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87
186화- 영원을 바란 순간 (11)
『내가 직접 나서서 저 녀석을 처리하면 좋겠지만, 도사에게 살생은 금지라 이게 한계라네.』
천호는 미리 약속했던 신수어로 미안함을 전했다.
도사들이 터득하는 진리는 생명에 대한 본질도 포함되어 있었다. 때문에 그들에게 살생은 절대 해선 안 될 금기였다.
쿤은 이곳에 오기 전 미리 설명을 들었던 터라 신경쓰지 말라며 웃어 보였다.
오히려 그가 오즈벨을 돕기 위해 차원이동자를 죽인다면, 제가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이다.
『지금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빈말이 아니라 정말 생각하는 그대로가 바로바로 구현되었다. 몸도 가뿐했다.
그리고 여기엔 사강이 만들어준 약도 한몫했을 것이다.
어찌나 효능이 좋은지 보보에게 피를 내줬음에도 조금도 어지럽지 않았다. 심지어 마법을 써도 코피가 흐르지 않았다.
‘이계 식물로 만든 거여서 그런가? 이거 사강 씨한테, 백 개만 더 만들어달라고 해야겠다.’
쿤은 사강이 들었으면 쌍수 들고 좋아할 만한 일을 생각하며 몸을 움직였다.
어느 때엔 검으로, 어느 때엔 마법으로. 공간의 이점을 활용해 늑대들을 연이어 처리하는 쿤을 보며 나딘이 입술을 짓씹었다.
갑자기 이렇게 저를 몰아붙이다니.
‘처음부터 실력을 숨기고 있던 건가?’
아니, 그럴 리 없다. 정말로 이런 힘이 있었다면, 아까 저를 마주쳤을 때부터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쿤은 그러지 않았다. 모래시계를 빼앗겼을 때에도, 늑대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에도, 심지어 제가 피를 토할 때도 가만있었다.
즉, 특정 조건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힘이란 거였다.
‘아까와 뭐가 달라졌지?’
나딘의 시선이 쿤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천호로 이동했다.
‘저것이 도와주는 건가.’
하지만 어떻게?
천호는 나딘처럼 수첩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 주술을 외는 것도 아니었다.
종종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긴 했으나, 쿤도 그러는 걸 보면 소통을 위한 언어 정도로 여겨졌다.
뭣보다 말을 하는 타이밍과 기술이 따로 놀았다.
‘분명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래서 저 녀석이 이 괴상한 주술을 쓸 수 있게 된 거고.’
나딘은 이를 꽉 깨물었다. 문뜩 그의 눈에 새하얀 눈송이들이 들어왔다.
그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마치 이곳에만 눈구름이 있는 것처럼 골목 한정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
‘설마 이 눈이 원인인가? 이 역겨운 것은 여기서도 나를 괴롭게 하는군.’
나딘은 빠르게 수첩을 넘겼다. 그리고 글이 빼곡히 적힌 페이지를 펼쳤다.
‘길이 좁아 가급적 안 쓰려 했지만, 어쩔 수 없지.’
나딘이 짧게 혀를 찼다. 그러자 새카만 글자들이 한데 모이더니 거대한 늑대가 되었다.
늑대는 노인이 찢어 준 종이를 먹곤 몸을 하얗게 물들였다.
『저게 도령이 말했던 건가? 확실히 좀 위험해 보이군.』
쿤이 그랬듯 천호 역시 하얀 늑대의 위압감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먼저 움직이는 게 낫겠어.』
『네.』
쿤이 그대로 땅을 박찼다.
늑대는 그런 쿤을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발톱이 담벼락을 허물고, 쿤을 공격했다.
『도령!』
『걱정하지 마세요.』
쿤은 몸을 최대한 숙여 이를 피한 뒤, 검으로 땅을 그었다. 길게 이어진 검흔 위로 십수 갈래의 얼음 가지가 뻗어 나왔다.
뾰족한 얼음 가지가 거대 늑대의 몸을 뚫고 하늘로 뻗어 올랐다. 마치 못에 박힌 것처럼 늑대의 몸이 허공에 고정되었다.
하지만 녀석은 다른 늑대들처럼 가만히 당하지 않았다.
