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89
188화- 영원을 바란 순간 (13)
타앙-
파열음과 함께 반송 차원문을 향하던 노인의 몸이 뚝 하고 멈췄다.
‘어?’
나딘은 제 가슴께를 내려다봤다. 마치 작은 구슬이 관통한 것처럼 생소한 관통상이 남아 있었다.
“이게 무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고통이 노인을 덮쳤다.
“으아아악-!”
뒤틀린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내부에서 극심한 열감이 퍼졌고, 장기가 뒤집히며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질렀다.
하늘로 오르던 나딘의 몸이 추락했다.
쿵-
마치 처음 차원문에서 떨어졌을 때처럼 앙상한 몸이 힘없이 땅에 처박혔다.
노인이 제 상처 부위를 움켜쥐었다. 붉은 피가 쉼 없이 흘러나와 눈과 건물 잔해를 적셨다.
“허억… 헉, 컥…….”
나딘은 제대로 숨도 못 쉰 채 꺽꺽거렸다.
심장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위치.
만약 조금이라도 잘못 맞았다간, 그대로 즉사했을 것이다.
‘정신 차려… 급소를 피했으니까… 어떻게든…….’
나딘은 이를 꽉 깨물며 정신을 다잡았다.
순간 섬뜩한 느낌이 그를 덮쳤다.
그는 다시 제 몸을 내려다봤다.
단순한 착각인 걸까? 제 몸에 난 상처가 정확히 루에게 냈던 상처의 위치와 똑같았다.
‘…설마 일부러?’
노인이 낯빛이 희게 질렸다.
사실 내내 의아했던 게 있다.
어째서 쿤은 검을 찔러 넣은 채 투명화를 풀지 않았던 걸까. 만약 그랬다면 처음부터 제 몸에 막대한 상처를 입힐 수 있었을 텐데.
이를 생각 못 했나? 아니면 뭔가를 통과한 채로 투명화를 풀 수 없는 걸까?
답이 무엇이든 노인에게 나쁜 건 없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러나 지금 와서 알았다. 쿤이 일부러 그랬다는 걸. 직접 제 몸을 뚫는 고통을 주려고 이를 노리고 있었다는 걸.
‘설마 여태 해왔던 모든 게……!’
그제야 노인은 쿤이 했던 모든 행동에 복수가 들어가 있음을 깨달았다.
늑대들로 저를 공격한 것도, 가슴에 구멍을 뚫어놓은 것도, 가장 방심한 순간에 한 공격도 다 노인이 했던 짓을 그대로 돌려준 거였다.
‘말도 안 돼…….’
노인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그때 쿤이 천천히 다가왔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을 보며 노인은 쿤이 총격이 임기응변이 아님을 눈치챘다.
결계가 깨질 때에도, 제가 반송차원문을 타러 갈 때에도 다 대응할 수 있도록 미리 계획해 둔 거였다.
“정말, 로… 이, 모든 걸…….”
“…….”
쿤은 아무 말 없이 나딘의 수첩을 빼앗아 내던진 뒤, 목에 걸려 있는 모래시계를 가져갔다.
노인의 파들거리는 손이 쿤의 바짓단을 잡았다.
“내, 놔…….”
쿤은 노인을 측은하게 쳐다본 후, 모래시계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그대로 쏟아부었다.
“안 돼… 안 돼…….”
노인이 울부짖으며 땅을 긁었다.
시간을 쓸어모으려는 것 같았으나, 앙상한 손가락에 걸리는 건 더럽혀진 눈과 으스러진 건물 잔해뿐이었다.
탁해진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럴 순 없어… 내 시간이…….”
“이건 나딘님의 것이 아니에요. 오즈벨 사람들의 미래죠.”
쿤은 쏟아져 내리는 시간을 쳐다봤다.
검은 모래 같기도 하고, 반짝이는 밤 같기도 한 것이 바닥에 닿자마자 사라졌다. 원래의 주인을 찾아 돌아가는 거였다.
쿤은 천호에게 모래시계를 건넸다. 그리고 나딘의 뒷덜미를 잡았다.
“도령? 뭘 하려는 겐가?”
“뭐긴요. 제가 할 일을 마무리 지어야죠.”
쿤이 그리 말하며 위를 쳐다봤다.
천호의 눈이 호두알만 해졌다.
“설마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려는 건가?”
“네.”
“하지만 그쪽 세계에서 또 지금 같은 짓을 벌이면 어쩌려고 그러나.”
천호는 모래시계와 수첩을 빼앗아도 나딘이 주술을 써서 다른 이들의 시간을 강탈할까 걱정됐다.
하지만 쿤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그쪽 세계에선 더는 빼앗을 시간이 없을 거예요. 있다 해도 얼마 없을 테고요. 거기다 오즈벨에 두면 저희한테 선택지가 주어지게 돼요.”
