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86
185화- 영원을 바란 순간 (10)
골목을 거닐던 나딘의 발걸음이 뚝 하고 멈췄다.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하얀 담벼락과 그 위로 삐져나온 앙상한 나뭇가지.
노인은 그대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내 확신했다.
“여기군…….”
그래, 여기가 바로 제가 떨어진 위치였다.
쿤은 나딘이 다른 차원이동자처럼 차원문에 휩쓸리는 것과 동시에 기절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의 정신은 멀쩡했다.
오히려 노인이 기절한 건, 추락시 충격 때문이었다.
나딘이 탄 차원문이 나타난 장소는 11m 높이의 상공.
다행히도 차원문에 휩쓸릴 때 보호 주술을 걸어 추락사는 면했지만, 그 충격에 그만 정신을 잃고 만 것이다.
쿤과 루가 이를 몰랐던 건, 두 사람이 경보음을 듣고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차원문이 사라진데다 목격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 깊은 밤이라 먼 곳에서도 차원문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감옥에서 여기까지 빨리 뛰어와도 10분… 루 아가씨의 실력이면 더 빠를 수도 있겠어.’
어쨌든 못 해도 3분은 유지될 것이다.
즉, 그사이 도망치기만 하면 그 어떤 방해도 없이 모든 시간을 취할 수 있다.
‘이제 남은 시간만 회수하면 돼.’
그는 다시 늑대들을 불러냈다.
새로 만들어진 늑대들이 긴 골목을 가득 채웠다.
노인은 그들을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수백 마리의 늑대가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노인은 담벼락에 걸터앉아 늑대들이 사람들을 물어오길 기다렸다.
아까야 차원문 위치를 찾아야 하니 직접 돌아다닌 거였지만, 나딘은 원래부터 안전한 곳에 있는 걸 더 선호하는 인간이었다.
무엇보다 몸을 회복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내 예상보다 너무 늦게 찾았어.’
반송 차원문이 나타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은 얌전히 이곳에 있는 게 나았다.
혹여 다른 곳에서 쿤을 만났다 발이라도 묶이게 되면, 반송 차원문을 놓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곳에서 살 순 없지.’
나딘은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여전히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메우고 있었고, 그 아래로 새하얀 눈이 쏟아졌다.
조금 전부터 다시 퍼붓는 눈에 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먹구름과 하늘에서 내리는 액체는 노인에게 재앙 그 자체였다.
둑을 품은 비와 눈,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는 어둠, 특유의 음습함. 이 모든 것이 저를 병들게 하였다.
물론 이곳의 눈과 비에는 독이 섞여 있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워 참을 수가 없었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독비가 내리지도 않고, 대지와 사람들도 병들지 않으며, 빼앗을 시간도 많으니 리란티아에 남는 게 더 현명한 거 아니냐고.
하지만 노인은 이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이 낯선 세계에 뭐가 있을지 하나도 알 수 없다.
저를 순식간에 제압할 실력자가 있을 수도 있고, 무시무시한 괴물이 살고 있을 수도 있다.
하물며 이곳에는 판테테라는 집단이 있었다. 그건, 즉 이 세계에 낯선 생명체들이 자주 넘어온다는 소리가 아니던가.
노인은 확실한 게 좋았고, 불안전한 위험을 끌어안은 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노인은 이 땅에 남는 걸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이곳의 하늘이 싫었다.
날씨에 맞게 변하는 하늘은 그에게 익숙지 않았고, 그러길 바라지도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건 오직 단 하나. 성역에서나 볼 수 있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조금의 변화도 없이, 한결같이 맑은 하늘.
하물며 성역은 밤도 짧아 하루 대부분을 노란 하늘을 보며 지낼 수 있었다.
나딘이 영원을 꿈꾸는 것도 바로 하늘 때문이었다.
그래. 노인은 계속 하늘이 보고 싶었다.
모르는 이를 넘어 갓 태어난 아이, 제 친구, 가족, 종국엔 성역의 모든 이의 시간을 빼앗아서라도 영원토록 하늘이 보고 싶었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그가 리란티아에 떨어진 건 천운이었다.
