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83
182화- 영원을 바란 순간 (07)
서늘하고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쿤의 질문에 나딘이 웃어 보였다. 감옥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온화한 미소였다.
만일 제 주변에 쓰러진 이들이 없었다면, 여전히 그를 인자한 노인으로 여겼을 것이다.
차원이동자를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앙상한 노인이라는 것과 반듯한 품행에 경계를 풀고 말았다.
이렇게 위험한 차원이동자인 줄 알았다면, 루에게 하늘을 보여줘도 괜찮지 않냐는 말 따위 안 했는데.
쿤은 치솟는 분노를 억누르며 노인의 답을 기다렸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도련님께서 약속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저를 배웅해 주기로요.”
“하…….”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해놓고, 제 배웅을 바랐다니.
그의 성품을 높이 사고, 안쓰럽게 여겼던 과거의 자신을 두들겨 패고 싶었다.
“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이신 겁니까?”
“질문이 이상하군요. 제가 위험하다 판단돼 저를 감옥에 가둔 게 아니었습니까?”
노인이 다소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능청스럽게 구는 그를 보며 쿤이 빠드득 이를 갈았다.
“헛소리 말고, 목적이나 말해.”
낮게 깔린 목소리 사이로 분노가 엿보였다.
실로 쿤과 루, 그리고 부용이 그를 완벽하게 안전하다 판단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셋은 결코 그를 죄인으로 대하지 않았다.
감옥에 모실 수밖에 없던 이유 역시 몇 번이나 설명하고 사과했다.
그럼에도 나딘이 저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저를 조롱하는 거였다.
‘젠장.’
감정적으로 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욕이 혓바닥 위를 날뛰었다.
쿤은 가까스로 감정과 욕을 삼켰다.
그때 토야가 바싹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쿤, 저 노인네 목에 걸린 게 내가 말한 모래시계야. 저걸로 사람들을 겨냥하니까, 다들 픽픽 쓰러졌어.”
쿤의 시선이 나딘의 가슴께로 향했다. 그의 목에 검은 모래가 가득 찬 모래시계가 걸려 있었다. 제가 호리병이라 생각했던 그것이었다.
쿤이 모래시계를 뚫어지라 쳐다보자, 나딘이 이를 들어 보였다.
“아, 도련님은 이게 뭔지 모르겠군요.”
그는 마치 쿤을 약 올리듯 모래시계를 살짝 흔들었다.
“바로 제가 취한 시간입니다.”
“…시간?”
“예.”
그가 두 팔을 펼치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시간이지요.”
“…….”
쿤은 저도 모르게 주변을 훑어봤다.
설마 이 많은 사람이 다 나딘에게 시간을 빼앗긴 거야?
“그럼 문신은…….”
“제게 시간을 빼앗긴 자들의 흔적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하루가 지나면 다 사라질 테니까요.”
나딘이 그리 말하며 교활하게 웃었다.
쿤은 어쩐지 그가 말하는 ‘사라진다’는 표현이 ‘문신’이 아니라 ‘시간’을 뜻하는 걸로 들렸다.
그리고 이 추측이 맞다는 걸 증명해 주듯 나딘이 모래시계 아래쪽을 가리켰다.
“시간이 정화되어 제 것이 되는 순간 말이죠.”
쿤의 시선이 모래시계 아랫부분으로 향했다. 워낙 양이 적어 눈치채지 못했는데, 새하얀 모래가 바닥에 살짝 깔려 있었다.
그제야 쿤은 나딘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의 시간을 가져가는지 알 것 같았다.
빼앗은 시간이 모래시계를 타고 내려가 정화되면 그의 것이 되는 것이다.
쿤은 다시금 이를 꽉 깨물며 욕을 참았다.
반면, 뒤에 있던 토야는 버럭 소릴 질렀다.
“이 개새끼가! 당장 우리 형 시간 내놔!”
토야는 당장에라도 나딘에게 달려들 것처럼 굴다, 쿤의 저지에 멈춰 섰다.
“뭐야!”
“침착해. 여기서 흥분하면 지는 거야.”
그래. 침착해야 했다. 감정적으로 움직이기엔 잃는 게 너무 많았다.
쿤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이계어를 사용했다.
