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2
1화-칠전팔기(01)
쿤은 마른침을 삼키며 제게 온 새하얀 편지를 내려다봤다.
스물셋. 꽃이 피어도 이상하지 않을 풋풋하고 창창한 나이건만, 쿤의 표정은 마치 세상의 풍파를 다 겪은 노인처럼 어둡기만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쿤이 지금 받은 편지가 약 한 달 반 전에 보았던 판테테 시험의 결과서였기 때문이었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결과에 쿵쾅거리는 심장을 달랠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아직도 확인 안 했어?”
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언제부터 있었는지 큰누나 ‘라일라’와 작은형 ‘로건’이 소파의 등받이에 팔을 걸친 채 서 있었다.
“어서 확인해 봐.”
“긴장돼서 못 열어보겠어.”
“어차피 떨어질 거 왜 긴장하는 건데.”
…뭔데, 그 당연하다는 투는.
쿤은 가는 눈으로 제 형을 흘겨봤다.
그사이 주방에 있던 작은 누나 ‘리나’가 남매가 있는 거실로 나왔다. 그녀는 손에 든 커피잔 하나를 라일라에게 건넸다.
“우리 내기하자. 난 쿤이 떨어진다에 50크로 걸게.”
“나도 떨어진다에 50크로.”
“누나들도 떨어진다에 걸게? 젠장. 나도 떨어진다에 걸라고 했는데.”
“…….”
이런 인간들을 남매라고…….
이 와중에 건 돈도 웃겼다. 요즘은 그걸로 시장 커피 한 잔도 못 사 마셨다.
아이들 용돈으로도 안 줄 금액을 걸며 내 탈락에 손을 들다니.
“너무한 거 아냐? 응원해 주진 못할망정 왜 항상 초를 치는 건데.”
쿤이 입을 샐쭉이며 투덜거렸다. 가뜩이나 길게 찢어진 눈꼬리가 위로 올라가자 그 얼굴이 한층 더 여우처럼 보였다.
라일라는 들고 있던 잔을 로건에게 넘긴 뒤, 쿤의 눈가를 만졌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진짜 여우 닮았어. 그것도 웃는 여우. 어쩜 이렇게 할아버지랑 똑 닮은 걸까.”
“얼굴만 닮았지. 머리도 할아버지를 닮았으면 진작 붙었어.”
“거기다 쿤은 마법사도 아니잖아.”
로건이 그리 말하며 쿤을 슥 쳐다봤다.
판테테는 기사나 용병보다도 위험하다 알려졌고, 하는 일도 기밀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마법사들 위주로 뽑았는데, 애석하게도 쿤에겐 그런 재능이 없었다.
쿤 역시 가장 걸려 하는 부분이었기에 저도 모르게 윽 하고 짧은 신음을 흘렸다.
“비, 비마법사 판테테들도 있어!”
“그치들은 정말 똑똑한 사람이고.”
“나도 똑똑……!”
하진 않구나…….
“크흠, 열심히는 한다고!”
“열심히 한다고 될 실력이었으면 시험을 일곱 번이나 안 치렀지.”
리나가 동생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쿤은 명치를 세게 맞은 사람처럼 몸을 웅크렸다.
그렇다. 리나의 말대로 쿤은 무려 여섯 번이나 판테테 시험에 낙방했다. 연에 두 번, 연수로만 보자면 3년 동안 낙방만 한 것이다.
그런데도 쿤은 판테테를 포기하지 않았고, 약 한 달 전 일곱 번째 시험을 치렀다.
남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쿤네 남매가 사는 로비츠 영지는 풍부한 자원에 빈부격차도 적고 취업률도 높아 마을주민 모두가 평균 이상의 삶을 유지하는 게 가능했다. 거기다 여태 단 한 번의 차원문도 나타나지 않은 안전지대였다.
쿤이 마음만 먹는다면 죽을 때까지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도 쿤은 리란티아에서 가장 위험한데다 박봉이라 손꼽는 판테테를 꿈꿨다.
다른 직업이 없는 것도 아니고, 왜 하필 판테테란 말인가.