‘그래. 정말로 운이 좋았어.’
나딘은 모래시계를 들어보았다.
본래의 세계에선 사람들이 다 병든데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도 없어 그 많은 이를 죽이고도 채 백 살을 맞이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곳에선 제가 여태 모아온 것의 몇십 배에 달하는 시간을 취할 수 있었다.
내일이 아침이 되면 이것이 다 제 시간이 된다. 맑은 하늘을 영원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빨리 반송 차원문이 나타났으면 좋겠군.”
나딘은 흡족한 미소를 띠어 보였다.
그때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가볍게 담벼락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골목 끝에서 쿤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오셨군요.”
차가운 바람이 골목을 훑고 지나갔다.
나딘은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쿤과 그 주변을 살폈다. 누가 더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달리 그는 혼자였다.
“정말로 혼자 오신 겁니까?”
“아뇨, 같이 왔어요.”
‘…거짓말.’
나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쿤이 나타나기 전부터 나딘은 계속 주변의 기척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쿤 말고 느껴지는 존재감은 없었다.
특히 아까 그 사자들의 경우는 특이한 외모만큼이나 기이한 존재감을 뽐냈다.
그런 걸 나딘이 놓칠 리 없다.
그렇기에 노인은 저 말이 혼자 온 걸 감추기 위한 허술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왜 두고 왔냐는 것이다.
쿤이 저를 압도할 만큼 강한 실력자인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사자들은 주술을 먹을 수 있다.
여러모로 함께 오는 것이 이득이었다.
‘그런데도 혼자 왔다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군.’
나딘은 금방 결론에 도달했다.
실로 이는 사실이었다. 쿤은 북청 사자에게 보보를 도와 사람을 지키라 일러두었다.
‘유한 성격인 건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나딘은 수첩을 펼치며 늑대 다섯 마리를 만들어냈다.
“사람은 이따금 한심하리만큼 멍청한 판단을 하죠.”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도련님은 그 사자들을 데리고 왔어야 했습니다. 혼자 올 게 아니라요.”
“혼자 안 왔다니까요.”
“또 그 거짓말입니까? 이거 제가 가르쳐 드려야겠군요. 어리석은 판단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요.”
나딘의 손짓에 늑대들이 일제히 땅을 박찼다.
쿤은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늑대들을 차례로 베어냈다.
순식간에 반 토막 난 늑대들이 검은 액체가 되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재생해 다시 공격했다.
한쪽은 계속 베고, 한쪽은 계속 재생하는 무의미한 전투가 이어졌다.
“지루한 저항은 그만하고,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어떠십니까?”
“제가 포기하면, 사람들의 시간은 돌려주실 건가요?”
“그럴 리가요.”
나딘이 그리 말하며 늑대 세 마리를 더 만들었다.
쿤은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이를 상대했다.
또다시 반복되는 전투에 나딘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대체 쿤은 왜 이 짓을 반복하는 걸까.
만일 이곳이 차원문 위치가 아니라면 반송 차원문이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끄는 거라 볼 수 있겠지만, 그도 아니었다.
‘설마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신중한 노인은 쿤을 얕잡아 보면서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 순간, 이상한 위화감이 그를 덮쳤다.
나딘은 반사적으로 제 손을 내밀었다. 새하얀 눈송이들이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눈 특유의 차가움도 안 느껴졌고, 녹아 물이 되지도 않았다. 그저 연기처럼 허무하게 사라질 뿐이었다.
‘가짜 눈?’
그래, 가짜였다. 여태 이를 눈치채지 못한 건, 날이 흐린데다 아까까지 눈이 내렸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허술한 걸 놓치다니. 근데 왜 가짜 눈을…….’
나딘이 의아함을 품으며 텅 빈손을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콰앙-
폭음과 함께 쿤의 손에 잡힌 늑대 한 마리가 터졌다. 검은 액체가 바닥에 흩뿌려지며 고약한 향을 내뿜었다.
싸늘한 정적이 골목에 내려앉았다.
나딘은 천천히 쿤을 응시했다. 그리고 서둘러 늑대를 재생시켰다. 하지만 주술이 풀린 것처럼 다시 되살아나지 못했다.
