주겠지?”
“100% 안 받아요.”
“아, 나…….”
폐 속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올라왔다.
누구는 저세상 낯가림에, 누구는 저세상 감정 기복이더니 이제는 제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이가 나왔다.
어쩜 인간들이 하나같이 저 모양인지…….
쿤은 이렇게 모으기도 힘들겠단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