늑대가 그 거대한 몸을 크게 움직이며 저항했다.
가시 일부가 부서지며 늑대의 몸이 기울었다.
‘윽. 역시 얘를 잡기엔 위력이 약하구나.’
천호가 계속 눈을 내려 환경을 만든다 해도 여기는 실외였다.
차원이동자도, 기운도 마냥 붙잡아 둘 수 없기에 뽑아내는 위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골목이 좁아서 유지되는 거지, 공터였으면 진짜 힘들었겠어.’
『도령, 눈이……!』
“예?”
쿤은 위를 쳐다봤다. 거대 늑대가 꼬리를 휘두르며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천호가 도술로 만든 눈은 물론, 모여 있던 이계의 기운이 바람을 타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헉!”
안 돼. 이 환경을 어떻게 만들었는데!
쿤은 다시금 바닥을 그었다. 그러자 또 한 번 얼음 가지가 뻗어나 와 거대 늑대의 몸을 휘감았다.
더욱 격해진 늑대의 저항에 담과 주택들이 무너져 내렸다.
주변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쿤은 물론, 나딘이 있는 곳까지 건물과 담벼락의 잔해가 넘쳐났다.
‘좋아.’
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사실 그는 계속 나딘이 거대 늑대를 꺼내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 녀석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가뜩이나 좁은 시야가 한층 더 좁아지기 때문이었다.
본디 기습이란 상대 모르게 해야 효과가 있는 법이었다.
앞을 가린 늑대와 무너진 건물의 잔해. 여기에 파편을 피하느라 정신이 딴 데 팔린 나딘까지.
삼박자가 완벽하게 맞아들며 노인의 시선이 쿤에게서 떨어졌다.
쿤은 곧장 용의 비늘 배지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대로 달려가 노인의 코앞에서 투명화를 풀었다.
갑자기 등장한 쿤의 모습에 나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숨을 들이켜는 것까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쿤은 노인의 눈동자에 비친 저를 보며, 검을 찔렀다.
뾰족한 검끝이 정확히 노인의 왼쪽 가슴팍을 겨냥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스파크가 튀더니, 거대한 충격이 일었다.
쿤은 그대로 튕겨져 나가 땅바닥을 뒹굴었다.
“우악!”
쿤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그는 아픈 몸을 이끌며 상체를 일으켰다.
불에 덴 것처럼 화끈한 통증이 양손을 덮었다.
“젠장…….”
쿤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제 앞까지 다가온 나딘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혹시 몰라 가지고 있던 게 도움이 되었군요.”
노인이 그리 말하며 손을 폈다. 앙상하게 마른 손가지 사이로 새카맣게 타들어 간 종이가 보였다. 혹시 몰라 미리 만들어 쥐고 있던 보호 주술이었다.
“준비성은 제가 더 철저한 거 같군요.”
“글쎄요… 그건 저걸 보셔야 알 것 같은데요.”
“그게 무슨…….”
나딘이 흠칫 떨며 뒤를 돌아봤다.
순간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느새 본 모습으로 돌아온 천호의 손에 모래시계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쿤은 제 계획이 실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그럴 때를 위한 방책을 함께 짜두었다.
1안이 실패하면 2안으로. 그게 안 되면 3안, 그것도 망하면 4안.
그렇게 겹겹이 짜둔 안이 무려 열 가지가 되었다.
그리고 쿤은 이 모든 걸 천호에게 말해주었다.
『도령의 생각대로 보호 도술이 있었군.』
천호가 그리 말하며 모래시계를 만졌다. 불쾌한 기운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역겨운 물건이야.』
도사는 쿤이 일러둔 대로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곧장 시계를 뒤집어 시간을 쏟았다.
새카만 시간이 쏟아지는 것과 동시에 나딘이 비명을 질렀다.
“그만둬!”
노인은 빠르게 늑대들을 소환해 냈다.
거대 늑대 또한 쿤이 만든 얼음을 깨부수고 내려와 앞발로 쿤의 몸을 짓눌렀다.
“컥!”
『도령!』
늑대의 날카로운 앞발이 쿤의 목에 닿았다.
금방이라도 목을 뚫을 것 같은 위협에 천호가 모래시계를 세웠다.