“이제 슬슬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냐? 그냥 형이랑 장사나 하자.”
“그래. 우리 막내는 요리사가 제격이야.”
로건과 리나는 유독 솜씨 좋은 동생의 손맛을 칭찬하며 다른 꿈을 꾸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해댔다. 하지만 이런 말에 넘어갈 쿤이 아니었다.
“왜 걸핏하면 요리하래. 요리사는 뭐 아무나 해?”
“네 솜씨는 아무나가 아니잖아. 그리고 엄밀하게 따지면 아무나 안 하는 건 판테테지.”
아무나가 아니라 아무도인가?
로건이 그리 중얼거렸다.
쿤은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저보다 요리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저런 말을 하는 건지.
뭣보다 제 요리 실력이 꿈이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싫어. 나 판테테 할 거야. 형하고 누나들이 뭐라 해도 내 생각이 바뀔 일은 없어.”
바위보다도 단호한 대답에 남매는 이제 지겹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얘 고집도 알아줘야 한다니까.”
“놔둬. 또 떨어져 봐야 정신 차리지.”
“에휴~ 우리 막내는 언제 철 들려나.”
리나 로건에 이어 그나마 상냥한 라일라까지. 끝까지 응원 한 마디를 안 해주는 남매를 보며 쿤은 빠드득 이를 갈았다.
‘내가 진짜 이번엔 붙고 만다. 꼭 붙어서 두 번 다시 이딴 소리 듣나 봐.’
쿤은 결의에 찬 눈으로 봉투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힘껏 실링을 뜯고 내용물을 꺼냈다.
그러나 이런 쿤의 결의를 산산조각내듯 종이의 맨 윗부분에 ‘불합격’ 도장이 커다랗게 찍혀 있었다.
세상은 왜 이렇게 야박한 걸까.
이번엔 꼭 붙겠다는 일념으로 도전한 7번째 시험. 전보다 배로 공부하고, 배로 집중해 시험을 치렀음에도 마치 ‘너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한 결과에 어깨가 축 늘어졌다.
* * *
쿤의 둘째 형인 로건은 로비츠 영지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했다.
쿤은 시험에서 떨어질 때마다 형의 식당에 끌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가족들의 잔소리를 피하고, 학비와 제 용돈을 벌기 위해 한시적으로 하는 아르바이트였기에 쿤의 요리를 좋아하는 손님들은 이 시기를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쿤은 종일 바삐 움직인 것도 모자라 손님을 마주하는 족족 ‘이젠 요리사로 전향하는 게 어떠냐’, ‘넌 요리사가 천직이다’ 등의 별 영양가 없는 말을 들어야 했다.
아니, 차라리 그뿐이면 다행이었다. 손님 중 일부는 ‘또 떨어졌냐’, ‘이제 꿈꿀 나이는 지나지 않았냐’며 걱정을 빙자한 오지랖을 부렸다.
식구들과 친구들, 거기에 손님들까지.
쉬지 않고 이어지는 부정적인 이야기에 쿤의 기분은 땅을 파다 못해 관속에 들어간 지 오래였다.
“아무리 나라도 그런 이야기만 들으면 지친다고…….”
쿤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공원 벤치에 털썩 앉았다.
아르바이트도 끝났고, 날도 슬슬 저물어가고 있건만, 이상하게 집으로 가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사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집에 가면 분명 또 불합격을 들먹이며 다른 일을 찾으라 할 게 안 봐도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말을 듣는다고 꿈을 포기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힘내라는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
“으… 기운 차리자. 그래야 다시 공부하고 시험 보지.”
저축한 거 아직 남아 있으니까, 이번엔 한 달만 짧게 일하고 바로 독서실 끊자. 그전까지는 노트 정리 다시 하고.
쿤은 그리 생각하며 없는 힘을 억지로 짜냈다.
그때 주시하지 않던 무언가가 쿤의 시야에 잡혔다.
골목의 입구에 한 사람이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채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엔 커다란 상자가 하나 있었는데 뭔가 싶어 보니 ‘점 봐드립니다’라는 글이 간판마냥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
쿤은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점쟁이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제 발소리를 들은 것인지 점쟁이가 고개를 들며 후드를 끌어내렸다.
