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84
183화- 영원을 바란 순간 (08)
“하아…….”
쿤은 가쁜 숨과 욱신거리는 통증을 무시한 뒤, 모래시계를 살폈다.
시계를 빼앗은 것까지는 좋은데 어떻게 해야 모두의 시간을 돌려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쏟으면 되나?”
쿤의 혼잣말에 나딘이 숨을 들이켰다.
크게 뜨인 눈과 명백한 동요.
노인은 뒤늦게 제 실수를 깨닫고 아차 했으나, 그러기엔 이미 늦은 후였다.
쿤은 곧장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작은 입구에서 검은 모래가 조금씩 바닥으로 쏟아졌다.
“안 돼!”
나딘이 소리치며 수첩을 넘겼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거대 늑대 네 마리가 쿤을 에워쌌다.
“무슨……!”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늑대들이 달려들어 쿤을 공격했다.
“으악!”
그의 몸이 날아가 딱딱한 바닥에 추락했다. 낙법을 취하지 못할 만큼 강한 충격이 온몸을 덮쳤다.
“윽…….”
쿤은 간신히 몸을 세웠다. 두 팔이 후들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사이 나딘이 쿤이 떨어트린 모래시계를 챙겼다.
그는 서둘러 쏟아진 모래, 아니, 시간을 살폈다.
마치 바닥에 스며든 물처럼 시간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눈에 젖은 땅만이 남아 있었다.
“젠장! 감히, 내 시간을……!!”
사라진 시간은 티도 나지 않을 만큼 아주 조금이었으나, 나딘은 전부를 잃어버린 사람마냥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트렸다.
그는 빠드득 이를 갈며 쿤을 노려봤다.
툭 불거진 혈관과 치켜뜬 두 눈. 핏줄이 잔뜩 선 흰자에 드러낸 이까지.
집착과 분노에 얼룩진 노인의 얼굴은 흡사 한 마리의 야차를 보는 것 같았다.
그는 그대로 모래시계 입구를 겨냥했다.
쿤은 이를 꽉 깨물었다. 피해야 하는데 좀처럼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젠장.’
이대로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억센 힘이 쿤을 잡아당겼다. 곤이가 순식간에 달려와 쿤을 낚아챈 것이다.
“곤아!”
곤이는 등에 보보와 토야를 태운 상태 그대로 쿤의 재킷을 물고 건물 위로 뛰어올랐다.
그사이 식사를 마친 건이 나딘과 마주했다.
네 마리의 거대 늑대 역시 나딘을 지키듯 막아섰다.
“다 죽여 버리겠어.”
노인은 종이를 찢어 앞으로 던졌다. 그러자 늑대들이 펄럭이는 종이를 집어삼켰다.
순간 검은 몸체가 서서히 하얘지기 시작했다.
한층 더 커지는 몸과 이마에 돋는 산양 뿔.
새하얀 몸 중, 유일하게 검은 눈동자가 쿤을 노려봤다.
이채가 감도는 눈에 쿤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오싹한 피부가 살기를 찔렀다.
이건 위험하다.
머릿속에서 경고가 울렸다.
이 와중에 거리 곳곳에 흩뿌려진 잉크에서 검은 늑대들이 하나둘 재생하기 시작했다.
쿤은 제 판단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건이랑 곤이한테 늑대를 먹게 해서 그 수를 줄여놨어야 했다.
저희가 한 수를 숨겨두었던 것처럼 나딘 역시 숨겨둔 수가 있을 텐데, 한심하게도 이 간단한 걸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모래시계를 빼앗았을 때 좀 더 주의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어쩌지?’
쿤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나 좀처럼 마땅한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나딘이 입을 틀어막곤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노인은 한참이나 쿨럭거리더니, 간신히 잦아든 기침에 겨우 손을 뗐다. 손바닥 가득 붉은 피가 묻어났다.
“젠장… 하필 이럴 때…….”
나딘이 작게 중얼거렸다.
척 봐도 처음이 아닌 듯한 투에, 쿤은 저도 모르게 표정을 굳혔다.
‘아프다고?’
노인이 피를 토하는 건 둘째치고, 본질적인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마 계속 몸이 아팠던 거야?’