나딘을 살린 후 본부 감옥에 가둘지, 죽게 둘지 말이다.
쿤은 다른 단원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지 않았다. 노인을 살리든 죽이든, 어느 쪽을 해도 마음이 찜찜하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사람과 같은 외모, 거기다 노인이다. 낯선 외모의 차원이동자를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기분이 좋지 않으리라.
“그래서 그냥 제가 끝까지 책임지려고요.”
무엇보다 그는 나딘이 살던 세계 사람들의 복수도 하고 싶었다.
나딘의 상처는 치명상이지만, 루처럼 치료를 받으면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세계에선 노인을 살려줄 이가 없을 것이다.
본인이 빼앗은 삶이 돌고 돌아 자신의 내일을 막는 것. 어쩌면 나딘에게 가장 걸맞은 마지막 아닐까?
“그럼 다녀올게요.”
쿤은 안개의 기운이 다 사라지기 전에 나딘이 그랬던 것처럼 하늘로 향하는 길을 만들었다.
그때 천호가 도술을 부렸다. 따스한 바람이 쿤과 나딘을 휘감았다.
“위에는 마법이 제대로 안 써질 수도 있으니, 내 바람을 타고 가게.”
“감사합니다.”
쿤은 나딘을 데리고 하늘로 향했다. 첫날 약속한 대로 그를 배웅하기 위해.
노인은 점점 멀어지는 땅을 보며 절규했다.
모래시계도, 주술을 적는 책도, 시간도, 그 무엇 하나 남지 못하고 떠나는 길.
처음 올랐던 하늘이 환희에 찬 길이었다면, 지금은 지옥으로 향하는 길 같았다.
붉게 물든 눈에서 연신 눈물이 쏟아졌다.
마른 뺨을 타고 내려와 턱끝에 맺힌 눈물이 지저분한 땅 위로 뚝뚝 떨어졌다.
노인에게서 내리는 비는 그의 마지막만큼이나 허무하고 덧없었다.
반송 차원문이 사라지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노인을 태워 보낸 쿤은 천호의 바람을 타고 안전하게 아래로 내려왔다.
그사이 모든 시간이 답답한 모래시계를 빠져나와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갔다.
“하얀 부분이 문제군.”
“이건 사강 씨한테 부탁해서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일단 지금은 이걸로 됐다.
쿤은 뒷정리는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한 후, 곧장 곤이와 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또 한 번 천호의 도움으로 옥상에 올라가자 축 늘어져 하늘만 보는 루와 그대로 얼어 있는 곤이가 보였다.
“아들! 루 씨!”
쿤이 둘에게 다가갔다.
그때 곤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신호를 보냈다.
절대 이곳에 오지 말라고. 빨리 도망치라고. 오면 죽는다고.
하지만 쿤의 눈에 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보단 루가 걱정됐다. 심지어 결계까지 풀리지 않았던가.
“루 씨, 괜찮으세요?”
“…괜찮냐고?”
루가 검이 든 카드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쿤이 사정거리에 든 순간, 검을 뽑아 들며 공격했다.
“우억!”
쿤이 빠르게 몸을 뒤로 물렸고, 천호 역시 화들짝 놀라 쿤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위험하잖아요!”
“낭자, 뭐하는 건가!”
“하?”
저를 향한 비난에 루가 입술을 비틀었다.
“이것들이… 너희가 한 짓보다 위험 할……! 쿨럭, 쿨럭.”
루가 제 입을 틀어막으며 기침을 해댔다.
“헉. 괜찮으세요?”
“낭자, 괜찮은가?”
“이게 괜찮아 보여?!”
루는 다시 한 번 버럭 소리를 지르다, 가슴을 짓누르는 통증에 몸을 웅크렸다.
아팠다. 근래 들어 이렇게 아픈 적이 또 있나 싶을 정도로.
그런데 이런 제게 마법을 쓰게 하다니.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
루가 다시금 분노했다.
“너 진짜, 죽었어…….”
루는 당장에라도 후배의 배에 똑같은 상처를 내줄 것처럼 노려봤다.
쿤은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하하하… 죄송해요. 근데 이게 제일 성공률이 높아서…….”
“그렇다고 환자를 데려오냐?”
“아니, 실패해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니까, 좀 더 살 확률이 높은 쪽으로…… 그리고 루 씨가 도움을 청하라고 가르쳤잖아요.”
쿤이 뻔뻔하게 말했다. 물론 이를 들은 루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그녀는 아픈 몸을 움직이는 대신, 쿤의 귀에 온갖 쌍욕을 퍼부었다.