“이게 무슨…….”
쿤은 손등으로 제 얼굴에 들러붙은 검은 물을 닦아냈다.
“드디어 됐네요.”
“뭐……?”
쿤이 나딘을 쳐다봤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이제 더는 지루하지 않을 거예요.”
“…….”
노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여유가 사라졌다.
* * *
보보는 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잡았다.
쓰러진 사람들을 피난로로 옮기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장시간 동안 늑대들이 나타나지 않아, 사람 대부분을 옮길 수 있었단 거였다.
‘피난로의 문도 다 걸어잠그라고 했으니까, 한동안은 괜찮겠지.’
보보는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뒤쪽으로 향했다. 광장의 상징인 종탑 아래에 시간을 빼앗긴 영지민들이 누워 있는 게 보였다.
이들은 일부러 옮기지 않은 이들이었다. 나딘의 늑대들을 유인할 미끼로 말이다.
쿤이나 부용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고, 루 역시 내켜하지 않겠지만, 보보는 의외로 이런 일에 거부감이 적었다.
다만 여태 이런 짓을 하지 않았던 건, 판테테법 위반이나 영지민의 신고로 재판에 부쳐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체를 숨겨야 하는 보보에게 취조는 꼭 피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았다. 목격자도 없고, 문제 될 일도 없다.
무엇보다 이번 일은 보보의 앞으로에 큰 영향을 끼칠 만큼 중요한 기로였다.
사실, 보보는 연말에 있던 광석 차원이동자 일로 인해 고민에 빠져 있었다.
쿤과 부용에 대한 열등감, 자격지심, 그리고 종국엔 제 신념에 대한 믿음까지 흔들렸다.
오늘만 해도 제가 한 거라곤 동생을 지키다 시간을 빼앗긴 것밖에 없다.
하지만 쿤은 루가 했던 말처럼 제 모든 걸 다 써서 싸우고 있었다.
한심하게 쓰러진 저와 달리 자신을 둘러맨 동생을 지켜주고, 이 상황을 타파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어느 정도는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만큼이라도 가진 걸 다 해 싸워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이 찝찝한 기분을 떨굴 수 있지 않을까?
보보는 결국 흡혈 마법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제가 주어진 일을 말끔하게 해낸다면, 흡혈 마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로 했다.
마냥 외면하는 것이 아닌, 온전한 제힘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보보는 고개를 들었다. 호박색 눈동자가 피처럼 붉게 물든 게 보였다.
그런 보보의 옆에 건이가 다가왔다. 불안하면서도 심각해 보이는 북청 사자의 표정을 보며, 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걱정하지 마. 쿤 씨라면 잘해낼 거야. 우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잘 마무리 짓자.”
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가만히 앞을 응시했다.
잠시 후, 밤 그늘 속에서 검고 하얀 늑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젠장!”
나딘의 짤막한 욕지거리가 골목을 울렸다.
그의 손짓에 십수 마리로 늘어난 늑대가 쿤을 향해 달려들었다.
쿤은 이를 가뿐히 피한 뒤,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제 검에 베인 늑대들이 녹아내리는 것도 못할 만큼 꽁꽁 얼어버리는 상상을.
실로 이는 현실이 되었다.
그의 검에 베인 늑대들은 절단된 상태 그대로 얼어붙었고 더는 움직이지도, 재생하지도 않았다.
쿤은 얼어붙은 늑대를 힘껏 밟아 깨부쉈다.
산산 조각난 파편이 사방에 흩뿌려지며, 천호가 만든 가짜 눈과 섞였다. 그리고 새로운 이계의 기운이 되어 쿤의 마법에 힘을 보탰다.
『골목이 좁은 게 한몫했군. 덕분에 사방이 이계의 기로 가득찼네.』
천호가 주머니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나딘은 새로운 기척을 찾지 못했지만, 사실 그는 내내 쿤의 주머니 속에 있었다.
주술로 타인의 시간을 강탈한 이와 고된 수련으로 진리를 터득한 이. 그 차이가 워낙 크다 보니 이를 잡아내지 못한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