만일 나딘의 건강 상태가 심각하다면, 시간에 저리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갔다.
문제는 왜 저런 몸으로 돌아다녔냐는 것이다.
나딘이 각혈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늑대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어쩌면 그의 주술도 마법처럼 정신이나 건강에 영향을 받는 걸지도 모른다.
역으로 말하면 몸 상태가 나빠질 땐, 마음껏 주술을 쓸 수 없단 소리였다.
만일 제가 나딘이었다면 안전한 곳에 숨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늑대가 모두를 기절시킨 걸 확인한 후, 시간을 빼앗았을 테지.
뭐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낯선 세계인데, 뭘 믿고 아픈 몸으로 돌아다닌단 말인가.
심지어 시간은 빼앗는 순간 바로 정화되는 게 아니었다.
처음 봤을 때와 별 차이 없는 하얀 모래의 양이나, 하루 뒤면 문신이 사라질 거라는 노인의 말이 그 증거였다.
‘시간을 빼앗은 후에도 숨어서 정화되길 기다리는 게 가장 안전해.’
내내 정체를 숨길 만큼 신중한 이가 이걸 모를 리 없다.
‘그렇다는 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돌아다녀야 할 이유가 있단 건데…….’
나딘의 성격상 어지간한 일로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대체 뭘까…….’
바로 움직여야 할 만큼 급한 일.
어쩌면 그의 계획에서 시간을 빼앗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
쿤은 계속 고민했다.
그때 어떤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반송 차원문 위치를 찾는 건가?’
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여태 차원이동자들은 반송 차원문을 타지 않으려고 도망쳤다.
하지만 나딘은 그 반대였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에게 있어 가장 확실한 시간 강탈법은 모두가 절대 쫓아오지 못하는 원래 세계로 도망치는 거였으니까.
문제는 나딘이 반송 차원문의 위치를 모른단 거였다.
대부분의 차원이동자가 그랬듯 그 역시 기절한 채로 넘어왔다.
하지만 그는 반송 차원문이 72시간 후에 나타나고, 이걸 놓치면 영영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움직인 것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반송 차원문 위치를 찾기 위해.
‘대체 무엇으로 거길 찾으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돌아가려는 거라면…….’
쿤은 저도 모르게 제 시계를 살폈다.
현재 시각 5시 30분. 반송 차원문이 나타나기까지 여섯 시간 반이 남은 상황이었다.
‘더 최악이잖아…….’
어떻게서든 이 안에 나딘을 처리하고 모두의 시간을 되찾아야 했다.
쿤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최대한 머리를 굴려 상황을 생각했다.
‘나 혼자선 안 돼. 도움이 필요해…….’
나딘이 몸을 뒤로 물린 건 그다음이었다. 그는 두어 번 더 기침하더니 긴 숨을 내쉬었다.
“이거, 잠깐 쉬어야겠군요.”
“뭐? 누구 멋대로……!”
“조금 이따 뵙죠.”
나딘은 수첩의 맨 앞장을 편 뒤, 또 한 번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자 검은 잉크가 나와 그와 늑대들을 감쌌다.
쿤은 그런 나딘을 붙잡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하지만 그보다 나딘과 그의 늑대 무리가 사라지는 게 좀 더 빨랐다.
순식간에 텅 빈 거리를 보며 쿤은 황망함을 감출 수 없었다.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든 빨리 그를 처리해야 하는데, 그만 놓치고 말았다.
“젠장. 건아, 곤아 너희 저 인간 추적할 수 있겠어?”
건이와 곤이가 동시에 코를 킁킁거렸다.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딘을 찾을 수 없는지 얼마 안 돼 고개를 가로저었다.
“냄새든 기든 뭐든 좋아. 어떻게 안 될까?”
쿤의 질문에 건이랑 곤이가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음 같아선 쿤을 도와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어떡하지…….”
쿤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 토야가 소리쳤다.
“쿤! 형 문신 사라졌어!”
“뭐?!”
쿤은 곧장 보보에게 다가갔다. 정말로 그의 목에 있던 문신이 사라졌다.
‘왜 갑자기… 설마 시간이 정화된 건가?’
쿤은 서둘러 보보를 살폈다.
