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82
181화- 영원을 바란 순간 (06)
“루!!”
부용의 외마디 비명이 정원을 울렸다.
나딘은 곧장 창을 회수했다.
박혔던 창이 뽑히는 것과 동시에 루의 가슴팍에서 붉은 피가 쏟아졌다.
“윽……!”
루의 몸이 앞으로 허물어졌다.
가까스로 심장은 피했지만, 상처의 위치가 좋지 않았다.
루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무거운 돌이 몸을 짓누른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피가 쉼 없이 흘러내렸고, 시야가 점점 흐릿해졌다.
그녀의 상태를 보여주듯 정원을 둘러싼 결계 역시 약해졌다.
부용은 검을 꺼낸 뒤 루의 앞을 지켜 섰다.
잔뜩 굳은 얼굴에서 당장에라도 노인을 공격하겠단 각오가 엿보였다.
그러나 나딘은 이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가 제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그가 경계한 건 루밖에 없었다.
나태한 것 같으면서도 끝까지 의심을 풀지 않는 것 하며, 제가 깨트릴 수 없는 결계를 손쉽게 만들고 유지하는 것까지…….
그가 쿤이 가는 걸 아쉬워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쪽이 좀 더 허술한데다 틈을 만들기 쉬워 보였으니 말이다.
왜 갑자기 루의 경계가 느슨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나딘은 지긋지긋한 감옥을 나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노인은 수첩을 넘기며 글자들을 늑대로 변형시켰다. 순식간에 새카만 늑대 수백 마리가 정원을 가득 메웠다.
여태껏 쿤과 루는 나딘이 리란티아에서 알게 된 정보를 기록한다 생각했으나, 사실 노인이 적었던 건 수많은 주술의 술식이었다. 혹여라도 의심받을까 싶어, 내내 다른 걸 적는 척한 거였다.
“아, 맞다. 제게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 있냐고 하셨지요.”
나딘은 제 목에 걸린 호리병 목걸이를 꺼냈다.
위와 아래를 동시에 누르자 호리병이 한 뼘만 한 크기가 되었다.
부용은 그제야 그것이 호리병이 아니었음을 눈치챘다.
“…모래시계?”
그래. 내용물이 텅 빈 모래시계였다.
“이렇게 했습니다.”
나딘이 그리 말하며 위쪽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부용 쪽을 향해 겨냥했다.
부용은 뭐가 나타나도 반응할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쳤다.
그때였다. 갑자기 세상이 검게 변했다.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 마치 은의 그림자 속에 들어온 것처럼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용이 맥없이 쓰러졌다.
마치 죽은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부용을 보며, 루는 제 가슴을 관통당했을 때보다 더한 공포를 느꼈다.
“부용아……?”
루가 떨리는 목소리로 부용을 불렀다.
순간 부용의 목에 이상한 문신이 번지는 게 보였다.
“너… 대체 무슨 짓을…….”
“부용 아가씨의 시간을 받아간 것뿐입니다.”
“…뭐?”
나딘이 루를 향해 모래시계를 들어 보였다. 분명 안이 텅 비어 있었는데, 지금은 시계 윗부분에 검은 무언가가 조금 채워져 있었다.
“아가씨의 시간이 깨끗하게 정화돼 아래로 내려가면, 그때부터는 제 시간이 된답니다.”
“그럼 설마…….”
“맞습니다. 여태 이렇게 시간을 늘려왔습니다.”
지금은 비가 내리지 않는 성역에서 살고 있지만, 본디 나딘은 성역 밖 출신이라 날 때부터 독 비에 노출되어 있었다.
때문에 그는 그의 친구들이 그렇듯 병에 걸려 스물을 넘기지 못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왕궁 서고에서 찾은 고서 하나가 그의 인생을 바꿔주었다. 다른 이들의 시간을 빼앗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그렇게 그는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 살아왔다.
“저희 세계엔 건강한 사람이 적어 많은 시간을 취할 수 없었지만, 여기는 다를 것 같군요.”