천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일도 잘 해결했고, 시간도 되찾았는데 왜 이리 다투는 건지.
“자자, 둘 다 진정하게.”
“도사도 똑같아! 얘가 미친 짓을 하면 말려야… 으윽… 아파…….”
“…미안하네, 낭자. 하지만 나도 말릴 새가 없었어.”
“시끄러워… 둘 다 죽일 거야…….”
루가 계속 죽이겠다며 웅얼거렸다.
쿤은 그런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걸 보니, 불현듯 연말의 일이 떠올랐다. 술에 취했을 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계 식물로 만든 약에 술 성분도 있다고 했는데…….
“루 씨, 혹시 취하셨어요?”
퍼억.
루의 주먹이 쿤의 명치를 가격했다.
“컥.”
쿤이 배를 움켜쥐며 끙끙 앓았다. 아픈 사람이 때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힘이었다.
“이게 진짜 죽으려고……!”
“윽! 진짜 잘못했다니까요. 어쨌든 잘 해결돼서 다행이에요”
“내 고통은 해결되지 않았는데, 뭐가 다행이야!”
“알겠어요. 상처 다 나을 때까지, 제가 매끼 보양식으로 챙겨 드릴게요.”
순간 루가 움찔했다.
천호와 곤이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설마 이런 걸로 넘어가겠어? 싶었으나, 의외로 루는 단순한 면이 있었다.
“…간식도 얹으면 생각해 볼게.”
“네. 세끼에 간식도 얹어서 해드릴게요.”
“…좋아. 이번엔 이 정도로 봐줄게.”
루가 선심 쓰듯 말했다. 정말로 세끼에 간식이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단 투였다.
보보와 건이가 온 건 그다음이었다.
“쿤 씨, 루 씨!”
보보는 아주 능숙하게 건이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건이 역시 척척 하고 자세를 잡는 걸 보니, 그 잠깐 사이에 둘이 많이 친해진 듯싶었다.
“두 분 다 괜찮으세요?”
보보의 질문에 쿤이 희미하게 웃었다.
“네.”
“아프지만 괜찮아.”
“다행이에요.”
“보보 씨는 괜찮으세요?”
“멀쩡해요.”
보보가 쓰게 웃으며 답했다.
흡혈 마법을 쓴 보보에게 나딘의 주술들은 장난감 수준도 못 됐다. 인간 방패까지 해야 했던 전과 비교하면, 참으로 씁쓸한 차이가 아닐 수 없었다.
“근데 차원이동자는…….”
“돌려보냈어요.”
“예? 왜요?!”
“그게 저희 일이잖아요.”
“…….”
보보가 영문을 모르겠단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척 봐도 위험군 차원이동자. 까딱하면 차원문 사태라 불릴 수 있는 일이 벌어졌음에도 상대를 돌려보내다니.
보보는 도저히 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반면 루는 모든 것을 이해한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어차피 여기 둬봤자 짜증 나기만 할걸.”
원래 세계로 돌아갔다지만, 그 몸으론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길 어야 한두 시간이겠지.
뭣보다 루는 쿤의 선택을 반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왜 그랬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한테 선택권을 안 주려는 거겠지. 사람처럼 생긴 차원이동자를 처리하는 건 여러모로 찜찜하니까.’
하지만 이는 역으로 말했을 때, 쿤이 그 부분을 무척이나 불편해하고 있단 걸 의미했다.
‘사람의 급소에 총을 쏜 것도 처음일 거야.’
쿤은 저나 보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각오를 다졌을 것이다.
나딘을 처리하고 돌려보내는 데 말이다.
‘괜히 나까지 말 얹지 말자. 뭐, 나를 데리고 나온 건 여전히 짜증 나지만.’
“그래도 수고했어.”
루의 칭찬에 쿤이 가는 눈을 끔뻑였다. 잠시 후, 그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때 보보의 통신기가 울렸다.
바로 받자 토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강의 귀에 있는 걸 빼다 토야한테 빌려줬는데, 그걸로 통신한 거였다.
[형! 사람들 문신 다 사라졌어!]“정말?”
[응. 몇 명은 벌써 깨어났고.]“다들 무사해?”
[일단은. 죽은 사람도 없고, 다들 숨도 잘 쉬고 있어.]보보가 환한 얼굴로 토야의 말을 전달해 주었다.
쿤과 루, 그리고 천호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머물렀다.
“다행이에요.”
“그러게.”
“이제 뒷정리만 하면 되네요.”
“나도 도와주겠네.”
건이와 곤이 역시 도와주겠다며 의견을 표했다.
쿤은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딘을 돌려보낼 때까지만 해도 별로 실감이 안 났는데, 사람들이 무사하단 이야기를 들으니 이제야 정말로 이 힘겨운 일이 끝났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