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80
179화- 영원을 바란 순간 (04)
“형도 시장 구경하러 온 거야?”
바깥이어서 그런지 토야가 너 대신 형이란 호칭을 붙여가며 물어왔다.
“아니, 일. 근데…….”
쿤은 그를 위아래로 쳐다봤다.
자세히 보니 앞치마뿐 아니라 안에 입은 옷 역시 식당 유니폼처럼 생겼다.
“그 옷은 또 뭐야. 장사해?”
“아~ 닉이 가판을 열었거든. 도와달래서 같이 해주는 중.”
닉. 지난번 호수 사건 때 학교에서 보았던 남자아이였다.
그날 이후로 같이 있는 걸 본 적이 없어 단순한 급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도와주는 사이였다니.
“다행이다.”
“뭐가?”
“너한테 친구가 있어서.”
쿤의 진심 어린 안심에 토야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너, 아니, 형한테 난 어떤 이미지인 거야…….”
“개차반 이중인격자?”
“…말을 좀 가려서 할 생각은 없냐? 그리고 내가 왜 친구가 없어. 엄밀하게 따지면 그쪽도 내 친구지.”
“…우리가 친구였어?”
“…….”
토야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떡 벌어진 입부터 크게 뜨인 눈까지. 마치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쿤은 피식 웃어 보였다.
“농담이야.”
“…….”
“농담이라고.”
“지, 진짜?”
“그래. 그니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다시 한번 농담이라 못 박아주자, 그제야 토야가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참 나. 첫 만남에 험담을 퍼붓던 녀석이 친구가 아니란 말에 저리 놀라다니.
웃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조금 의아했다.
“근데 친구인지 아닌지가 그렇게 중요해?”
“중요하다기보단, 동갑 친구는 귀하니까.”
토야는 작게 중얼거리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헤라도 닉도 친구였지만, 실제론 여섯 살이나 어려서 그런지 동생 같다 여겨질 때가 많았다.
어느 때는 아예 어린애처럼 여겨지고 말이다.
그런 그에게 쿤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동갑내기 친구였다.
“어쨌든 그래서 그래.”
“의외로 섬세하구나.”
“그쪽만 할까. 근데 일한다면서 왜 여기 있어?”
“보보 씨 기다리는 중이야.”
“형 지금 아마 어딘가에 붙잡혀 있을걸. 우리 형이 거절이란 걸 잘 못 하거든.”
토야가 그리 말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쿤은 쓰게 웃어 보였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저만 해도 ‘잠깐만 놀다가’라던가, ‘이것 좀 먹고 가’라는 말을 수십 번 듣지 않았던가. 당연히 보보한테도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다음에 오겠다며 빠져나온 저와 달리 보보는 붙잡혔단 것이다.
‘단원들한테만 잡혀 사는 게 아니었구나…….’
거기다 보보는 낯도 가리는데다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아 이 상황 자체가 곤욕일 것이다.
‘구하러 가야 하나?’
쿤은 보보를 구하러 갈지, 아니면 그냥 놔두고 제 일을 할지 고민했다.
헤라의 목소리가 들린 건 그다음이었다.
“야! 손님 끌고 오라니까, 왜 여기서 농땡이 피우고 있어!”
토야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던 헤라가 쿤을 발견하곤 활짝 웃었다.
“쿤 오빠!”
“헤라, 안녕.”
“안녕하세요. 오빠도 시장 구경 온 거예요?”
“아니, 난 일하는 중.”
쿤은 헤라를 향해 작게 웃어주다, 문뜩 아이의 외투 안 옷이 토야가 입은 것과 똑같다는 걸 눈치챘다.
“헤라 너도 닉네 가판에서 일 도와주는 거야?”
“저랑 닉은 공동 사장이고, 에리나랑 티아문이 도와주는 거예요.”
“오. 열심이네.”
“당연히 열심히 해야죠. 다른 반 애들보다 많이 팔아야 덜 쪽팔리잖아요.”
“다른 반? 너희 말고 다른 애들도 가판 열었어?”
“네. 원래부터 다들 참여했어요.”