부용에게 얻은 시간만 해도 본래 세계 사람의 몇 배를 뛰어넘었다.
만일 오즈벨에 있는 모든 이의 시간을 취해 돌아간다면 나딘은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저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는 게 아가씨들의 일이라 하셨지요.”
나딘은 루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간 지었던 인자한 미소가 아닌 기괴하게 뒤틀린 미소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제 세계로 돌아갈 겁니다.”
이곳의 모든 시간을 취한 후에.
나딘은 그리 말하며 루를 향해 모래시계를 겨냥했다.
잠시 후 루의 목 위로 검은 문신이 생겼다.
이윽고 결계가 깨지며 선선한 바람이 정원에 불어왔다.
수백 마리의 늑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 * *
치워도 치워도 끝없이 쌓이는 눈을 보며, 쿤은 처음으로 지겹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여기 와서 본 눈이, 평생 봐왔던 눈보다 많은 거 같아요.”
쿤이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에 묻은 눈을 털었다.
“뭔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 걸까요.”
“나도 눈은 별로 좋아하지 않네만, 그래도 이렇게 다 같이 치우는 건 좋은 거 같군.”
천호가 그리 말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건곤이와 오동촌 주민들이 열심히 힘을 합쳐 눈을 치우고 있었다.
그가 내내 수련해 왔던 산에도 오동촌처럼 눈이 많이 내렸다. 하지만 혼자였던 그때와 달리 함께 치울 사람이 있어서일까. 전처럼 고독하거나 지겹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 걸 보면 세상 모든 건 다 상대적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오늘 반송 차원문이 열린다지 않았나?”
“네, 자정에 열려요.”
“차원이동자를 돌려보내면 조금 한가해지겠군.”
쿤이 작게 웃었다.
녹턴의 마법이 돌아온 게 아니라 한가해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여유는 조금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얼른 치우고, 나딘님 배웅하러 가야겠어요.”
쿤은 다시 기운을 차리고 눈을 퍼냈다.
그때, 통신기가 울렸다.
“네-”
[너 어디야!]통신을 받기 무섭게 사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쿤은 저도 모르게 바싹 긴장했다. 사강이 이런 식으로 통신한 적이 손에 꼽기 때문이었다.
“저 지금 오동촌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지금 당장……!]순간 짐승 특유의 울음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전해졌다. 그리고 그대로 통신이 끊겼다.
“…사강 씨? 사강 씨!”
쿤은 다시 사강에게 통신을 걸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도령, 무슨 일인가?”
“아무래도 밖에 무슨 일이 생긴 거 같아요. 도사님, 여기 좀 부탁할게요.”
쿤은 삽을 천호에게 넘긴 뒤, 땅을 박찼다. 그리고 그 뒤를 건 곤이가 따랐다.
그는 오동촌을 빠져나가는 내내 단원들에게 통신을 걸었다. 그러나 사강은 물론 루와 부용, 보보 역시 통신을 받지 않았다.
“왜 아무도 안 받는 거야!”
초조함에 짜증이 치밀었다.
어째서 연락이 안 되는 걸까. 설마 위험한 차원문이라도 열린 건가? 그래서 지금 밖에 문제라도 생긴 걸까?
쿤은 이를 꽉 깨물며 숲을 내달렸다.
그리고 그렇게 거리에 들어선 순간, 쿤은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숨을 내쉬는 것도 잊을 만큼 강한 충격이 그를 덮쳤다.
“…이게 뭐야?”
쿤은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마치 태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거리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가게의 특징을 나타내는 가판은 다 무너졌고, 어둠을 밝히는 등과 가로수가 꺾였으며, 신년을 맞아 걸어둔 장식은 그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거리에 쓰러져 있었다.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렇게 굳어 있던 것도 잠시, 쿤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에게 달려갔다. 그가 종종 가는 식료품 점의 사장이었다.
“사장님, 사장님.”