다행히도 죽은 건 아닌지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그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람 중 두 명이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쿤은 서둘러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들 역시 보보처럼 목에 있던 문신이 사라졌다.
그제야 쿤은 그들의 시간이 돌아왔단 걸 알 수 있었다.
“시간이 돌아와도 문신이 사라지는구나…….”
그는 토야와 함께 다른 사람들의 목도 살폈다.
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 중 반절 이상이 목에 있던 문신이 사라져 있었다.
“토야, 여기 사람들이랑 보보 씨랑 시간 같이 빼앗겼어?”
“정확히는 몰라. 근데 아마 아닐 거야. 형은 광장에서 이렇게 된 거거든. 거기 늑대가 하도 꼬여서 내가 형만 둘러업고 도망친 거야.”
늑대는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었지만, 보보는 제일 앞에서 적을 상대한 이였다.
추가 보복이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토야는 곧장 제 형을 챙겨 자릴 벗어났다.
“여기서 쭉 가면 광장이니까, 이미 늑대들하고 미친 노인네가 쓸고 광장으로 간 거 아닐까.”
“…그렇다면 시간이 되돌아가는 건 가까운 순부터라는 거네.”
쿤은 거기까지 생각하다 문뜩 든 생각에 고갤 들었다.
“근데 넌 왜 이쪽으로 온 거야?”
“숙소 가는 길이었어. 거기라면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 않을까 했거든.”
토야는 보보에게 루와 쿤이 차원이동자를 돌본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그 특징까지는 자세히 듣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나딘이 새로 넘어 온 차원이동자라 생각했고, 숙소에 가면 쿤과 루를 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근데 넌 왜 혼자 있어. 루 누나는 어디 있고?”
“아, 맞다! 루 씨!”
쿤은 다시금 통신을 연결했다. 하지만 여전히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미치겠네.”
“연락 안 돼?”
“어.”
나딘과 함께 있던 루와 부용에게서 연락이 안 되니 미칠 노릇이었다.
“일단…….”
두 사람을 찾아 숙소부터 가려던 쿤의 눈에 토야와 보보, 그리고 거리에 쓰러진 사람들이 보였다.
루와 부용이 걱정되고, 앞으로의 상황을 상의할 이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많은 사람을 모른 척 둘 순 없었다.
“젠장.”
쿤은 결국 그들을 다 지하 피난처로 옮기기로 했다.
나딘에게 지하 통로를 들키면 안 되었기에 쿤과 토야, 건곤이의 움직임은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러웠다.
다행히도 넷이 모두를 다 피난처로 옮길 때까지 나딘과 늑대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거기다 루와 부용, 그리고 사강 역시 지하 피난처에 있어 수고스럽게 그들을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그들의 목에 검은 문신이 새겨져 있단 거였다.
쿤은 지금 이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건 녹턴밖에 없다 판단하고, 그녀가 숨어 있는 판테테 지하로 갔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 눈치채고 올라왔던 건지, 녹턴이 숙소 1층 거실에 쓰러져 있었다. 검은 문신을 목에 새긴 채 말이다.
결국, 그는 녹턴을 오즈벨 지하 방에 옮긴 뒤, 다시 피난처로 향했다.
그가 돌아오자, 시간을 부지한 기사 하나가 다가왔다.
그리고 물었다.
“…쿤, 이제 어쩌지?”
쿤은 아무 답도 할 수 없었다.
오즈벨 주민의 9할 이상이 시간을 빼앗겼다. 부상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
보보는 시간은 되찾았지만, 늑대에게 물린 여파로 아직도 눈을 뜨지 못했고, 나머지 넷은 시간을 빼앗겼다. 루의 경우는 부상도 심각했다.
이 와중에 차원이동자는 몇 시간 후면 반송차원문을 타고 본래의 세계로 도망칠 계획을 꾸미고 있다. 모두의 시간을 훔친 채.
아무에게도 도움받을 수 없고, 뾰족한 답도 없는 상황.
심지어 시간제한까지 있는데 움직일 수 있는 판테테가 저 하나밖에 없다.
“…….”
입안이 바싹바싹 말라갔다.
그제야 깨달았다.
저에게 진짜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단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