반별로, 가판을 최대 네 개까지만 빌릴 수 있다는 둥, 학생들은 가판 위치가 안 좋아서 호객 행위를 해야 한다는 둥.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에 쿤은 꽤 많은 학생이 신년 장에 참여한단 것을 알게 되었다.
“신년 장이 진짜 규모가 크긴 크구나. 이쯤 되면 장보단 축제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농담이 아니라 여기에 폭죽이랑 마법만 있으면 축제나 다름없었다.
“근데 좀 신기하다.”
쿤의 의문에 헤라와 토야가 동시에 갸웃거렸다.
“뭐가요?”
“뭐가?”
“아니, 보통 이 정도 규모면 연말부터 계속 말이 나왔어야 정상이잖아. 근데 난 신년 장이 있다는 것도 1일에 알았거든.”
본디 축제라는 건 그 단어만으로도 사람을 설레게 하는 법이었다.
로비츠만 해도 축제 일주일 전부터 영지 곳곳에 준비 흔적이 보이지 않던가.
사람들 역시 모이기만 하면 이를 떠들었고 말이다.
하지만 오즈벨 사람들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러는 건가? 괜히 기대했다가 차원문 열려서 무산되면 괜히 더 속상하잖아.”
“그런 것도 있는데, 그보단 그냥 오즈벨 특징이 그래요.”
“특징?”
“네. 오즈벨 사람들은 내일보단 눈앞의 지금을 좀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이어달리기하듯 연이어 나타나는 차원문과 날 때부터 겪어온 위기 상황.
그 많은 경험이 오즈벨 주민들에게 심어준 것은 왜 자꾸 차원문이 나타나냐는 원망이 아니라, 평화로운 지금에 충실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렇다고 오늘만 보고 사는 건 아니고요. 내일도 중요하지만, 오늘이 더 중요하다, 랄까요.”
물론 연말부터 잔뜩 들뜬 상태로 신년 장을 기다리는 이도 있었고, 설레발을 치는 이 역시 적지 않았다.
하지만 대체로 오즈벨 사람들은 지금에 최선을 다했다.
“연말에는 연말을, 연초에는 연초를 잘 맞이하는 데 집중하는 거죠. 그리고 지금은 신년 장을 즐기는 데 올인하는 거고요.”
헤라가 그리 말하며 웃었다.
쿤은 그녀가 하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답게, 놀 때조차 전력을 다했다.
“그렇구나.”
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보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 사람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보가 인파를 뚫고 이쪽을 향해 비척비척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는 쿤과 토야가 함께 있는 것에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긴 한숨과 함께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늦어서 죄송해요.”
“괜찮아요.”
“근데 왜 둘이…….”
“우연히 호객행위 하다 만났어. 그보다, 안색이 왜 그래? 사람들이 또 붙잡았어?”
토야가 보보를 쳐다보며 걱정을 표했다.
그의 가식적인 태도에 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헤라가 종종 하던 가증스럽단 표현이 공감되는 순간이었다.
“붙잡혔는데, 몰래 도망쳐 나왔어.”
“다행이네.”
토야가 제 형을 위로하듯 보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는 보보와 몇 마디를 더 주고받더니, 이만 가보겠다는 말과 함께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헤라 또한 쿤과 보보에게 인사를 남긴 뒤 그 뒤를 따랐다.
쿤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주다, 보보에게 시선을 옮겼다.
정말로 피곤한지, 루에게 시달렸을 때처럼 얼굴이 핼쑥했다.
“좀 쉬다 움직일까요?”
“그럼 잠깐만…….”
보보가 그리 말하며 분수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하하… 제가 사람이 많은 곳은 익숙하지 않아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요…….”
“그렇구나.”
“차원이동자는 어때요? 혹시 도망치거나 그럴 기미는…….”
“딱히 없어 보여요. 협조도 잘해주시고요.”
쿤은 그리 말하며 보보 옆에 앉았다. 그리고 나딘에 관한 것을 대충 요약해 전했다.
보보 역시 쿤에게 순찰하면서 있던 일이나 주의할 것들을 말해주었다.