쿤은 그를 부르며 흔들었다. 그러나 남자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질 뿐,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만일 미약하게 들리는 숨소리가 아니었다면 죽었다 해도 믿을 정도였다.
깨어나지 못하는 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쿤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기 위해 두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순간 그의 눈에 이상한 게 들어왔다.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사람들 목에 이상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특이한 것은 문신의 크기가 상처와 반비례한다는 거였다.
이게 사람들이 못 깨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쿤은 다시금 문신을 살폈다.
토야의 목소리가 들린 건 그다음이었다.
“쿤!”
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티아문의 모습을 한 토야가 이쪽을 향해 뛰어 오는 게 보였다.
“토야!”
드디어 움직이는 사람을 봤다는 것도 잠시, 쿤의 시선이 토야의 등으로 향했다. 마치 큰 부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축 늘어진 보보가 토야의 등에 업혀 있었다.
“큰일 났어, 형이……!”
토야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할 때였다. 골목에서 검은 늑대 두 마리가 나타나더니, 토야를 향해 달려들었다.
쿤은 곧장 검을 뽑아 든 뒤, 땅을 박찼다.
“토야, 움직이지 마!”
그는 늑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은백색의 검날이 순식간에 머리를 베었다.
커다란 머리가 잘려 나가는 것과 함께 검은 피가 사방에 튀었다.
고약한 향에 미간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쿤은 몸을 돌려 남은 한 마리의 앞발을 베어냈다. 그리고 녀석이 고꾸라지자 그대로 검을 세워 목을 찔렀다.
늑대는 한참을 바르작거리다 축 늘어졌다. 이내 거대한 몸체가 진흙처럼 녹아내렸다.
“하아…….”
쿤은 크게 숨을 고르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바닥에 두 덩이의 검은 물이 고여 있었다.
새로 넘어온 차원이동자인가?
의아함도 잠시, 쿤은 상황을 깨닫고 토야를 찾았다.
보보를 업은 채로 바싹 얼어 있는 녀석이 보였다.
“괜찮아?”
“응… 괜찮…….”
거기까지 말하던 토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쿤, 뒤!”
쿤은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두 덩이의 검은 물이 합쳐지는 게 보였다.
고약한 향을 풍기는 액체는 마치 들끓는 물처럼 기포를 일더니, 거대한 늑대가 되어 쿤 앞에 섰다.
“젠장.”
쿤은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그때 건이가 달려와 늑대의 목을 물어뜯었다.
“건아!”
마치 고기를 뜯어 먹는 것처럼, 건이가 늑대의 살점을 잡아 뜯었다.
그리고 지난번, 하얀 안개 때처럼 상대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쿤이 건이를 보며 저걸 먹게 두어도 괜찮은 걸까 걱정하는 사이, 곤이가 토야를 이쪽으로 데려왔다.
쿤은 빠르게 토야를 살핀 후, 보보의 상태를 확인했다.
마치 십수 마리의 늑대에게 당한 것처럼, 온몸에 할퀸 상처가 가득했다.
가장 심한 건 오른쪽 옆구리였다. 마치 늑대에게 물어뜯긴 것처럼 이빨 자국과 함께 찢겨 나간 살점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목에도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상한 문신이 남아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 문신은 또 뭐고.”
“갑자기 늑대 수백 마리가 광장을 습격했어. 그래서 다들 이렇게 쓰러진 거고.”
“그럼 이 문신도 늑대 때문에 생긴 거야?”
“아니, 그건 웬 노인네가 만든 거야.”
“노인네……?”
“산양 뿔을 단 노인네가 모래시계처럼 생긴 걸 열었는데, 갑자기 다들 목에 문신이 생겼어.”
산양 뿔을 단 노인.
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때였다.
“여기 계셨군요. 계속 찾고 있었습니다.”
낮고, 마른 목소리. 다름 아닌 나딘이었다.
쿤은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나딘이 예닐곱 마리의 늑대와 함께 이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