『원래 세계에서도 시간을 빼앗아 온 겁니까?』
쿤의 질문에 건이랑 곤이가 그를 쳐다봤다.
말을 알아듣는 두 북청 사자와 달리 나딘이 이맛살을 살짝 찌푸려졌다.
쿤은 그 표정에서 노인이 이계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확신했다.
『건아, 너 저 늑대 먹어도 괜찮은 거야?』
쿤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늑대를 먹은 건이뿐 아니라 곤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천호의 말론 북청 사자는 몸 안이 거대한 공간이라 뭘 먹어도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했다.
때문에 그들에게 식사는 양분섭취가 아닌 놀이 정도에 가까웠다.
거기다 건이와 곤이는 지난번에 하얀 안개를 먹고도 아무 탈도 나지 않았다.
‘그럼 이번도 괜찮을 확률이 높아.’
상대는 베어도 다시 재생하는 검은 늑대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건이와 곤이가 탈이 날 확률보다, 조금이라도 상대를 무력화시키고 이길 수 있는 쪽에 도박을 걸어야 했다.
『건이는 아빠 좀 도와줘. 곤이 넌 토야랑 보보 씨를 지켜주고.』
두 아이가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쿤은 이계어로 몇 가지 지시를 한 뒤, 토야에게 말했다.
“넌 여기 가만있어. 그냥 곤이가 하자는 대로 하면 돼.”
다른 곳에 늑대가 더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 차라리 시야 안에 있는 게 더 낫다.
“알겠어.”
쿤은 토야의 대답에 살짝 고갯짓한 뒤, 나딘을 응시했다. 그리고 불시에 땅을 박찼다.
그가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일곱 마리의 늑대가 쿤 쪽으로 달려들었다.
건이는 빠르게 달려가 가장 앞선 한 마리를 후려친 뒤, 두 앞발로 옆쪽에서 달려드는 검은 늑대 두 마리의 머리를 짓눌렀다.
그사이 쿤은 반대쪽 늑대 세 마리를 차례로 베곤 단숨에 나딘과 거리를 좁혔다.
쿤의 목표는 단 하나, 모래시계를 빼앗는 것.
그는 검을 휘둘러 모래시계의 목줄을 잘라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나딘이 수첩을 펼치는 게 빨랐다.
종이 가득 적힌 글자가 순식간에 검은 창과 늑대가 되어 쿤을 공격했다.
“젠장! 이건 또 뭐야!”
쿤은 몸을 굴려 이를 피한 뒤, 달려드는 창과 늑대를 베어냈다.
나딘은 계속 수첩의 글자를 이용해 방해물을 만들어냈다.
아무 글자나 변형시킬 수 있는 건가?
어쩌면 처음부터 우릴 속이고 준비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답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딘의 공격 때문에 쿤은 좀처럼 그와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공격 자체만 보자면 어떻게든 처리 가능한 수준이었다.
창 역시 은의 그림자처럼 자유자재로 변형하거나 움직이는 건 아니었고 말이다.
하지만 늑대고 창이고 속도가 워낙 빠른데다, 나딘이 계속 만들어내는 바람에 상대하기가 벅찼다.
늑대의 경우는 다시 재생해 쿤과 건이를 괴롭혔다.
‘어쩔 수 없다. 좀 다치더라도 그냥 파고들자.’
쿤은 옆과 뒤는 건이한테 맡긴 뒤,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때, 뒤에 있던 토야가 소리쳤다.
“쿤! 늑대한테 물리면 바로 기절하니까 조심해!”
뭐라고?
“이런-!”
쿤은 재빨리 몸을 물렸다. 뒤이어 곧장 건이가 날아와 늑대의 목을 잡고 물어뜯었다.
그대로 내팽개치진 늑대가 바닥에 처박히더니 질퍽한 액체가 되었다.
쿤은 고약한 향에 이맛살을 찌푸리며 버럭 소릴 질렀다.
“그런 게 있었으면 바로 말해줬어야지!”
“미안!”
“주의할 거 또 있어?”
“모래시계 주둥이 조심해!”
토야가 연신 소리치며 경고해서 그런 걸까.
“이런, 뒤가 너무 시끄럽군요.”
나딘이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갓 재생한 늑대 네 마리가 토야를 향해 달려들었다.