쿤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잘생겼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잘생겼다.
대본을 쓰는 큰 누나 덕에 여러 배우를 만났지만, 그 모두를 합친 것보다 눈앞의 점쟁이가 훨씬 더 화려한 외모였다.
심지어 그는 행색 또한 평범하지 않았다.
염색한 지 꽤 되었는지 머리 뿌리만 검은 금발 하며, 오른쪽 눈에 찬 의료용 안대까지.
덕분에 그가 입은 평범한 재킷과 바지 또한 이국적이다 못해 특이하게 느껴졌다.
“점 보게?”
남자가 눈매를 예쁘게 접으며 말했다.
얼굴이 잘생긴 사람은 목소리도 좋은 법인지 감미로운 중저음이 귀에 감겼다.
“어… 음… 그럴까요?”
왜 영업 쪽에 잘생긴 사람들을 배치하는지 십분 이해한 쿤은 쭈뼛쭈뼛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무슨 점을 보고 싶은데? 연애운? 재물운?”
“시험운이요.”
쭈뼛거린 처음과 달리 다음 대답은 의외로 시원하게 나왔다.
어쩌면 무의식이 칭찬을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으레 점쟁이들은 그럴싸한 말을 있어 보이게 하지 않던가.
좋지 않은 일도 좋게 포장하는 것이 그들의 재주니 그토록 듣고 싶었던 빈말을 해줄지도 모른다.
“학생이었어?”
“아뇨, 그건 아니고 제가 판테테 시험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쿤의 말에 점쟁이가 잠시 멈칫했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신기하네. 요즘 애들은 판테테 같은 거 안 하려고 하는데. 박봉에 위험하기만 하다고 다 꺼리잖아.”
저와 몇 살 차이 안 나 보이는 점쟁이가 젊은이 어쩌고저쩌고 운운하다니.
쿤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뭐… 어릴 때 꿈이라서요. 어쨌든 계속 낙방하고 있는데 언제쯤 붙을까요?”
“몇 번 봤는데?”
“일곱 번 정도 봤어요.”
“와… 그 정도면 재능이 없는 거 아니야?”
“예?”
조금도 예상 못 한 대답에 쿤은 멍하니 입만 턱 벌렸다.
“너 말이야. 그냥 포기하고 안전한 꿈을 갖는 게 어때?”
“…….”
“차원문이니 차원이동자니 용사니 황제니 하는 것 때문에 판테테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거 다 뻥이야.”
“…….”
“판테테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정의롭지 않아.”
점쟁이의 말이 길어질수록 쿤의 울화도 점점 커졌다.
기껏 다잡은 마음이 다시 진흙탕에 처박힌 느낌이었다.
내가 왜 점쟁이한테까지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대체 왜 다들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거냐고.
“보니까 요리 쪽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그쪽을 업으로 삼…….”
“아씨! 요리사 안 한다고!”
결국, 참다못한 쿤이 자릴 박차고 일어났다.
“누가 판테테 위험한 거 몰라?! 누가 박봉인 거 모르냐고! 근데도 하고 싶어! 내가 한다는 데 왜 남들이 난리인 거야!”
마치 악에 받친 것처럼 분이 터져 나왔다.
애먼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거란 걸 알고 있지만, 한 번 터진 화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쿤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씨근덕거렸다.
점쟁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보다 키가 한 뼘 정도 더 컸기에 쿤은 아래로 향했던 시선을 위로 올려야 했다.
남자가 살짝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로 판테테가 되고 싶어?”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될 거야! 될 거라고!”
“그래? 그럼 어디 한번 해봐.”
점쟁이가 쿤의 뒤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짧게 말했다.
“예행연습.”
그 말에 쿤이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시계의 종탑 뒤쪽 하늘이 잔물결처럼 일렁이더니 검푸른 빛의 회오리가 소용돌이쳤다.
곧이어 커다란 굉음과 함께 어둠이 입을 벌렸다.
16년간 숱하게 봐왔던 자료. 로비츠 영지에선 단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던 이변.
차원문이었다.