주인을 찾아가던 시간들이 뚝 하고 끊겼다.
천호와 나딘이 서로를 응시했다. 두 노인 사이로 팽팽한 기류가 흘렀다.
먼저 입을 연 건 나딘이었다.
“내 시간을 내놔.”
“…도령을 먼저 놓아주게.”
“닥쳐.”
“도령이 먼저야.”
“내놓지 않으면 이 녀석을 죽여 버리겠어.”
“도사님, 안 돼요. 절대 주지 마세요.”
쿤이 절대 안 된다며 천호를 말렸다. 하지만 반대로 도사의 갈등은 깊어졌다.
가장 이상적인 건 쿤이 자력으로 빠져나오는 거였으나, 거대 늑대가 이계의 기운을 대부분 날려 버려 제 위력의 마법을 쓸 수 없었고, 비늘 배지는 다시 사용하려면 30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쿤이 저 늑대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는 더더욱 없고 말이다.
“…곤란해졌군.”
천호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딘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편이 서로에게 이로울 것 같군요.”
오랜 세월을 살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게 있다.
가령 상대가 타인을 외면할 수 있는지, 아닌지 같은 걸 말이다.
천호는 쿤이 죽는 걸 모른 체 할 수 있는 이가 아니었다.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이는 더더욱 아니고 말이다.
그렇기에 노인은 도사가 저보다 강하고 긴 세월을 살았다는 걸 눈치챘으면서도, 절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여기서 물러난다면, 도련님의 시간은 노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딘이 가볍게 손짓했다.
늑대가 앞발에 힘을 줬다. 그리고 마치 보라는 듯 발톱으로 천천히 쿤의 목을 할퀴었다. 흡사 칼에 베인 것처럼 가로로 긴 상흔이 새겨졌다.
붉은 피가 목을 타고 흘러내려 눈밭을 적셨다.
결국, 천호가 백기를 들었다.
“…미안하네, 도령.”
“도사님!”
천호는 쿤의 외마디를 무시한 채 나딘을 응시했다.
“약속은 지키게. 만약 이를 어기면, 나 역시 가만있지 않을 거야.”
“제 목표는 얌전히 돌아가는 겁니다. 그걸 방해하지 않으면 어르신과 한 약속을 어길 일도 없지요.”
“좋아.”
천호는 나딘에게 모래시계를 건넸다. 동시에 늑대가 쿤을 천호 쪽으로 걷어찼다.
“으악!”
눈 바닥을 구른 쿤이 아픈 목을 움켜쥐며 일어났다.
천호는 곧바로 쿤의 목을 살폈다. 다행히도 깊게 베인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제 소매로 쿤의 목을 꾹 누르며 지혈했다.
“다행이야.”
“뭐가, 다행이에요!”
쿤이 울분을 토했다. 어떻게 찾은 시간인데 그걸 다시 빼앗기다니.
이럴 가능성 역시 생각해 두었지만, 진짜 벌어지니 속이 쓰렸다.
“젠장. 어떻게든 좀 더 끌었어야 했는데…….”
쿤이 아랫입술을 질근질근 깨물었다. 그때 천호가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 도령.”
도사가 앞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나딘과 늑대를 지나 한 곳에 멈췄다.
“그대가 짰던 것 중 실행 확률이 가장 낮았던 계획. 하지만 성공 확률은 가장 높았던 그 안이 실현된 거 같으니까.”
“예? 잠깐, 설마……!”
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는 곧장 뒤를 돌아봤다. 여기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건물 옥상에 한 여자가 곤이의 몸에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그래. 아무래도 루 낭자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고 똑똑한 모양이야.”
그리고 이 말과 함께 골목을 둘러싼 결계가 만들어졌다. 용이의 힘이 담긴 강화 결계였다.
천호는 곧장 도술을 사용했다.
나딘과 늑대가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결계 안이 아주 자욱한 안개로 가득찼다.
쿤은 검을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여 있는 이계의 기운, 루의 결계, 도망칠 수 없는 나딘과 늑대.
마지막으로 천호가 쿤의 손에 비늘 배지를 쥐여주었다.
보보가 만약을 대비해 천호에게 빌려주었던 거였다.
이로써 쿤이 마법을 쓰기 가장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