짧은 대화가 끝나고, 자연스러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조용한 두 사람과 달리 주변은 흥이 넘쳤다.
사람들 말소리, 웃음소리, 음악 소리.
쿤은 가만히 사람들을 쳐다봤다.
정말로 즐겁다는 듯 신년 장을 만끽하는 사람들을 보니, 불현듯 감옥에 갇혀 있는 나딘이 생각났다.
‘기분이 좀 그러네…….’
쿤은 보보와 5분 정도 더 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받은 짐을 마차에 실어 숙소로 보낸 후, 보보와 함께 영지를 순찰했다.
* * *
1월 4일, 아침. 신년 축제의 개막식이 열렸다.
한겨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화사한 풍경이 펼쳐졌다.
겨울 꽃과 따스한 빛깔의 조명이 왕도 곳곳에 장식되어 있었고, 전 지역에서 올라온 상인들로 인해 다양한 가판이 상점 거리를 채웠다.
그리고 개막식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화려한 행렬이 왕도 거리를 지나 광장으로 향했다.
거대한 조형, 웅장한 악단,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무희, 거기에 마법사들의 온갖 마법까지.
동화 속 세계처럼 환상적인 행렬에 사람들이 연신 감탄과 웃음을 터트렸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화려한 거 같다.”
무재의 말에 혜성과 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들은 청사 테라스에서 행렬을 구경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광장에 모여 행렬이 도착하기를 기다려야 했으나, 올해는 바뀐 신년 파티 일정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구역별로 대표 한 지부만 가고 나머지는 청사 2층에 있게 되었다.
혜성은 테라스 밖의 행렬을 보다, 시선을 제 손목시계로 내렸다.
은이 차원문을 탄 지 약 71시간. 이제 한 시간만 더 있으면 돌아온다.
기실 온다 해도 바로 오즈벨 지부로 복귀하는 건 아니었다.
보고니 정리니 하다 보면 최소 이틀은 잡아먹었고, 상황에 따라선 일주일 넘게 집무실에 처박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어딘지도 모르는 세계보단 훨씬 나았다. 다칠 일도 없었고 말이다.
혜성은 다시금 시간을 확인한 뒤, 바깥을 쳐다봤다. 행렬만 끝나면 일어나도 되는데, 좀처럼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그는 손가락을 까딱이며, 빨리 시간이 지나길 바랐다.
그때 단이 말을 걸었다.
“무슨 약속이라도 있나 보지?”
그의 목소리에 혜성은 물론, 무재와 술병이 난 단장을 대신 해 참석한 소소리의 고개가 단 쪽으로 향했다.
단은 느긋하게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자꾸 시계를 봐서 말이야.”
여느 때처럼 평범한 어투였으나, 그 속에 숨은 묘한 날카로움을 눈치채지 못할 혜성이 아니었다.
그는 피식 웃어 보였다.
“은이가 돌아올 시간이 됐거든.”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은이 역차원문을 탔다는 건 판테테 단장들이라면 다 아는 정보였다.
그 외 사람들도 은이 지금 일이 있어 혜성의 곁에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행렬이 끝나야 그 얼굴을 보러 갈 텐데 말이야.”
혜성은 노골적으로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때, 행렬의 마지막 자리를 상징하는 거대한 마차와 왕가의 문양이 박힌 깃발 두 개가 보였다.
혜성은 그것이 청사 앞을 지나 길목으로 사라지길 기다리다, 모퉁이를 빠져나가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일을 부탁하지.”
혜성은 곧장 건물을 빠져나왔다.
지금 큰길은 행렬과 축제를 즐기는 인파로 가득했기에, 그는 사람들이 없는 뒷길을 통해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왕도 내에서 제일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가자, 곧장 사람이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그새 셋이 더 늘었군.’
혜성은 암살자들의 기척을 잡으며, 아주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은이 사라지고 71시간 동안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행동을 해야 할 때였다.
혜성은 마치 녀석들이 움직이길 바라는 것처럼 점점 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왕도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낙후된 골목에 들어간 순간이었다.
날카로운 화살이 혜성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