곤이는 그대로 토야와 보보를 제 등에 둘러업은 채 자릴 피했다. 그리고 건물의 벽을 등진 뒤, 늑대들을 상대했다.
쿤은 토야와 보보는 곤이한테 맡긴 뒤, 늑대들을 쳐다봤다.
‘늑대한테 물리면 기절한다 이거지?’
나딘이 어떻게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 많은 이의 시간을 빼앗을 수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동시에 그가 왜 이런 방법을 쓰는지 얼추 짐작 갔다.
‘움직이는 사람들을 일일이 노리는 건 힘드니까, 먼저 기절시키고 시간을 빼앗는 거야.’
토야의 겨냥한다는 표현, 조심하라는 모래시계 입구, 그리고 늑대들의 능력.
제 추측이 맞다면 나딘은 광범위한 대상을 상대로 시간을 빼앗지 못한다.
만일 그게 가능했다면 늑대들에게 이런 능력을 주기보단, 사람들을 한 곳에 몰거나 에워싸기 좋은 능력을 줬을 것이다.
그 편이 더 빠르고 덜 번잡스러웠으니 말이다.
‘즉, 모래시계 입구랑 늑대 이빨만 잘 피하면 시간을 지키는 게 가능하단 거네.’
주의할 게 정해지자 쿤의 움직임 역시 좀 더 효율적으로 바뀌었다.
나딘은 예상과 다르게 풀리는 전투에 미간을 좁혔다.
머릿속에선 늑대들을 이용해 쿤을 농락하는 걸 그렸는데, 현실은 훨씬 더 능숙하게 저를 상대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쿤은 루나 부용처럼 기습을 당한 것도 아니고, 지켜야 할 사람 역시 토야뿐이었다.
거기다 건이랑 곤이라는 훌륭한 한 편도 있었으니, 다른 판테테보다 움직임이 훨씬 더 자유로웠다.
노인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좀 더 놀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요.”
그가 수첩 한쪽을 펼쳤다. 순간 글자가 한데 모이더니 기존 것보다 세 배나 더 큰 거대 늑대가 만들어졌다.
녀석은 한쪽 앞발에 힘을 주더니 곧장 쿤에게 달려들었다. 다른 늑대들과는 비교도 안 될 속도였다.
쿤은 옆으로 굴러 늑대의 이빨을 피한 뒤,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채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늑대가 다가와 육중한 앞발로 그를 후려쳤다.
“윽!”
“쿤!”
『%$-!!』
토야와 곤이의 외침이 거리를 울렸다.
건이는 바로 거대 늑대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대 늑대의 속도를 뛰어넘은 건이는 그 큰 몸에 제 머리를 힘껏 부딪쳤다.
어린 신수의 공격에 늑대의 몸이 튕겨 나가 벽에 부딪혔다.
쿠웅-!
벽이 무너지며 잔해가 늑대 위로 떨어졌다.
건이는 쓰러진 거대 늑대에게 다가가 그대로 목을 잡아 뜯었다. 그리고 검은 살점을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
전투를 시작하기 직전 쿤은 건이와 곤이에게 제가 신호를 줄 때까지 늑대를 먹지 말라 일러두었다.
나딘이 건이가 늑대를 먹는 걸 봤는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만일 모른다면 틈을 만들 비장의 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건이는 지금 그 말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쿤을 공격한 늑대를 죽일 생각만 가득했다.
제 몸집보다 거대한 늑대를 잡아먹는 건이를 보며, 나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내 주술을 먹었어?”
워낙 특이하게 생긴 생명체라 제 늑대처럼 별도의 힘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설마 그게 제 주술을 먹는 걸 줄이야…….
‘골치 아파졌군. 하지만 이건 내게도 기회다.’
지금 건이는 늑대를 먹는데 정신이 팔려 발이 한 곳에 묶여 있었다.
노인은 모래시계 뚜껑을 열고 바로 건이를 향해 겨냥했다.
그 순간, 바로 쿤이 나타났다.
건이가 만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느새 나딘의 바로 옆까지 온 쿤은 노인이 방심한 찰나의 틈을 노려 팔을 쳐냈다.
툭,
노인의 손에 힘이 풀리더니 모래시계가 아래로 떨어졌다.
쿤은 곧장 이를 낚아챘다. 그리고 나딘의 배를 걷어차 저 멀리 날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